회상의 피난길 9~12일차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아래 전주방송 보도소식도 있습니다.
(9日次) 4월 18일(日)
'강경을 거쳐 익산까지'
4월 18일(일요일), 일기예보를 들으니 월 - 수요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한다. 어제 예정보다 앞당긴 곳까지 가기를 잘하였다, 내친 김에 오늘도 더 멀리 가야 비가 오더라도 일정에 차질이 없겠다 싶어 아침 7시부터 걷기에 나섰다. 두 시간가량 걸으니 강경 못미쳐 3km지점, 도로변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들고 강경에 이르니 열시 반이다. 명희 내진 윤영 순영 동생과 이기옥(윤영 동생의 딸) 등 5명이 강경 발 11시 39분 기차로 올라가고 나머지 12명이 함열방향으로 걸어가니 이내 전라북도에 진입한다.
피란길에 고생하다가 고향땅인 전라북도에 들어서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 부모님 생각이 나서 덩달아 고향에 찾아온 기분이 든다.
강경에서 함열까지 12-3km를 걸어 시강에 이르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우리가 강경을 출발했을 때 서울을 나선 박옥균 자형과 사위 박동식 군 등이 그 시간에 함열까지 달려와 식당에서 같이 합류하였다. 5명이 서울로 떠나고 새로운 5명이 도착한 셈이다.
함열에서 익산까지 17km라고 이정표에 나와 있다. 세 시간 쯤 걸으면 익산 5km 전방 쯤에서 오늘 코스를 마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열심히 걷다보니 어느세 6.25 피란길에 하루를 친지집에서 묵었다는 황등이 나온다. 윤상 조카 부부가 익산을 거쳐 황등까지 내려와서 합류하여 걷다보니 익산 시계에 이르렀다. 내친 김에 시내까지 진입하여 오늘 예상 코스보다 5km를 더 걸어 익산에 도착한 셈이다. 마침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하루쯤 비가 와서 쉬더라도 여유가 있겠다 싶으니 여유롭다.
가는 곳마다 어디가는 길인가, 무슨 행사인가 묻는 이가 많은데 그때마다 봉희 동생이 중앙일보 기사를 내보이며 설명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데 좋은 식당을 찾으려고 어느 중년에게 기사를 보이며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값싸고 맞 좋은 음식점을 안내하여서 저녁 식사를 알차면서도 맛 있게 들었다. 함열에서 익산으로 오는 도중의 어떤 신사는 반대편 차선으로 달리다 창문을 열고 크락숀을 울리며 성원의 말을 건네기도.
저녁 식사 후에 박옥균 자형 일행과 윤형조카는 서울로 올라가고 우리는 익산 역 앞의 찜질방에 여장을 풀었다. 매일 많은 거리를 걷다보니 조석으로 목요하며 피로를 풀 수 있는 찜질방이 모텔보다 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식당에서 본 좋은 글 하나,' 99세 이하는 금연입니다.'
젓갈로 유명한 강경 거리가 볼만하고 벗꽃 만발한 도로변의 경치가 좋아서 걷기가 생각보다 멋 있는 여행인 것을 알게 된 것도 소득이고 건강에도 좋은 효과가 있으니 일석 삼조라고 할까, 참여한 모두들 대만족을 표명하여서 기쁘고 감사,
많은 가족들이 적극 참여하고 깊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어 오늘처럼 강행군을 하여도 지치지 않고 힘이 나니 얼마나 감사한지, 매 출발 때마다 화이팅을 외치는데 오늘은 내진 멍희 공진 동생, 윤형 조카, 박옥균 자형이 화이팅을 선창하였다. 우리 가족 모두 화이팅.
2010년 4월 18일 저녁
고향이 가까워진 익산에서
(10日次) 4월 19(月)
'무서웠던 목천포 다리를 넘어 김제로'
4월19일(월요일), 4. 19 50주년이되는 날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은 일이 어언 반세기가 지났구나. 민주영령들의 영혼 앞에 머리숙여 묵념을 올리며 감사를 드린다.
아침 7시부터 13명의 가족이 찜질방의 TV 앞에 모여 앉아 kcs 2TV의 생방송 오늘을 지켜보며 우리들의 촬영 장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7시 23분 경 부터 2-3분에 걸쳐 방영되는 내용을 찍느라 그날 오전 내내 그렇게 애를썼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며 더러는 숙연한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어쨌든 애써 촬영에 임하여 무난한 방영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며 담당 프로듀서와 작가에게 수고하였다고 감사의 전화를하였다.
7시반 지나 익산역 앞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들고 남쪽 길을 따라 김제로 향하였다. 우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어느 상점의 남자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도중에 우리와 함께 걷게 된 중년의 트럭운전사가 김제방향으로 가는 길을 마지막 부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어 편안하게 익산 시가지를 벗어나 6.25 당시 운자누님이 공포감을 느끼며 건넜다는 목천포 다리를 옛날을 회상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주변의 벚꽃길이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며.
옛 국도를 따라 두 시간여를 걸어가니 김제군 백산면에 접어드는데 광주에서 제자들이 김제를 향하여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4차선의 익산-김제 간 23번 국도상에서 만나기에는 위험하게 여겨져 백산면사무소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골길을 따라 2km 쯤 들어가 12시에 강현숙, 황태숙 제자들과 합류하였다.
장어구이와 떡 자루, 과자와 음료 등을 한 아름 안고 온 제자들과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푸짐하게 들었는데 점심 값도 제자들이 지불하였다. 장어에 백반을 곁들였는데 짐심값을 내야 장어정식을 대접한 것이 된다며. 황태숙 제자는 식사자리에서 무사히 장도를 마치기를 기원하였고 강현숙 제자는 오후 출발에 앞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창대하리라'는성경말씀으로 우히들의 행사가큰 성과 있기를 축원하였다.
출발에 앞서 백산면사무소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막 떠나려는데 건강관리협회 전북지부 간부들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김제방향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 옆에 이번 행사의 기념 타올을 제작한송림타올 공장이 있어서 인사차 들어갔더니 사장부인이 반가이 맞으며 스포츠 타올이 걷는 행사 등에 쓰기 좋다고 30개를 선물로 봉지에 담아준다. 이렇게 곳곳에서 격려해주니 모두들 감사한 일이다.
오후 2시 경 김제에 접어들어 외곽도로를 지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미리 비축하며 많이 걸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고 2시 40분에 10일차 걷기를 마무리하였다. 오늘도 20km 이상 걸은 셈이다.
4시경에 김제역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박지호 조카를 만나 윤자누님은 익산으로, 윤상 조카 내외는서울로 올라가고 우리는 제자들과 찜질방에서 작별하고 오후 4시 지나 사우나에서 몸을 풀었다. 이번 행사 중 가장 일찍 걷기행사를 마친셈이다.
내일도 비가 오려나, 내일 일은 내일 렴려하고 오늘은 푹 쉬자.
(11日次) 4월 20(火)
고장의 TV 뉴스를 탄 '회상의 피란길'
4월 20일(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맑은 날씨이다. 광주에는 어제 오후부터 큰 비가 내려서 우리 걷기가 어려울까 걱정하였다는데 날씨도 우리 행사를 도와준다.
아침 7시 반에 식사를 하고 김제를 출발하여 부안쪽으로 향하였다. 호남평야를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도로가 꽤 멀리 까지 뻗어있어서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넓은 들판이 풍요로워 보인다. 물을 담는 큰제방으로 널리 알려진 벽골제를 거쳐 정읍시 신태인 땅을 지나 부안군 백산면에 이르는 29번 국도가 걷기에 편하고 어쩌면 60년 전에도 이길을 따라 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어제는 김제군 백산면 소재지에서 점심을 들었는데 오늘은 부안군 백산면 소재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잔치국수 맛이 괜찮아서 호남지방으로 들어 온 이후로 매 끼니 식사의 질이 좋아 진것도 고향덕이런가?
오후에는 sbs TV 의 지방제휴사인 전주방송에서 동행 취재를 나왔다. 정읍시 영원면을 지나는 한 시간여, 걷는 모습을 여러차례 찍고 나와 한용 동생을 인터뷰한 후 저녁 8시 20분 뉴스시간에 보도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고부까지 약 28km를 걷고 나니 오후 4시 반, 오늘 걷기를 마무리한 후 정읍시로 향하였다. 수소문하여 역 근처의 찜질방에 여장을 풀고 목욕 후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8시 뉴스시간이다. TV 앞에 둘러앉아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끝 부분에 '회상의 피란길'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들의 걷는 모습과 서울에서 고창까지의 여정을 도면으로 보여주고 인터뷰 내용도 소개하였는데 화면이 깨끗하여서 어제 방영된 kbs 2TV의 '생방송 오늘'보다 더 깔끔하게 방송되었다. 고창 큰 형님과 전주 박원구 자형도 시청하였는데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들이 볼 수 없어서 아쉽다.
오는 도중 승용차를 타고 가던 남자가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면서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찜질밤의 카운터 여주인은 뜻깊은 행사를 기리는 뜻에서 입장료를 2,000원씩 깍아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식당에서 우리의 사연을 보고 들은 아주머니가 가슴이 아리고 떨린다고 말하기도..
연일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서둘러 걷다보니 예정보다 하루 반쯤 앞당겨 걷고 있다. 이제 고향 마을까지 이틀 반이면 갈 수있는 거리, 내일부터는 좀더 여유를 갖고 서서히 걸어도 되겠다. 공진 동생이 현장의 일거리가 생겨서 오늘 걷기를 마치고 유성으로 올라갔다. 열하루동안 열심히 걸으면서 맨 뒤에서 우리의 안전을 도와준 공진동생 화이팅! 십 명의 정예요원 가운데 공진 동생이 빠지니 남자는 넷, 여자는 다섯으로 여성들이 여군처럼 맹위를 떨친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들의 걷기가 매우 힘들었으리라, 여군들 화이팅! 계속 관심을 가지고 성원하며 환호하는 우리 가족 모두 화이팅!
2010년 4월 20일 저녁
(12日次) 4월 21(水)
'김태호 교수님 가족이세요?'
4월 21일(화요일), 오전 8시 40분에 고부를 출발하여 고창까지 24lm를 걸어 오후 4시경에 자주 들리던 고향땅을 걸어서 밟는 감회가 별다르다. 고부에서 정읍시 소성면을 거쳐 22번 국도를 따라 걸으니 이내 고창군 성내면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고창땅에 들어선 것을 기념하여 사진 한 장 찍고 흥덕에 이르니 12시 20분, 아내가 파출소에 들어가 육군의 좋은 음식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정육점을 겸하여 운영하는 삼겹살집을 소개하여서 그동안 목에 낀 때도 씻을 겸 삼겹살로 점심식사를 들었다. 공진 동생이 전화로 자기가 떠난 후에 맛 있는 것을 든다고 불평하였다나.
오후 2시경에 흥덕에서 고창으로 출발하려는데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한 시간쯤 걸으니 빗방울이 굵어져 일부는 차에 오르고 나머지는 우산을 받쳐들고 한 시간여를 더 걸으니 고창읍 초입에 있는 큰형님댁 아파트에 이르렀다. 읍내까지 들어가기보다 1km 이상 단축되어 반갑구나.
같은 시각에 광주에서 소영 동생이 안정님 숙모와 함께 강선옥 어머니를 모시고 고창으로 올라와 합류하였다. 영문을 모르고 따라오신 어머니가 많은 가족들이 형님댁에서 반가이 맞으니 웬일인가, 자꾸 되물으신다. 피란길 그 고된 여정도 감감하신 어머님,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께서 걸으신 그길을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큰형님께서 안전을 염려하셨는데 이처럼 고창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을 크게 기뻐하며 환영하시고.
고향 사람이 더 감명을 받았을까, 흥덕에서 고창으로 오는 도중의 중년여성이 차문을 열고 '김태호 교수님, 가족이세요? 어느 분이 김태호 교수님인가요?'라고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신문을 보았을까, 방송을 시청하였을까 궁금하면서 이름까지 기억하는 관심과 격려가 고맙다.
우성 형님한테서 온 민속박물관에서 6.25 특별전시회에 아버님의 피란길 회상록부분의 원본을 전시할 수 있도록 협조요청이 있다는 전화도 반가운 소식이고.
버스터미널 부근의 모텔에 짐을 풀고 여관에서 추천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땀을 흘리며 맛있게 들었다. 음식점에서 만난 초중학교 동창이며 일가 아저씨되는 김재찬 해리 농업협동조합장께서 저녁식사대를 지불해주어서 크게 감사하지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기도.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벌써 고창까지 왔으니 하루쯤 쉬어도 어떠리, 남은 일정에도 좋은 일이 많기를 기대하며 우리 가족 모두 화이팅.
2010년 4월 21일 저녁
고향의 중심지 고창에서
* 언론 보도 소식
4월 20일 전주방송에서 보도된 [회상의 피란길] 내용 보는 방법입니다.
회원가입은 안하셔도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
1.전주방송 들어가기 http://www.jtv.co.kr/
2.상단 중앙 NEWS 클릭
3.상단 좌측에 [JTV 뉴스&뉴스] 라는 이미지를 클릭
4. 4월 20일(화) 뉴스 클릭
5. 우측 프로그램 리스트 중 6번째
6. 동영상 화면은 8분 35초 10분 30초까지 약 2분간 방송.
동영상프로그램 바를 중간에서 조금 못간 지점으로 옮기면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참조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을 떠났던 한 가족이, 60년 전 피란길을 그대로 다시 걷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3백여 킬로미터를 걸어 고향 땅에 도착했던 힘든 여정의 재연입니다.
정원익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국도변을 따라 가지런히 줄을 맞춰 힘차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벌써 열 하루째,
매일같이 20여 킬로미터를 걷고 있지만힘든 기색 하나 없습니다.
김태호 교수와 가족들이 걷는 이 길은 이름하여 회상의 6.25 피란길.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초등학생이던 김 교수와 가족들은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고향인 고창으로 피란길을 떠났습니다.
포탄이 오가는 삼복더위 속에 3백여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
18일 만에서야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int> 김태호/광주대 명예교수
"당시 고생이야 말을 할 수가 없었죠. 직사광선을 너무 많이 쬐고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가족들이 다시 당시의
피란길을 되밟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60대 노인이 됐지만 고난의 피란길을 기억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섭니다.
지난 10일 서울 후암동을 출발해 수원과 천안, 부여, 김제 그리고
부안을 거쳐 15일째인 오는 24일 고향인 고창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INT> 김한용/김교수 사촌동생
"우리 후손들도 그때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줬으면"
한국전쟁 60주년을 앞두고 한 가족이 전쟁의 아팠던 기억을
온몸으로 되새기고 있습니다.
JTV뉴스 정원익입니다.
첫댓글 남부여대(男負 女帶)의 긴 행렬이 남으로,남으로 이어지던 비포장 자갈길이 1번 국도였지요. 고향이 있어 찾아가는 이들에겐 그래도 힘이되었지만, 무작정 남쪽을 향해 정처 없이 가야하는 대다수의 피란길을 60년만에 회상하게 만드는 색다른 계기를 제공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무사히 고향땅을 밟는 "피란길 회상 대장정"의 성공에 큰 박수로 축하를 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얼마나 뿌듯하고 가슴 벅찬 대가족의 합심합력이며, 길고 긴 정다운 동행이었습니까/
이제 편히 쉬시며 체력 재충전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