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三界) / 김성철 교수 교리 해설(5)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삼보에 대한 믿음과 성불의 다짐을 노래하는 예불문의 첫 구절이다. “삼계(三界)를 이끄는 스승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신, 우리들의 근본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예배 올립니다.”라고 번역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생’이란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의 네 가지 방식으로 탄생하는 모든 중생을 가리킨다. 그리고 ‘삼계’는 이렇게 네 가지 방식으로 탄생한 모든 생명체들이 윤회하는 현장이다.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욕계의 ‘욕(欲)’은 산스끄리뜨어로 ‘까마(kāma)’라고 쓰는데 섹스(sex) 또는 동물적 욕망을 의미하며 색계나 무색계의 ‘색(色)’은 물질이나 형상 또는 몸을 뜻한다. 욕계의 중생은 ‘남녀, 암수의 성(性)’과 ‘몸(色)’과 ‘정신’의 세 가지를 모두 갖고 태어나고, 색계에 태어난 중생의 경우 ‘성’은 사라지고 ‘몸’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색계의 중생은 몸조차 사라진 채 오직 ‘정신적 삼매경’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보이지 않는 귀신’이든 ‘하늘나라의 천신’이든,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삼계 속의 존재일 뿐이다.
윤회의 현장인 삼계를 천상(天上), 아수라, 인간, 아귀, 축생, 지옥의 육도(六道)로 세분하기도 한다. 인간이나 짐승은 남녀 또는 암수의 ‘성’과, ‘몸’과 ‘정신’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욕계의 중생이다. 또 하늘나라 중에도 음욕(kāma)을 끊지 못한 천신들이 사는 여섯 하늘나라가 있다. 이를 육욕천(六欲天)이라고 부른다. 지구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나열하면 사대왕중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의 여섯 곳이다.
먼저 사대왕중천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 남, 서, 북에 위치한 네 군데의 하늘나라라고 한다. 각각의 하늘을 관장하는 천주(天主)가 사찰 입구에 모셔진 사천왕들이다. 불전을 보면 “태양이 수미산의 중턱을 돌아서 서쪽에서 져서 동쪽에서 나타난다.”(<起世經>)고 하기에 수미산은 산과 같은 큰 흙덩어리, 즉 ‘지구’를 의미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대왕중천은 인도를 중심으로 지구의 동, 남, 서, 북에 있는 하늘나라다.
그 위의 도리천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하늘나라로 삼십삼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미산 정상에 천궁이 하나 있고 동서남북의 4방에 각각 8천씩 있는데 이를 모두 합하면 총 33곳이 되기에 33천인 것이다. ‘도리’는 33을 의미하는 산스끄리뜨어 ‘뜨라야스-뜨링샤(trāyas-triṃśa)’의 앞부분을 음사한 말이다. 그리고 도리천 전체를 관장하면서 중앙의 천궁에 거주하는 천주가 바로 제석천(帝釋天)이다. 제석천의 원래 이름은 석제환인(釋帝桓因)인데, 산스끄리뜨어 ‘샤끄라-데와남-인드라(Śakra-Devānām-Indra)’의 음역어로 ‘신(Deva)들의 주인(Śakra)인 인드라’라는 뜻이다. 줄여서 환인이라고도 쓴다. 환인은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할아버지로, 애국가에서 노래하듯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나라를 보우하시는 우리 하느님’이다. 색계의 범천과 함께 불교를 외호하는 대표적인 신이다.
사대왕중천과 도리천은 지구에 근접해 있지만, 그 위의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허공에 있다. 야마(Yāma)는 한자로 염마(閻魔)라고 음사한다. 염라대왕의 원래 이름이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 의하면 지구상 최초의 인간은 마누(Manu)였고 그 동생이 바로 야마였는데 형보다 동생이 먼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마는 ‘사자(死者)의 길’을 개척하는 임무를 맡아 야마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야마천 위에는 도솔천이 있다. 도솔은 ‘만족’을 의미하는 산스끄리뜨어 뚜쉬따(Tuṣita)의 음사어다. 도솔천은 오욕락의 기쁨에 만족하고 사는 하늘이다. 도솔천의 천궁은 내원궁(內院宮)과 외원궁(外院宮)의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안쪽의 내원궁은 성불 직전의 보살이 거주하는 곳으로 현재에는 미륵보살이 머물고 계시다고 한다. 도솔천 바로 위에 화락천(化樂天)이 있다. 수시로 스스로 오욕락을 만들어서 즐기는 하늘나라다. 그리고 그 위, 욕계의 정상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다. 타화자재천의 천신들은 오욕락을 만드는 수고조차 하지 않으며 남이 만든(他化) 오욕락을 즐기며 산다.
이런 육욕천 모두 욕계에 속하기에 이곳에 태어난 천신들은 남녀의 성을 가지며, 남신과 여신이 만나서 2세를 낳는다. 사대왕중천과 도리천의 천신들은 인간처럼 교미를 하여 2세를 낳고, 야마천의 천신들은 남신과 여신이 서로 껴안기만 하면 2세가 화생(化生)하고, 도솔천의 천신들은 서로 손만 잡아도 2세가 화생한다. 또 화락천에서는 남신과 여신이 마주 보고 웃으면 2세가 화생하고, 타화자재천에서는 서로 마주보기만 해도 무릎 위에 2세가 화생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직접 교미하지 않고 ‘플라토닉 러브’만으로도 2세가 탄생하는 곳이 육욕천 가운데 위의 네 곳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미세해지고, 고결해진다. 육욕천을 포함하여 아수라, 인간, 아귀, 축생, 지옥 모두 욕계에 속한다. 다시 말해 직접적인 성욕이든, 플라토닉 러브든 이성(異性)에 대한 음욕을 끊지 못한 존재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욕계의 정상인 타화자재천을 벗어나면, 색계가 나타난다. 색계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허공에 건립된 하늘나라다. 이곳에 태어나려면 음욕과 식욕 등 동물적 욕망을 완전히 끊어야 하고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갖추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욕계의 동물적 삶을 싫어하여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선정을 닦아 마음을 집중할 수 있고, 욕계에서 ‘고기 몸(肉身)’을 갖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중생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색계에는 초선천, 제2선천, 제3선천, 제4선천의 네 단계의 하늘이 있다. 초선천의 천신은 대범천(大梵天), 범보천(梵輔天), 범중천(梵衆天)의 세 종류인데, 그 가운데 대범천이 천주다. 제2선천에는 소광천(小光天), 무량광천(無量光天) 등이 있으며, 제3선천에는 소정천(少淨天), 변정천(遍淨天) 등이 있다. 제4선천에는 여덟 곳의 하늘나라가 있는데 이 가운데 정거천(淨居天)이라고 부르는 다섯 곳은 아나함(阿那含) 단계에 오른 성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색계의 하늘나라와 천신들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청정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기 몸’을 갖고서 욕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나 짐승은 ‘덩어리로 된 밥’을 먹고 살지만(段食), 이들 색계의 천신들은 ‘생각(思食), 감촉(觸食), 앎(識食)’만을 밥으로 삼는다고 한다. 요컨대 동물적 욕망을 완전히 끊고 고결하게 사는 청정한 수행자들이 태어나는 곳이 바로 색계의 하늘나라다.
색계에 태어날 정도의 선정보다 더 깊은 삼매를 성취하면, 그 다음 단계인 무색계에 태어난다. 무색계는 그 장소를 지목할 수 없다. 그 이름에서 보듯이 물질(色)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수행자가 성취한 삼매의 경지’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무색계다. 남녀의 성은 색계에 오를 때 이미 끊었지만, 무색계에 오르면 더 나아가 몸조차 없어지고 오직 ‘정신적 삼매경’만 남는다. 무색계는 객관대상이 허공처럼 무한히 펼쳐진 삼매인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주관적 인식이 온 우주에 가득한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주관과 객관이 모두 없어진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그리고 ‘없다는 생각’조차 사라졌지만(非想)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非非想)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공무변처천의 수명은 2만겁, 식무변처천은 4만겁, 무소유처천은 6만겁, 비상비비상처천은 8만겁이라고 한다. 한 번 이런 곳에 태어나면 최소한 2만겁 이상은 머물러야 하기에 해탈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말하자면 ‘하늘나라에 있는 감옥’이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기 전에 쉽게 성취하셨지만 진정한 종교적 목표가 될 수 없음을 알고서 버리셨던 두 가지 삼매가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이었다.
이상에 설명한 삼계 모두 윤회의 세계일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런 삼계 속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무한히 윤회한다. 해탈하지 못한 이상 그렇다. 셈족의 종교든 인도의 외도(外道)들이든 오지(奧地)의 민속종교든 다른 어떤 종교에서 추구하는 하늘나라라고 하더라도 모두 삼계 가운데 어느 한 곳일 뿐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그 어떤 신앙 활동을 해도, 그 어떤 삼매에 들어도 그들은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행이나 신앙이나 삼매는 번뇌를 누를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기(緣起)와 공(空)을 자각할 때 번뇌의 뿌리가 뽑힌다. 연기와 공의 ‘지혜’. 오직 불교에만 있는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정상인 비상비비상처천에 태어나게 하는 삼매까지 체험한 후 그 모두를 버리고, 색계 제4선의 경지에서 생명과 세계의 진상에 대해 ‘곰곰이(止) 관찰하는(觀)’ 지관쌍운(止觀雙運)의 수행을 통해 ‘연기(緣起)의 법칙’을 발견하여 깨달음을 이루셨다. 내생에 다시는 삼계 그 어느 곳에도 태어나지 않는 진정한 해탈의 길을 발견하셨다. <열반경>과 <법화경>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표현하면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영원한 법신’을 성취하셨던 것이다. 삼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대열반의 깨달음이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
월간 <불광> 2012년 5월호 / 불교, 쉽고 명쾌하고 행복하게
http://bud.kimsch.net/geul.php?zsite=kimsch&list=Theory&query=view&l=101060.3&p=1&go=7&article_no=5&#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