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장점 중의 하나는 다채로운 미각을 사시사철 만족시킨다는 데 있다. 채소가 일찌감치 시들고 추수가 끝났으니 육지의 겨울은 저장식품이나 계절에 관계없는 축산물에 의존해야 하지만 바다는 독특한 먹을거리를 지역에 따라 제공한다. 제주도 남방 모슬포 해역에서 이맘때 주로 잡는 방어도 그 중의 하나다. 본의 아니게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유명해진 방어는 요즘 예년에 없던 풍년을 기록했다.
참치처럼 꼬리가 잘록한 커다란 생선이면서 고등어처럼 등이 푸른 방어는 산지가 아니라면 감히 맛보기 어려웠는데, 풍어 덕분인가, 초대받고 들어간 한 고급 일식집에서 대면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분명 참치는 아닌데, 불긋한 살점이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게 여느 생선과 달라 종업원에 물으니, 방어란다. 사실 그때 방어를 처음 알았다. 바다와 연한 인천이므로 평소 우럭, 광어, 농어는 실컷 주문해 먹지만 서해안으로 오지 않아서 그랬는지 존재를 몰랐던 거다. 그날 이후 연안부두에 몇 번 수소문했건만 방어를 알현하기 어려웠다. 값나가는 참치라면 모를까, 선도를 유지하며 산지에서 가져오는 도매상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소매상인들은 해명했다.
삼치는 구이가 제 맛이고 참치는 회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를 가능하게 하지만 방어는 오로지 회라야 제 맛이라고 미식가는 변별한다. 방어회 몇 점 먹으려 그 일식집에 들어가자니 지갑이 허락하지 않을 테고, 몇 점 안 올라오는 회보다 붙어 나오는 찜이 더 맛있는 일식집에 누가 초대하길 마냥 기다리자니 지루하다. 차라리 집에서 회든 찜이든 먹는 게 낫겠지. 약삭빠른 생각으로 인터넷을 열었더니 먼저 경험한 네티즌은 회보다 찜을 권한다. 선도를 보장할 수 없는 까닭이라는데, 그것 참! 근처 양판점에서 별안간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신선한 방어회를 저렴하게 내놓았다고.
현지에서 직송한 싱싱한 방어회를 미끼로 내놓는 거대자본의 위력을 새삼 절감하면서 구입한 한 접시. 과연 방어는 달랐다. 어떤 문인이 “두껍게 썰어 굽지 않은 김에다 싸 먹으면 싱싱한 사과를 한 입 베어문 것처럼 입안에서 아삭거리고 김의 풍미와 어우러져 방어 특유의 진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했는데, 과연 그랬다. 늦게 갔다 허탕한 그 다음날, 서둘러 구입한 방어회는 제주도 겨울바다의 풍미까지 입 안 가득 전해주었다. 이맘때 바람이 더욱 유난스러울 화순항에서 모슬포까지 올레길 10코스를 걸은 뒤 막 잡은 방어를 다음에는 꼭 맛보라는 듯, 아파트 식탁 위의 회 한 접시는 식구들의 아쉬움을 남긴 채 순식간 사라지고 말았다.
입맛 잃기 쉬운 겨울철의 총아인 싱싱한 횟감으로 물론이고 초밥의 재료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방어는 온대성 어류로 동해안에서 하와이 일원의 태평양에 두루 퍼져 산다. 우리 연안에서 잡히는 무리는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권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월에서 6월 사이 따뜻한 바다에서 부화한 어린 방어는 수초에 모여 새우와 같은 무척추동물들을 먹다 4개월 만에 몸이 15센티미터에 이르는 봄여름이면 난류를 따라 캄차카반도로 이동하고, 수온이 내려가는 가을이 되면 월동과 산란을 위해 따뜻한 남쪽 바다로 내려온다. 이른 겨울부터 제주도 모슬포 앞바다가 활기를 띄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살이 거센 바다에서 시속 4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으로 멸치와 오징어, 전갱이 같은 작은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먹으며 성큼성큼 자라는 방어는 5년이 안 돼 60센티미터를 넘긴다. 짙은 청록색 등과 은백색 배를 과시하는 방어는 눈부터 꼬리까지 옆구리에 노란색 띠를 비치며 1미터 이상 성장하는데, 산지 어부들은 4킬로그램을 기준으로 넘으면 ‘대방어’ 모자라면 ‘중방어’로 구별한다. DHA나 EPA와 같은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D가 특히 많아 골다공증이나 치매를 막을 뿐 아니라 동맥경화나 각종 암과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홍보되는 방어는 특이하게도 몸집이 클수록 맛이 빼어난 육질을 가진다. 캄차카반도 해역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방어가 먼 거리를 헤엄쳐 온 이맘때 모슬포 해역의 방어는 찰진 육질이 더욱 탁월하다는 게 어민들의 자랑이다.
세종실록에 대구, 연어와 더불어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 중의 하나로 기록된 방어는 1800년대 후반만 해도 끌어올리지 못할 만큼 그물에 걸려들었다고 한다. 그 후 어획고가 크게 줄어들었는지 제주도 일원의 시민이나 애호가가 아니라면 방어의 존재를 몰랐다. 멸치 떼를 뒤로 울릉도 일원에서 낚시꾼을 여름마다 유혹했다지만 모슬포 이외에서 조우하기 어려웠는데, 올 모슬포는 30년 만에 방어 풍년을 맞았다. 그런데 어민들은 오히려 울상이라고 한다. 어선 당 200마리, 하루에 5천 마리 이상을 잡아들이니 냉동창고가 삽시간에 동나고 잠시 살려두려던 가두리 양식장이 포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수없이 6만원을 호가하던 대방어를 절반 값에 내놓았지만 기대만큼 소비가 늘지 않았고, 어민들은 모처럼 얻은 풍어의 과실을 맛볼 수 없을까봐 초조한 모양이다.
부시리, 잿방어, 참치방어와 더불어 4종류가 있는 방어는 살이 붉은 등과 기름기가 많은 배는 회감으로 그만이지만 몸통을 반으로 갈라 구워도 맛이 향긋하고 묵은김치를 넣어 매운탕을 끓어도 손색없다고 한다. 일본인은 된장과 완두콩을 넣어 조려 먹고, 제주도 사람들은 소금에 절여 두고두고 먹는다는데, 위턱의 모서리가 칼 같이 각진 방어와 달리 둥글어서 구별되는 부시리는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그런데, 알을 한 차례도 낳지 않은 어린 생선을 마구 잡아들였다 풍어의 기억을 잃은 우리 바다의 삼치나 조기와 달리 30년 만에 무리지어 나타난 모슬포의 방어는 내내 보전될 수 있을까.
모슬포도 판매촉진을 도모하는 ‘최남단 방어축제’를 해마다 11월 중순이면 연다. 맨손으로 잡고 실컷 먹는 대회,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떠들썩한 축제의 내용이 천편일률이지만 10회를 맞은 올해는 30만 가까운 인파를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래도 재고가 남아돌아 걱정이었는데, 이런! 전국의 양판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이러다 제주도에서 사라져버린 참치처럼 방어마저 자취를 감추는 건 아닐까. 중방어 이하를 남겨둔다면 그럴 리 없겠는데, 연평도에 올라가지 않아 꽃게나 조기처럼 수도권 시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방어, 모슬포는 방어를 사수해야 한다.
첫댓글 인천 연안부두에도 방어를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집 앞 이마트가 손님끌기로 잠깐 회를 팔아 식구와 한 차례 먹었습니다. 과연 명성 그대로더군요. 벌써 겨울이 다 지나가려고 하니 내년을 기약해야겠나요. 제주도가 쉽게 찾아살 수 있는 곳도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방어는 제주도 모슬포가 제맛이고 제격일 텐데. 요즘은 제철도 제맛도 아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