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百姓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山川草木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
*<심상>,<한국문학> 으로 등단.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 낭송회/기념시 ▒
▶기념시◀
비슬산 가는 길
조 오 현
비슬산 굽이 길을
스님 돌아 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萬)첩첩 두루 정적(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백담사 회주.승려시인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 낭송회/축시▒
▶축시◀
참꽃의 노래
권 화 송
그 옛날 달구벌
감아도는 병풍처럼 이름도 아름다운
비슬산 기슭
비파줄에 노래 실어 말 달리며
신술 궁술 익혀 뭉치던 붉은 마을을
철따라 철쭉꽃으로 피어
우리 할머니들 부황들려 간신히 넘으시고
소쩍새 소쩍다 소쩍다 피 토하던 고갯길
피멍울 마다 맺흰 꽃봉우리 꽃봉우리
오늘은 마음 넉넉히 날빛도 훤히 밝고
징 장구 북소리 어우러지는데
천년묵은 하늘의 마지막 어둠이
우리 앞길 가로막던 날
화랭이들 혼불 일어나
들끓던 아우성 총부리 마저 넘어뜨리고
메아리는 땅속깊이 잠들었다가
아! 사월이면
붉은 꽃잎으로 피어 되살아 오는가
**<불교문예> 신인상 시 당선.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 낭송회/축시▒
▶축시◀
비슬산 진달래
공 영 구
꽃
붉은 꽃
핏물 배어나는 진달래
포근한 꽃잎 나를 안으면
아마 숨 멎을꺼야
붉은 숨 한 사발 토하며
기절할꺼야
연거푸
내 혼 앗아가는 비슬산 진달래
꽃잎 말리는 바람결
서로 보듬고
지천으로 피어난 맛깔스런 꽃무리
눈망울 굴리며
철없는 벌 나비 더불어 누려 온
세월의 아픔도
겹겹이 포개어 다독이며
진홍의 꽃빛으로 몸 가린 비슬산
온 산등성이 넘치도록
사랑의 뿌리 내려
끔찍하게 꽃망울 틔우는
진달래 낯붉은 욕정!
**<심상> 신인상 시 당선.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 낭송회/수상시▒
▶대상 수상시◀
♠바람 앞에서
김 삼 경
있는 듯이 없는 듯이
너는 찾아 오는구나
때로는 쇠북소리로
때로는 풀피리소리로
나뭇잎이 몸부비며
살아있다고 소리치지만
꽃잎이 낱낱이 공중 돌며 곡예할 때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바늘이 흔들린다
송화가루 뿜어올리는
유혹의 손길 따라
뒤따라온 발자욱 흩어질 때
끝간데 없는 지평선 너머
또 다른 나팔소리 앞세워
너는 찾아 오는구나
**2001 <참꽃축제> 시 대상 수상.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 낭송회/수상시▒
▶대상 수상시◀
산과 숲의 힘
정 미 월
계곡의 낙엽을 모아 모닥불 지피면
봉우리는 그 뜻을 알까 모를까
산 비둘기 두 마리 후두둑 날으는 것은
산과 숲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오뉴월 계곡물 싱그러운 것은
봉우리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일거야
계곡은 봉우리를 품어서 알을 낳으면
산과 숲의 힘이 된다
서로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정답게 살아가는 산 비둘기 한 쌍
그 날개짓으로 숲 속의 그림자 만들고
햇빛이 지상에 내려오는 일은
이들이 존재하기 이전의 일
**2004 <참꽃축제> 시 대상 수상.
▶대상 수상시◀
나물 캐기
서 문 향
예리한 칼로 어린 쑥부쟁이의 목을 딴다
지천으로 흩어지는 쑥부쟁이 향기
산꿩이 운다
목구멍에 박힌 가시를 토해내려는 듯
저만치 한 떼의 먹장구름 몰고온 바람이 슬쩍
꽃나무 목덜미를 깨문다
화들짝 놀란 꽃나무, 안고 있던 꽃묶음을 떨어뜨린다
초록 융단에 흩날리는 삼월의 눈발
그 꽃잎들 저도 나물인 양 바구니 속 헤집는다
쑥부쟁이 향기에 차마 서러워지는 날
살면서 이적지 용서하지 못한 것들
이참에 모두 용서하리니
지상의 여리고 푸른 것들 모두 내게로 와
나물이 되려 한다
바구니 가득한 이 잔인한 한때
어린 쑥부쟁이의 흰 목이 눈부시다
**2005 <참꽃축제> 시 대상 수상.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낭송회/초대시인 시 ▒
▶초대시인 시◀
풀꽃
오 세 영
네 이름이 뭐더라
씀바귀?
꽃다지?
굳이 깨진 보도블록 틈새에서 자라더니
이 저녁 환하게 등불을 켰구나.
봄 강 언덕에서는
종다리 노래도 듣겠고
이름 모를 무덤에서는
별들을 안을 수도 있었겠거니
네 하필
번잡한 도시, 인사의 거리에서 홀로
등불을 켜들었느냐.
지금 아스팔트 위에선
자동차, 전차, 오토바이 수 많은 인파 복작거려
신호등 따라서 명멸하거니
인도(人道)란 오직 사람이 가는 길,
오늘도 허둥대는 구둣발을 앞에 두고
네 정녕 나더러
어디로 가라는 등불이더냐.
서녁 노을처럼 져버리기 전에
차라리 그대 가슴 안개꽃으로 피어나
밤을 안고 지는 流星雨인가요
져버리지는 마세요 그렇게
너른 하늘, 잔별들의 웃음
이야기같은 빛으로 남아 주세요
밤을 헤아리며
내내 하늘 위라도 담아 놓을 듯
흩어지는 별들을 줍숩니다
어머니,
지난 여름 밀밭길을 둘이 걸었던 것처럼
오늘 밤은
별밭 위로 내려앉은 무수한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다음카페'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대표.
▶초대시인 시◀
한강에게
문 창 길
대동나루에 몸 풀리면 옥이의 종이배는
둥둥 다시 뜰 수 있을지
따뜻한 남쪽나라 서울로
아버지를 따라 가버린 옥이 가시내의
가슴에도 진달래 피는 봄은 다시 올 수 있을지
이별하는 슬픔만큼 그리움만 가득 싣고
강물은 말없이 푸르게 남으로 흐르고 있다
한강이여
그대에게 전하노니 이 강물이 풀려서
동해로 서해로 흘러 그대 푸른 가슴을 적신다면
따뜻한 남쪽 서울 그대 타는 가슴을 적신다면
옥이 가시내의 꿈처럼 희망처럼
온몸에 뜨거운 피 흘러들겠지
*'창작21' 편집주간.
▶초대시인 시◀
수(繡)
이 상 번
수가 놓여지고 있다
김장된 수틀 안에 수가 놓여지고 있다
수틀안에 풀잎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풀잎은 청초하기 그지없다
여치 한 마리 사뿐히 내려앉는다
아침 햇살에 얼비친 좌심실 우심방
숨이 가쁜, 말간 속내가 다 보이는구나
저 긴장된 씨줄 날줄의 경계를 넘나들며
향기로운 초생달
그리운 손톱으로
웃고고 내리고고
내리지르고 웃지르는
아! 백설의 신비함이여
저-하-얀-수-틀-위-
한 땀 한 땀 수가 놓여질 때마다
장군이 창검을 겨누듯
시위를 당기듯, 단호하구나
색-색-의-
실-을-토-해-내-는-
저 작은 침봉에도
무사와 같은 단호함이 서려 있구나
아, 저러한 단호함들이 어울려
아침 햇살 얼비치는
내장까지 투명한, 가녀린
여치 한 마리
불-러-들-이-는-구-나
아! 수틀 안에 놓여지는 풀잎이여 -
**<우리시대 젊은 시인들> 당선 시인.
▶초대시인 시◀
꽃술내기
이 경
진달래가 피면 오세요
너무 늦지는 않게
꽃숨 속에서 제일 붉은 꽃술을
하나만 따세요
두 손으로 맞잡고 팽팽하게 당겨요
환희의 연한 날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대가 가로로 당기면
나는 세로로 그 위에
더 진한 비애의 씨줄을 포개지요
아주 부드럽게 밀어요
누가 밀었는지 모르게
내 꽃술이 끊어지면
그대가 술을 사고
그대 꽃술이 끊어지면
내가 술을 사지요
*계간 <시와 시학> 편집장.
▶초대시인 시◀
히말라야 오르다
신 지 혜
나는 오늘,
큰 길가에, 삼나무 한 그루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지
타인의 죽음 속처럼 고요한 깊이 속에
오래오래 면벽하고 있었지
이 세상과 저 세상사이 정신의 화살표가
소리없이 관통하고 있었지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길 잃은 노래는 덧없이 길어졌지
추억이 빠져나간 빈 풍경의 껍질들
수북히 널려 있었지
무심히 무심히 눈발 날리고
브룩클린에서 퀸즈브릿지로 돌아나가는 사람들 눈 속에
내 사라진 유년과 다가설 노년이 서로 만나는 것 보았지
눈발도 다른 눈발 하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허공엔 빈 구멍 아득했지
저게 무얼까 저게 무얼까
空 하나, 空 두울, 空 셋....내가 점점 가벼워지는 소리
나는 지금, 공중 히말라야 따박따박 오르고 있지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및 <현대시학> 으로 등단.
현재 뉴욕 거주.
▶초대시인 시◀
소서노가 주몽과 사랑이 뜨거울 때 부르는 아리아
ㅡ잠들 수 없는 밤
안 명 옥
이런 밤이면
누구라도 잠들 수 없네
그대 품안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미래를 약속하는 밤
황홀한 달빛이
몸속으로 깊이 스며들 때
전율하는 별들을 바라보았네
당신을 향한 사랑은 흘러넘쳐
내안에 출렁거리는 강물을 만들었네
그 강물에 당신이 풀어놓은 물고기 여자
당신의 향기 나는 말은
물고기 여자의 몸에 비늘을 만들고
당신의 따스한 손길이 스친 옆구리에
지느러미가 돋아나는 물고기 여자
우아하게 헤엄쳐 솟아오르게 만드는
당신의 사랑
당신은
내가 언제든 목을 축일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사람
언제든 지친 등을 기댈 수 있는
우람한 나무 같은 사람
그늘에 휩싸여 있는 산일지라도
그 뒤편은 광휘에 휩싸여 있듯
내 생의 어둠까지를 몰아내는 당신을 위해
부르는 내 노래 그치지 않을 것이네
**<시와 시학> 신인상 시 당선.서사시집 <소서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초대시인 시◀
꽃잎 샤워
곽 혜 란
벚나무 아래에서
벗어봐요
지병처럼 눌러 붙은
욕심을.
우울을 달래기 위한
또 다른 우울을.
생각만 해도
슬픔으로 젖는 눈물을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꽃잎
하얀 벚꽃 이파리로
샤워를 할까요?
살짝
비누 거품 방울방울
터치,
터치!
마침내
맑아진 모습을 보아요
분가루 풀풀 날리며
이제는 옷을 입을 차례예요
진실의 옷감에 순수의 바느질을 한
사랑의 체온을 지켜 줄
옷이랍니다
속살 비치는
햇살의 커튼을 드리우면 어때요?
지나치게 부러워하거나
무심한 척 곁눈질하는
저기 많은 사람들이
질투하지 않게요
**<문학바탕> 편집주간 .
▶초대시인 시◀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박 금 숙
창 너머 막 물오른 나무에
새 한 마리가 뽀로롱 날아와 앉았다
손에 쥐면 심장 박동이 느껴질 듯한 작은 새
소리가 얼마나 카랑카랑하던지
맑은 하늘에 쩡쩡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고개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애타게 찾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맴도는 것이었다
잠시 구름이 머물고
한눈을 파는 사이
새는 어디론가 푸드득 날아가 버렸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다시 오겠지 생각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나 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 멀리 가버렸거나
가까운 그늘을 찾아간 건 아닌지
나무에는 잎들만 무성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닉네임 '유리꽃' 시인.
▶초대시인 시◀
바지랑대
이 종 암
얼마만큼의 오랜 세월이 큰물져 내려야
몸에 새겨진 그대 발자국
다 씻겨져 갈까
얼마나 더 큰 바람이 불고 또 얼마의
햇살 내려와야 가슴에
묶인 배들이 떠나갈까
부숴진 시간들 다시
꿰맬 수가 있을까 그대
푸른 하늘을 바치고 있던
바지랑대 파르르 오늘도
파르르
**<포항문학> 편집위원.
▶초대시인 시◀
새
서 동 진
사랑은 혀끝에 오고
탯줄은 텃밭에서 영근다
비린 새벽 이슬이
아침햇살에 돋아나며
강 언덕에는 들꽃이 피어 희다
나뭇가지 마다
새들을 키울 수 없는 저들은
봉오리 외롭고
그 아래 발끝이 서럽다
둥지 지을 수 없는 하늘은
낮에는 흰 이마가 뜨겁고
밤에는 그 무릎이 시리다
어둡지 않은 밤이 어디 있으랴
떨어지는 태양이 더 붉어오듯이
꽃은 촛불마냥 피어오른다
해 저문 강 끝에서
더 깊이 숨쉬고 그리운 것들은
모두 내 등뒤에 있다
새들은 왜 모를까 강에 가면
꿈꾸는 것들은 다 산이 된다는 것을
**미당시문학관 운영시인.
▒ '비슬산참꽃제' 참꽃시 낭송회/낭만시 동인시인 시▒
▶낭만시 시인 시◀
보다 젊은 당신에게
김 세 웅
산을 오르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던 건
잘못 이었습니다
꼭대기에 이르자,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말라 죽어가면서도 변명하지 않는 나무들과
더 이상 솟을 데 없는
정상의 외로움에 둘러싸여
잡초만 후회처럼 무성하였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자존심을 앞 세워 곧장 내달아온
나의 발걸음은,
가기 싫은 곳에 서둘러 나를 데려온 셈입니다
건너 편 산은 나에게서 돌아앉아
푸른 등을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아무도 기다려주지 못한 후회에 치가 떨렸습니다
기다리지 않은 만큼, 정상에는
나를 기다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멀어지던 계곡의 물소리마저
내가 멈추었다면, 더 이상 멀어지지 않았겠지요
아, 온갖 소문에 쫓겨
서둘러 올랐는데,
잡초만 후회처럼 무성한
여기는 정상입니다
**<시문학> 당선 시인.
▶낭만시 시인 시◀
내가 사는 세상
홍 승 우
내가 사는 세상
그 곳에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미루나무는 흔들리고
버짐은 핀다.
내가 사는 세상
그 곳에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길 위에 길이 있고
타는 하늘 돌아누워도
돌아가는 세상
첫댓글 저도 가기로 했습니다. 비슬산 참꽃보러요.
느티나무 남상순님께서도 함께 가시겠다고 표 끊어 놓으라네요...ㅎㅎㅎ 2월달 소록도 다녀온 후 좋으셨나봐요. 걸을려면 운동화신고 가야겠네요.
꼬리말에는 간다고 했다가 새벽5시에 나와야 한다는 말에 으악 미리 쓰러졌습니다..ㅎㅎㅎ 결국은 문창길선생님 먼길 가셨네? 일요일, 밀린 잠 실컷자고 일어났더니 비가 억수같이 내리네요. 꽃들 다 쓰러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