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의 모든 것]염배(染杯)
서한(西漢)시기 사람들은 염배와 염로(染爐)를 많이 사용했다.‘염(染)’은 동사로 ‘적시다’, ‘담그다’의 의미가 훠궈를 먹는 동작과 매우 흡사하다. ‘염배’는 훠궈 용기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남창(南昌)의 서한 해혼후(海昏侯) 류하(劉賀)의 무덤에서 염배와 염로가 출토됐다. 염배와 염로는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 졌고 모양이 작고 정교하다. 염배는 귀가 달린 컵 모양의 용기로 작고 깊이가 얕으며 용량이 약 300ml밖에 안 된다. 염로는 일종의 화로이며 네 면에 구멍이 뚫려있으며 제일 밑에는 목탄재를 받는 장방형 쟁반이 있다. 또한 상부에는 염배를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염배는 그 용량이 너무 작아 이것은 술을 데치는 용기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목탄불로 술을 데치는 것은 온도가 너무 높으며 보통 술은 따듯한 물에 담가 데쳤다. 염배는 비록 용량이 작지만 음식을 담는 식기가 확실했으며 술을 데치는 용기가 아니었다. 작지만 사람마다 하나씩 올려 음식을 즐기는 작은 그릇이었다.
이렇게 염배와 염로는 훠궈를 즐기는 식기와 화로의 조합이다.
염식(染食) 즉 적셔먹는 방식은 선진(先秦)시기부터 시작됐고 처음에는 소스에 찍어 먹던 데로부터 나중에서 염로에 올려 끓이면서 먹었다. 현재 발견된 염로는 모두 서한시기 것으로 염배는 모두 동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보면 서한시기 염배는 반드시 염로에 올려 세트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숟가락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숟가락으로 국물을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염식이라는 적셔먹는 방식과 쇄식(涮食)이라 하는 데쳐먹는 방식은 모두 선진시기에 시작돼 한동안 함께 유행했다가 동한(東漢)시기에 들어서면서 염배와 염로가 다시 발견되지 않았고 데쳐먹는 쇄식만 남게 됐다.
염식 방식은 염로에 목탄을 두고 염배에 물을 부어 거기에 소금, 간장, 식초 등 조미료를 넣은 후 식재료를 투하해 끓이면서 먹었다. 사실 염식과 쇄식은 거의 비슷하며 국물에 조미료를 넣는지 아닌지에 따라 구별했다. 서한시기에 유행했던 이런 ‘염식’은 지금의 훠궈와 조금 다른 풍미를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