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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범망경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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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143.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pubbantakappikā ca aparantakappikā ca
pubbantāparantakappikā ca pubbantāparantānudiṭṭhino pubbantā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dvāsaṭṭhiyā vatthūhi,
te vata aññatra phassā paṭisaṃved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139. 수행승들이여, 그 가운데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예순두 가지 근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하지만, 그들이 접촉 없이 그것을 인식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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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62見은 감관의 체험이 동요되어 있게되며, 괴로움을 생기게 한다.
Diṭṭhigatikādhiṭṭhānavaṭṭakathā (견해에 의한 유전연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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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사문·바라문들도,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애매모호하게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우연발생론자인 사문·바라문들도,
사후에 (자아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사후에 (자아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단멸론자인 사문·바라문들도,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사문·바라문들도,
과거를 모색하는 사문·바라문들도, 미래를 모색하는 사문·바라문들도,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바라문들도
144.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ssatavādā sassataṃ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pe…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antānantik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amarāvikkhepik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adhiccasamuppannik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pubbantakappik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saññīvād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asaññīvād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nevasaññīnāsaññīvād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diṭṭhadhammanibbānavād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aparantakappik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pubbantakappikā ca aparantakappikā ca pubbantāparantakappikā ca
pubbantāparantānudiṭṭhino pubbantā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dvāsaṭṭhiyā vatthūhi,
140.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가운데
1) 영원주의자로서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2)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비영원주의자로서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자아와 세계는
부분적으로 영원하고 부분적으로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3) 유한∙무한론자로서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세계는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4) 회의주의자로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5) 우연론자로서 두 가지 근거를 통해서 자아와 세계는 우연히 생겨난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6) 과거를 생각하는 자로서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에 대하여 열여덟 가지 근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7) 사후지각론자로서 열여섯 가지 근거를 통해서 사후에도 자아에게 지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8) 사후무지각론자로서 여덟 가지 근거를 통해서 사후에는 자아에게 지각이 없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9) 사후비유비무지각론자로서 여덟 가지 근거를 통해서 사후에는 자아에게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10) 허무주의자로서 일곱 가지 근거를 통해서 현존하는 뭇삶은 단멸하고 파멸하고 멸망한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11) 현세열반론자로서 다섯 가지 근거를 통해서 현존하는 뭇삶은 현세에서 최상의 열반을 성취한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12) 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미래에 대하여 마흔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13)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예순두 가지 근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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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는
1)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 觸 處)을 통해
2) (갖가지 대상과 맞닿아) 계속해서 일어나는 감각접촉으로 인해
3) (사견의 느낌을) 경험한다.
sabbe te chahi phassāyatanehi phussa phussa paṭisaṃvedenti
그들 모두는 여섯 가지 접촉의 감역을 통해서 잇따라 접촉하면서 그것들을 감지한다.
<* 여섯 가지 處들과의 觸에 의해 接하고 觸接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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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런 느낌이 그들에게 갈애를 생기게 하고,
5) 갈애는 취착을 생기게 하고,
6) 취착은 존재를 생기게 하고,
7) 존재는 태어남을 생기게 하고,
8) 태어남은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울 생기게 한다.
tesaṃ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그것들에 대한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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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닿은 배우지 못한 범부는
Avijjāsamphassajena vedayitena phuṭṭhassa assutavato puthujjanassa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무명에서 촉발된 느낌에 의해서
無明觸生受에 接한 無聞凡夫는
cf. Avijjāsamphassajena vedayitena phuṭṭhassa assutavato puthujjanassa uppannā taṇhā;
tatojo so saṅkhā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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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5:134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들에 닿고 또 닿더라도 그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도록 [공부지어야 한다.]
6) 수행승들이여, 정신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사실들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것들이 마음을 접촉하고 접촉하여도 마음이 소모되는 것이 없다면,
santi, bhikkhave, manoviññeyyā dhammā manoramāpi amanoramāpi.
Tyāssa phussa phussa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nti.
[*意識될-加意/非加意-法들. 이들에 의해 (觸하여) 接하고
(觸生受에 身)接하고, 觸接하여도 心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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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하면
Cetaso apariyādānā
마음으로 소모되는 것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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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정진이 생기고 마음 챙김이 확립되고 혼란스럽지 않으면
몸이 경안하고 동요가 없으며 마음은 집중되어 일념이 된다.
āraddhaṃ hoti vīriyaṃ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동요 없는 노력으로 정진하게 되고, 바른 새김이 일어나 미혹이 사라지고,
몸은 경쾌하여 우울함이 없고, 마음은 집중되어 한 곳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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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이러한 불방일의 결실을 보면서
그 비구들은 여섯 가지 감각장소들에 대해서 방일하지 않고 할 일을 한다고 나는 말한다.
Imaṃ khvāhaṃ, bhikkhave, appamādaphalaṃ sampassamāno
tesaṃ bhikkhūnaṃ chasu [chassu (sī.)] phassāyatanesu appamādena karaṇīyanti vadāmī’’ti.
수행승들이여, 나는 이러한 방일하지 않는 것의 성과를 비추어 보면서,
그 수행승들이 여섯 가지 접촉의 영역에서 방일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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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6:2
4.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마저도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그 어떤 느낌에 접하든 간에
‘‘Sukhaṃ vā yadi vā dukkhaṃ, adukkhamasukhaṃ saha;
Ajjhattañca bahiddhā ca, yaṃ kiñci atthi veditaṃ.
"즐거움이나 [205] 또는 괴로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과
내적이거나 외적이거나 어떠한 것이든 느껴진 것이다.
[*樂이든, 苦든, 非苦非樂이든 또한
內로든, 外로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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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두를 괴로움으로 아나니 거짓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것들이 부딪히고 또 부딪혀왔다가 사라져 가는 양상을 지켜봄으로써
거기서 탐욕이 빛바래도다.
‘‘Etaṃ dukkhanti ñatvāna, mosadhammaṃ palokinaṃ;
Phussa phussa vayaṃ passaṃ, evaṃ tattha virajjatī’’ti.
6. 그것은 괴로움이라 알고 괴멸되는 허망한 사실을
경험할 때마다, 그 소멸을 살펴서, 그것에 대해 이처럼 욕망을 떠난다."
[*괴멸될 허망한 법은 '苦'라고 알고서,
(受를) 接하고 接하면서 사라짐을 보니, 여기서 貪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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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여섯감관의 작용(五蘊)이 개공(皆空)함을 알아,이 모든 견해를 넘는다.
Vivaṭṭakathādi (윤회의 환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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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감각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이들 모든 (견해들)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꿰뚫어 안다."
145. ‘‘Yato kho, bhikkhave, bhikkhu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imehi sabbeheva uttaritaraṃ pajānāti.
141. [세존]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여섯 가지 접촉의 감역의 발생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여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 때,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
[*S35:245
“도반이여,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Yato kho, āvuso, bhikkhu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no dassanaṃ suvisuddhaṃ hotī’’ti.
3. [수행승2] "벗이여, 수행승이 여섯 가지 접촉영역의 발생과 [192] 소멸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벗이여, 그렇게 수행승의 견해가 지극히 청정해집니다."
A4:10
‘‘Avijjāyogavisaṃyogo ca kathaṃ hoti?
Idha, bhikkhave, ekacco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러면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M102
37.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위없고 적정한 최상의 상태,
즉 여섯 가지 감각영역의 발생과 소멸과 위험과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집착 없이 해탈을 성취했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위없고 적정한 최상의 상태,
즉 여섯 가지 감각영역의 발생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집착 없이 해탈을 성취했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tathāgatena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abhisambuddhaṃ yadidaṃ –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anupādāvimokkho’’ti
25.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그것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없이 해탈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육촉처]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없이 해탈한 것,
이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은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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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62가지 견해의 그물 -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
3.72 "비구들이여,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은 모두 이 62가지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위로 오르고자 하나 그물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그들은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이다.
146.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ubbantakappikā vā aparantakappikā vā
pubbantāparantakappikā vā pubbantāparantānudiṭṭhino pubbantā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sabbe te imeheva dvāsaṭṭhiyā vatthūhi antojālīkatā,
ettha sitāva ummujjamānā ummujjanti, ettha pariyāpannā antojālīkatāva ummujjamānā ummujjanti.
142. 수행승들이여,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한다면,
모두가 이러한 예순두 가지 그물코를 가진 그물에 사로 잡혀,
거기에서 빠져나가려고 오르락내리락 하면 할수록, 거기에 갇힌 채 그물에 조여 발버둥 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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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숙련된 어부나 어부의 도제가
아주 미세한 구멍을 가진 그믈로 작은 호수의 물에 펼친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에 있는 (그물 구멍보다) 큰 생명체들은 모두 이 그물에 걸렸다.
그들은 (표면) 위로 오르고자 하나 여기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은
모두 이 62가지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위로 오르고자 하나 그물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그들은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이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kevaṭṭo vā kevaṭṭantevāsī vā sukhumacchikena jālena
parittaṃ udakadahaṃ [udakarahadaṃ (sī. syā. pī.)] otthareyya.
Tassa evamassa – ‘ye kho keci imasmiṃ udakadahe oḷārikā pāṇā, sabbe te antojālīkatā.
Ettha sitāva ummujjamānā ummujjanti; ettha pariyāpannā antojālīkatāva ummujjamānā ummujjantī’ti;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ubbantakappikā vā aparantakappikā vā
pubbantāparantakappikā vā pubbantāparantānudiṭṭhino pubbantā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sabbe te imeheva dvāsaṭṭhiyā vatthūhi antojālīkatā ettha sitāva ummujjamānā ummujjanti,
ettha pariyāpannā antojālīkatāva ummujjamānā ummujjanti.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숙련된 어부와 그의 도제가 미세한 구멍을 가진 그물을 작은 호수에 던지면,
그는 ‘이 호수의 어떠한 거친 생명체가 있다면, 그 모두는 그물에 사로 잡혀,
거기에서 빠져나가려고 오르락내리락 하면 할수록,
거기에 갇힌 채 그물에 조여 발버둥 치게 될 뿐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한다면, 모두가 이러한 예순두 가지 그물코를 가진 그물에 사로 잡혀,
거기에서 빠져나가려고 오르락내리락 하면 할수록, 거기에 갇힌 채 그물에 조여 발버둥 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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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린 채 머무름
3.73 "비구들이여, 여래의 몸은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린 채 머물러 있다.
그런 몸이 머무는 동안에 신과 인간들은 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멸하여 생명이 다하면 신과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
147. ‘‘Ucchinnabhavanettiko, bhikkhave, tathāgatassa kāyo tiṭṭhati.
Yāvassa kāyo ṭhassati, tāva naṃ dakkhanti devamanussā.
Kāyassa bhedā uddhaṃ jīvitapariyādānā na naṃ dakkhanti devamanussā.
143.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몸에서 존재로 이끄는 밧줄을 끊었다.
몸이 지속하는 한, 신들과 인간들은 그것을 본다.
몸이 부수어지고 목숨이 다하면, 신들과 인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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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3:3 **5蘊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마음의 입각처와 천착과 잠재성향
1. [세존] "라다여, [191]
1)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다면,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것들은 존재의 통로라고 한다.
‘‘Rūpe kho, rādha,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ye upayupādānā cetaso adhiṭṭhānābhinivesānusayā –
ayaṃ vuccati bhavanetti.
라다여, 물질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입각처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일러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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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망고 열매들이 달려있는 가지가 있다 하자.
만일 그 가지가 끊어지면 그 가지에 달려있는 망고는 모두 떨어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래의 몸은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린 채 머물러 있다,
그런 몸이 머무는 동안에 신과 인간들은 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멸하여 생명이 다하면 신과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
‘‘Seyyathāpi, bhikkhave, ambapiṇḍiyā vaṇṭacchinnāya yāni kānici ambāni vaṇṭapaṭibandhāni
[vaṇṭūpanibandhanāni (sī. pī.), vaṇḍapaṭibaddhāni (ka.)], sabbāni tāni tadanvayāni bhavanti;
evameva kho, bhikkhave, ucchinnabhavanettiko tathāgatassa kāyo tiṭṭhati, yāvassa kāyo ṭhassati,
tāva naṃ dakkhanti devamanussā,
kāyassa bhedā uddhaṃ jīvitapariyādānā na naṃ dakkhanti devamanussā’’ti.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망고가 한 아름 달린 나뭇가지를 자르면,
가지에 달린 어떠한 망고라도 모두 자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몸에서 존재로 이끄는 밧줄을 끊었다.
몸이 지속하는 한, 신들과 인간들은 그것을 본다.
몸이 부수어지고 목숨이 다하면, 신들과 인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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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뜻의 그물/법의 그물/범천의 그물/견해의 그물/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
3.74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 법문을
뜻의 그물(義網)이라고 받아 지녀라. 법의 그물(法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범천의 그물(梵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견해의 그물(見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無上戰勝)라고 받아 지녀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48.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ko nāmo ayaṃ, bhante, dhammapariyāyo’’ti?
‘‘Tasmātiha tvaṃ, ānanda, imaṃ dhammapariyāyaṃ
atthajālantipi naṃ dhārehi, dhammajālantipi naṃ dhārehi,
brahmajālantipi naṃ dhārehi, diṭṭhijālantipi naṃ dhārehi,
anuttaro saṅgāmavijayotipi naṃ dhārehī’’ti. Idamavoca bhagavā.
144. 이처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세존]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그 법문에 대하여
의미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진리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하느님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견해의 그물이라고도 새길 수 있고,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라고 새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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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러한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이 설해졌을 때 일만의 세계가 진동하였다.
149.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ṃ bhaññamāne dasasahassī [sahassī (katthaci)] lokadhātu akampitthāti.
145.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여 기뻐했다.
또한 이와 같은 해설이 설해지자, 일만의 세계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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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망경이 끝났다.
Brahmajālasuttaṃ niṭṭhitaṃ paṭhamaṃ.
하느님의 그물의 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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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phassāyatanāni <cf. saḷāyatana> 6觸處, 6處, 6觸(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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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sa觸와 phussa接 [(phoṭṭhabba)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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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ṃ kiñci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ati…pe…
<*(麤成)身에 의하여 触을 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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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68
그는 그 우물을 들여다보고 ‘저기에 물이 있구나.’라고 알지만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뒤 그것을 마셔서] 몸으로 직접 체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Tassa ‘udaka’nti hi kho ñāṇaṃ assa,
na ca kāyena phusitvā vihareyya.
그는 그 우물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 뿐
그것을 몸에 대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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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5:94
"즐거운 감촉에 닿더라도 홀리지 않고
괴로운 것에 닿더라도 동요하지 않으면
즐겁고 괴로운 두 가지 감촉에 평온하여
어떤 것에도 끌리거나 거부하지 않으리."
‘‘Phassena phuṭṭho na sukhena majje [majjhe (syā. kaṃ. pī.)],
Dukkhena phuṭṭhopi na sampavedhe;
Phassadvayaṃ sukhadukkhe upekkhe,
Anānuruddho aviruddha kenaci.
12. "즐거운 감촉에 접촉해도 취하지 않고
괴로운 감촉에 접촉해도 흔들리지 않으면
두 가지 즐겁고 괴로운 감촉에서 평정하니
어떠한 유혹과 혐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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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분별하는 인식을 가진 이런저런 인간들은
인식하면서 사량분별하는데 빠져 지내지만
‘‘Papañcasaññā itarītarā narā,
Papañcayantā upayanti saññino;
13. 희론에 묶인 이러저러한 사람들은
희론을 향해가지만 그것을 지각하면,
세속에 의지한 모든 정신적 상태를 몰아내고
출리에 의지한 [길을] 걸어가야 하리.
Manomayaṃ gehasitañca sabbaṃ,
Panujja nekkhammasitaṃ irīyati.
정신이 만든 세속에의 의존을 끊고 [*意成-法 / 意成-流(sota)]
여읨에 의존하는 것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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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마음이 여섯 가지를 잘 닦으면
닿더라도 마음은 어디서건 동요하지 않으리니
‘‘Evaṃ mano chassu yadā subhāvito,
Phuṭṭhassa cittaṃ na vikampate kvaci;
14. 이처럼 정신이 여섯 감역에 잘 수련되면
접촉하더라도, 어디서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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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19
saḷevāyatanāni [saḷāyatanāni (ka.)], 그렇게 (eva '또한 같은 방식으로') 六處들이,
yehi phuṭṭho bālo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ayati etesaṃ vā aññatarena’’.
이 六處들 혹은 이들 중 하나에 의한
(觸 = 6處 觸을) 接한 賢者(든 愚者)든 樂(혹은)苦를 경험<受>한다.
[phassena phuṭṭ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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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4 까마부 경2 (S41:6)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itaṃ kho gahapati bhikkhuṃ
tayo phassā phusanti
suññato phasso animitto phasso appaṇihito phassoti.
장자여, 상수멸로부터 출정하는 비구는
세 가지 감각접촉과 닿게 됩니다[*觸들이 身에 phusanti 接합니다].
그것은 공한 감각접촉과 표상없는 감각접촉과 원함없는 감각접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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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174
Yāvatā, āvuso,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gati tāvatā papañcassa gati;
yāvatā papañcassa gati tāvatā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gati.
Channaṃ, āvuso, phassāyatanānaṃ asesavirāganirodhā
papañcanirodho papañcavūpasamo’’ti.
도반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는 한 사량분별이 있고
사량분별이 있는 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할 때
사량분별의 소멸과 사량분별의 적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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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2:47 <*5蘊에 대해>
이와 같이 하여 [사견을 통한] 관찰과 ‘나는 있다.’는 [사량분별이] 그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Iti ayañceva samanupassanā ‘asmī’ti cassa avigataṃ [adhigataṃ (bahūsu)] hoti.
이러한 여김에서 그에게 '나는 있다.'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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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생기면
눈의 감각기능, 귀의 감각기능, 코의 감각기능, 혀의 감각기능, 몸의 감각기능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이 출현한다.
‘Asmī’ti kho pana, bhikkhave, avigate pañcannaṃ indriyānaṃ avakkanti hoti –
cakkhundriyassa sotindriyassa ghānindriyassa jivhindriyassa kāyindriyassa.
3.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이렇게 그에게 '나는 있다.'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 때,
시각능력, 청각능력, 후각능력, 미각능력, 촉각능력의 다섯 가지 감각능력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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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거기에는 마노[意]가 있고 [마노의 대상인] 법들이 있고 무명의 요소가 있다.
Atthi, bhikkhave, mano, atthi dhammā, atthi avijjādhātu.
4. 수행승들이여, 정신이 있고 사실이 있고 무명의 세계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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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닿은 배우지 못한 범부는
Avijjāsamphassajena, bhikkhave, vedayitena phuṭṭhassa assutavato puthujjanassa
수행승들이여,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무명에서 촉발된 느낌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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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ī’tipissa hoti; ‘ayamahamasmī’tipissa hoti;
‘bhavissa’ntipissa hoti; ‘na bhavissa’ntipissa hoti;
‘rūpī bhavissa’ntipissa hoti; ‘arūpī bhavissa’ntipissa hoti;
‘saññī bhavissa’ntipissa hoti; ‘asaññī bhavissa’ntipissa hoti; ‘nevasaññīnāsaññī bhavissa’ntipissa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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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30
Chasu kho, nāgita, phassāyatanesu aniccānupassino viharato
phasse pāṭikulyatā saṇṭhāti – eso tassa nissando.
나기따여,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에서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는 자에게는 <*6處(와)의 觸이 無常함을 수관하면>
감각접촉에 대해 혐오스러움이 확립된다. 이것은 그것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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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5:72
“장하구나, 비구여. 여기서 그대가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보면
이것은 그대가 여섯 번째 감각접촉의 장소를 버리는 것이 될 것이며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Sādhu, bhikkhu, ettha ca te, bhikkhu, mano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aṃ bhavissati.
Evaṃ te etaṃ chaṭṭhaṃ phassāyatanaṃ pahīnaṃ bhavissati āyatiṃ apunabbhavāyā’’ti.
<*[과거 자아라고 움켜쥔 = (舊業인)] 眼을 지금은 자아라고 움켜쥐지 않으면
첫 번째 處와의 觸를 버리는 것이며 그러면 미래에는 또 다시 再變成하지 않게 될 것이다.
~ 지금 意를 ~
여섯 번째 處와의 觸를 버리는 것이며 그러면 미래에는 또 다시 再變成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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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5 [6내-6외-6식-6촉-6수-6상-6사-6애-6계-5온 : 59法]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고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Cakkhuṃ, bhikkhave, aniccaṃ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
viññāṇaṃ aniccaṃ 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
[세존]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무상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느낌은 무상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지각은 무상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형성은 무상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의식은 무상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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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bhikkhave, ime dhamme evaṃ saddahati adhimuccati,
2. 수행승들이여, 누군가 이와 같은 모든 원리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고 신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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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ṃ vuccati saddhānusārī,
okkanto sammattaniyāmaṃ, sappurisabhūmiṃ okkanto, vītivatto puthujjanabhūmiṃ;
그는 단연코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되고 [228] 참사람의 지평에 들어서고
일반사람의 지평을 뛰어넘는 믿음의 행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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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sa kho, bhikkhave, ime dhammā evaṃ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3. 수행승들이여, 누군가 이와 같은 원리에 관하여 이와 같이 지혜로 충분히 숙고해서 받아들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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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ṃ vuccati – ‘dhammānusārī,
okkanto sammattaniyāmaṃ, sappurisabhūmiṃ okkanto, vītivatto puthujjanabhūmiṃ;
그는 단연코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되고 참사람의 지평에 들어서고
일반사람의 지평을 뛰어넘는 진리의 행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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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bhikkhave, ime dhamme evaṃ pajānāti evaṃ passati, ayaṃ vuccati –
4. 수행승들이여, 누군가 이와 같은 모든 원리에 관하여 이와 같이 알고 또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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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no’’’ti.
그를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삶의 길이 정초되어 올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흐름에 든 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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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본문외의 자료들은 대부분 본 카페에 올려진 내용입니다.
觸과 接을 분별하면 경문을 읽기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接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 이전에 (생략된) 觸이라는 법이 먼저 있었을 가능성이?
지금까지 봄봄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참고만 하십시오. _()_
비구들이여, 거기에는 마노[意]가 있고 [마노의 대상인] 법들이 있고 무명의 요소가 있다.
Atthi, bhikkhave, mano, atthi dhammā, atthi avijjādhātu.
4. 수행승들이여, 정신이 있고 사실이 있고 무명의 세계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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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경문의 '무명계(無明界, avijjādhātu)'가 PTS판에는 '명계(明界, vijjādhātu)'으로 되어 있음.
정반대의 표현이므로 .......... 참고하시길.........
@아위자 녜. 감사합니다.
여러 번 강조하신 내용인데..
아직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봄봄 님
본문 4째 줄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te vata aññatra phassā paṭisaṃved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
sabbe te chahi phassāyatanehi phussa phussa paṭisaṃvedenti
그들 모두는 여섯 가지 접촉의 감역을 통해서 잇따라 접촉하면서 그것들을 감지한다.
<* 여섯 가지 處들과의 觸에 의해 接하고 觸接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확인. chahi phassāyatanehi[여섯 가지 處들과의 觸]
...녜. 맞습니다. [육촉처]는 [處]가 아니고 [觸]입니다.
이 觸이 무명촉(수애)-行<=취=사견>의 觸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