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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요법회를 위한 모습은 다를 바 없으나 어제 토요 시위 때 일어난 법회에서 설치한 현수막을 불광사 종무원이 철거도 모자라 칼로 찢는 안타까운 일 때문에 회장단과 정수위원님들이 진지하게 회의를 하고 계십니다.
송파 10, 11, 12, 13구에서 떡과 생수를 보시하고 법당에 들어서는 형제들에게 배부하시고, 데스크 안내팀, 새 법우 안내팀, 엘리베이터 안내팀들은 각기 맡은 바 자리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계신 모습.
법회 전, 천수경으로 도량을 맑히고, 타종에 이어 혜안 거사님의 법회 시작 안내로 부처님 전에 헌향, 헌다를 올리며 일요 법회가 시작 됩니다.
백중 기도 회향을 마치고도 다시금 보광당 일요 법회에 참석하여 전현수 원장님의 법문을 듣고 계신 불광 법회 형제들의 모습.
금주의 법문 :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전현수
금주의 법어 : 괴로운 세상에서 괴롭지 않게 사는 길
반갑습니다. 저한테 불광사는 참 친근합니다. 또 편안하고. 제가 85년부터 송파구에 살았습니다. 살아보니까 참 좋은 곳입니다. 85년 당시에 제가 올 때만 해도 공기도 무슨 시골 같은 공기였습니다. 지금은 차가 많은데 그 당시에는 차도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병원을 개업해 있기 때문에 어떤 곳은 또 어떤 특성이 있고 또 여러 곳에 사는 환자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지역마다 좀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송파구에 오니까 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또 환자분들도 저를 피곤하게 안 하고 너무너무 좋아서 내가 여기 계속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40년 가량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여기 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광법회는 가끔 제가 영광스럽게 초청받아서 와서 몇 번 또 법문을 했습니다. 올 때마다 항상 편안하고 좋고 그렇습니다. 오늘도 역시 이를 초대해 줘서 참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할 이야기는 대략 한 50분 정도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초기 불교 하는 입장에서 오늘 여기 와서 보니까 제가 너무 초기불교에만 열중해서 살았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오늘 와서 보현행원을 들으면서, 참 넓은 마음, 큰 염원 이런 게 또 저한테 새롭게 느껴집니다.
오늘 저는 이제 불교 공부를 한 입장 그리고 매일 환자를 보면서,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부딪힌 그런 분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사성제(四聖諦)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성제와 그 사성제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 사성제는 부처님의 특별한 가르침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 사상 그리고 무속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모두 다 인간의 어떤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 중에서 불교는 진리에 입각해서 우리가 살아갈 때 느낄 수 있는 괴로움을 해결하는 길이다 저는 그리 생각하고요.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은 사성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성제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사성제를 깨닫기 전에는 끝없는 윤회 속에서 끝없는 괴로움을 겪었다. 이제 내가 사성제를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윤회를 해결하고 괴로움 없이 살게 됐다 그런 말씀을 초기 경전 여러 군데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불교에서는 사리불이 아주 부처님 가까이 가신 분이에요. 어떤 곳에서는 부처의 경지다 그렇지만 좀 부족함이 있는 그런 경지죠. 그런 사리불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법문을 많이 합니다. 어떤 때는 부처님께서 내가 허리가 좀 아프니 사리불이 나 대신에 법문을 해라 이래서 법문을 하는 게 꽤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중에 어떤 마지마니까야에 있는 그 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동물의 발자국은 많고 다양하다. 그런데 어떤 동물의 발자국도 코끼리 발자국 안에는 다 들어간다. 왜냐하면 코끼리 발자국이 제일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이 세상의 유익한 법은 전부 사성제 안에 들어간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성제가 모든 걸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사성제의 가르침이 없으면 다른 가르침은 불완전하거나 성립이 안 되는 거죠. 그렇듯이 이 사성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제 부처님 이런 초기 경전인 무지 많은 니까야를 보면은 대부분 언제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데 명확하게 몇 년도다 몇 월이다 이런 건 없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니까야 중에서 이 시간이 명시된 경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대반열반경이라 해서 부처님께서 열반을 대략 3개월여 앞두고 열반지인 쿠시나가라로 이동하면서 그 시간 순서에 따라서 쭉 기록된 경전이 있습니다.거기 보면 부처님이 이제 마지막 가르침을 펴고 또 사람들은 묻고 그런 가운데 이제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거의 돌아가시기 바로 몇 시간 전인 것 같아요. 수밧다라는 유행승이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외도죠. 나이가 좀 든 사람이에요. 이분이 왜 찾아왔냐면 소문에 들으니까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다. 그럼 열반에 들기 전에 이 물음을 내가 꼭 해야 되겠다 해서 이제 찾아옵니다. 찾아와서 부처님의 시자죠. 부처님의 비서실장과 같은 것이죠. 아난다에게 내가 이런 거 좀 부처님께 묻고 싶어서 왔다. 세존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까 아난다가 그래요. 그만하시라고 지금 세존께서는 피곤하시니까 그냥 가시라고 그래요. 그 당시에 인도 전통은 세 번을 꼭 묻더라고요. 한 번 묻고 안 되고 또 두 번 세 번 세 번을 물어도 똑같이 그만하세요. 세존께서는 피곤하시니까 가시라고 그러니까 그 대화를 부처님께서 듣고 아난다에게 저 사람은 나를 피곤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다. 와서 질문하게 해라 그래요.그래서 이분이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돼요.
이분이 어떤 질문을 하냐면 그 당시에 육사외도라 해서 대단한 어떤 스승들이 있었어요. 교단도 있고 따르는 무리도 많고 명예도 가지고 있는 당시에 굉장한 사람들이죠. 수밧다가 부처님에게 육사외도에 대해 질문을 해요. 교단도 가지고 있고 제자도 많고 명예도 있고 대단한 그분들 모두가 최상의 지혜를 얻었습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은 얻고 어떤 사람은 못 얻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해요. 수밧다 이 사람한테는 절실한 거죠. 왜냐하면 부처님 돌아가시면 그 사람들을 의지해야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그 사람들 모두가 최상의 지혜는 얻었거나 또 어떤 사람은 얻었고, 또 어떤 사람은 못 얻었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놓아 두고 내 이야기를 하겠다 하면서 팔정도를 이야기하십니다.
팔정도 여러분 다 아시죠? 팔정도. 팔정도가 있으면 사문이 있다. 또 팔정도가 있으면 두 번째 사문이 있다. 팔정도가 있으면 세 번째 사문이 있다. 팔정도가 있으면 네 번째 사문이 있다. 사문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라는 거는 이제 초기 불교에서는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팔정도가 있으면 예류자가 있다. 팔정도가 있으면 일래자가 있다. 팔정도가 있으면 불환자가 있고, 팔정도가 있으면 아라한이 있다. 부처님도 아라한의 한 분이에요. 그렇지만 보통의 아라한과 다른 9가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아라한이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팔정도가 있으면은 제대로 깨달은 성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팔정도에 대해서 조금 유의해야 될 게 있습니다. 아까 제가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은 사성제라 그랬지 않습니까? 잘 보면 사성제와 팔정도가 서로 포함 관계 속에 있어요. 어떻게 포함 관계 속에 있냐하면은 사성제는 고성제(苦聖蹄)로부터 시작합니다. 고성제(苦聖蹄),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 모두 성제(聖諦), 성스러운 진리가 붙어 있어요.
고성제라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정확하게 잘 보면 괴로움 속에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즐거운 세상이다 생각하면 그건 잘못 본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태어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늙는 것도 괴로움이다. 어떤 때는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라고 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늙고 병들고 태어나고 그다음에 병들고 늙고 죽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이것도 괴로움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어야 되고, 태어나서 한순간도 싫어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헤어져야 되고, 내가 원하는 데 얻지 못하고 이때는 약간 국한해서 이야기를 해요. 아까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이런 것들을 없기를 바래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안 늙고 싶어도 안 늙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좀 국한하면은 그렇게 되고, 좀 더 확대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얻을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바라는 게 없어져야 됩니다.
저를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화나는 사람이 많아요. 화나는 사람도 많고 고통스러운 게 많은 분도 많은데 제가 볼 때는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안 될 때 화도 나고 괴로운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나는 화 없이 살고 싶다 그러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첫 번째가 아무도 바라는 게 없어지면 화날 일이 없어요. 할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겠죠.우리가 다른 사람한테는 잘 안 바래요. 그렇지만 남편한테 바래요. 남편이 이렇게 해 주길 바라고 또 남자 같으면 부인한테 바래요. 그걸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고성제에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쭉 여러 가지 고통, 그 다음에 꼭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거 하고 그 뒷말이 굉장히 참 묘미가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고통, 보통 그걸 팔고라 그래요. 우리는 보통 팔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까지가 칠고예요. 그다음에 부처님께서 간략히 말해서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오취온(五取蘊)이 괴로움이다 그랬어요. 오취온. 아까 우리가 반야심경 봉독할 때도 보면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나오죠. 그게 오온(五蘊)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를 이루는 것은 잘 보면은 물질과 정신으로 돼 있는데 물질은 색이에요. 우리 몸이죠. 그다음에 정신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이에요.수(受)라는 건 느낌이고, 그 다음에 상(想)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기억이라 할 수도 있고, 어떤 생각, 어떤 인식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행(行)은 우리 속에서 뭔가 일으키는 거죠. 그다음에 식(識)은 근본 마음이에요. 수상행은 초기 불교적으로 말하면 마음 부수죠. 그런 오온인데, 오 뒤에 취(取)가 붙었어요. 취라는 건 집착이라는 뜻이에요. 오온은 부처님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살아있는 존재의 사람은 다 오온이 있어요. 거기에 집착이 가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오취온이 있기 때문에 앞의 괴로움을 다 겪는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 말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태어났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몸과 마음에서 오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탁월합니다. 하여튼 그것이 고성제예요. 그래서 이 중생이라는 것은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어떤 세상이든지 태어난 자는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 그게 고성제(苦聖蹄)에요. 이제 우리가 공부를 좀 하고 괴로울 때는 고성제 말이 맞지 이래요. 그러다가 좀 좋아지면 아니야 즐거움이야 이럴 수 있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도 고성제가 뚜렷하면 그것이 불교의 부처님 가르침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에요.
그래서 이 고성제가 확실해야 그러면 왜 내가 이런 상태에 빠졌나 하고 그 원인이 뭘까를 찾는 게 집성제예요. 집성제. 집성제는 뭐냐 하면 부처님께서 두 가지로 보통 말씀하세요. 하나는 갈애(渴愛)다. 갈애가 있어서 이런 괴로움이 생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고 12연기(緣起)로 설명하기도 해요. 12연기는 무명행식(無明行識)에서 쭉 태어나고 늙고 죽는 이어지는데, 일단은 고(苦)에 철저해야 하고, 그러면 내가 왜 이런 상태에 빠졌나 하고 원인을 찾는 게 이제 집성제(集聖諦)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집성제를 철저히 보다 보면은 여기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지는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멸성제(滅聖諦)예요. 멸성제도 보통은 두 가지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는 갈애가 완전히 멸한 것 또는 12연기. 무명(無明)이 없어지면 그다음에 행(行)이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무명을 없애는 그런 12연기로 설명을 해요. 그렇게 괴로움을 완전히 없앨 수 있구나. 세상에서 말하는 정신 분석이나 여러 군 데서 보면은 괴로움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는 데는 별로 없어요. 괴로움은 있다, 같이 가야 된다. 또 내지는 괴로움은 어쩔 수 없다 뭐 이런 정도지, 부처님이 사성제에서 말한 것처럼 멸이 가능하다고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 건 거의 제가 본 건 없어요.
그다음에 그 멸(滅)에 이르는 길, 갈애(渴愛)를 멸(滅)하고 12연기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도성제(道聖諦)예요. 고집멸도할 때 도성제인데 도성제는 팔정도(八正道)입니다.팔정도, 그러니까 8가지 성서로운 길이 있다는 거예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이제 팔 정도의 시작이 정견(正見)이에요. 정견. 정견이 뭐냐 하면 사성제(四聖諦)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사성제와 팔정도가 서로 포함 관계 속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팔정도는 정견부터 시작합니다. 정견. 그래서 정견은 사성제를 하는 거예요. 정견이 이제 확실히 되면 그다음에 정사유(正思惟)를 해서 즉, 이게 한자말로 해서 사유(思惟)인데, 빨리어를 보면 싼마까빠라라고 해서 어찌 보면 의도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니까 이 사성제를 정확히 알면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어떤 바른 마음가짐이나 의도가 생겨날 수 있어요. 그걸 또 정신작용이니까 정사유로 말해도 될 거예요.정사유는 이제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성냄에 바탕을 두고 남을 괴롭히지 않고, 그래서 그게 되면은 이제 말을 할 때나 어떤 행위를 할 때 남을 해치거나 훔치거나 또 삿된 이런 걸 안 하는 정업(正業), 그다음에 말할 때 정언(正言),그다음에 이 생활 자체를,생계 수단을 바르게 한 정명(正命) 그다음에 이제 정정진(正精進) 그다음에 정념(正念) 정정(正定)까지 해서 팔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사성제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또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에 따라 팔정도가 있으면 사문이 있다 이렇게 말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포함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여튼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에게 이 팔정도가 있으면 사문이 있다. 팔정도가 없으면 사문이 없다. 그러면서 그 게송을 읊어요.어떤 게송을 읊냐면 내가 29살 때 유익한 법을 찾아서 수행길에 나섰다. 그래서 내가 51년간 그러니까 35세 깨닫고 80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한 51년 이래 될 겁니다. 51년간 온갖 곳을 다 다니면서 바른 법을 폈다. 그러면서 이어서 팔정도가 있으면 사문이 있고 팔정도가 없으면 사문이 없다. 팔정도가 있는 한 아라한이 없는 일은 없다 하면서 이 팔정도에 대해서 이 말씀을 하세요.
그다음으로 제가 이제 실생활에서 팔정도를 실천하기 위한 길을 말씀드리기 전에 부처님께서 깨닫기 바로 전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꿈을 꾸죠. 저도 꿈을 꾸고 저는 이제 환자 치료하면서 꿈을 좀 이용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꿈에 그 사람의 상태가 잘 나타나는데, 부처님이 깨닫기 전 그 꿈을 보면 부처님의 상태가 잘 나타나요. 부처님보다도 더 위대한 꿈을 꾼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꿈을 보면 5가지 꿈인데, 제일 첫 번째 꿈이 뭐냐 하면 부처님이 주무신 다음부터 딱 누워 있는데 부처님의 침상이 인도 대륙이에요. 인도 대륙에 걸쳐서 딱 누워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처님의 베개는 히말라야 산이에요. 우리가 히말라야를 산 중의 왕이라고 그러거든요.히말라야를 베개 삼아서 딱 온 대지에 침상처럼 누워서 히말라야산을 베개로 베고 왼쪽 손은 동쪽 대양에 탁 넣고 오른쪽 손은 서쪽 대양에 넣고 발 둘은 남쪽 대양의 탁 놓는 그런 꿈을 꾸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꿈이에요.
그다음 두 번째 꿈이 이제 팔정도와 관계된 이야기인데 부처님이 꿈에서 이 백호에서 띠리아풀이라는 그 당시에 그런 풀이 있었나 본데, 띠리아풀이 쭉 자라서 올라와서 하늘의 구름에 닿는 그런 꿈을 꿨어요.
세 번째 꿈은 벌레가 있는데 몸은 흰데 머리는 까매요. 그런 벌레들이 부처님 발로 막 올라와서 무릎을 다 뒤엎는 꿈을 보세요.그다음에 네 번째 꿈은 부처님 이렇게 계시는데 사방에서 색깔들이 다른 새들이 쫙 날아와요.날아와서 부처님 발에 탁 내려앉아요. 그게 네 번째 꿈이에요. 왜 이런 꿈 꿨는지 좀 예상은 됩니까?
그다음 이제 마지막 꿈이 뭐냐 하면 이 오물로 뒤덮인 산에 들어가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걷고 계시는데 부처님 몸은 하나도 더럽혀지지 않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내가 그런 꿈을 꾸고 바로 돌아온 결과가 있었다고 하시는데, 제일 첫 번째 꿈은 뭐냐 하면 부처님께서 위 없는 정등각을 깨쳤다 그래요. 아까 그 대지에 있는 그 꿈은 위 없는 정능각을 이루는 꿈이에요. 두 번째 띠리아 풀이 쭉 올라가서 구름에 닿는 것은 팔정도를 개발해서 세상에 바쳤다고 그러는 거예요. 팔정도. 거기에 팔정도가 나옵니다. 팔정도가 나왔다는 건 사성제가 나온 거겠죠. 그다음에 이제 머리는 까만데 흰벌레들이 부처님 발로 쭉 올라가서 무릎을 뒤덮는 꿈은 이 평민들 흰옷 입은 평민들의 귀의처(歸依處)가 된다는 얘기예요. 그다음에 네 번째, 네 가지 색깔의 새들이 날아와서 부처님 발에 이제 딱 앉는 건 뭐냐 하면 지금도 있고 네 가지 계급이 있어요.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 네 가지 어떤 계급에서도 사람들이 부처님한테 출가를 해서 위 없는 해탈을 이룬다는 거예요. 아라한이 된다는 거예요. 다섯 번째 꿈은 부처님, 비구들 출가자들은 4가지에 의지해서 삽니다. 네 가지 필수품이라고 그러는데 어찌 보면 우리도 다 그것에 따라서 하는 거죠. 우선은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또 거처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아프면 약을 써야 되죠. 요 4가지 필수품이라고 그러는데 이것에 부처님 자신이 현혹되지도 않고 홀리지도 않고 거기서 아무런 위험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하는 꿈이었어요.
오늘 제가 이 이야기하고 하는 주제는 사성제와 팔정도입니다. 그걸 그러면 우리가 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냐 하는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 생활, 레지던트까지 치면 한 40몇 년이 됐습니다. 항상 괴로운 사람하고 만나서 어떻게 하면 좀 도움이 되나 하는 작업을 해온 사람인데 제가 이제 불교 공부도 하고 관찰도 하고 이래 보니까 부처님 말씀이 딱 맞아요. 왜 딱 맞냐 하면은 우리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까지는 그래도 엄마와 한 몸입니다. 그래서 배 속에 있으면서 고통받은 사람은 별로 기억이 없을 거예요. 물론 그런 기억도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엄마와 한 몸이 돼서 사는 거죠. 살다가 세상에 딱 태어나는 순간 이제는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무인도에 살아도, 거기에 있는 동물, 기후에 다 영향받아야 할 거예요.어쨌든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딱 태어나면 주위의 영향을 받아야 됩니다. 그 주위의 영향을 안 받는 사람 없어요. 우리가 잘 보면 그렇습니다. 주위의 영향 중에 제일 먼저 영향 주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 어렸을 때는 가족이 되겠죠. 가족은 참 좋은 가족도 있지만 가족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 때문에 고생한 사람도 있고 형제 때문에 고생한 사람도 있고 물론 집에서는 낙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죠. 어쨌든 간에 이 주위의 영향을 받는데 어려서는 가족, 조금 더 크면 어린이집, 요즘 애들은 어린이집에 일찍 가지 않습니까? 어린이집 그다음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남자는 군대. 하여튼 사람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냉정히 보면 나는 한 사람이잖아요. 주위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그 많은 주위 사람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불똥이 탁 트면 그게 괴로움입니다. 그거 피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동물에 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요즘은 사실 이제 우리나라도 잘 살고 이러다 보니까 개나 고양이도 이제 가족이 됐어요. 가족이 돼서 거기서 또 일이 있으면 내가 힘들 수 있어요. 제가 개업을 1990년도에 했으니까 꽤 오래전에 했죠. 옛날에는 애완동물이 죽어서 찾아온 사람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키우던 개가 고양이 특히 개죠. 죽어서 오시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게 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상이에요. 지금 제가 보면 이 동물이 거의 가족화됐어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결혼도 잘 안 하잖아요. 또 결혼해도 애 안 낳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여기 계시는 분이나 저나 저때만 해도 나이가 한 20대 후반 되면 결혼해야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결혼을 했어요. 그다음에 결혼하면 또 애는 한 2명은 낳아야 되는 줄 알았어요. 애 낳았어요. 지금은 그게 애들한테 그건 왜 내가 해야 되지 하는 선택 사항이에요. 그러니까 결혼을 안 한 사람도 있고 결혼해도 애를 안 낳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만 또 정 줄 대상이나 뭐 이런 거 필요하니까 애완동물을 키우더라고요. 키우다 보니까 가족이잖아요. 그러니까 개들이 아프거나 죽거나 그래 되면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지요.
그다음에 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메바나 바이러스가 또 우리한테 영향을 줘요.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해 가지고 5배 더 많다 그러고, 반가운 소식은 좀 꺾일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통계상으로. 어쨌든 눈에 안 보이는 아메바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굉장히 고생했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렇고.
그다음에 또 기후의 영향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보니까 기후에 대해서는 지구 온난화, 탄소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지금 제가 봐서는 믿을 수 있는 과학자들 말도 다 그런 것 같고 지구 온난화는 분명한 것 같아요. 일시적인 자연 현상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기후가 또 우리한테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피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눈치가 빠르고, 사리 분별이 잘되는 사람은 이거 내가 큰일 났다. 세상에 태어났더니만. 이건 대책을 세워야겠다. 제가 볼 때는 부처님이 그 대책 세우신 분 같아요. 그러고 우리한테 길을 제시하시는 분 같아요. 대책을 세워야 되겠다. 하는데 제가 볼 때 그렇게 대책 세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 눈에 보면 불똥이 탁 튀면 자기 나름대로 막 노력해요. 노력해서 좀 통하면 덜 괴로워요. 안 통하면 괴로워요. 이번에는 통했지만 또 다음에는 안 통해요.
우리 정신과 환자들을 보면 괴로움이 생길 때 나름대로 해결하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요. 제가 환자들을 이렇게 보면은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기 앞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이 괴로움을 잘못 처리하다 보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요. 괴로움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세상에 태어나면 영향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적어도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은 있게 해야지 자기가 여기에 덧붙이고 더 만드는 괴로움은 없애는 게 제일 좋습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 걸 갖다 붙여요. 그래서 괴로움을 자꾸자꾸 만들어요. 또 괴로움에다가 더 자꾸 만들다가 결국은 정신적인 문제를 만들어서 또 저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되는데, 근본적인 대책이 제가 볼 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뭐냐면 일단 우리는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위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게 대책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요즘 주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주식에 대해서 정확히 안다는 건 주식이 어떤 원리로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걸 보는 겁니다. 그거 보이겠습니까? 안 보입니다. 워렌 버핏도 잘 안 보일 거예요. 그렇지만 오랜 관찰과 통계를 통해서 뭔가 확실한 건 알고 있는 분일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 정확히 보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모른다. 입니다. 모른다. 그러니까 분명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딱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모른다 하면서 유심히 자꾸 보면 우리 마음이라는 게 아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보다 보면 그게 약간씩, 약간씩 정체를 드러내면서 그것의 모습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청명거사님 녹취)
그런데 우리 마음에 번뇌가 막 붙어 있어요. 번뇌, 사념, 이런 게 붙어서 마음이 아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한데 정확히 볼 때는 모르면 모른다 하고 자기 걸 안 붙이는 게 제일 좋아요.그냥 있는 것만 딱 있게 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욕을 했습니다.또는 나를 때렸습니다. 욕을 했다 칩시다. 또 안 그러면 인상을 썼습니다.그러면 거기서 정확한 건 뭐냐 하면 그 사람이 나한테 욕을 했다 인상을 쓰고 있다.그것은 확실한 겁니다. 옆에 사람도 봐도 확실한 겁니다.근데 그때 나를 무시했다. 이걸 붙인 겁니다. 붙인 것은 절대로 없는 게 좋습니다.그러니까 오로지 있는 것만 자꾸 보는 게 중요합니다. 안 붙이고 그다음에 예를 들면 이 부동산 시장을 정확하게 본다.그럼 부동산 시장이 어떤 원리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건지 봐야 되는데 그것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합니다. 부동산 시장 오를 만큼 올랐다 이제 내려간다.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그 근거가 이제 중요합니다. 어쨌든 모르면 모른다. 왜 정확하게 봐야 되냐면 잘 보면 세상은 돌아가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 돌아가는 원리를 잘 보고 그에 따라 흘러가야지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자기 이렇게 돌아 돌아간다고 생각 그 차이만큼 괴로움이 생깁니다. 또 괴로움을 잘못 해결하다 보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사람을 정확하게 본다. 사람은 그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살아온 어떤 정보 그런 파일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겁니다. 그것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불교적으로 보면 또 태어날 때 또 서로 다 다릅니다.그런 모든 걸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마음에 따라 움직입니다.그 마음을 볼 수 있으면 되는데 그 마음도 알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모른다 하면서 유심히 보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합니다.어떤 사람이 잘해줍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잘해주면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정확히 보는 데는 지장을 주면 안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좀 싫은 일을 하면 기분 나쁩니다 .그럼 보통은 우리가 저 사람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봅니다.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정확히 보는 데 지장을 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많지만 사람이 제일 영향을 많이 줍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우리를 즐겁게도 하고 피곤하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이제 정확하게 보는 것은 타심통이 있으면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타심통은 이제 수행을 엄청 열심히 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타심통이 있었던 건 분명하죠. 타심통에 있으면 더 정확하게 보는데, 우리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분인데 타심통 있는 경우의 이야기를 제가 들은 게 있습니다.먼저 타심통은 이런 겁니다. ‘아잔차‘라고 태국의 유명한 스님이 있지요. 아시는 분 아실 겁니다. 지금 돌아가셨고 그분이 타심통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 밑에 ’아잔 브람’이라는 영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일찍부터 참 불교 명상이 참 중요하구나 생각해서 일찍이 태국에 가서 ‘아잔차' 밑에서 9년을 있었죠. ‘아잔차‘의 타심통을 목격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2014년에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직접 들은 것 같아요.
타심통(他心通)이 지금 이런 겁니다. 하루는 차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뒷좌석에 상석이라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앞에 운전수 옆 좌석이 항상 상석입니다. ’아잔차‘가 앞 상석에 앉고 뒤에 ’아잔 브람‘이라는 영국에서 온 비구 또 미국에서 온 다른 또 비구 4명이 차를 타고 오고 있었지요. 차를 막 타고 있는데 ’아잔차‘가 이 뒤에 있는 미국 비구를 딱 돌아보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 두고 온 애인 생각 좀 그만해‘ 하니까 이 미국 비구는 자기 머리 속에 생각하는 걸 말하니까 너무나 놀란 거예요. 황당한 거예요. 그게 ’타심통‘입니다. ’타심통‘은 이 선정의 자유자재가 돼야 됩니다. 그러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신통’하면 약간 폄하하는데, ‘신통’은 우리 인간이 엄청나게 올바른 노력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지혜이자 힘입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타심통’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방 마음을 100%는 알기 어렵습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가족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워요.부부 간에도 저 사람 마음이 이럴 거다 했는데 이야기해 보면 거짓말하지 않고 말하는데 그랬나 하는 경험을 여러분들도 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의 마음에 좀 알 수 있고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뭐냐 하면 이걸 잘 앞으로 쓰셔야 돼요. 그냥 저 사람 마음 이렇다 이러시면 안 돼요.어떤 사람이 말을 하잖아요.
그러면 이 말이라는 것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말이 일어날 수 없게끔 구조가 돼 있어요. 왜 그러냐면 우리가 의도를 가지지 않습니까? 내가 이거 순식간에 있는데 보통 사람 알기는 내가 말을 해야 되겠다는 그 의도를 가지면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 나와서 성대를 탁 치면서 칠 때 그 땀 성분이 추가되면서 그 성대의 땀 성분하고 탁 하면서 말이 나와요. 또 행동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이걸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면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 나왔을 때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잘 보면 누가 말을 하잖아요. 그러면 그 마음이 움직였다는 거예요.그 말에 걸리지 말고, 쭉 따라서 마음까지 들어가는 훈련을 계속하면 걸린다는 건 이거예요.
누가 말하면 기분 나쁘네, 이러면 걸린 거예요. 기분 좋다도 걸린 거예요. 따라 가지 않고 왜 저런 말을 할까 이것도 걸린 거예요.그냥 말을 하면 저것은 마음이 움직여서 나왔고 마음의 결과다 하면서 마음으로 자꾸 들어가는 훈련을 자꾸 하면 그 마음이 좀 알 수가 있어요.그다음에 어떤 사람이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그 표정을 짓게 한 것도 마음이에요.그것을 따라서 표정에 걸리지 말고, 그 마음을 따라가는 겁니다. 또 따라가는 노력을 하지 않고 반응을 하는 것은 걸리는 것입니다. 기분 좋다 기분 나쁘다 왜 저럴까 하지 말고 그 마음을 따라 가면 좀 마음에 근접해져요. 그다음에 어떤 사람 행동을 보면, 보고 따라 들어가면 마음에 좀 가까워져요. 그런 걸 계속하다 보면 사람 마음이 잘 안 바뀌어요.이걸 하다 보면 그 사람 마음에 근접해져요.
이 노력을 좀 꾸준히 하셔도 이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걸 정확히 아는 걸 타심통이라 한다면 그런 노력. 저 사람 마음이 지금 어떨까 어떤 게 있을까 하고 정확히 알려고 하는 노력이 우리 심리학에서는 공감이라 그래요. 그래서 공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공감이 이제 굉장히 중요한데 어떤 사람은 공감 능력이 마이너스인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이 ‘내 마음이 이런 데, 하면 너 마음은 그게 아니야 이거야.’ 한다면 공감이 마이너스네요.
그러니까 공감을 하려면 이런 훈련을 자꾸 하시는 게 좋습니다. 내 마음은 내가 잘 알잖아요. 어떤 사람을 탁 대하면 내 마음은 스톱하고 상대방이 되어보는 훈련, 상대방의 눈으로 보고, 상대방의 귀로 듣고, 상대방의 마음으로 느끼고, 이 훈련을 자꾸 하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그때가 1984년이죠. 꽤 오래 전, 정신과 전공이 1년 차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전공의 1년차들은 주로 병실에서 생활을 해요. 환자들은 입원했고 저는 치료하기 위해서 거의 입원한 셈이죠. 그래서 거의 1년 거기서 생활합니다. 거기서 이제 제가 처음으로 퇴원하고 처음으로 정신과 환자하고 면담을 하게 됐어요. 면담을 하는데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전에는 저는 누구를 만나면, 이 사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렇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환자를 대하니까 그래가지고는 안 된다는 사실이 직감적으로 왔어요. 이래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이 느끼는 것을 적어도 비슷하게 정확히 알아야지, 내 마음대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사람 이렇다, 저렇다,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아무래도 처음으로 좀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렇게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 그리고 정확하게 본 것에 근거를 해서 뭘 하는, 이것이,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데 대책 세우는 길 하나입니다.첫 번째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걸 정확하게 보는 거예요.이제 두 번째는 우리를 잘 컨트롤하는 일이에요. 우리를 잘 컨트롤한다는 것은, 우리 몸과 마음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돼 있어야 돼요. 그건 뭐냐 하면 우리의 몸이 어떻다는 걸 정확히 알고 몸이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거기에 적절하게 가는 길, 제가 보면 사람들은 손해 보는 걸 계속해요. 손해 보는 건 나한테 도움 안 되는 거예요. 손해 보는 걸 자꾸 하다 보면 인생이 잘 안 풀려요. 그러니까 우리 몸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아야 해요. 몸이라는 것은 우리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몸은 그 순간의 조건, 인과의 법칙상 어떤 게 이제 벌어지는데 고정된 건 아니에요. 오늘날 지금 우리가 이 시간 끝나고 뭘 먹겠죠? 먹으면 또 몸이 바뀝니다. 어쨌든 순간적으로는 조건의 영향, 인과의 법칙을 따라야 또 새로운 인과가 되겠죠. 예를 들어서 몸이 어떻다는 걸 잘 알고 우리는 보통 몸이 아플 때 우리 마음이 같이 아파져요. 그렇지 않고 몸에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잘 반응하는 것. 이것이 또 중요합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겁니다. 마음도 마음의 원리에 따라서 잘 다스리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는 살다 보면 생각이 나고 감정이 들지 않습니까?그럴 때 그것을 잘 처리하셔야 돼요.
우리 머릿속에 드는 것에 영향을 받아요.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감정에 영향을 받아요. 그럴 때 그것을 이 생각과 어떤 감정의 속성에 따라서 잘 반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한테 안 좋은 일이 벌어져요. 제가 볼 때는,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괴로움이 굉장히 많아요.그 괴로움을 스톱하고 정말 존재했을 때 불가피하게 올 수밖에 없는 그런 괴로움만 있도록 해야 돼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생각이나 감정이 탁 들면 사람들은 보통 둘 중에 하나를 해요. 어떤 생각이 들면 이거 나쁜 생각이야 이건 하면 안 돼 하고 이렇게 억제를 하거나 억압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에 영향을 받아요. 영향받아서 그 영향 속에 있어요. 이 둘을 하시면 안 돼요. 왜 하면 안 되냐면 생각이나 감정은 잘 보면, 지금 그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기 전까지 살았던 속에서 어떤 조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이거는 나쁜 거야, 나쁘게 보아서는 안 돼요. 그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또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것도 과거를 반복하는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면, 아, 올라올만했으니까 그런 것이지, 지금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 하고 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청소를 할 수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누구랑 대화할 수도 있고, 그 하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그 하는 일 속에 다 있다 생각하고 하시면 됩니다.
이 두 가지를 하시면 적어도 정신적인 괴로움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해도 신체적인 괴로움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누가 내 손을 부러뜨리면 아파요. 누가 내 뺨을 때리면 얼얼합니다. 그렇지만 이때 정신적인 괴로움은 없이 살 수가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자꾸 우리가 자꾸 덧붙여요. 그래서 시간이 다 돼 가니까 조금 좀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이래서 우선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걸 정확히 아셔야 돼요. 파악이 제일 중요합니다. 파악이 안 되면 이제 움직이지 않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잘 보시고 그다음에 내 속에서 일어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든, 내 정신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든, 그것에 대해서 적절하게 하면서 지금 내가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주위에 도움이 되고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돼요. 할 때 그 속에 다 있다.
예를 들면 설거지하면서 ‘내가 이런 것이나 하고’ 이러면 안 돼요. 설거지하는 속에 다 있습니다. 왜 다 있냐면 우리는 마음에 따라 살아가요. 설거지할 때, 설거지하는 그 마음이 올바르고 지혜로우면 사람 만날 때도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어요. 또 무슨 일을 해도 그대로 살 수가 있어요. 제가 옛날에 어떤 사람을 보니까 이 사람이 어떤 특정한 일만 했어요. 어떤 사람을 하루 종일 수발하는 일종의 비서죠. 수발하는 일을 하는데 누구보다도 잘했어요. 그럼 어떤 사람은 저 사람 저거밖에 못 한다고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그 일을 안 하고 기업 경영을 하는데 누구보다도 잘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뭘 볼 때 정확하게 보는 눈이 있으면 그 눈을 가지고 지금 자기가 해야 될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이제 이렇게 좀 불교도 일찍 만나고 수행을 하다 보니까 이제 이런 걸 알게 됐죠. 알게 돼서 지금도 기억나는 게 한 30대 중반인가 제가 무슨 책을 보다가 아니야 저 책도 봐야 되는데 하는 순간에 깨달음이 와서 이 책 속에 다 있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 다 있던 마음이 이 책에 전념할 수 있잖아요. 저거 봐야 된다면 이거 보는 것도 좀 정착이 안 되잖아요. 이 속에 왜 다 있냐면 이걸 깊이 있게 보는 눈을 가지면 다른 책 있을 때 거기서 출발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보니까 세상에 벌어지는 일은 다 인과의 법칙상 벌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거기에 반응하는 나와 상대방과 세상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또 발전, 발전할 수 있어요.
세상에서는 실패했다 성공했다 실수했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어나는 것이 다 일어날 뿐이에요.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뭔가를 배우고, 배워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것을 잘 보면, 일단 정확하게 보는 게 저는 좀 넓게 보이는 것이 정견(正見)이라고 봐요. 그다음에 정확하게 보고 내가 나한테 손해 보는 일 하지 않고 여기에 맞게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게 정사유(正思惟)라고 볼 수 있어요. 그다음에 행동을 할 때 남한테 피해를 주면 자기한테 피해가 와요. 또 자기를 힘들게 하면 그것도 안 좋아요. 그래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생계를 한다면 정업(正業), 정어(正語), 정명(正命)이 돼요.그다음에 정정진(正精進)이라는 것은 나한테 해가 되는 악업(惡業)이 지금 있으면 없애고 아직 있지 않으면 안 올라오게 하는 것이거든요.또 선법(善法)은 있으면 더 증장 시키고 없으면 일어나게 하는 거예요.그것을 또 실천할 수 있다고 봐요.그다음에 정염이라는 거는 지금 현재 신수신법이죠.현재 나 한테 일어난 현상을 정확히 보고 거기에 대해서 내가 어떤 존재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아는 게 정념이에요.그래서 이 정정 이건 사전적이니까 빼고 이 일곱 가지는 지금 말한 것을 좀 해도 그 사성제 팔정도를 실천하는 길이 아닌가 이런 생각합니다.시간이 돼서 이만그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찬탄곡 : 무소유의 노래 ( 덕신 스님 작사, 김회경 작곡,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갈곳이 어디메뇨 머물곳은 어디런가 대가사와 바루한벌 바랑에 넣었으니
번뇌의 봇짐인가 수행의 도구인가 수행자의 구도행각은 걸림이 없어라
가질 것도 없었으니 버릴 것도 없다네 무소유에 짐착하면 소유가 아니런가
머물지 말지니 번뇌에 머물지 말며 떠나지 말지니 보리심 떠나지 마라.
바랑메고 길나서는 나구네의 당당함에 무소유의 소식을 찾을 수 있었네
삼독의 고삐는 풀어서 놓아주고 해탈의 속박마저 법으려고 하는구나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마음은 풍요롭고 머물지 아니해도 발걸음은 가벼워라
머물지 말지니 번뇌에 머물지 말며 떠나지 말지니 보리심 떠나지 마라.
수능 백일기도 발원: 혜담 스님 . 2025학년도 수능 입시생 및 각종 고시생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읍니다.
발원문 낭독 : 송파 2구 명등 정명성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불광에 첫걸음, 새 법우로 오신 보살님을 모두의 환영과 더불어 회장님께서 작은 선물을 전달하고 사진도 함께 남기셨다.
정법(正法) 만난 이 소중한 인연 변함없이 이어가시길 발원합니다.
법회를 마치고 각 구 법회 및 법등 모임을 각기 마련한 과일 및 소찬으로 정감을 나누고 계신 법우 형제들. 공양실 문은 언제나 열어주시려는지..... 그래도 쓰레기 분리수거도 잘 하고 계시다는 혜안 거사님의 말씀. 멋진 불광 형제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 법회에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봉사팀들의 질서 정연한 인사에 마음이 따뜻합니다.
불광 정상화의 발원을 담은 금강경 독송이 오늘도 법회 후 대웅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 2회에 걸쳐 진행된 임원교육 중, 2차 임원교육이 보광당에서 있었습니다.
임원 교육을 진행하고 계신 법회장님, 부회장님, 사무국장님, 광명행 보살님, 연화부장님의 목탁 교육.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토요일 오후에 일요법회 준비로 보광당을 청소하시고 의자를 예술처럼 배치해 놓으시는 청정 봉사팀. 수고하신 후, 생수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요즈음 같이 푹푹 찌는 더운 날. 저 무거운 현수막을 이른 아침부터 5층에서 설치하고 다시 지상에서 펼치는 어려운 작업을 불광 정상화를 위해 매주 쉬지않고 고생하시는 거사님들이 계십니다.
이 어려운 일들을 하는 불광 법회 형제들은 할 일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힘들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도 오로지 청정한 스님을 모시고 재정 투명화를 이루어 광덕 스님의 반야사상을 이어가고자하는 바람 하나로 눈이 오던 날에도, 비 오는 날에도, 푹푹 찌는 폭염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한 목소리 일 뿐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바람을 칼로 갈기갈기 찢어 놓아, 공포스럽던 사찰 주변으롶 몇 대의 119 구급대가 오고, 출동한 경찰분들이 현장무기 소지로 데려가던, 현장의 저 분이 화합 기도 하신다는 주지 스님의 종무소 직원입니다.
어떠한 말로 설명을 하실 수 있으실까요? 일요 법회 없애려고 토요 법회를 만들고, 어린이 불자가 공부하는 유치원을 폐지하신 스님들, 아무리 지구는 자신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기 저기 붙여놓은 사 측의 게시물은 열 번 되짚어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지 스님께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현장을 보고 계시겠지만, 정상화를 위한 시위 정진하시는 불광 법회 형제들은 피눈물 같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저 자리에 있다는 것도 모르시진 않으시겠지요?
칼로 찢긴 현수막을 다시 설치하고, 사 측의 방해로 진행하지 못한 시위 시간을 연장 하며. 여여하게 시위를 마쳤습니다. 불광 법회 형제들 대단하십니다.
불광 정상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_()_
지난 주에도 봉은사, 동명사, 화광사에서 1인 시위 정진하시는 불광 바라밀 형제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마음님의 여여한 행원으로, 청명거사님의 녹취봉사로, 지일심보살님의 수많은 사진과 영상으로, 오늘도 불광법회는 잘 이어졌습니다 _()()()_
괴로움을 없애는 사성제를 베푸신 법사님 감사합니다. 내가 하는 사소한 일에도 모든 해결책이 있다는 말씀에서 불광을 다시 돌아봅니다 _()()()_
사랑하는 불보살님들 편집, 사진, 녹취 올리신다고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덕목을 생활법문 일상생활을
보다, 알차게,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내용의
법문을 잘 경청할 , 수 있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합장~
마음님 새벽시간까지 녹취,편집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사진찍고 녹취 도와주신 미디어팀 보현행자님들 수고하신 덕분에 다시 한번 법문을 새기고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는 멋진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눈물겨운 수고로움에 수희찬탄드립니다.
전현수 법사님의 사성제 팔정도 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실생활속에서 잘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