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창 여행2 - 팔일광장을 지나 호텔에 체크인후 8.1 기의기념관을 찾아가다!

여행 5일째인 10월 20일 사오싱베이짠 绍兴北站(소흥북참) 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반만에
남창서역 에 도착해 표를 끊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地铁大厦 (지철대하) 역에 내려
다시 1호선으로 환승해 다섯 정거장을 가서는 빠이꽝창 八一广场(팔일광장) 역에 내립니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八一广场(팔일광장) 인데... 여긴 넓어도 너무 넓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고다와 구글어스 에서 보고 종이에 손으로 그려온 지도 를 들고 남쪽으로 걷습니다.


광장에는 엄청 크고 높은 8.1 南昌蜂起 (남창봉기) 기념탑 이 보이는데...
그 계단에 여행자와 시민등 많은 사람들이 앉아 쉬는 모습을 봅니다.


마눌이 비싼 택시를 극도로 싫어하는지라 시내 지리도 익힐겸 인터넷에서 예약한 호텔까지
걸어가려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붉은색과 푸른색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광장을
걸어 남쪽 끝에 다다라서 대로를 건너려고 하니 이런? 철책이 쳐진지라 건널수가 없습니다?


주변에 횡단보도는 물론이고 지하도도 보이지 않는지라 되돌아서서 걸어서 육교 까지는
너무 멀기에.... 기차역으로 들어가 지하도로 내려가 지하통로 로 건너려고
했더니 이런??? 통로로 들어가는데 다시 배낭을 엑스레이 검사대 에 넣으라고 하네요?


엑스레이 기계를 통과해 남쪽으로 걸어서 5번 출구로 해서 반대편으로 올라오니 배낭을
메고 걸은지라 피곤한데다가 8.1 기념관 마감시간 이 걱정되니 시간도 없는지라
길가에 오토바이 삼륜차 에 호텔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이고 10위안에 흥정합니다.

오토바이 삼륜차 아줌마 운전수는 큰 길로 가면 좋겠다만.... 말릴 사이도 없이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는데 여긴 무슨 빈민가 를 연상케 하니 좁은 골목에 차와 상점
물건에 행인들이 뒤섞여 난장판 인데... 삼륜차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토바이 삼륜차는 연신 클랙션을 울리면서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쳐나가는데
도로 모서리나 행인이며 상점에서 내놓은 물건들을 5cm 간격으로 아슬아슬하게 헤쳐
나가는 것이 마치 곡마단 서커스에 올라탄 것 같아 후회가 되는게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큰 도로로 나가서는 우회전해 쏜살같이 200여미터를 달리더니... 뭔가 잘못 됐는지 갑자기
삼륜차를 360도로 돌려 "역주행" 을 시작하는데, 마주오는 차량이며 오토바이 와 연방
부딪힐것 같아 오금이 저리는데 100여미터를 달려서는 멈추며 손가락을 왼쪽을 가리킵니다.

미처 호텔을 확인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휴! 살았다는 안도감 에서 돈을 주고 내립니다?
우리 호텔이 아니면 여기서 물어물어 찾아갈 생각이라 확인해 보니....
孺子路 (유자로) NO 191 에 七天酒店南昌孺子路店 (칠천주점남창유자로점) 이 맞습니다.

영어로는 191 Ru Zi Road 에 7 Days Inn Namchang Ru Zi Road 인데 아고다 인터넷에서 이
호텔을 예약하고 미처 약도를 인쇄하지 못한지라 곤욕을 치렀으니 호텔 위치가 아고다
에서는 8.1 광장 북쪽 먼곳에 표시되고 부킹닷컴에서는 8.1광장 바로 남쪽 으로 나오네요?

해서 구글 어스 에서 확인해 보니 여기 남창에 7 Days Inn 체인이 3곳 나오는데 우리가
예약한 7 Days Inn Namchang Ru Zi Road 호텔은 나오지도 않으니 고민하다가....
혹시나 싶어 중국 7 Days Inn (七天酒店) 전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렵사리 검색해 보니!

여기 남창에 10개 가까운 체인점 이 있는데 그 중에 七天酒店南昌孺子路店 은 오늘 우리가
찾아온 여기 위치로 표시 된지라.... 그럼 4곳 호텔 인터넷상의 위치가 서로 틀리다면
중국측 홈페이지가 맞지 싶어 오늘 이곳을 목적으로 찾아오니 다행히도 맞게 온 것이네요?

이메일로 부쳐져온 걸 인쇄한 바우처 를 내보이고 체크인을 하는데 여긴 더불룸이 1박에
18,500원 밖에 안하는 싸구려 인 때문인지 호텔이라기 보다는 시장통에 여인숙 을
연상케 하는데 남녀 직원 2명이 여권을 수없이 뒤적이며 10여분이나 똥오줌을 못가립니다.

아고다 예약 바우처 를 들고오는 외국인이 드문지 서류처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데...
인적사항 외에도 아마 여권에서 우리가 받은 비자와 입국 도장등을 확인하기 어려워
그런가 본데... 사실 우리가 외국을 수십차례 드나들었는지라 여권이 좀 복잡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은지, 중국어로 언제 어디로 입국했는지 묻기에 10월 16일 상하이로
입국해 16일과 17일은 닝보 호텔에 묵고 18일과 19일은 사오싱 호텔에 묵은후 오늘
사오싱에서 기차로 난창에 도착했다고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연신 No Smooking 을 외칩니다.

그러면서 호텔비... 운운 하기에 우린 아고다 에서 예약했는데 부킹닷컴이라면 오늘
방값을 여기 호텔에서 내야 하지만, 아고다는 3일전에 내 신용카드에서 돈이
미리 지불 되었다고 영어로 말하니... 좀 난감해 하더니 알겠다면서 방 키를 내줍니다!

시내 지도 가 있느냐고 물으니 엄청 큰 대형지도를 찾아서 주는데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으로
바이두 지도앱 을 사용하는지라.... 평소 종이 지도를 찾는 사람은 없는 모양 입니다?

사오싱(소흥)에서는 아침이 호텔비에 포함되었기로 뷔페식 아침을 잘 먹었고
영파에서는 따로 돈을 내고 먹었기로,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내일 아침 식사가 호텔비에 포함 된건지 물어 봅니다.

자오찬 빠오쿼 쭈수 페이리마? 朝餐 包括 住宿 費里嗎? (조찬 포괄 주숙 비리마?)
뿌빠오커 不包括(불포괄) 라기에......
그럼 아침 가격 이 얼마냐고 물으니..... 자기 호텔에는 아예 식당이 없답니다?

호텔에 들어가 배낭을 던져 놓고는 다시 바로 나와 대로변에서 시간이 없으니 이번에는
택시 를 잡아서는 미리 인쇄해온 종이 쪽지를 쇠창살 너머로 건네 줍니다.
請到 8.1 南昌蜂起記念館 (청도 8.1 남창봉기기념관) 그러자 택시 기사는 몇번
갸웃거리더니.... 내게 종이와 볼펜 을 달래더니 “起義(기의)” 라고 적어 건네줍니다?

지금 가려는 곳은 東湖(동호)와 우리 호텔 서쪽 가까운 地铁 八一馆站(지철팔일관참) 역
앞의 “八一 起義紀念館(팔일기의기념관)”이 맞으며, 구글 어스 에서 보자니 동쪽에
따로 무슨 8.1 기념관 이 있는걸 보았었는데.... 그보다는 내가 “起義(기의)” 라고
중국식으로 써야 할 것을 무의식적으로 한국식인 “蜂起(봉기)” 라고 잘못 쓴 것 입니다.

택시는 모퉁이를 돌아 7~8분을 달려 어느 건물 앞에 서는데 택시비는 기본요금인 7위안을
주고 내리면서 시계를 보니 3시 40분인데, 4시 30분에 입장 마감이니 겨우 시간을 맞춘
셈인데 경비 경찰이 신분증을 검사하니 우린 여권을 보여주는데 입장료는 없는 모양입니다.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가니 대학생들이지 싶은데 무슨 플랭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걸 보니 어디 멀리서 온 모양으로, 마당에는 양쪽에 20여명의 상반신 흉상 을 세워
두었는데 주은래, 주덕, 유백승, 하룡과 이입삼 은 아는 인물 들이고 나머지는 모르겠네요?

이 인물들이 국공합작중 이던 1927년 4월 12일 장개석이 돌연 배신해 상하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주의자와 노동자등 수만명을 체포하자 8월 1일 주은래의 지도 하에 남창에서
무장봉기 를 했으니, 아니 국민당 입장에서 보면 무장폭동 인데 연유를 생각해 봅니다.
(공산당은 개인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해 국민당에서 함께 일했으니 신분과 주소가 노출됨?)

명나라가 건국한지 220년이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1592년 제후국 조선에서 임진왜란 이
일어나니 명나라는 몽고족 발배의난 중이라 제 코도 석자임에도 명분에 집착해 7년간
25만의 대군(일본 30만, 조선 10만)을 파병하니..... 원거리인지라 식량과 군수물자
수송등 엄청난 군비 로 인해 재정파탄 이 나니 세금을 폭징 하자 농민반란 이 일어납니다.


흉년에다 농민반란을 진압하자면 군대를 보내야 하니 다시 세금을 폭징 하고 이에 몰두하자
여진족이 요동에서 궐기 하는지라 다시 산해관에 대군을 집중하자 이자성 농민군 에
베이징이 함락해 멸망했으니 조선에 파병만 안했으면 100여년은 더 지탱 했으리라 보는데
20년간 파업을 벌이던 암군 만력제 가 그눔의 천자국에 대한 집착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네요?


명나라를 이은 청나라 는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성군 3대가 이어지니 세계 최대의
부강을 자랑했으나... 중국을 접수한지 200년만인 1840년 아편전쟁 에서
영국에 참패를 당하고 열강에 뜯어먹히며 배상금 지불을 위해 세금을
폭징하니 태평천국의 난 이 일어나는데 조선의 동학란 처럼 자체 진압을 못합니다.

허약해진 청군 대신에 증국번과 이홍장 등 지방의 유림 토호의 민병과 영국군의 힘
으로 난을 진압하자 청조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는데... 해서 권력을 쥔
한인(漢人) 북양대신 이홍장 도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에 패배 하니 도처에서
중국인들의 반란과 궐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1911년 무한에서 군인들이 봉기 합니다.


청조가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 민간인 철도마저 국유화하자 장사에서 1만명이 시위를 벌이고
사천으로 확대되니 무창 군대를 사천성 시위진압에 동원하려했는데 군대에 침투해 있던
혁명세력이 1911년 10월 10일 거사해 호광총독의 관청을 장악해 혁명 도시가 되자...
한양과 한구의 신군이 혁명군에 합류 하게 되고 청조는 2개 사단을 보냈으나 격파 당합니다.

이른바 신해혁명 으로 전국에서 17개 성과 남경을 포함 국기를 18성기 로 삼았으며...
손문 이 정권을 잡아 중화민국 을 세우니.... 청나라 서태후는 원세개 에게
진압을 명하니 그는 무한으로 내려와 혁명군을 격파했지만 두마음을 가진지라 손문과
협의해 대총통의 자리 를 얻은후 북경으로 돌아가 황제 부의를 내쫓으니 청나라는 망합니다.

조선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군대를 동원해 민씨 정권을 구했던 원세개 는 대총통에 만족
하지 못하고 황제 에 올랐으니... 측근들까지도 반발하는지라 홧병으로 죽으니 중국의
실권은 지역 군사령관인 10여명의 군벌 과 손문 그리고 뒤를 이은 국민당의 장개석 입니다.


지역별로 보면 가장 중요한 베이징과 화북에는 염석산, 만주에 장작림, 서안에 풍옥상...
상해와 절강성에 손전방, 안휘성 오패부에 사천군벌, 운남군벌, 광서군벌이 90% 를
차지하고 국민당은 10% 로 광동성과 복건성 에서 세력을 길러 장개석은 북벌을 개시합니다.

중국 공산당 은 1921년 상하이에서 13명이 모여 창립모임이 열린데서 출발하는데 모택동도
그 일원이었으나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은 천두슈 (陳獨秀 진독수)를 지도자로 주로 도시
노동자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형성했는데 1924년 제1차 국공합작 (國共合作) 이 실현됩니다.

1926년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 공동으로 북벌 (北伐)을 개시했으니 이는 쑨원(孫文 손문) 이
군벌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모든 반군벌 세력과 연합하겠다는 의지 때문에 실현된 것이라
1925년 쑨원이 사망하자 이러한 명분의 중심을 잃게되고 장제스(蔣介石)가 세력 을 잡습니다.


장제스 (蔣介石 장개석) 는 반공(反共) 의 중심 인물로 1927년 4월 상하이에서 공산당
세력을 타도하는 군사행동 을 일으켰으니 국공합작은 끝이나고 중국공산당 은
큰 타격을 받게되자 1927년 8월 1일 여기 남창에서 일으킨 봉기 도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강서성에 웅거한 공산당군을 200대의 비행기 까지 동원해 공격하니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홍군은 만리장정 을 해서 1년에 걸쳐 서북 연안 까지 도주합니다.

미국이 제공한 전투기와 탱크 등 현대식 무장의 200만 국민당군 이 박격포 정도의
빈약한 원시 수준의 무장에 50만에 불과한 홍군에 패해 장개석은 결국에는
대만으로 쫃겨갔으니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국민당의 패배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