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산행기

[김찬일]

삼정산 기행기

요즘 발간된 성경, 글자 아래 굵고 붉은 선 그은 것 보면, 내용 주로 사랑 이야기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 특기인 사랑을 가지고 성공한 책이다. 우리 서민생활에서 껌의 단물같은 유행가 가사에도 사랑이 약방감초로 등장한다. 사랑은 장난이 아니기도 하지만, 장난이기도 하다. 서로 헤어진 사랑은 조용필의 두눈에 상처로 남고,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말못하는 죄로 남는다.
어느부부가 살았다. 서로 성격이 맞지않아, 어떤 문제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없이, 티걱태걱 다투었다. 서로 헤어지자 카면서도 아들놓고, 딸놓고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부인에게 교회에 다니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은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 갔다 온 남편은 놀라우리 만큼 변하여 아내에게 너무 잘 대해 주었다. 이에 감동한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지난 주 교회 설교가 좋았던 모양이예요, 제 아내를 사랑하라 였든가봐요."하니까. 남편 대답이 "아닐쎄 원수를 사랑하라 였다네"라고 대답하였다.

아내를 사랑 하듯이 원수를 사랑하면 천국이 될 것이다. 군사작전도로에 차를 세운다. 양정마을이 건너보인다. 베낭을 단단히 지고, 포장길을 오른다. 갈림길이 나와 좌측으로 틀어 들어가니, 수십개도 넘어 보일 것 같은 큰 장독이 줄서 있다. 된장 공장이다. 이런 깊은 산속 청정지역에서 담근된장이라면 그 맛이 어떨까. 된장하나 똑똑하면 열 반찬 안 부럽다. 6월 무더울 때, 막 상추쌈에 쌈장넣어 눈알부리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먹으면, 그 맛이 기가막힌다. 이맛에 생긴 격언이 상추밭(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것 아닌가. 잘 익은 된장이 저승사자 쫓아낸다. 산 되알밭 길이 끝나고 숲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느끼지만 숲은 생명이다. 갖가지 풀과 나무들이 엉켜 살아가는 숲은 살아있는 몸뚱이다. 6월 푸른 잎이 나의 눈에 스며들기도 하고, 나의 더벅머리가 산 야생화에 스며 흔들리기도 한다. 계곡에서 솨르르솨르르 흐르는 물소리가 벌써 땀나는 나의 발목을 감아 끌어 당긴다. 요즘 지구온난화로 식물군이 바뀌고, 도시고 농촌이고 할 것 없이 모기떼가 전염병 돌듯이 번진다고 한다. 6월의 지리산 숲도 밀림처럼 뻑뻑하다. 반시간을 오르니, 길옆 산쪽으로 한사람이 들어 갈 작은 굴비트가 나타나고, 비트에는 놀랍게도 따발총을 앞으로 겨눈 공비 즉 남부군이 사격자세로 보초 서고 있다. 마치 안내판이 있어 읽어본다. 지금 올라가고 있는 영원사는 여수순천반란사건으로 시작되고,1950년 6.25사변으로 인민군까지 입산, 편성된 지리산 남부군 사령부였다고 한다. 이 비트는 바로 사령부를 지키기 위한 초소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남부군 인형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니네들이 목숨던진 공산주의는 지금 거렁뱅이 되었데이. 노동 착취없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 먹자는 맑스 레닌주의가 붉은 장미천국 같았지만, 경쟁력이 없어 지옥으로 떨어졌데이. 남부군의 총구는 지금 막 꽃살이 터지는 산꽃을 겨냥하고 있다. 그렇게 꽃을 조준하고 있으면, 언젠가 너도 꽃이 되리. 꽃이 되었다가 지고 피고, 다시 꽃씨가 되어 고향으로 날아 가, 비오는 날 장독간에 숨어, 봉숭아로 몸 바꾸어 활짝 피어나리. 나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사라져간 젊은 남부군들을 생각하면, 산유화를 불러 그들의 혼을 달래주었다.

영원사 마당에 들어서니, 무언가 피곤하다. 이 높은 산골에 절집 잘도 지었다. 우물도 그렇고, 요사체도 그렇고, 이렇게 다듬자니, 돈이 얼마나 들었겠나. 불교도 바뀌어야 한다. 대중이 알아먹지 못하는,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오늘 이땅에서 아파하고, 신음하는 나와 당신들, 평범한 서민들의 삶, 그 밑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고통을 건져, 식혀주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이제 불교도 과거 종교로서, 민족문화의 찬란한 전통만 전기광택 낼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 우리들이, 부딪친 현실과 미래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불교도 조사니 선사니 하는 고승들의 암호 메세지 해독만 할 것이 아니고, 붓다의 체온이 직접흐르는 육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중간상인 없이 직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은 중간마진 없는 붓다가 되어야 한다. 붓다가 피땀 흘리며, 맨발로 걸어가신 지혜의 길로 우리도 가야한다. 지금 여기서 나와 당신이 울며 웃으며 손잡고 더불어 가는 인간의 길이 붓다의 길이다.

영원사는 1200년전 신라 경문왕 때 영원조사가 창건했다. 부용,서산,사명,청매조사와 화엄보살 설파, 노사등을 배출했다. 영원사는 왕대밭이다. 왕대밭에 왕대나고, 시누대 밭에 시누대 난다. 풍수비기에서 보더라고 영원사는 고승대덕이 나오는 길지다.
여기서 벽소령으로 올라가면, 도솔암이 있다. 그러나 갔다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영원사에서 빗기재로 바로 오른다. 곳곳이 산죽밭이다. 여기도 산죽비트를 이곳 저곳 만들어 놓았다. 말이 비트지, 몸을 비트러야 숨을 수 있는 협소한 비밀아지트다. 저런 곳에 잠자리를 만든, 남부군들의 빨지산 활동에 동정이 간다. 전쟁에도 연민이 필요하다. 사랑에도 잔인함이 필요하듯이. 이제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간 그들을 더이상 때리지 말자. 꽃으로도 바람으로도 때리지 말자. 저 산죽밭 어디메 대나무 되어, 바람불면 대금산조로 우는 그들에게 술 한잔이라도 쳐주자. 그것이 불심 아닌가.

도중에 내 지리 환상의 전망대 삼정산 정상에 갔다, 되돌아 내려와 상무주암에 도착하니, 그 비경에 탄성이 나온다. 상무주암은 인 법당이다. 법당에 사람도 살고 부처도 산다. 사람부처 한방에 사는 집이 인법당이다. 십 년전, 그땐 겨울이고, 눈이 내렸는데, 혼자 이곳에 와서 상무주암 박스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박스님은 고향시골의 칠촌 아저씨같다. 어딘지 얼띠보였지만, 법열은 대단혀서 던지는 말마디가 허공에서 꽃이되어 향기를 풍긴다. 아 완성된 사람은 완성된 만큼 부족하게 보인다. "시주님, 불교는 인생공부요잉, 인생을 깨닫는 것이구만요. 깨달은 자는 인생이 온통 즐겁군만이라, 깨달지 못한 자는 인생이 온통 번뇌구만요. 바보일 수록 자기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가 진짜 바보요이잉. 바보들은 남에게 줄줄 모르요잉, 보시할 줄 모른다는 말씸이지요. 인생이 고해라 그러지어 잉,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신 안에 있을 것잉께. 나의 잘못이 업따고 그라제요, 잘못을 모다 남의 탓으로 돌리제요 이, 근게 이런 생각이 고통의 실체가 되는 것잉께요.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에게도 권한다. "사람은 욕심으로 괴로워진다요. 사람이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는것이요잉. 가져갈게 아무것도 없을 것잉께요. 근데도 한사코 욕심을 내누만요. 욕심이 가득찬 마음이 지옥이어라 잉, 극락이 조오타, 천당이 조타 그라제요, 아니지라우 지금 여기가 제일로 조은 거시요이, 극락은 질거워서 공부를 못해 뿔고, 지옥은 고통으로 공부를 못할 것인께. 공부를 할 수 있는 지금이 제일요 조탄것인께요." 박스님의 열에 뜬 설법이 아직도 귀에 메아리 친다. 나는 그날, 눈 덮인 상무주암에 취하고, 박스님 설법에 취하고, 법문의 채찍에 맞아 피멍들은 마음을 겨우 일으켜 돌아 온 적이 있었다. 지금 상무주암 문에는 원목이 비스듬이 누워 통행을 막고있다. 운수행각하는 박스님은 어디로 떠나 갔을까. 여기 상무주암에 오면, 바닥모르는 나락에 떨어져 가는 전율을 느낀다. 몇년 전 가을에 와서 지은시가 있다.

[상무주암에서]
바람이 가을을 / 흔들고 지나간다 / 삼정산 팔부 / 남자 배꼽터에 / 나붓이 앉은 / 상무주암에서 보면 / 천황봉 백리능선이 / 상상의 새 대붕처럼 보인다 / 빨주노 단풍 품은 / 상무주암은 / 가장 높은 곳에서도 / 머물지 않는다는 이름처럼 / 고추잠자리 날개에 이는 / 가을바람 타고 / 어디론가 흘러갈 것만 같은 데 / 등산객 몇 / 낮은 돌각담에 앉아 / 샘물떨어지는 소리에 젖어 / 갈길을 / 잊어버리고 있다 / 그들이 / 가을 숲 단풍물고 / 기다리는 상무주암 오기까지 / 산새울음 귀로 삼키며 / 낙엽 둥둥 밟으며 / 환상의 오솔길 / 허적허적 걸어 왔을 텐데 / 목단풍 밀치고 / 들어 와 앉은 / 상무주암 돌각담에 / 늦가을 산속 / 눈 시린 햇살 / 작은 산꽃 어루만지네 / 사위가 고요하고 / 그 고요 익어 / 탐스런 열매처럼 / 달디단 향기 뿜어 내는 데 / 그들은 / 고요와 통정하며 / 돌아가기 잊어 버리고 / 지금 파남보 단풍에 안겨 잠자는 / 상무주암이 / 가을 꿈속에 피어나는 / 한낱 송이송이 / 헛꽃인 것을 / 그들이 알까

해가 서쪽으로 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빛의 기울기 타고 내려가야 하리라. 상무주암에서 20분 내려오니 문수암이다. 암자 주위에 흰 꽃 무리지어 피어있다. 앙금없이 소복소복 핀 웃음 띄운 꽃이여. 암자내로 들어가니, 암벽에 석굴이 있고 석간수가 고여있다. 임진난에 천인이 피난하여 천인굴이라 한다.고 한다. 물로 목을 축인다. 아무런 인적이 없다. 여기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암자주위 유실수 나무, 덜 익은 풋것 주렁주렁 달고, 푸른산 빛 명상에 잠겨있다. 저 암자, 항상 먼 곳에서 그리움의 갈기세우고 다가오는 고향집 닮았다. 문수암에 주석하고 있는 문수동자여, 그저 언제까지나 앉아만 있겠는가. 이제 일어서서 호미와 괭이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발을 옮긴다.

문수암에서 삼불사는 0.5Km 에있다. 삼불사는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절앞에 몽환적인 흰구절초 피어있다. 여기서 우측 내리막길 잡으면, 견성골로 해서 도마마을로 가게 된다. 절집 뒤 오른편으로 접어 다시 왼쪽으로 가면 약수암가는 길이다. 여기서 나의 망설임이 머리속에서 교류로 흐른다. 나는 도마마을로 방향을 정했다. 잠시서서 삼불사를 두눈에 담는다. 노여승이 삼불사를 지킨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지금 튼튼하다고 자랑하지 말자. 부귀영화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젊음과 건강도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누구라도 병들고, 언젠가는 늙고, 죽음을 면 할 수 없다. 돈자랑, 정력자랑, 권력자랑 모두 덧 없다. 세월가면 청초 우거진 골 진토 밖에 더 되겠는가.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순조롭다. 물흐르듯이 가는 길 아닌가. 창암산과 금대산이 호위를 서고 있다. 산 밭에서 담배가 자란다. 거리가 멀어지자, 담배잎은 파란 연기로 피어오르는 6월의 신기루로 보인다. 군자마을을 지난다. 마을 언저리 쌈지밭에 작약과 모란이 자라고 있다. 모란은 꽃의 화사함과 풍성함으로 꽃들의 왕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란그림을 병풍만들어 혼례나 신방을 꾸민다. 얼마나 화사한 꽃인가. 중국에서는 모란을 부귀화라 한다. 작약은 흙에서 싹을 튀운다. 작약은 함지박 함박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백, 적꽃이다. 부지런히 걸어서 가흥마을 즉 마천에 도착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차가 있는 양정마을 입구 작전도로까지 가야한다. 그곳에 타고 돌아 갈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은 돌아간다. 돌고 도는 유전이 인생사 아닌가. 내가 나 자신의 바른 뿌리로 돌아 갈 때, 나는 거기서 지금과 다른 무수한 나를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밖에 모르는 "나"를 깨트리고, 세상에 나오면, 그곳에서 나의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런 생명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마천 택시에 호출신호를 넣었다. (끝)

[강촌]

된장하나 똑똑하면 열 반찬 안 부럽다. 6월 무더울 때, 막 상추쌈에 쌈장넣어 눈알부리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먹으면, 그 맛이 기가막힌다.ㅎㅎㅎ 사실대로 적으셨는데 참 재미있어요. 선생님은 시와 수필을 겸하시니 문장이 더 아름다운가 봅니다. 네, 결국은 진토가 될 우리들,물 흐르듯이 살아가보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새삼 일깨움 주신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