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북방에서</B></DIV>
<DIV><B> - 정현웅에게</B></DIV>
<DIV><BR></DIV>
<DIV style="TEXT-ALIGN: center">백석</DIV>
<DIV><BR></DIV>
<DIV>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DIV>
<DIV>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DIV>
<DIV>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DIV>
<DIV>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DIV>
<DIV>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DIV>
<DIV><BR></DIV>
<DIV>나는 그때</DIV>
<DIV>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DIV>
<DIV>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DIV>
<DIV>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던 것도</DIV>
<DIV>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던 것도 잊지 않었다</DIV>
<DIV><BR></DIV>
<DIV>나는 그때</DIV>
<DIV>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DIV>
<DIV>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DIV>
<DIV>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DIV>
<DIV>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DIV>
<DIV>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DIV>
<DIV>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DIV>
<DIV><BR></DIV>
<DIV>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DIV>
<DIV>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DIV>
<DIV>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DIV>
<DIV>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DIV>
<DIV>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DIV>
<DIV><BR></DIV>
<DIV>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DIV>
<DIV>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DIV>
<DIV><BR></DIV>
<DIV>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DIV>
<DIV>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DIV>
<DIV>- 1940년 1월 <문장></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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