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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22.6.12.일
■코스: 금성면 성내 주차장-무암교-무암사-Back-좌틀-남
근석/작성산 갈림길-좌틀-소뿔
봉-작성산(848M)-까치성산
(820M)-금수지맥 갈림길-우틀
-새목재-직진-동산/중봉 갈림
길-좌틀-동산(895.4M)-Back-우틀-중봉 전위봉-점심식사-중
봉(886M)-성봉(823.8M)-학현
리/교리갈림길-좌틀-Back-학
현리/교리갈림길-우틀-암릉지
대-대슬랩-모래고개-직진-작
은동산(545M)-외솔봉(482M)
-교리
■구간거리/평균속도: 별첨
■동반자: 나홀로/첨단산악회 따라서/55,000원,조식+석식+목욕비 포함(다소 비싼편이나, 석식은 식당 매식)
■차기산행지:
○6.15(수): 경남 고성 시루봉
(407M)-응암산(432.5M)-수양
산(420M)-철마산(396.1M)-구
절산(559M)
○6.18.토: 강원 곰배령(1,164
M)-점*산(1,424M)
○6.21(화): 구례 천은사 상생
의길 + 까치절산(295.6M)
○6.23(목): 임실 지초봉-원통
산(603.8M)
○6.26(일): 지리산 뱀사골 와
운마을 천년송-영원령(1,290
.5M) 비등로
○6.28(화)광주.임곡 왕동저수
지-쓰래산-내왕산-용진산 석봉
(338.3M)-토봉(189.3M)-산보
래산
○6.30(목): 경남 김해 굴암산
(663.1M)
○7.2(토): 진안 갈거계곡
○7.7(목): 곡성 동악산: 청계
동 사방댐-삼인봉-상수원봉-촛
대봉-동악산(737.1M)-청계동
계곡/원점회귀
○7.10(일): 전남 장흥 부용산
(610.9M)
○7.??.일: 강원 화천 해산령
(1,194M)-비수구미마을 트레
킹 (6.2KM)-평화의 댐+백암산
(1,178M, 군사보호지역 케이
블카로 접근) 연계 산행
○2023.4(초): 여수 하화도 꽃
섬
○2023.5(초): 경남 함양 악양
둑방길 꽃양귀비~자양산
(401.6M)
○2023.5(초): 경남 거창 핫들
생태공원 작약꽃~정양늪~대
야성산
○2023.5(초): 고흥 애도 쑥섬
작약꽃,꽃양귀비 탐방
■후기: 오늘은 미답산인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위치한 작성
산과, 이미 다녀왔지만 블랙야
크 100+ 명산으로 지정된 '동
산' 인증 차 머나먼 길을 떠났
다. 새벽 5:10에 비엔날레 주차
장 도로변을 출발하여 벌곡 휴
게소에서 된장국에 조반을 먹
은 뒤, 4시간을 달려 09:30에 들머리인 금성면 성내리 주차
장에 도착했다. 간단한 몸풀기 체조를 마치고, 무암사 입구 까
지 좁은 시멘트 차도를 따라서 2.5KM나 되는 거리를 시나브
로 오름길을 따르다 보니, 그늘
지대는 많았지만 지루한 이동
을 해야했다. 마침내 50분여만
에 무암사와 작성산/남근석 갈
림길에 다다르자, 남근석까지 0.5KM를 다녀올지 무암사를 경유할지 갈등이 생겼으나, 주
력이 약한 나머지 일행보다 조
금이나마 앞서가야 나중에 뒤
쳐지지 않을 거 같기도 한데다, 남근석은 이미 다녀왔기에 과
감히 포기하기로 한채 나홀로 0.2KM 정도 떨어진 무암사를 갔다가 되돌아 왔다. 작성산 까
지는 매우 가파르게 2KM 정도
를 표고차 600여 M를 치고 올
라가야 해서, 체력 소모가 많아 선선한 날씨임에도 땀이 비 오
듯 쏟아졌다. 그러나 힘든 대신
작성산 정상에 오르며 좌우로 조망이 스펙타클하게 전개되
어 장관을 연출했는데 좌로는 마당재산과 주변 산군이, 우로
는 동산~중봉~성봉 능선과 멀
리는 주변 산군에 펼쳐진 기암
괴석 전시장은 가히 절경이자 비경이었다.
이윽고 작성산 7부 능선에 다
다르자 남근석을 다녀온 A코스 일행 4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힘차게 올라와 나를 추월하고 말았다. 오늘 A코스는 결국에 총 29명 중 여총무를 포함해 5
명인 셈이었고, B코스는 작성
산과 동산을 건너뛰고 바로 남
근석을 경유하여 중봉으로 오
르는 산행 코스였다. 마침내 작
성산 정상에 오르자 선착한 4
명이 계란후라이와 참외를 간
식으로 먹고 있었는데, 여총무
와 그 일행이 싸온 계란후라이
와 참외를 맛있게 얻어 먹었다. 산행은 계속되어 잠시 후 이정
표 상의 까치성산에 도착했으
나, 정상석은 작성산과 똑같은 명칭과 해발고가 표기되어 있
었는데, 해발고가 20여 M 더 낮은데도 작성산과 똑같이 표
기되어 있어 으아했다. 이후 새
목재 까지 등산로는 심하게 묵
어 있어 등로도 희미하고, 표고
차 300여 M 정도가 뚝 떨어져 가파른 구간이어서 미끄럽고 위험하기도 했는데, 갈팡질팡
하며 1.2KM 정도의 난 코스를 뚫고 내려가느라 악전고투 했
다.
설상가상으로 새목재에 도착
하자 동산 정상까지 1.1KM 정
도 거리를 또다시 표고차 350
여 M를 오르다 보니, 숨은 차 오르고 허벅지는 팍팍한데다 땀은 비오듯 쏟아져 죽을 지경
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중봉 갈
림길에 도착해 베낭을 내려놓
고, 약 0.4KM 떨어진 동산 정
상에서 인증을 마치고 되돌아
와 중봉쪽으로 200여 M를 나
아가자, 아까 작성산 정상에서 조우했던 무거운 카메라를 어
깨에 맨 A조원을 만났는데, 예
정에 없이 동산으로 이동중이
었다는 B코스 멤버들을 못봤
냐고 묻기에, 내 기억으로는 동
산 정상에서 식사 중이거나 막 도착한 사람들은 우리 멤버들
이 아닌 것 같아서 반신반의 하
며 산행을 이어갔다.
오늘 산행은 14.5KM 코스를 7
시간만에 주파해야 하는 고난
이도의 일정이었는데, 비교적 높은 해발고에 봉우리가 7개로 고도차도 심하고 암릉 산행이
라서, 내 저질 체력과 허접한 주력으로는 시간내에 하산하
기가 매우 벅찰 것으로 예상되
어, 좋은 산길을 만나면 죽을똥 살똥 뛰다시피 나아갔다.
중봉 전위봉에서 늦은 점심을 홀로 먹고 중봉까지는 무난한 코스였지만, 이후 성봉을 지나
자 갈림길에 산악회에서 좌측
은 학현리 쪽이고, 직진하면 교
리쪽인데 좌측에 바닥지를 깔
아놓아 혼동과 갈등이 생겼으
나, 일단 바닥지를 믿고 좌측으
로 200여 M를 내려가자 급경
사가 있어, 잘못 온줄 알고 발
길을 돌려 다시 올라와 교리 쪽
으로 우틀하여 100여M 진행하
자 바닥지가 또 있는 게 아닌가
? 아뿔사!
그러나, 이후 모래재 까지는 바
닥지가 없어서 이 코스가 맞는
지 반신반의하며 전진하다가,
급기야 성봉을 한참 지나서 산
행지를 다시금 자세히 들여다 보니, 성봉에서 학현리 쪽으로
좌틀해야 무쏘바위를 볼 수 있
었고 산행지대로 가는 코스였
는데, 결국 잘못오고 말았지만 이쪽 바닥지는 왜 깔아놓은 건
지 도무지 이해불가였다.
아무튼 건성건성인 평소의 내 버릇이 개고생을 자초한 셈이
었다.
결론적으로 그러다 보니 예전
에 봐서 상관없었지만 무쏘바
위는 못보고 말았고, 차라리 그
쪽으로 진행했으면 더 쉬운 코
스였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지
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을 뿐이
었다.
아무튼 어찌된 영문인진 몰라
도 우틀하여 교리쪽으로 나아
갔는데, 이후 구간은 까다롭고
아찔한 암릉지대로 도무지 속
도를 낼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40도 가까운 급
경사에 30여M의 위험하고도 공포스러운 대슬랩 지대를 만
나, 최대의 난관에 봉착하여 진
퇴양난이었다. 한편 발 디딜 곳
도 여의치 않은 밧줄을 타고 나
홀로 내려가야 해서 아찔한 나
머지 두려움에 겁이나서 다리
가 후들거렸는데, 아까 성봉에
서 학현리.무쏘바위 쪽으로 내
려가지 않은 게 후회막금이었
지만, 이제와서 되돌릴 수도 없
는 법이지 않은가! 정면돌파 밖
에는 묘수가 없었다.
드디어 슬금슬금 한발한발 전
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하강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
까스로 내려가 위기를 넘겼다.
또한, 아까 동산으로 간 거 같
다는 B코스 멤버들이 뒤에 있
다는 것을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면 오늘 하산 시간을 어겨 낭패를 볼뻔했다. 결국은 나중에 하산해 보니 B
코스 멤버들은 이미 하산해서 막걸리를 먹고있는 걸 생각하
면, 그들은 동산에 가지않았던 것인데 이를 믿었다면 망신당
할 뻔했다. 아울러 나도 배정된 하산 시각보다 30분을 단축해 산행을 마쳤지만 내가 꼴찌였
는데, 막걸리를 마시던 일행들
이 박수를 치며 무사 귀환을 환
영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나마 올 봄에 무등마루 산악
회를 따라다니며 25KM 이상 정맥길을 두번 산행한 이력이, 산행 중에 힘은 부쳐도 어느새 주력이 늘어났나 보다. 성봉 이
후 부터는 발을 디딜데가 마땅
치 않은 거의 40도에 가까운 급
경사인 30M 대슬랩을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등, 밧줄 구간
이 대여섯군데 있어서 위험한
데다, 온종일 나홀로 산행하다 보니 그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오늘 산행 중 최고의 조망처는 의외로 가장 낮은 마지막 봉우
리인 외솔봉이었는데, 청풍호
와 주변 산군 조망이 기가막히
게 좋았다. 아울러 오늘 코스
는 유난히 이정목 상의 거리 표
기가 엉망이어서 짜증이 나고 실망스러웠다. 날씨도 맑고 간
간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선선
해서 초여름 산행치고는 견딜
만 했지만, 난이도 높은 산이었
던 만큼 유난히 힘에 겨워 땀은 원없이 많이 흘린 날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산행을 마쳐 다행이었다.
오늘 산행중 최고의 난코스는
까치성산~새목재 구간의 희미
하게 묵어 미끄럽고 가파른 하
산길과, 성봉~모래고개 구간의
위험천만한 암릉과 대슬랩 지
대를 통과하는 것이어서 십년
감수한 셈이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블로그 글 수십편을 읽어
봤지만, 나처럼 성봉~모래고개 구간의 위험천만한 암릉과 대
슬랩 지대를 통과한 산객들은 하나도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
하다지만 미리 알았으면 위험
을 회피했을텐데 그 험한 길을
다녀온 것도 큰경험이 되었다.
이번 대슬랩 하산 코스는 완주
사달산이나 여타의 전국에 산
재한 수많은 대슬랩 코스보다, 단연코 가장 위험하고도 공포
스러운 아찔한 구간이었다. 어
찌나 쩔쩔매며 하강했는지 내
사진을 남길 정신이 없었다.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하산지
인 교리마을에 도착하자 막걸
리와 두부김치로 중간 뒷풀이
를 하고 있었는데, 맥주는 없냐
고 물어보니 없대서 놔두라고 했더니 준비해 온 맥주는 이미 다 마셨던 모양이었다. 그러더
니 여총무가 꼬불쳐 놓은 캔맥
주 한개를 가져다 주는 게 아닌
가. 잘 냉장되지 않아 청량감은 덜했지만, 해갈을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한편 알탕할 곳이 없어 땀을 닦을 수가 없어
서 다들 땀 냄새가 진동했지만, 바로 중간 뒷풀이 테이블을 치
우고 제천 시내로 나가 사우나
를 40여분 만에 마치라고 하더
니, 탕에서 나오자 마자 무슨 영문인진 몰라도 근처 식당에
서 매식해도 될텐데 50여분을 또 이동하여 충주 시내로 나가 식당에서 뒷풀이를 한다는 게 아닌가? 나중에 가서 보니 대
형 뷔페식의 마치 저급한 기사
식당 같은 한식당이었는데, 연
세드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버스 타고 나들이 나오셨는지 200여개의 대형 좌석을 가득 메우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메뉴는 제육볶음.된장찌개.고
등어조림이었는데, 전라도 음
식다운 게미는 없었지만 먹을
만 했다. 소맥과 소주를 나수 걸치니 피곤해서인지 취기도 적당히 오르고, 기분도 좋아져 오늘 산행도 결국 잘 마무리한 셈이었다.
특이한 점은 첨단산악회에 발
들여 놓은 뒤 200산을 등정한 날이라며, 상패를 수여하고 축
하케익에 촛불을 밝히는 행사
가 돋보였는데, 산행분담금이 솔찬히 비싼데도 단기간인 몇
년만에 이루었다니 대단한 충
성심이었다. 아무튼 귀광하여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하자 22:15분이 되어, 카카오와 UT 택시를 호출하자 콜이 잡히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22:00로 끊긴줄 알았던 광천동 터미널 발 53번 시내버스가 다행히 22:30에 막차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 제천은 편도 4시간이나 걸리
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산행을 마칠 때마
다 매번 아쉬움이 남는데, 어찌
하여 성봉을 지나 갈림길에서 바닥지를 왜 좌우로 깔아놓은 건지, 앞서 간 산행이사한테 전
화해서 물어봤으면 될 일을 하
산 시간이 늦을까봐 전전긍긍
만 했지 귀신한테 홀렸는지, 어
찌하여 그런 생각은 꿈에도 못
했을까 지금도 내 자신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아무튼 미련하면 수족이 고생한다더니 그말이 딱 맞은 하루였지만, 다음 산행 때도 또다시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에 자궁이 답답
할 따름이다.
■산 소개:
○작성산(鵲城山)은 충북 제천
시 금성면 성내리와 포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이웃한 동산
과 함께 중부권에서는 작성산
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이곳 사
람들은 이를 까치성산으로 부
르고 있다. 까치성산이 최근까
지 발간되는 모든 지표상에 작
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는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
면서 한자 표기인 까치 ‘작(鵲)’
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까
치성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
이 깃들어 있다. 옛날 우리나라
의 임금이 신하들을 데리고 이 산에 들어와 궁궐을 짓고 살았
는데 어느 날 아침 신하들에게 동쪽 바위봉을 가리키며 저 위
에 까치가 앉을 것이다. 그러면 무조건 활을 쏘아 까치를 죽이
라고 하였다. 어느 날 신하들이 바위봉에 앉은 까치를 쏘아 죽
이고 보니 그 까치가 바로 일본
의 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작성산의 정상에 서면 북쪽으
로는 마당재산 너머로 제천 시
내와 용두산이 함께 시야에 들
어오고, 동쪽으로는 단양군 적
성면 상원곡리와 하원곡리 분
지가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지
며, 가장 멀리로는 소백산 연봉
이 보인다. 남으로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루어진 동산의 전
경이 일품이다.
작성산 산자락에는 천 년 고찰 무암사(霧岩寺)를 비롯하여 소
부도 전설, 제천시 금성면 성내
리 봉명바위, 충청북도 클라이
머의 메카이기도 하며 북한산 인수봉의 축소봉이기도 한 배
바위 암벽 훈련장 등 자랑거리
가 많다. 흔히 금수산에 배바위
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작성산 소유이다.
결매령, 새목재, 소부도골 등을 지나 등산을 하면서 나타나는 목적지가 바로 동산과 작성산
이다. 이곳은 주로 산들이 악산
으로 되어 있고 무암사와 소부
도골 계곡이 깊고 좁아 깊은 산
속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동산(東山)은 충북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와 단양군 적성
면 하원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
로 동산은 충주댐 건설 이전 청
풍 동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에
서 붙인 이름이다.
동산은 옥천계와 조선계 지층 사이의 서창리층과 천등산층 사이 금수산 규암층의 규암과 석영편암을 기반암으로 한 산
으로 금수산 정상에서 북쪽으
로 이어지는 능선의 학고개와 새목재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동산에서 이어진 능선은 북쪽
으로 작성산, 마당재산, 구동산
을 형성하고 점점 낮아져 제천
시 남쪽 장평천에 다다른다. 무암사로 이어지는 찻길을 따
라 오르면 남쪽으로 펼쳐지는 능선에 칼바위·장군바위·낙타
바위가 솟아 있고, 무암사 초입
을 지나 오르면 어른 키 두배만
한 거대한 남근석에 이른다.
무암저수지 북단을 휘돌아 30
분 정도 오르면 길 한복판에 커
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이곳에
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북쪽으
로 암벽 훈련장으로 이용되는 배바위가 올려다 보인다. 정상
에 오르면 동쪽으로 단양군 매
포읍의 시멘트 공장들이 성냥
갑처럼 내려다 보이고 멀리 웅
장한 소백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청풍면 학현리 협곡 너머로 용바위봉
·신선봉·금수산이 일렁이는 파
도처럼 시야에 들어오고 금수
산 왼쪽 멀리 월악산이 보인다.
동산은 이웃한 금수산·작성산
과 함께 수도권에서는 치악산, 월악산 다음으로 잘 알려져 있
다. 수도권에서 당일 산행이 가
능할 만큼 교통이 편리하고 아
기자기한 바윗길과 기암괴석, 분재처럼 아름다운 소나무가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며 이
웃한 금수산처럼 코스가 길지 않고 그럴듯한 전설을 지닌 무
암사가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아온다.
○작은 동산(東山)은 충북 제
천시 청풍면 학현리, 교리에 걸
쳐 있는 산으로 동산(896.2m)
에 비하여 규모가 작고 높이가 낮으며 동산 가까이 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제천시와 단양
군 경계를 이루는 금수산 주능
선이 동산을 거쳐 서쪽으로 금
성면과 청풍면의 경계를 이루
며 이어지다 825m 봉우리에
서 남쪽으로 가지를 치고, 이 가지 친 능선이 잠시 낮아지며 모래재를 이룬 뒤 남쪽으로 이
어져 작은 동산을 형성한다. 작은 동산에서 서쪽으로 이어
진 능선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
다가 교리와 청풍대교에 이르
러 청풍호로 잦아든다. 정상에 이르면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위쪽으로 저승벽·촛대바위·궁
뎅이바위가 선명하게 드러난 미인봉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미인봉 위쪽으로는 신선봉과 망덕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남동쪽 청풍호반 위쪽으
로 월악산 정상도 시야에 들어
온다.
○외솔봉(482M)은 교리마을
에서 작은동산으로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산으로, 청풍호가 가장 잘 조망되는 산이다.
○무암사(霧巖寺)는 충북 제천
시 금성면 금수산(錦繡山) 인
근 작성산 밑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수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
나 조선 초기 이전부터 있었으
며, 지붕 위의 망와(望瓦)를 통
하여 1740년(영조 16)에 중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의 서남쪽 1㎞ 지점에는 늙
은 중을 뜻하는 노장암(老丈巖
)이 있는데, 풍수설에 따르면 절 입구에 중 모양의 바위가 있
으면 그 절의 사맥(寺脈)이 끊
기지 않을 뿐 아니라 식량이 넉
넉하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바위는 안개가 끼었을 때만 나
타났다고 하여 이 절의 이름을 바위와 안개에 관련시켜 무암
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칠
성각·산신각·요사채·객실·수호실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안에는 높이 1m의 목조아미타불좌상
이 목조연화대(木造蓮花臺) 위
에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극락전에는 1930년에 금어(金魚)인 삼천(三千)이 그린 후불
탱화(後佛幀畫)와 신중탱화
(神衆幀畫)가 있다. 문화재로는 부도(浮屠) 12기, 불기류(佛器類), 촉대와 위패 등이 있다.
4기의 부도 중 수월당(水月堂) 부도는 1959년에 발견된 조선
시대의 것이며, 우부도(牛浮屠
)는 이 절의 창건 당시 재목과 기와 등을 운반하였던 소가 죽
은 뒤 화장하였더니 오색 영롱
한 사리가 나와서 조성하였다
는 190㎝의 사리탑으로 그 주
변을 소부도골이라 부른다.
절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
기는 100년 이상 된 유기제품
이며, 촉대와 위패는 정교한 솜
씨로 조각하여 만든 특색 있는 유품이다. 사찰의 유물들로 보
아 상당한 역사를 지녔을 것으
로 생각되나 사적기가 없어 자
세한 것을 알 수 없다.
첫댓글 고생 무지 하셨네요 그곳은 고도가 장난이 아닌것 같은데요 그것도 혼자 외롭게 하셨다니 위로해 주고 싶네요
네. 홀로 산행한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