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란
동경 128°28′, 북위 34°46′에 위치하며, 한산면의 주도이다.
한산대첩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추봉도(秋蜂島)에서 북서쪽으로 0.5㎞ 지점, 통영에서 동남쪽으로 약 2.4㎞ 지점에 있다.
면적은 14.72㎢이고, 해안선길이는 30.0㎞이다.
한산도는
통영시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며, 한산면의 29개 유·무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동쪽은 거제도, 서쪽은 미륵도, 북쪽은 고성반도, 남쪽은 용초도(龍草도)·추봉도·비진도(比珍島) 등에 싸여 있다.
추봉도와는 연도교인 추봉교를 통해 연결된다.
명칭 유래
섬에 큰 산이 있다는 데에서 한뫼(큰뫼)라고 부르던 것이 한산으로 변하였다고 전해진다.
또는
통영 앞바다에 한가하게 떠 있는 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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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한산도에 낙향한 전창길님과 함께
망산 산행
어렵게 성사
11명이었던 회원님이 7명으로
안내등반 특성상 인원구성이 안되 부득이 7명만
같이 못한 회원님에게는 송구 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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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회원님
고제호님. 이승윤님
김명희님. 부행순님. 김은숙님. 유혜숙님. 정선화님.
통영여객터미날
승선 후
마을버스(운임1,000원)로 진두로 그곳에 전대장이........
전형이 마중
망산 정상까지 2.8키로
여유로운 산행
휴식 중
봉암해변 몽돌 해수욕장
맛있게들 먹고
소맥에
전형도 한잔 내는 두잔
술좋아 하는 은숙 혜숙 선화 명희
계탔다.
전형집 방문
밤새 내려와 통영시장에서 시레기국으로 아침 요기 후
7시 배로 제승당으로
제승당에서 마을버스로 진두로 이동
그리운 친구
전형을 보고
함께
망산 산행을 하면서
고장난 내 청력에 초집중 들으려 애쓰고
옛가족을 만나 쉬임없이 퍼지는
웃음에
훌쩍 지나버린 하루 일정
오후 2시30분 통영가는 배에 승선하며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아쉬운 작별
정말 행복 한 하루 여정
한산도의 전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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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가 본 제승당 자료
한산도(閑山島)
한산도에서 배를 내리면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제승당이 있다.
한산문 현판을 건 솟을대문 형태의 삼문이 입구...
한산도(閑山島) 이충무공(李忠武公) 유적(遺蹟) (사적 제113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발발 후
이순신은 한산대첩을 통해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운주당(運籌堂)을 지어
1593~1597년까지 4년간 삼도수군의 본영(本營)으로 삼았던 유적지이다.
운주당(運籌堂)은
이충무공이 부임한 지역마다 세운 작전지휘본무이자 집무실이며
1597년 폐진되었다가 142년후인 1739년 통제사 조경이 건물을 다시 세우고
제승당(制勝堂)이라 명명하였다.
<이곳은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고 그래서 지역명이 통영(統營)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오목하게 숨겨진 지형이 천연적 방어지형으로 보이는바
과연
해군작전사령부 격인 통제영을 설치할 만 하다고 생각된다.>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전라좌수영 임시 행영(行營) 설치
1593년 전라좌수영 본영(本營)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운주당(運籌堂) 설치
1597년 칠천량해전 패배로 운주당 등 모든 시설 소실, 폐진
1739년 107대 통제사 조경(趙儆), 운주당을 재건하고 제승당으로 명명
1760, 1932년 제승당 중건
1959년 사적 제113호 지정
1975년 대대적 정화사업, 확장, 정비
<대첩문을 지나...>
<충무문 삼문으로 계단을 올라 들어서면...>
제승당(制勝堂)
<정면에 제승당(制勝堂)이 보이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6년 정화작업때 다시 세운 건물이다.>
<통영 제승당에 걸려있는 현판은 제승당을 다시 지은 107대 통제사 조경의 친필이며
제승당 내부에 있는 현판은 140대 통제사 김영수의 친필이다.>
이곳 제승당(당시는 운주당)은
선조 26년 7월 15일부터 한양으로 압송되어가던 1597년 2월 26일까지 3년 8개월동안
이충무공이 집무했던 곳이다.
수루(戍樓)
삼문 충무문을 들어서 정면에 제승당이 있고
오른쪽으로 바다가 바라보이는 자리에 큼직한 누각 수루(戍樓)가 있다.
(그동안 막연히 水樓라고 생각했는데 변경, 국경을 지킨다는 뜻의 수자리 수 戍樓이다.)
원래 이 건물은 적의 동정을 관측하는 망루였으며 1976년 정화작업때 새로 지었다가 2014년에 목제건물로 다시 지었다.
영조 때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실린 이순신 장군의 〈진중시〉의 배경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공덕비(功德碑) 6기
<제승당 맞은편에는 2개의 비각에 6개의 비석을 모아놓았는데
모두 이충무공의 후손들로 후대 삼도수군통제사나 부사를 역임한 이들의 공덕비이다.>
제승당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무사(忠武祠)가 있다.
매년 봄,
가을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한산대첩 기념일인 8월 14일에는
해군작전사령관 등이 참배한다.
제승당 유허비(制勝堂 遺墟碑)
<충무사 앞 왼쪽에는 3개의 비석이 서 있는데
왼쪽 비석은 1739년 통제사 조경이 운주당(제승당)을 다시 지으며 세운 것이고,
오른쪽 비석은 198대 통제사이자 이충무공의 후손인 이규석이 그 전에 있던 비석을 묻은곳이라고 세운 것이다.
가운데는 오른쪽 비석의 뒷면을 한글로 풀어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