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누가복음 23:26-31)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자유일 것입니다.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왕에게 공주가 있습니다. 두바이의 공주 라티파는 40개의 방과 수영장·사우나가 딸린 대저택에서 살았습니다. 100여 명의 하인이 있었고, 공주 곁에선 항상 필리핀 여성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공주는 매일 최고급 손톱 손질을 받으며, 승마와 수영 등 공주가 원하는 모든 수업에 전속 강사가 붙었습니다.
그러던 공주가 지난해 3월 요트를 타고 두바이를 탈출했습니다. 공주는 인도 해안 50㎞ 앞에서 인도 해양경비대에 의해 체포돼 두바이로 송환되었습니다. 라티파 공주는 이미 16세 때도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3년 넘게 독방에 갇힌 채 수시로 폭행을 당했습니다. 라티파는 14세 때일 때 언니 샴사 공주가 영국에서 탈출하려다 잡혀와서 폐인이 되어 사는 것을 보고 탈출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라티파는 2차 탈출 직전 인터넷에 영상을 올렸습니다. 라티파 공주는 영상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기분일까?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햄버거를 구우면서 살아도 좋겠다” 햄버거집의 주방일이 공주보다 낫겠다고 했습니다. 아랍 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속박과 폭력은 왕가 등 특권층 여성들이 더 심합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에게 자유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볼테르 라는 프랑스의 사상가는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 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고 했습니다. 자유에 대한 유명한 말입니다.
오늘은 삼일절 백주년 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삼일운동은 잃어버린 주권과 자유를 위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자유를 위한 행진을 했던 날입니다. 그 시위로 우리는 엄청난 희생을 치뤘습니다. 맨손으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일본경찰과 군대는 총칼로 진압을 했습니다. 총칼에 죽은 사람이 무려 7천5백명이나 되었습니다. 유관순의 부모는 아우내 장터에서 죽었습니다. 열여덟살 유관순은 감옥에 갇혀 말할 수 없는 고문과 폭행으로 죽었습니다. 16000여명이 부상을 당했고체포 구금된 사람이 4만6천여명, 만세 불렀다고 고문당하고 폭행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피를 흘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길을 가시는데, 예수님을 보고 울며 따라가는 여자들을 향해 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어라...’ 삼일절 백주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를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삼일절 백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누가19:41-44)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연도에서 호산나 호산나하며 종려가지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이제 곧 헤롯이 쫓겨나고 새 왕국이 들어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당시 권력층들이 ‘보라 우리 하는 일이 쓸데없다.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고 했습니다.(요12:19) 군중들은 예수가 헤롯왕과 로마제국을 쳐부수고 메시야 왕국,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오셨을 때 성을 보시고 우시며 ‘(심판)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
(누가19:41-44)했습니다. 오히려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아시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멸망했고 사람들은 온 세상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 얼마나 참혹한 일이 일어날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누가복음 21:20-21에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성을 빠져나갈 것이며...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있겠음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던 것입니다.
둘째, 그러면 왜 예루살렘이 이렇게 멸망하는 것일까요? (마태 23:37)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 23:37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날개 아래 품으려 한 적이 몇 번이더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병아리가 어미닭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어느샌가 독수리와 솔개의 먹이가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기를 거부했습니다. 은혜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없이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병아리가 암탉의 날개 아래 있으면 안전합니다.
마태복음 22:33-41에 한 비유가 나옵니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산울로 두르고 착즙기를 설치하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으로 갔습니다. 수확 때가 되어 주인이 세를 받으러 종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이 종들을 능멸하고 죽였습니다. 주인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후에는 아들을 보냈더니 이는 상속자니 죽여버리자 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을 돌로 치고 죽였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당시 유대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종을 능욕하고 죽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요한이 증거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입니까? 주인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했습니다.(누가복음 23:26-3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빛나고 멋지고 매력적이던 예수님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
예수님을 따라가던 여자들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울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따르던 여인들,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베로니카...
여러 여인들을 잠시 바라보시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어라 하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나라가 곧 멸망 할 것을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유다 왕국의 나사렛 사람입니다. 당신의 조국이 곧 이방인의 말발굽 아래 짓밟힐 것을 미리 보시고 너희 자녀를 위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일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릅니다. 예수님은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보고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그 자녀가 피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자유롭고 번영을 이룬 나라입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에 들어섰습니다. 이 아름답고 자유롭고 풍요한 나라를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손자 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 흘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야 자유롭고 아름다운 이 나라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 앞날이 행복해 집니다.
믿지 않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서기 354년에 지금의 알제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영특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 부모가 아이를 당시 유명한 수사학교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는 나이 열일곱 살에 수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뜻과는 달리 아들은 신앙의 길에서 떠났습니다. 마니교라는 이단 종교에 들어갔고 하고 점성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18살 때는 어떤 열일곱 소녀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
아들을 위해 그 엄마가 기도 많이 했습니다. 눈물뿌리며 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밀라노 교회의 목사님에게 아들 문제를 상담을 했습니다.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아들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사님이 ‘걱정하지 마세요.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들은 믿음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평생을 하나님께 바치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 아들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이고 그 어머니는 모니카, 산타 모니카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기도입니다. 눈물 뿌려 기도한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 기도하라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