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체류형 쉼터 농막
[이 겨울에 야채들이~]
작년 늦가을에 뿌린 씨앗들이 상추와 배추로 살아났다. 너무 더워서 여름이 한참 지나고 심었던 것들이다. 한 해를 넘기고도 지금까지 파릇파릇 살아있다. 추울까 봐서 비닐하우스 문을 열심히 닫아 주었다. 출입문 아래에 빈 화분들을 세워서 바람이 덜 들어오게 해 주느라 드나드는 길이 불편했지만, 상추와 배추들이 얼지 않도록 애썼다.
여름처럼 잘 자라지 않아서 자주 뜯지는 못하지만 정말 귀한 맛이다. 설날에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가져갔더니, 도시에 사는 올케들이 무척 반겨해서 내가 많이 기뻤다. 부모님께도 지인분께도 객지에 살고 있는 큰아들의 택배상자에도 넣어 보내면, 늘 환영받던 채소들이었다. 이 겨울에 싱싱한 야채들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자연이 주는 행복을 먹는 기분이다.
이번 주에 10년 만의 강추위가 온다고 해서 미리 물을 듬뿍 주었다. 이번 위기도 잘 넘기고 살아나 주기를 기원한다. 겨울이 지나가면 더디 자라던 모습이 바뀌어 쑥쑥 큰다는 것을 작년에도 경험했다. 겨울만 잘 넘기기를 바랐던 상추와 배추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텃밭에 들어서면 초록색 야채들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쁨이 매우 크다.
[강추위에~~]
어제부터 내린 눈이 얼어있는 곳이 있어서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차가 많이 다니는 큰 도로는 눈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농원 쪽은 눈이 적게 온 편이다. 바람은 너무 차갑다. 바람이 부는 덕분에 비닐하우스 위가 깨끗하다.
농원 옆 강은 제대로 겨울 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갈대숲에 있던 고라니가 차소리에 후다닥 강 아래쪽으로 달려간다. 가끔 보이던 큰 고라니가 아니라 새끼 고라니였다. 노란빛으로 참 예쁘게 생겼다. 먹이를 주고 싶은데 멀리 달아나 버린다. 고라니는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강에 늘 보이던 왜가리들은 어디서 쉬고 있는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고운 자태를 또 보여주면 좋겠다.
다음날은 눈이 내려 길을 덮는 날씨다. 농원의 나무들은 비닐하우스 위에 쌓인 눈이 보온 역할을 해 주었다. 걱정하며 하우스 문을 열었는데, 온기가 느껴졌다. 얼마나 추울까 걱정으로 내가 다 떨고 있었는데, 농원은 생각보다 무사했다. 눈이 나쁠 것이라고 예단했었는데, 보호의 역할을 해주었다니, 나의 부질없는 편견이 걱정을 만들었구나라는 자책이 들었다.
둘째를 집에 혼자 두고 농원에서 일을 하면서 행여나 둘째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해서 사고가 나면 어쩌나를 걱정하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시키지도 않았는데 빨래를 해서 행거와 빨랫줄에 널어놓은 모습을 보았을 때, 안심했던 마음과 같은 이치였다. 둘째도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에서도 조금씩 독립을 시켜야 할 것 같다.
자연들이 우리처럼 나무들을 보호해서 주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농원 옆의 산과 강도 예쁘고, 적당하게 불어주는 바람도 고맙기 그지없다. 비닐하우스 위에서 스스슥 스스슥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눈덩이들도 귀여운 아이들을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다.
[반짝이는 집]
주말 체류형 쉼터 농막을 만들고 있다. 사흘이나 걸려서 6mm 두께의 열반사 필름을 천장과 옆부분에 붙였다. 무언가를 뜯는 것에 특화된 둘째가 필름을 잡아주었고, 비닐을 제거하는 일을 맡았다.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람은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이 둘째의 얼굴에서 보였다. 컨테이너의 면들이 울퉁불퉁해 힘껏 눌러서 붙이고, 칼집을 넣은 곳까지 땜질을 해서 작업을 마치고 나니, 둘째가 외친다.
"완성했다. 반짝이 집이다~~."
다음 작업으로 바닥을 해체해서 벽돌을 받쳐서 탄탄하게 만들었다. 아래쪽의 받침 철골에도 스프레이를 뿌렸다. 뜯어낸 바닥의 합판에도 스프레이를 뿌려서 부식을 최대한 늦추는 조치를 했다. 바닥을 다시 조립한 후에, 바닥에도 반사필름을 붙이고, 다시 합판을 한 겹 더 쌓아서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목각구조 설치하기, 스티로폼 끼우기, 합판 붙이기까지 마쳐야 처음에 가져왔던 부분까지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제야 본격적인 쉼터 제작이 가능해진다.
기초작업을 이렇게 꼼꼼하게 다시 해야 해서 남편이 그렇게도 이 궁리 저 궁리를 했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할 일들이 많은데 후딱후딱 안 하고 망설이고만 있어서 많이 답답했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에 고치기 더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하고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거쳤던 것이다. 이제 고지가 코앞이다. 다음 공정들이 줄을 서 있지만, 날이 갈수록 한 가지 한 가지 해결이 된다는 것이 또 신기하다.
블루베리 가지치기와 이파리 따주기, 복숭아 가지치기가 급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쉼터의 기본작업까지라도 서둘러 마쳐야 한다. 날씨는 춥고, 거리는 멀고, 몸은 아프고 여러 가지 핑계로 일의 진척이 생각보다 늦다. 그래도 이만큼 완성해 왔다. 반짝이는 집을 만들기 위해 또 힘을 내 본다.
첫댓글 저 여린잎 채소들이 주인장 마음을 닮아가는 모양입니다
너무 예쁜 동심으로 자라고 있네요
행복이 별건가요 하는 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하우스 속의 자연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지금은 매일 봐도 자라나는게 보이지 않습니다. 수도관이 얼어서 물도 못주고 있습니다. 날씨가 풀리면 조금씩 자랄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네요. 농원에 마련된 하우스 세상은 우주처럼 넓고 대단합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이야기가 창출되고 있으니까요.
자연의 힘이 사람을 얼마나 감동 시키는지도, 아니 민금순 시인님의 감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지도,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있구나 싶기도 하네요. 살아가는 자체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배역을 주어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는 걸 실감도 하고요. 쉼터를 만들어가는 일을 보면서 대장의 지휘 아래 전 가족이 나름의 창의력으로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참 따뜻하고 보기 좋아요. '반짝이는 집'이 완성되었을 때의 기분도 실감나게 느껴지고요. 행복이 함께 하면 힘들더라도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거니까요. 자연과 가족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마워요.
영차! 영차! 힘 내세요.
감사합니다. 노동은 매일 저녁 신음소리로 귀결되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중입니다. 쉼터 만드는 일은 더디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놀이같았습니다. 제가 그리기는 재주가 영 없었는데, 만들기랑 꾸미기는 재미있었거든요. 하나 하나 공정이 완성되어갈 때, 정말 보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쉼터 작업을 잠깐 쉬고 있습니다. 블루베리 가지치기와 이파리 따주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0일부터는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시작해서 2월말까지는 마쳐야 하거든요. 일은 많은데 날짜는 빨리도 갑니다. 늘 애정담긴 시선과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께서도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