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단 영산법화사 LA.도량
미주에 들어와 있는 한국불교의 종단을 살펴보면 조계종단 사찰이 가장 많고 그 외에 태고종, 보문종, 일승종, 원효종, 관음종, 진각종, 삼론종과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불교교단 영산법화사와 법화홍통원이 있다.
불교교단 영산법화사는 조계종, 태고종 등과는 다음과 같은 것이 다르다.
첫째 소의 경전이 ‘나무묘법연화경’이고 법당에 모신 부처님도 본존불로서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을 모신다. 그리고 산신각,칠성각 같은 것은 일체 없다.
둘째는 개창조사 이법화 스님이 기도 끝에 기도의 응답으로 만다라를 시현하셔서 실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신불로써 본존만다라이다. 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종단이 삼존불 뒤에 후불탱화를 모시는데 영산법화사는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에 만다라를 모신다. 신도회장 임병호씨는 "부처님께서 <자등명 법등명> 이라 말씀하신대로 영산법화사는 법신불인 만다라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라고 보충 설명을 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종단에서 볼 수 없는 것은 북을 치는 것이다. 물론 북은 현재 대부분의 사찰에 대형북이 있고 행사때는 이 북을 치지만 보통때는 치지 않는다. 그러나 영산법화사에서는 예불할 때 북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불교교단 영산법화사 LA도량은 영산법화사 개창조자이신 이 법화스님이 생시에 미국에 도량건립을 염원하였기 에 법화스님의 제자중 한 분인 엄무진행보살님이 7년 미국에 오면서 그 싹이 트기 시작했다. 보살님은 불교교단 영산법화사와 뗄라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법화스님이 말법시대에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은 법화경 밖에 없다고 생각하시고 법화경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을 때 5명의 제자가 이법화스님의 휘하에 모였다. 이 다섯 제자를 5佛 형제라 하는데 이 5佛 형제중의 한 분이 엄무진행보살님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보살님은 항상 언제 어디서건 이 법화스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이의 실천을 위해 애써왔다. 그래서 미국에 오면서 부터 법화스님이 미국에 도량건립을 희망했다는 것을 생각하고 엄기동. 정보리월, 안관음행보살 등과 함께 도량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처음 현재의 사찰을 구입했을 때는 주위 환경이 너무나 열약했다. 집 주위는 가시 덩굴로 둘러 쌓여 있어서 마치 숲 같았다. 그래서 보살님은 여자의 몸으로 손수 전지 가위를 들고 가시에 찔려가며 덩쿨을 자르고 환경을 정비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하였다.
이렇게 준비를 하여 지금부터 약 10여 년 전인 1981년 10월 18일에 현재의 법당에서 법주 행산스님, 묘현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개원식을 가졌다. 개원 후 묘현스님이 약 2년 동안 주석하면서 초기 사찰의 틀을 잡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고 그 후에는 자현스님이 1984~ 1986년 동안 계셨다.
그러나 그 후에는 한국의 영산법화사 자체에 관리할 신도와 사찰이 많아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스님들의 수가 부족하여 LA 도량에는 주지스님이 없이 엄무진행보살님이 중심이 되어 임병호 신도회장을 비롯한 신도회 임원들이 단합된 힘으로 사찰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처음에 영산법화사에 귀의할 때 많은 관찰과 공부를 했다는 임회장은 "우리나라 불교인들이 알음알이만 있고 신심이 없는데 법화경 공부하면 신심이 있고 공덕이 꼭 있다"고 강조를 한다. 법화경 수지 독송하면 공덕이 분명이 있으니까 꼭 법화경 수지 독송을 하라고 말한다.
영산법화사 LA도량 신도들은 한국에서 부터 법화경을 신앙하던 분들이 많은데, 법화경을 공부하고 싶으니 법화경 계통의 절을 소개해 달라는 분들을 필자도 가끔 만난다. 현재 신도 세대수는 100세대쯤 되고 보통 법회때는 20~ 30명쯤 법회에 참석한다. 스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 주로 절을 지키고 있고, 법회는 임신도회장이 이끌고 있다. 서울에서 월간으로 발행하는 종단 기관지 <법 화>를 신도들 대상으로 보급하여 교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활용하고 있 다. 30~ 40대 신도는 10명쯤 되고 대부분 신도들이 나이가 든 분이기 때문에 법화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젊은 신도들을 확보하기 위해 “법화경 산림법회"를 계획하고 있다. 신행단체에서 법화경 산림법회를 하면 적극 후원할 생각이다.
불교교단 영산법화사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남묘호랑계교( 창가학회 )가 아니며 관계가 없다. 이 점을 밝히고 창가학회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하여 법화스님은 "창가학회를 절복(折伏)한다 "라는 저서를 내기도 하였다. 창가학회는 미주에서는 “일연정종"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광고를 내며 활동하고 있는데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말세에 더 이상 효험이 없으므로 일본의 "일연"스님을 신앙한다는게 창가학회의 주장이다. 이 창가학회의 일본승려들이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을 때 이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이점을 모르고 창가학회와 똑같거나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여 이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임회장은 말했다.*** 창가학회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일본 정부로 부터 탄압을 받았다. – 편집자 주
주지스님이 계시지 않아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이 묘광화, 이 묘법화, 김마하행, 서해담, 구순덕화, 유대명심 보살등이 한결같이 변함없이 L.A 도량의 발전을 위해 물심 양면으로 큰 공헌을 했다. 개원 후 10년이 되도록 특별한 행사와 활동이 없었으므로 올해에는 할 수 있으면 10주년 행사 를 할 예정이다. 또 사찰 주위에 적당한 장소가 나오면 이를 구입하여 양로원 같은 사회복지사업 을 할 예정이다.
미국사찰이 대개 다 그렇듯이 스님이 없는 상태에서 사찰을 운영할 때 신도확보, 신행지도, 불사 등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스님없이 사찰을 시작하여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초기에는 스님이 없이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스님이 주지로 취임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산법화사 L.A도량은 이와 반대로 처음 시작할 때는 스님이 계셨지만 후에는 안계셨기 때문에 사찰 운영에 더욱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잘 운영해나왔다. 이 점에서 영산법화사 LA 도량은 미주불교계의 한 모델을 제시 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 < 법화경 >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L.A 도량이 빠른 시일내에 청년회, 어린이 학교등을 운영하여 스님을 모실수 없는 지역의 불자들에게 사찰을 운영하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 바란다.
199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