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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40519 주일오전예배/김동건 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오늘부터 시작되는 응답 |
성경 | 여호수아 3:3-7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여호수아 3:3-7)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녹취자료 |
왜 기도 응답이 안된다고 착각할까요? 기도 응답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현장과 개인에게 반드시 영적으로 응답을 하십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현장에 응답이 안 온다고 착각할까요? 나의 시간표, 내가 기대하는 날짜에 안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진행하고 계시는데 내가 볼 때는 기도 응답이 없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사단이 속여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응답, 은혜의 응답, 믿음의 응답, 영원의 응답이 오늘 본문 7절처럼 ‘오늘부터 시작하여’, 지금부터 시작되는 응답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음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자, 믿음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이 일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나가면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응답 자체도 좋지만 그 응답을 통해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 때 굉장한 영적 힘이 생겨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사실이 막연할 때가 있어요. 진짜 응답을 받기 위한 기도 제목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확신과 증거가 나에게 임한다? 얼마나 영적 힘을 누리고 받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이 사실이 나에게 체험되어지는 겁니다.
영적 힘이 있어야 영적 싸움에 승리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육신적으로 건강해도 영적 힘이 없다면 현장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야 합니다. 애쓰고, 힘써야 해요.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영적인 힘을 얻는다면 내 현장에 어마어마한 영적 응답이 오게 합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 싸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 싸움을 하는가? 아니면 아는데도 그 싸움을 안하는가? 이 차이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밀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어? 왜 안되지? 나는 예수 믿는데 왜 안되지?’ 이유는 영적 싸움에 더딘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달라져요. 여러분의 업의 현장, 우리 렘넌트들은 학교 현장이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 가지 산업과 직장을 통해 한 주간동안 일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응답이 없다고 착각할까? 그 현장은 여러분의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 현장은 여러분의 기도로 돌아간다니까요. 내가 은혜받고 확신가지고 현장에 갔더니 누가 기다립니까? 하나님도 역사하시지만, 사단도 역사한단 말입니다. 하나님께 계속 응답받으면 그 응답가지고 영적 싸움을 해야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가 처한 현장과 산업에 여러 상황이 왔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현장에 흑암이 무너지게 하옵소서.’ 그런데 사단은 이 기도를 못하도록 낙심하고 힘들게 만들고, 말씀 제목 조차 생각 안나게 하고 ‘내가 구원을 받았나?’ 불신앙보다 더 무서운 것들을 심어주는 거예요.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생각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응답이 되어져야 해요.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요단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로 앞에 있었어요. 요단 같은 문제가 있어도 여러분의 현장을 통해 가나안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그다지 좋은 땅이 아니었어요. 육신적으로 볼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장차 그리스도의 언약이 성취되고 선포될 땅,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나안 땅이 성경에 나왔던 땅이 아니라 현재 나의 현장을 말하는 겁니다. 내 가문과 내 가정, 내가 처한 모든 현장이 모두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 가려고 하는데 요단과 같은 문제가 내 안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 낙심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입니다. 우리는 원망, 불평합니다. 이 문제가 왜 나한테 왔냐? 잘 나가는 이런 응답 받고 있는데 왜 이런 상황이 나한테 왔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그렇다 내가 그동안 영적싸움을 하지 못했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찾는다고 하지만 내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찾지 못했구나.. 오늘부터 시작하시면 돼요. 왜냐? 오늘부터 시작되는 응답이니까요. 그래서 흑암을 꺾어야만 사람과 환경과 경제가 다 회복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여러분들의 한 주간의 응답이 내게 가나안의 응답으로 오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응답 자체로 기쁜 게 아니라 그 응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 되어지는 응답으로 드려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응답으로 드려지는 겁니다. 우리가 응답을 내가 받았다, 기쁘다 그거 보다 그 응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되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응답을 받는 거예요.
오늘 4절에 보니까요.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 해봤음이니라 하니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겁니다. 한 번도 가지 못했어요. 믿음 있는 자는 미래에 되어질 일을 내다보고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 미래의 응답이 내게 미리미리 응답이 와야 합니다. 지금 문제가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서 기도해서 응답 받는 것도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계속적인 문제와 어려움은 미래에서도 옵니다. 그래서 앞서 미래에 응답을 미리 받아버리는 거예요. 그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게 가나안의 정복이에요. 많은 말을 드릴 필요도 없고요, 이유도 없습니다. 간단하게 중요한 말씀만 딱 붙잡으시면 돼요.
2. 믿음 회복하려면 어떻게?
그러면 어떻게 믿음을 회복하게 됩니까? 또 그게 중요하거든요. 어떻게 믿음을 회복합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돼요. 누가 뭐라 그래도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됩니다. 어떤 이 체험은 종교의 체험, 우상의 체험 그걸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날마다 복음을 체험해야 되는 거예요. 육신적인 모든 회복의 응답도요 하나님의 역사가 내게 보여지고 또 임하고, 체험 될 때 뭐가 옵니까? 믿음이 딱 회복되어져요. 아.. 이 믿음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구나.. 믿음이면 되는구나.. 믿음이 다구나.. 내가 불신앙 하고 어려웠던. 말씀을 놓칠까 말까 하는 경계선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체험케 하시는 것이에요. 믿음에 은혜를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요. 말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에요. 훈련 속으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예배 속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에요. 이것이 잔소리로 들리면 내 영혼이 이제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힘들어지는 겁니다. 이게 여러분들이 잔소리가 될지언정, 이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복음으로 지나치지 않는 말입니다. 예배 속에 있고, 강단 속에 있고, 훈련 속에 있고, 말씀 속에 있고.. 언제까지 제가 구역예배 때나 그럴 때 뵐 때, 우리 권사님 훈련받으세요, 예배의 자리에 있으세요.. 제가 언제까지 합니까?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모여야 되는 것이에요. 아무리 제가 이야기 한 들,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믿음이 체험되지 않으면 꽹과리 소리에 불가한 것입니다. 허공에 그냥 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에요. 아무 소리가 안 되는 것이에요. 어떻게 보면은 제가 권면할 때, 그것이 시험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은혜가 안되는데, 은혜를 못 받는데, 내가 예배의 자리에 없는데.. 그래서요, 말씀과 예배에 갭이 있으면 안됩니다. 말씀과 예배에 골이 있으면 안돼요.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 집중하고 귀 기울이고 이것이 중요한 것이에요. 왜냐? 믿음은 어디에서 납니까? 들음에서 난다고 그랬어요.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뭘 들어야 돼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내 영이 사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의 응답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듣는 것이에요. 안 듣는 데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목사라도요 복음 안들으면 불신앙 생겨요. 계속 들어야 됩니다. 계속 들어야 돼요. 오늘 듣는데, 신비주의, 박애주의, 어떤 종교적인 메시지, 축복 받아라, 잘 살아라, 여러분들이 모든 돈에 부자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뭘 듣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오늘도 내가 그리스도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기도하면서 들어야 됩니다. 그냥 들으면 잠 오고 따분하고, 졸립고, 언제 끊나나 시계 보고 이렇다니까요. 기도하면서 듣는 거에요 말씀을. ”하나님 내 영혼 속의 말씀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응답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응답이 내것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면서 들으셔야 돼요.
그래서 새로운 체험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이거는 또 다른 어떤 체험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복음이 각인되는 응답. 새로운 체험이라는 것은요.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고 믿음으로 바꾸어지는 거예요. 그게 새로운 체험입니다. 40년 전에 홍해를 가는 그 체험 말고, 오늘 지금 시작되는 요단의 응답의 체험, 그것을 하라는 겁니다. 믿음 체험하라는 거예요.
사실 그 가나안 땅은요 한 10일 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굳이 건너서 가나안 땅을 갈 수도 있지만 다른 길이 또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왜 굳이 다른 길이 있는데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셨을까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40년 전에 홍해를 갈랐던 그 응답과 체험 말고, 지금 요단을 가르는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시작되는 응답, 그것을 붙잡으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믿음을 체험하라는 겁니다. 예전의 믿음이 아니라, 예전의 믿음만 갖고 있으면 우리가 “그래 하나님이 아셨지 너무 감사했지. 하나님 우리를 지켜주셨지” 끝이에요. 근데 그 응답과 체험이 계속 지금 현재로 오면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응답을 받으면 내가 믿음이 체험되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 아니구나!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이 체험이 내게 임하게 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예배드리는 게 너무 기쁩니다. 내가 살아있는 자체가 너무 기뻐요. 내가 은혜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게 너무 기쁜 거예요. 그러면 예배의 자리에, 말씀의 자리에, 또 훈련의 자리에 오라고 얘기 안 해도 은혜가 되고 기쁜데 어떻게 안 오겠습니까? 그게 믿음 체험하는 거예요.
왜 요단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믿음 체험하라고, 왜 요단의 문제가 있습니까? 요단의 문제를 통해서 여러분들 하나님을 체험하라고, 믿음을 체험하라고 주시는 거예요. 불신앙하지 마세요. 왜 불신자에게도 오지 않는 이 문제가 나한테 오냐? 불신자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밥이기 때문에, 문제를 줘도 안 줘도 마귀를 섬깁니다. 여러분들의 현장은 여러분들 때문에 돌아가기 때문에 사단이 그만 놔두질 않는다니까요. 계속 공격한다니까요. 불신앙으로, 의심함으로, 예배드린다고 되냐? 기도한다고 되냐? 언약 붙잡는다고 되냐? 예수가 그리스도 누가 모르냐? 계속 속입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딱 똑바로 차리고요. 영적 의식을 가지고 영적 싸움해야 돼요. “아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이 현장에 돌아가니까 사단이 가만두겠냐?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무너질지어다.” 기도하면서 예배를 회복하시길 축원합니다. 믿음을 회복하시길 축원합니다. 믿음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늘 하나님의 역사와 응답을 체험할 수 있는가?
(언약궤, 말씀 따라가라)
그러면요. 늘 하나님의 역사와 응답을 어떻게 우리가 체험할 수 있습니까? 늘 체험을 해야 되잖아요? 체험했다가 안 됐다가, 체험했다가 안 됐다가, 그러면 안 되고 지속적으로 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을 못하냐? 늘 어떻게 하나님 체험할 수 있냐? 우리는 또 그걸 봐야 되잖아요.
주의 종이 말씀하시는 강단의 말씀을 조금 중요하게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뻔한 얘기네. 목사님 뻔한 얘기했네” 그 생각을 가지면 영원히 힘들어지는 거예요. 왜냐?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곧 하나님 아닙니까? 오늘 예배의 자리에 왜 나오셨어요? 하나님을 만나러 오신 겁니다. 사람의 말을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말은 신문 보고, 유튜브 보면은 더 전문성 있게 나왔어요. 그런데 강단에서까지 지식과 지혜를 얘기한다? 어떤 정보를 얘기한다? 어떤 희망에 주는 위로해 주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사단이 이 역사하니까 말씀을 다 흩어버리고 말씀 못 붙잡는 겁니다. 강단의 말씀을 정말 확신 있게 붙잡아야 돼요.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세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오늘 3절에 보니까요.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이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매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지금 하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라는 거예요. 그게 강단 말씀입니다. 말씀에 동화가 돼야 됩니다. 동요되면 안 되고, 말씀이 내 것으로 동화가 돼야 돼요. 그리고 말씀이 나를 통해 계속 묻어나와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삽니다. “아 오늘 예배 속에 목사님이 말씀하시는구나. 그리고 김동건 목사님 딕션 좋고, 뭐 소리 크고 확실하고” 그거밖에 안 들리는 거예요. 주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한 주간 영적 싸움을 해야 되는데 뭔 말씀을 주시냐? 그걸 붙잡아야 되는 거예요. 문제 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당연히 사단이 그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여러분들을 계속 공격해야 되니까요. 기도하면 안 되고 복음 누리면 안 되니까요. 그러면 교회가 살고, 현장에 살고 가정이 살고, 개인이 사니까 절대 그걸 못하게 하겠죠. 거기에 속으면 안 돼요 어떻게 해요? 강단 말씀 붙잡고 언약궤를 따라가야 됩니다.
지난주 우리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6장 4절에 보니까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목회자를 돕는 거잖아요. 목회자를 돕는 거는요 뭐 몇 억, 몇 십억을 주는 게 돕는 게 아닙니다. 목회자를 돕는 거는 주중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게 가장 그걸 목사를 도와주는 거예요. 목사님들한테 그게 가장 도와주는 겁니다. “나 재산 100억 있으니까 우리 목사님 한 50억 드려야 되겠다.” 그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주중의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백성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게 가장 성령이 역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들도요. 언약궤를 따라가야 돼요. 목사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언약궤를 따라가야 됩니다. 목사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거든요.
자, 바로 건넌게 아니라 1절에 보니까 ‘유숙했다’는 얘기는 기도했다는 얘기예요. 사흘 후에 뭐라 그랬어요? 2박 3일 동안, 계속 잠만 잤겠습니까? 기도하고, 말씀 포럼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인도를 구하기 위해서 계속 기도한 거예요.
자, 두 번째는요. 또 유사들이 나옵니다. 우리 중직자분들은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앞장서야 돼요. 중직자분들은. 그래서 앞장서서 주의 종을 말씀을 따라가고 응답받고 영적인 솔선수범을 보여야 됩니다. 중직자가 해야 될 사명과 역할입니다. 내가 중직자니까 폼 잡아야 되겠다? 아닙니다. 중직자는 성도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섬기고 목회자를 섬기고 성도들이 뭐 때문에 울고 뭐 때문에 어려워하고 뭐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그걸 자세하게 봐야 돼요. 그러면서 기도해 줘야 됩니다. 성도님들은요, 메시지가 떨어지면 못 알아들어요. 무슨 내용인지. 또 이해도 안 됩니다. 그 차이를 줄여줘야 돼요. 중직자분들이. 그래서 성도님들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이해시킬 수 있도록 계속 중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해서 말씀을 이해시켜야 됩니다. 중직자분들이 제목도 모르고 한 문장 한 단어 제가 붙잡으라고 말씀드렸지만 중직자분들은 한 문장 한 단어 제목 갖고 안 됩니다. 말씀을 딱 꿰차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성도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중간에 역할을 해줄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중직자의 사명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하나 임명를 했어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쭉 세워가지고 그 말씀이 전달, 전달, 전달, 전달되도록 계속 세웠습니다. 이 역할을 우리 중직자분들이 해주셔야 돼요. 요만한 거 갖고 삐지고 뭐 이렇다 저렇다 그거는요... 사실 좀 죄송합니다. 그 수준 갖고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제는 뛰어넘으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 중립자분들이 이제는 교회와 목회자와 모든 성도 간의 중간의 어떤 틈을 다 없애줘야 돼요. 그래서 함께 갈 수 있도록.
자, 백성들이 나옵니다. 이건 성도님들이에요. 5절-6절에 보니까 말씀과 언약궤를 따라갔어요. 그리고 오늘 4절에 보니까 4절의 첫 줄에 보니까 2천 규빗 떨어져 가라. 이건 무슨 말씀입니까? 한 규빛이 45cm예요. 그러면 2천 규빗이시면 100m가 모자른 1km입니다. 900m입니다. 그러면 언약궤와 900m 그때 당시에 떨어져서 갔었어야 돼요. 왜 그러냐?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뭐예요? 말씀보다 앞서거나 뒤서지 마라.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되거든요. 내가 말씀보다 앞에 따라가거나 뒤처지거나 이건 내가 모른단 말이에요.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아, 이거는 하나님 말씀이구나. 주의 종을 통해서 사람이 얘기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구나.’ 그럴 때 강단 메시지로 원네스 되는 책임이 있고요, 우리가 협력해야 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영적으로.
마지막으로 렘넌트입니다. 여호수아 4장 6절-7절에 보니까 복음을 계속 설명하고 있어요. 정확한 언약 전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 자손들이 요단 건넌 게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뭐라고 그랬어요? 여호와의 영원한 표증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영원한 기념비다. 그렇게 전달을 해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해라. 여기에 증거와 증인과 전도자가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고 해라. 그거예요. 열두 돌을 가지고 쌓아서 후대에게 정확하게 설명을 했거든요. 왜 설명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셨다고 해라.
4장 6절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증이 되리라. 후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7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시니라. 여러분들이 나중에 지금은 몰라요, 렘넌트들이. 기도하면서 은혜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중에 이제 커서 묻습니다. 권사님, 장로님, 우리 교회가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그러면은 하나님께서 이걸 묻거든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호와의 영원한 표증이다. 여호와의 영원한 기념비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포하라고. 렘넌트들에게 정확하게 언약이 전달되는 거예요.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태까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응답해 오셨어요. 그 응답도 중요하지만 오늘, 지금부터 시작되는 그 응답을 딱 붙잡고 한 주간 승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선지자에게 예전의 응답과 체험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타성이 붙는 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지금 시작되는 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 성도님들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문제가 문제가 아니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믿음을 체험하는 이번 한 주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요단의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가 믿음 체험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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