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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로드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의
열정과 도전, 사색과 성찰이 어우러진
유럽 8개국 인문 기행
차백성 글․사진 | 변형 신국판(140×210) | 456쪽 | 값 18,900원
출간일 2014년 6월 16일 | ISBN 978-89-969042-2-9 (03920) | 들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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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음미하듯, 유럽을 여행하는 시간
열정과 도전의 상징,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의 유럽 8개국 인문기행
잘나가던 대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자전거 여행가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한 차백성. 열정과 도전의 아이콘이자 ‘영원한 현역’으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주었던 그가 『아메리카 로드』와 『재팬 로드』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 로드』를 펴냈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8개국 6,000km를 100일 동안 자전거로 달리며 문화, 예술,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자유로운 저자의 노마드적 사고는 시공을 초월하고 동서를 넘나든다. 유럽의 풍경에 빠지다가 어느새 아련한 추억에 젖어든다. 세계사의 현장에서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오버랩한다. 길 위의 낭만을 즐기면서 촌철살인으로 인생을 통찰한다. 막힘 없이 술술 써내려간 글들은 재치 있고, 기발하고, 철학적이고, 감동적이다.
이처럼 『유럽 로드』는 여행지의 정보만을 소개한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는 남들 따라가는 ‘관광’에서 벗어나 좀더 의미 있는 여행을 제안한다. 유럽을 돌아보며 ‘우리’를 반추하는 ‘진짜 여행’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열정과 도전, 사색과 성찰이 있는 여행, 깨알 같은 여행의 재미와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채워주는 여행, 이것이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인 차백성표 여행기다.
아는 만큼 보이는 유럽!
동서양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종횡무진 노마드 유럽 역사문화기행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보고 싶고 담고 싶은 것들을 꼼꼼히 챙길 수 있어 진지한 사색과 성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풍경에 빠지고 추억에 취하는 색다른 유럽 여행, 이 책을 따라 유럽을 둘러본다면 여행이 두 배로 재밌어질 것이다. 저자가 유럽 8개국을 자전거로 돌아보며 직접 부딪쳐 건져올린 문화기행의 생생한 현장들을 만나보자.
여행의 시작인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는 토이기 부대의 흔적을 찾으며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그 오랜 역사의 뿌리를 더듬는다. 아시아와 유럽의 접점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자전거로 건너 신화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로 간다.
영화 <페드라>에서 새어머니의 유혹에 빠졌던 안소니 퍼킨스가 “죽어도 좋아!” 외치며 스포츠카를 몰던 절승의 해변길을 그는 자전거로 달려본다.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진 문호 카잔차키스의 흔적을 찾아 크레타 섬을 달리고, 시시포스 신화의 돌산이 있는 코린트에서는 그 자신이 직접 ‘중벌’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시시포스가 되어 심장이 터지도록 업힐(up-hill)을 해본다.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두오모 성당에 올라 벅찬 감동을 느끼며 우리는 천 년 뒤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 반성한다.
프랑스에서는 감수성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가슴 졸이며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아를의 여인」이나 「별」을 떠올리며 작품의 무대인 그림 같은 프로방스의 시골길을 달리고, 우리의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밝혀 세상을 놀라게 한 고 박병선 박사의 일생을 더듬는다.
스위스에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 이면에 산과 싸워 극복한 그들의 강인한 저력이 있었음을 들여다보고, 한니발이 코끼리로 넘었던 알프스를 자전거로 직접 넘어보기도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구한말 이준 열사가 어명을 받들지 못한 한을 품고 숨을 거둔 바로 그 장소, 이준 평화박물관을 돌아보고, 은둔의 왕국 ‘꼬레아’를 유럽에 알린 최초의 책 『하멜 표류기』의 저자 하멜의 파란만장한 인생 항로와 족적을 더듬기 위해 생가 호르큼을 찾는다.
서구에서 우리 한(恨)의 정서를 유일하게 이해한다는 나라, 아일랜드에서는 우리와 그들의 공통분모인 ‘한과 설움’의 역사를 오버랩시키는 시도를 한다. 700여 년 동안 영국으로부터 모진 세월을 겪었지만 ‘남의 글’ 영어로 노벨 문학상을 무려 네 차례나 받은 아이리시들을 만나기 위해 ‘작가의 고향’ 더블린을 찾는다.
주옥같은 글을 남기고 불꽃처럼 살다 간 수필가 전혜린이 레몬 빛 가스등 아래 우수에 젖어 거닐던 독일 뮌헨의 슈바빙 거리를 배회하고, 함부르크에서는 브람스가 치던 피아노를 만져보며 전율하고, 관장을 통해 브람스와 클라라의 연정을 직접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역사 속 베를린 장벽을 더듬으며 우리의 허리를 묶어버린 녹슨 철책을 떠올린다.
또 한 번 가슴이 뛰고 싶다면, 한 번쯤은 유럽에 취하라!
청춘의 열정은 시간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
이것이 여행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 책은 유럽 8개 나라의 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미술, 영화, 역사, 건축 등의 다양한 정보를 한데 버무린 인문 트래블 가이드이다. 여기에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찰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 세월 속에 잊고 있던 아련한 향수와 추억의 장면들까지 담아냈다. 그래서 일반 여행서와 달리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읽는 재미와 지적 만족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보다 의미 있는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겐 세계사 상식과 교양이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해주고,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읽는다면 세대 간의 소통을 함께 나누는 데 이 책이 좋은 활용이 될 것이다.
청춘의 열정은 시간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 전반전은 대기업 상무, 후반전은 자전거 여행가로, 꿈을 좇아 사는 영원한 현역 인생 차백성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고, 인생 2막의 새로운 출발을 앞둔 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용기와 자극을 줄 것이다. 또 한 번 가슴이 뛰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이렇게 유럽을 만나라! 당신의 심장도 아직 식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차백성
자전거 세계 여행의 꿈을 위해 이른 나이에 회사를 떠나 수십 개국을 여행했다. 매 여행마다 콘셉트를 잡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담아낸 ‘테마가 있는 여행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탄탄한 내공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촘촘한 그물코처럼 엮은 그의 여행기는 실제 여행보다 더 재미있다.
2008년엔 미국 여행기 『아메리카 로드』로 수많은 라이더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테마 여행 2탄인 일본 여행기 『재팬 로드』 또한 ‘일본 속의 한국을 찾아서’라는 콘셉트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전거 여행을 ‘우리 삶의 축약판’으로 규정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도전한다. 국내 1세대 라이더인 그에게 감동받고 또 그의 자문을 구해 여행을 결행한 이들이 많다. 그 자신, 여행에서 진 고마운 ‘빚’을 글이나 강연을 통해 후배들에게 기꺼이 나눠주고 있다.
1951년생으로, 인하공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육군 공병 중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1976년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수단, 나이지리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고, 2000년 상무이사로 퇴임했다.
<추천의 글>
‘아프니까 청춘이다’며 자신만의 상처에 갇혀 긴 시간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인생의 일정 시기로만 착각하는 중장년들에게, 이 책을 들고 세계를 제패한 유럽 문명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라고 강권한다! -이석연(변호사, 전 법제처장)
“행복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주도할 때 나온다”는 저자는 자전거 여행을 독자가 직접 다녀온 것보다 더 상세히 그려내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감추어진 유럽의 진정한 모습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김병후(정신과 전문의)
세상에 자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직장을 버려가며 길 떠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그가 멋지다. 이 책을 통해 그와 자전거를 함께 타며 유럽 여행을 떠나는 호사를 누려보자. -조관일(한국강사협회 회장,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
그의 여행기는 젊은이에겐 꿈과 도전을, 7080세대에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6대주 5대양을 이어갈 그의 다음 도전과 얘기가 기다려진다. -심명필(인하대 교수, 대한토목학회 회장)
그의 여행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동서양을 넘나든다. 유럽의 풍경에 빠지게 하다가 어느새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게 하는 이야기의 힘! 이것이 ‘차백성’표 여행기다. 보고 즐기는 관광만이 아니라 음미하고 채우는 ‘진짜 여행’을 맛볼 수 있는 이 책의 일독을 강추한다. -김세환(가수)
비범한 저자의 삶의 궤적이 말해주듯, 『유럽 로드』는 다른 여행기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깊은 혜안과 성찰이 담겨 있다. 끊임없는 경쟁과 긴장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일탈에 대한 영감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주는 흔치 않은 여행서이다. -박영식(대우건설 사장)
<차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Chapter 1 │ 동서양을 아우르는 터키
자유, 새장을 나온 새처럼
공항 이름에 숨은 의미
동서양을 잇는 다리, 보스포루스 대교
군사박물관에서 떠올린 ‘토이기 부대’의 추억
‘형제의 나라’ 그 뿌리
터키에는 터키탕이 없다
세계사 파일-터키의 속살을 찾아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 마침내 이스탄불로
‘오리엔트 특급열차’
Chapter 2 │ 신화의 고향 그리스
앞바퀴엔 ‘그리스 신화’, 뒷바퀴엔 ‘성서’를
인류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알렉산더 대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
여행 중 ‘아내’와 각방이라니!
은륜망상파?
파르테논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자유인 조르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신화에서 역사로
위대한 발굴, 고고학 이야기
히폴리투스의 비극
사랑과 신음(神淫)
‘형벌의 산’에 올라
Chapter 3 │ 로마 제국과 르네상스의 진원지 이탈리아
만자레! 깐따레! 아모레!
로마는 한 달이면 거의 본 것이 없다?
추억의 이탈리아 영화들
정치가의 묘약, 빵과 서커스
“로마는 노예에 의해 세워졌다!”
“주먹으로 맞고 발길에 차여……”
세계 자전거 여행가의 자격?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해주소서
한니발의 그때 그 자리에 서서
토스카나의 보석, 시에나
“여기, 스파게티 곱빼기!”
‘꽃처럼 아름다운’ 두오모에 올라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Chapter 4 │ 빛의 프로방스, 예술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인의 ‘에스프리’와 병인양요
중독자들에게 고함!
여행의 철칙, 심소담대(心小膽大)
프랑스인과 똘레랑스
군가에서 국가로, <라 마르세예즈>
빛의 프로방스, 라벤더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고
알퐁스 도데가 글 쓰던 ‘풍차 방앗간’을 지나며
도데의 「아를의 여인」 vs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2의 바티칸, 아비뇽
“영혼을 돌려주세요!”
시효 없는 범죄
Chapter 5 │ 작지만 강한 저력의 나라 스위스
은행이냐, 교회냐?
레만 호에서 이부란 여사를 떠올리며
“전쟁을 하더라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말자!”
길의 미학
노마드 인생
한류가 여기까지
‘Top of Europe’
취리히 산책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취리히는 신교의 고향
Chapter 6 │ 유럽 속의 한국, 아일랜드
“이곳에 이방인은 없다. 다만 만나지 못한 친구가 있을 뿐”
추억의 아일랜드 영화 <라이언의 딸>
내 젊은 날의 비망록
나무도 이식하면 뿌리를 내린다
아일랜드는 서양의 한국
750 vs 36
‘성자의 나라’에서 온 제주도 성자
더블린 산책
나그네의 발길을 잡은 조형물 두 개
세 가지 저주
유럽의 문화 수도와 작가박물관
Chapter 7 │ 도전으로 이룬 세계화 네덜란드
작지만 큰 나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고흐, 고통을 그린 화가
“선진국이라서 자전거를 많이 타나, 자전거를 많이 타서 선진국인가!”
무려 64일이나 걸린 긴 여정!
축제판에 등장한 해골 3개
유럽에 하나뿐인 항일운동 기념관
“내 영혼을 담아 널 그리고 싶어!”
‘아트 시티’ 로테르담의 이모저모
15년 만의 귀향!
두고 온 ‘강진댁’을 그리며
Chapter 8 │ 낭만과 전설의 독일
뮌헨, 레몬 빛 가스등에 내리던 안개비의 추억
내 마음의 보석
역사가 주는 교훈
의미에의 의지
여행은 노삼운칠(勞三運七)!
‘철학적 여행’은 혼자 해야 한다?
로렐라이 단상
고향 찾은 모젤 와인
“저 다리는 철교의 금 무게만큼 중요하다!”
레마겐 다리에서 떠올린 한강 인도교
“한번 쳐보시죠.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브람스와 클라라, 연정과 우정 사이
베를린 산책
<본문 중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했던 5월의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울고 계셨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은 휑하니 뚫리고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으로부터 전해진 비보가 미국 대사관을 통해 집으로 전달된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교수로 계시다가 2년 전에 도미하셨으니, 내 나이 불과 열한 살에 아버지와 영영 이별한 것이다.
세월 속에는 망각이 있다. 이것은 신의 선물이다.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환희도, 땅속으로 가라앉을 듯한 비탄도 흐르는 세월 속에 용해되어 망각의 장으로 사라진다.
어린 나이에 겪은 육친의 죽음은 멋지게 살다가 후회 없이 죽어야겠다는 ‘생사관(生死觀)’을 내게 심어주었다. 우울한 유년기였지만, 삶이란 묵묵히 완수해야만 할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로 세상에 방기(放棄)된 것은 아니니까 돌아갈 때는 내 뜻대로 가고 싶었다. 요즘 말로 well-being과 well-dying의 의미를 일찍 터득한 셈이다.
사람은 언젠가 ‘쓸쓸히 떨어질 한 장의 낙엽’이다. 욕계화택(欲界火宅)에 살며 높은 지위를 누려야만 멋진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조각 구름 같은 인생. 한숨 돌릴 만하면 살아생전 집착하던 재물, 사랑하는 가족, 지극정성 가꾸던 육신마저 모두 두고 떠나야 한다.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름다운 것들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바로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흘러간 시간은 형체가 없다. 그 시간 속에 새겨진 기억만 있을 뿐이다.
나는 젊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또 미래라는 신기루에 집착하여 현재를 향유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의 종말을 잘 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얼마 만인가. 이국땅에서 욕심도 내려놓고, 시름도 내려놓고, 무념무상 꿈길을 달리며 언젠가 레테의 강 건너 만날 티나토스를 떠올린다.
환희의 순간에 죽음을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
-91쪽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중에서
내 ‘집’으로 돌아와 누우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한 번뿐인 인생을 잘사는 것일까. 대책 없이 늘어난 장수의 시대에.
“좁은 철망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는 광대한 벌판을 달리는 것으로 인식한다.”
책을 읽다 이 한 줄에 충격을 받아 25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어릴 적 꿈을 좇아 바로 길을 나섰다. 자전거 한 대 들고 시애틀로 날아가 멕시코 국경까지 페달을 밟았다. 그래도 기갈은 여전했다. 심연에 똬리를 틀었던 역마살이 비온 뒤 죽순처럼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살(煞)은 살로 풀어야 한다. 10여 년을 문전옥답 놔두고 낯선 이국땅에서 찬비를 친구 삼아 풍찬노숙하여 잡은 것이 무엇인가. 상념의 조각들을 모아도 맞출 수 없는 퍼즐처럼 헝클어진다. 가위 눌렸을 때 내지른 고함마냥 무력감이 온몸에 스며든다.
‘호리병 속에 든 새를 병을 깨지 않고’ 창공에 날려야 한다. 시간은 쉼 없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더 현명해지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망 속의 다람쥐’, 이 화두를 붙잡고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하나……. 밤새 레만 호는 찰랑거렸다.
-243쪽 <노마드 인생> 중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천안 독립기념관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독립이란 아프리카의 미개국이 열강의 지배를 받다가 민도가 깨여 스스로 나라를 운영할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 아일랜드는 영국에게 75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36년의 시간은 너무 짧다. ‘독립’기념관은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칫 매도할 우려가 있다. (……)
이제라도 미망(迷妄)의 시간을 거울 삼아 독립기념관의 명칭을 정립해야 한다. 광복기념관, 항일기념관은 어떨까? 이런 이름이면 기념관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 대대손손 경각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절한 때다.
-293~298쪽 <750 vs 36> 중에서
48세의 이준은 강골이었다.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과 열흘 전 <만국평화회의보> 제1면에 ‘해골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면 그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떡 벌어진 건장한 어깨에 꾹 다문 입, 안광은 지배를 철할 정도로 강렬했다. 병사나 분사는 어불성설이다. 꼭 해야만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쉽게 죽지 않는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가 자결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국가의 명운이 걸린 어명을 수행하고 있던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닌가!
당시 일본의 보편적인 테러 방식은 독살이었다. (……) 사안이 아무리 화급해도 세계의 눈이 쏠려 있는 헤이그로 자객을 보낼 만큼 일본은 미련하지 않았다. 호텔 주방장을 매수했거나 몰래 주방에 잠입해 극약을 섞었을 것이란 추정은 개연성이 매우 크다.
화불가단행(禍不可單行,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이라고, 사망 당시 ‘특사단의 대변인’ 이위종은 급한 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 있었고, 이상설은 외국어는 ‘Oh, sad!’ 외에는 한마디도 못했다.
죽음 직전의 짧은 순간에 전 인생의 필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그 순간의 표정이야말로 한 인간의 마지막 결산서이다. 백척간두에 걸린 나라 운명을 걱정하며 어명을 받들지 못한 회한에 잠겨 이준은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357~358쪽 <유럽에 하나뿐인 항일운동 기념관> 중에서
페달을 밟으며 하멜의 고향을 빠져나가는 솔로 바이커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하멜은 조선에서 듣고 본 모두를 기록했을까? 뜨거운 피를 가졌던 젊은 선원들과 조선 여인 간의 로맨스가 표류기 행간에 어른거린다. 하멜은 차마 적을 수 없었던 더 중요한 것 들, 자기만 간직해야 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들은 없었을까?
상상의 나래가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처럼 이리저리 춤을 춘다. 과연 그는 13년간 수절했을까? 혹시 지구 반대편에 두고 온 강진댁과 올망졸망한 자식을 꿈에 도 그리다 결혼도 미룬 채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은 아닐까…….
-379쪽 <두고 온 ‘강진댁’을 그리며> 중에서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는 라인 강을 보며 떠오르는 한 생각이 있었다. 한강도 라인 강처럼 ‘기적의 어머니’였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가장 오래된 큰 다리가 사람도 걸어서 넘을 수 있다 하여 인도교였다. 레마겐 다리보다 훨씬 크지만 생김은 흡사하다. 강도, 다리도, 서로 비슷한 운명을 타고났다.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폭파에 실패했다고 처형되었고, 한국군 장교는 폭파에 성공했다고 처형되었다.
비운의 군인, 육군 대령 최창식.
그때 실패했더라도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명령 불이행으로. 물밀듯 밀려오는 인민군과 피난민을 칠흑 같은 밤에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숫자 미상의 적 탱크는 이미 의정부 저지선을 뚫고 미아리까지 들어와 교전 중이라는 첩보도 들어왔다.
폭파 명령은 받았고, 얼마나 고뇌했을까. 말없는 한강은 알고도 그저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10여 년 후 사자(死者) 명예회복은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발파 스위치를 누른 자나, 다리 위에서 목숨을 잃은 자나, 모두의 원혼을 위로하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되새길 만한 기념물이 아직도 없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한강대교를 오가는데…….
-432~433쪽 <레마겐 다리에서 떠올린 한강 인도교> 중에서
2층으로 올라가니 브람스가 어린 시절 직접 연주하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Baumgardten & Heins, Hamburg’란 상표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건반에 살짝 손을 대보았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때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괜찮습니다. 한번 쳐보시죠.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건반만 건드려도 전기가 통했는데 연주까지 해보라니……. 나는 “호의는 고맙지만, 엉터리 연주로 브람스 피아노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그녀는 내가 피아니스트라 든지 브람스 음악에 조예가 상당한 음악가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호의를 베푼 가브리엘 요아힘 기념관장 할머니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저는 브람스 음악 ‘듣는 것’만 좋아합니다. <자장가>부터 <헝가리 무곡>, <집시의 노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네 개의 엄숙한 노래> 등……” 내가 아는 것은 다 말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기본이었을 것이다.
내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 질문이었다. 먼저 ‘속물적 관심사’라고 운을 뗀 후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는 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만 존재했을까요? 편지 중에 사랑을 고백한 문구도 여러 번 있고, 영화 <클라라>에서도 역시 암시가 많은데…….”
요아힘 관장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말했다.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나도 그 영화를 봤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시면 안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브람스는 낭만파의 중심 인물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아내입니다. 낭만파에게 육욕은 하위의 개념이지요. 물론 인간인 이상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겠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서로가 지켰다고 확신합니다.”
-437~439쪽 <“한번 쳐보시죠.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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