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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툿징 베네딕도수녀회는 매년 힐데가르트 기념축일을 전후해 성인의 영성을 되새김질하는 행사를 개최해 왔다. ⓒ한상봉 기자 |
힐데가르트, 여성성으로 교회와 세상에 공헌해
“우주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꿰뚫어 보았다”
강우일 주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말을 인용해 힐데가르트를 “자신의 여성성을 통하여 교회와 사회에 큰 공헌을 하였던 분”으로 소개하며 “힐데가르트는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일찍이 갖지 못한, 특별히 여성적이고 통합적인 시각과 접근을 통해, 계시 전체에 대한 아주 고유한 그녀만의 독자적인 인식과 이해를 정립하였다”고 말했다.
“성인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꿰뚫어보는 대단히 통합적인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하느님과 사람과 동물, 식물, 모든 피조물이 생명의 거미줄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고 엮여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이 지휘하시는 환희와 희열의 심포니라고 노래하였다. 땅을 해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창조물을 잘못 사용하면 하느님은 창조물이 인간을 벌하도록 허락하실지 모른다고 경고하였다.”
힐데가르트는 신비로운 환상을 통해 다른 피조물의 애통한 탄식 소리를 들었다고 <책임감 있는 인간>에 썼다. “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달릴 수 없어. 우리 하느님께서 태초에 우리들을 위해 정해 놓으신 그 길을 우리는 끝까지 걸어갈 수 없어. 인간들이 악행을 저질러 우리들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야.”
이미 페스트처럼 악취가 풍기고, 애타게 완전한 정의를 기다리는 피조물에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녹색으로 생기 있게 만드는 생명력도 인간의 눈먼 영혼이 저질러내는 광란, 하느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저지르는 그 포악한 광란에 의해 시들고 있다”며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를 향해 나아가는데 … 아, 인간만이 반역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신다.
강 주교는 힐데가르트의 이런 통찰이 그냥 던져진 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와 교회의 맥락에서 출현했음을 확인했다. 12세기의 유럽은 “교회가 세속의 왕국과 경쟁하며 갈등을 빚고, 교회가 세상과 너무 깊숙이 연결되어 있어 세속의 권력과 부가 교회 내에도 넘치게 흘러들어와 자연히 부패와 비리의 악취가 진동했던 시대”라고 규정했다. 교회가 내부로부터 이렇게 곪고 병들어 가니 사람들은 교회 교도권을 불신하고, 그 가르침에 반대하여 카타리파와 알비파와 같이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이 나타나기도 했던 시대다.
“이단은 초창기 교회 때부터 있기는 하였으나 교부들은 이단에 대해 구체적인 징벌형을 가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았다. 12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이단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갈수록 엄격한 종교재판으로 단호한 대응에 나섰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극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이 시대는 교회 내부에서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쇄신과 개혁의 물결이 힘차게 일어나 교회의 행정과 영성과 전례가 재정비되며 교회 건축 · 음악 · 미술에도 새바람이 불어 새로운 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웠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강 주교는 “교회와 세상의 유착은 대단히 뿌리기 깊어 그렇게 쉽게 정화되거나 쇄신되지는 않았다”고 전하며 “그래서 더더욱 힐데가르트 같은 예언자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물었다.
▲ 힐데가르트의 환시를 담은 도판들 |
힐데가르트, 부패한 교회 개혁에 앞장 서
“교황 측근들, 닭처럼 한밤중에 꼬꼬댁거리는 위선자 지나지 않아”
강 주교는 힐데가르트 성인이 성직자와 일반 신자들 모두가 복음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현세적 가치에 매몰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런 세상을 올바로 개혁해 나가기 위해 수도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며, 교회가 쇄신되려면 외적으로 교회의 조직이나 행정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영혼의 회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힐데가르트는 에우제니오 3세 교황에게 “당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인사들은 개처럼 이빨 드러내고 물어뜯으려고 으르렁대거나 닭처럼 바보같이 한밤중에 꼬꼬댁거리는 위선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성인은 교황의 특별 허가를 받고 독일과 스위스 각처의 수도원과 교회를 순회하며 성직자들의 부패를 고발하고 교회의 회심을 촉구하면서 “무조건적인 순명이나 그리스도를 내세우는 독재보다는 정의를 앞세우는 일이 교회와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고 한다.
강우일 주교는 “힐데가르트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제왕들과 성직자들의 갈등, 땅을 차지하기 위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갈등으로 많은 이들이 폭력과 고통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모두를 다시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생명력 안에 치유하고 감싸 안는 어머니 같은 여성적 지도력을 시도하며, 하느님의 구원으로 나아가도록 모두를 초대하였다”고 전하며 “탐욕 가득한 무한경쟁으로 끊임없이 이웃을 짓밟고 올라서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바라보면 힐데가르트 성인은 뭐라고 하실까” 물었다.
강 주교는 “창조주께서 선물해 주신 자연과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한” 4대강 공사의 책임을 다시 묻고, “후쿠시마 원전에선 계속 방사능 오염수가 지하로 스며들고 바다로 흘러들어간다고 난리고 이제 와서 우리 정부는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는데, 원전은 경제적이고 녹색 에너지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물었다.
“이석기 의원 등 진보당 인사들, 정신적 감옥에 해방되도록 도와야
반국가사범으로 처단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 아냐”
▲ 강우일 주교는 힐데가르트가 어머니다운 여성적 지도력으로 교회 개혁과 세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갔음을 역설했다. 성인은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창조되엇으며, 교회뿐 아니라 세상 역시 하느님 사랑 안에서 양육되고 생기를 얻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
한편 “지금 이석기 의원을 비롯하여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국가를 뒤집어엎으려는 내란음모의 혐의로 구속되고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사범으로 내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강 주교는 “이들의 언동을 보면 오늘의 현실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이들은 그들 자신이 만든 정신적인 감옥으로부터 해방되고 깨어나도록 함께 고민하고 설득하고 치유해야 할 대상이지, 단순히 국가보안법적인 사고의 틀 안에서 반국가사범으로 처단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이 살아온 생의 여정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한시적이고 편향적인 법 조항만으로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상처와 고뇌에 가득 찬 우리의 현대사가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점심식사 이후 진행된 프로그램에서는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맞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루까 수녀가 “오 빛나는 초록빛, 푸른 생명력 가득한 새순이여, 기뻐 인사드립니다. 영의 산고 속에 거룩한 이들의 기다림 속에 그대 세상에 오셨습니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힐데가르트 성인이 작곡한 ‘성모찬송’을 불렀다.
▲ 마침 성가를 부르며 기쁨을 표현하는 수도자들 ⓒ한상봉 기자 |
힐데가르트 “세상 어느 것도 하느님의 광채를 담고 있지 않는 것은 없다”
박유미 연구원 “세상 문제에 대해 식견 가져야”
▲ 박유미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연구원 ⓒ한상봉 기자 |
힐데가르트는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믿은 것처럼, 당연히 세상을 긍정하였고 “세상 어느 것도 하느님의 광채를 담고 있지 않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고 한다. 박 연구원은 “그러니 우리가 세상에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감사드려야 할 일”이라면서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행하는 데 우리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힐데가르트의 치료법이 여성 수도자들을 위한 수도규칙 해설에서 나왔다면서, 성인이 말한 치유란 단순히 아픈 몸이 낫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하고 기도하고 쉬는 것을 적절히 하는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세상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내가 생각하는 게 옳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생각과 판단을 믿음 안에서 나누면서 조화롭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과정을 통해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2010년에 독일 제2공영방송인 <ZDF>에서 방영한 다큐 ‘독일의 인물’ 두 번째 편인 ‘빙엔의 힐데가르트, 여성의 힘’ 상영회에 이어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감했다. 마침 기도로 힐데가르트 성인의 ‘오 푸른 물 오르는 새싹이여!’를 합송했다.
오 푸른 물 오르는 새싹이여,
그대 고귀함을 담고 솟아오르셨습니다.
어두움에서 새벽동이 터 오듯이!
자, 이제 기뻐하소서.
환호하소서.
이제, 약한 우리에게 마음을 기울여
못된 습관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그대의 손길을 펼치소서. …
그대, 이제 다시
우리를 일깨워 세우소서!
▲ 박유미 연구원은 힐데가르트의 생애를 전하며, 그의 영성의 핵심으로 온 우주 만물이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전했다. ⓒ한상봉 기자 |
▲ 행사에 참석한 어느 교우의 자녀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 ⓒ한상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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