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정에 모여 10시 10분에 산행 시작, 약사암으로 3명(강종원 윤정남 장덕균 등), 편백나무 숲으로 6명(류상의 문기정 박남용 양수랑 오은열 이승정 등)이 산행을 시작하였다.
뜨거운 햇볕에 노출된 우리들은 잠시 후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갔을 때 그냥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서늘하다는 것이었다. 강렬한 태양 아래서 걸어갈 때 느꼈던 후꾼한 열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으니 역시 나무 그늘 밑이 좋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앞서가던 오은열이
“아! 천국이구나!”
하고 작은 소리로 외쳤다. 편백나무 숲으로 난 길을 이리저리 따라 올라갔다. 계곡에는 철철 흘러가야 할 골짜기 실개천이 말라버린지 이미 오래 되었다. 무등산에 비가 온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으니 말이다. 작년 같았으면 골짜기 도랑에 골육수가 철철 흘러내려 그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할텐데, 올해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웅덩이에 물이 고이지 않아서 모기 서식지가 없는 관계로 금년에는 이 숲에 모기가 전혀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느덧 이 편백나무 숲의 가장 위에 있는 노인 맨발 걷기 터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이 터의 주인들이 맨발걷기를 하고 있었다. 오은열과 나는 지난주에 와서 앉았던 돌무더기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문기정과 죽연(이승정)형은 둥근 나무로 된 의자에 앉았다. 조금 떨어져서 류상의도 따로 앉았다. 박남용은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혼자 떨어져서 자리하고 있는 모양인지 여기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은열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내가 경험하였던, 〈 벽에서 20cm 떨어져 서서, 발을 20cm 간격으로 앞뒤로 벌리고, 벽의 높은 곳에 손을 나란히 짚고, 몸통을 벽으로 끌어당겨 배를 벽에 대는 동작을 약 20초 동안 한다.〉 〈이번에는 발을 앞뒤로 바꾸어 역시 20초 동안 한다.〉 이렇게 하루에 2세트를 80초 동안 하면, 허리 통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낫게 된다고 하였더니, 맨발걷기를 하고 있던 노인 두 사람들 역시 나와 유사한 동작으로 허리 통증을 치유하였다고 동의하였다.
우리는 칸막이 없는 자연 냉장고 속에서 한 시간을 이 이약 저 이약을 하면서 보냈다.
조선시대에, 여름날 시원한 숲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서 느낀 소감을 한시로 표현한 문인의 한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고 재미나이에게 부탁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해 주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여름날 숲속과 계곡에서 바람을 쐬며 유유자적한 정취를 읊은 대표적인 한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1. 《여름날 삼청동 계곡에서(夏日游三淸洞)》 - 이이(李珥)
조선 대표 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녹음이 우거진 삼청동 계곡 숲속에서 유유자적하게 피서를 즐기며 지은 오언절구입니다.
松陰溪口轉(송음계구전) 솔 그늘 스치는 계곡 들머리에 서니
涼氣動衣裳(양기동의상) 시원한 바람 기운에 옷자락이 나부끼네.
獨坐盤陀石(독좌반타석) 넓적하고 반반한 바위 위에 홀로 앉으니
淸風萬古長(청풍만고장) 맑은 솔바람 소리는 만고에 도도하여라.
울창한 소나무 숲 그늘과 계곡 바위에 앉아 쐬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세상의 소음 대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선비의 초탈하고 담담한 유유자적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2. 《숲 그늘에 누워서(臥松陰)》 - 김시습(金時習)
생육신 중 한 명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숲속 솔 그늘 아래 베개를 베고 누워 한가로운 더위를 식히며 느낀 감회를 노래한 칠언절구입니다.
竹樹陰濃夏日長(죽수음농하일장) 대나무 소나무 그늘 짙고 여름 해는 긴데,
(위는 원문인데 나는 다음과 같이 한 글자를 고쳤다.)
竹松陰濃夏日長(죽송음농하일장) 대나무 소나무 그늘 짙고 여름 해는 긴데,
枕書松下夢偏長(침서송하몽편장) 솔 그늘 아래 책을 베개 삼아 누우니 꿈마저 길어라.
不知世上幾時節(부지세상기시절) 세상이 지금 어느 때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山鳥一聲涼意多(산조일성양의다) 산새 소리 한 번에 시원한 기운이 가득 가슴에 가닿네.
12시가 되어 우리들은 다시 부곡정으로 모였다. 이정학 장휘부 최기동 등 3명이 합류하여 12명이 식당에 모인 것이다.
항상 합동 산행이 있을 때마다 우리들의 장형(長兄)인 죽연(竹然, 이승정)형이 밥을 사고 싶어 하였는데, 이번에 남곡(南谷,문기정) 회장에게 뜻을 표하여, 우리 아우들에게
“‘형님!’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고 그냥 친구로 대해 달라!”
면서 집에서 가양주(家釀酒)로 담아 놓은 몇 년 묵은 야관문주(夜關門酒)까지 가지고 와서 건배주로 썼습니다. 또 막걸리도 주문하여 같이 마셨습니다. 우리 모두 콩물국수와 애호박찌개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죽연형이여! 만수무강 하소서!”
이어서 오은열 친구가 매우 흐뭇한 이야기를 풀어 놓아서 우리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오은열 친구의 하나 뿐인 아들이 9급으로 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해 왔는데 이번에 우수공무원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간 박사학위도 받고 승진도 거듭하여 5급 사무관까지 승진하였으며, 더욱 가상한 것은 후두암이 발병하였는데도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부모님도 모르게 치료를 하여, 완치 판정까지 받은 다음에야 부모님에게 알려서 자식의 깊은 뜻에 감동하였다는 소감을 피력하였습니다.
그리고 남곡 회장이, 우리 동기생 중에서 요즈음 건강상 매우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거명하기를 광주지역에서 권일산(교통사고) 김기수(난청) 김영백(노환) 심원두(뇌졸중) 박원희(인지장애) 양동규(노환) 이만호(요양원) 조재성(전립선)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로 요양원으로 간 나의 산행 사부(師傅) 김종국(인지장애) 이들 모두가 쾌차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지만 아무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같이 있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이야기 하고 싶고 듣고 싶어 하니 뉘라서 먼저 일어나려 하겠습니까!
식당 앞으로 가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8월은 여름방학을 하고 9월 말에 다시 만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