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국시
이언주
배가 들어오자 포구 선술집이 시끄럽다. ‘까꾸네’ 집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빈자리에 의자만 끌어와 앉으면 누구라도 일행이 된다. 바다와 고기이야기로 걸쭉한 막걸리가 한 순배 돈다. 선술집 할머니는 싱싱한 잡어를 굵은 콩나물 위에 듬뿍 올려놓고, 고추장 술술 풀어 끓이다가 요기가 되도록 국수를 한 줌 넉넉하게 넣었다. 펄펄 끓는 커다란 냄비가 둥근 탁자 가운데 올라오면 파도에 지쳤던 뱃사람들의 만찬이 시작된다. 반찬은 오로지 꽁치젓갈로 담은 김치 하나가 전부다. 막걸리와 뜨거운 국수 국물에 후루룩거리고 배를 채우고 나면 험한 바다의 긴장과 고된 노동의 피로가 모두 풀어졌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인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읍으로 승격할 만큼 번성했던 항구였다. 지금은 청어가 귀해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지만, 그때는 청어가 많이 잡혀 아무 곳에나 걸어놓고 과메기로 말렸다. 선착장엔 방금 내려놓은 고기들이 펄떡거리고, 장화가 푹푹 빠지도록 고기비늘이 질펀하게 쌓였다. 밤새 집어등을 훤히 밝힌 고깃배들로 바다는 멀리 수평선까지 불야성을 이루었다. 깃발을 펄럭이며 만선을 자랑하는 배들이 밤낮으로 포구로 밀려들었다. 닻을 내린 선원들은 풍어로 흥청거리며 고단한 몸을 풀어놓을 바닷가 선술집으로 모여들었다.
동해를 여행하다 소문으로 듣던 모리국시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막내 아이가 귀여워 까꾸네 집으로 불렸던 국수집은 포구 끝자락 얼음공장 옆 후미진 골목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대폿집이다.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문도 받지 않고 벌써 주방에서는 국수를 끓여내고 있었다. 벽에 걸린 낡은 액자 속에는 빛바랜 사진으로 국수집 지난 시간이 진열되어 있었다. 펄펄 끓는 냄비를 상 가운데 내려놓은 할아버지는 사진 속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외지 손님에게 자식마다 자랑을 길게 늘어놓았다. 주름이 깊게 그려진 시골노인의 눈가에 그리움이 습기처럼 번지고 있었다.
옛날부터 모리국시를 먹으면서도 정작 그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덜어먹을 대접하나 받아들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먹다 생긴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일본말의 ‘많다’는 뜻으로 모리(もり)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국수를 먹다가 하도 시원해서 술집 할머니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가 “내도 모린다”라고 해서 모리국시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기야 그날 잡힌 생선들을 닥치는 대로 넣고 끓였으니 딱히 무슨 국수라 이름을 붙이기도 그렇다.
식기 전에 얼른 드시라는 할아버지의 재촉에 큰 냄비를 휘휘 저었더니 생태며 새우, 소라에 대게 다리까지 걸려 올라온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모리국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기요(그것은), 모리는(모르는) 사람끼리 모디서(모여서) 묵는다꼬 모리국시 아이라요.
이거는 우(여럿이) 모디서 먹는 음식인기라요.
요새는 생아구로 끓이는데 어제 폭풍 때매 배가 못 나가 동태로 끓여 맛이 덜하네요.”
생선으로 끓인 국수가 비린 맛이 나면 어쩌나 했던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적당히 퍼진 국수 때문에 걸쭉해진, 얼큰한 국물은 체면 따위는 잊어버리게 했다. 너나없이 자기 앞의 그릇으로 국수를 부지런히 퍼냈다. 그 크던 찌그러진 양은 냄비는 삽시간에 넓은 바닥을 있는 대로 보이고 말았다.
청어가 사라지면서 뱃일하던 사내들도 떠나갔다. 포구가 한산해지자 부둣가 선술집들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포구의 발걸음들이 느려지고 풍경도 변해갔다. 한나절이 되어 띄엄띄엄 배가 들어오면 붉은 다라를 머리에 인 아낙들이 어물을 받아 자리 잡고 앉아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을 기다리는 정도다. 얼음공장의 녹슨 함석지붕이 나사가 빠졌는지 바람에 들썩거린다. 쉬는 날이 없던 국수 공장도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이제는 모리국시에 들어가는 해산물도 잡어가 아닌 생아귀나 생태 같은 고급어종으로 바뀌었다. 뱃사람들로 북적대던 까꾸네집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일을 도우는 사람도 없이 꾸려가는 노부부에게 이제는 식당일이 힘에 부쳐 보인다. 세월이 흘러도 오래된 포구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직도 남아 있는 후한 인심뿐이다. 그리고 모리국시는 혼자서는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노부부는 냄비에 한 사람만큼의 양만 끓이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며 손님을 돌려 세웠다. 혼자 먹는 모리국시는 이미 모리국시가 아니다. 구룡포에 가면 절대로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모리국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