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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如來音聲 譬喩정리 / 탐현기에서
第一 劫盡唱聲喩 喩佛平等說法聲
謂無主平等 說法無廢
[經文] 譬如世界 將欲壞時 法如是故 自然演出 四種音聲
① 惡行者苦 無功德苦 著我我所苦 欲生人天, ②衆生聞已 皆修善根 學聲聞乘 ③聞此音聲 學緣覺乘 ④過聲聞緣覺 更有勝道 名曰大乘 修菩薩行 不捨菩薩心 永離生死 向無上菩提
겁이 다할 때 내는 소리 ①삼악도에서 인천승으로, ②인천승에서 성문으로, ③성문에서 연각으로, ④성문연각에서 보살로 보리심을 발하여 무상보리를 이루다.
第二 響聲隨應喩 喩佛無方應現聲
[經文] 譬如呼響因山聲起 無有積聚 不可睹見 隨種種聲 悉能應對
고정으로 쌓여 있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부르는 소리를 따라 울리는 산 메아리처럼 가지가지 소리에 대해 모두 응답한다.
第三 空聲開覺喩 喩佛敎誡放逸聲
[經文] 譬如天妙音聲 於虛空中 自然而出 悉能覺悟 放逸天子 五欲無常 虛妄顚倒 須臾變異 如逆風執火 愚夫所習
게으른 천자를 일깨우기 위해 허공에서 자연히 울리는 하늘 북소리, 오욕락은 무상하여 허망전도라 순식간에 변한다. 마치 역풍에 불을 드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의 공부다.
第四 寶女妙聲喩 喩佛法螺圓音聲
謂一音出多音 一一說多法 各隨異類解故也
[經文] 譬如自在天王 有天寶女 名曰善口 於一語中 演出百千 娛樂音聲 於彼一一娛樂音中 復出百千 娛樂音聲
자재천녀 선구가 한 말씀 중에 무수한 오락 음성을 쏟다.
第五 梵聲各聞喩 喩佛根熟獨聞聲
不出衆外者 以根未熟故
[經文] 譬如大梵天王 於梵衆中 出梵音聲 一切大衆 無不聞者 彼梵音聲 不出衆外
대범천왕이 범천대중을 위해서 범음을 내듯이 일체 대중에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지만 근기가 미숙한 중생은 제외된다.
第六 水隨器別喩 喩佛一異無礙聲
[經文] 譬如水性 皆同一味 隨器異故 水有差別 水無是念 我作衆味 如來妙音 亦復如是 皆悉一味
물의 성질이 동일한 맛. 그릇이 다름을 따라 물에 차별이 있으나 물은 분별심이 없다. 중생은 질그릇 같고, 보살은 은그릇, 제불은 금그릇 같다. 종류 달라도 담기는 공기는 같다. 譬如衆生位如土器 菩薩位如銀器 諸佛位如金器 土銀金等 三種器量雖殊 然一一器中虛空 遍滿平等 無有差別
第七 龍王降雨喩 喩佛長養善根聲
不從外來者 離佛無聲故 不內出者 離機無聲故
[經文] 譬如阿耨達龍王 興大重雲 滿閻浮提 普降大雨 百穀草木 皆悉滋長 江河池泉 一切盈滿 此大雨水 不從龍王身心中出 而能饒益 無量衆生
아뇩달용왕은 큰 구름을 일으켜, 염부제 가득 백곡초목을 자라게 하고 강하와 연못이 넘치도록 비 내린다. 용왕의 몸이나 마음에서 나오지 않아도 중생을 넉넉히 적신다.
第八 龍王漸降雨喩 喩佛漸次說法聲 亦是審根授法聲
合中 二一先現身雲 七日思惟 不卽說者 待根熟也 後漸說法 又亦不頓說深法故也 귀한 물건 함부로 내지 않는다.
[經文] 譬如摩那斯龍王 將欲降雨 先興重雲 彌覆虛空 凝停七日 而未降雨 先令衆生 究竟諸業 何以故 彼大龍王 慈悲心故 過七日已 漸降微雨 普潤大地
마나사용왕이 비를 내릴 때 먼저 큰 구름을 일으키고 7일 유예했다가 중생이 준비되면 비 내리니 자비심으로 점점 서서히 대지를 적신다. 용왕이 점점 비를 내리는 것은 부처님의 점차 설법에 비유한다. 근기를 자세히 알고 법을 준다.
第九 龍王連注喩 喩佛種種差別聲
謂聲異說異 竝從淨法界流故 無異之異也
[經文] 譬如海中有大龍王 名大莊嚴 或連雨十日 或二十日 或百日 或千日 或百千日 佛子 雨不作是念 我雨十日乃至百千日 但彼龍王 有不可思議 自在力故 或十日雨 乃至百千日雨
쉬지 않고 비 내린다. 비는 내가 10일 100일 1000일 비 내린다고 여기지 않는다. 부처님은 欲雨微妙 甘露正法에 84000 음성으로 비 내린다.
第十 龍王遍降喩 喩佛普雨法界聲
喩中 有六 一雲 二電 三雷 四風 五雨 六結 合中亦六
①雲은 법신, ②電은 照明, ③雷는 설법소리, ④風은 자비에서 지혜가 나온다. ⑤雨는 법문
①先合 十身雲 初總 九別 別中 初四 約外相 次四約內德 後一稱性
②二合 依身雲放十電光
③三合 雷雲中 言三昧者 明依定起說 從所依爲名 十種可知
④ 四合 風謂將說法時 先從慈悲起後智 警覺加被 令身心柔軟以成法器 然後說法
⑤五合 十法雨 初坐道場菩薩者 是現坐道樹 臨將成佛
유연한 재료로 그릇 만듦. 보리수 아래 앉는 것은 곧 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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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인물 나눠드린 것을 짧게 한 번 보겠다.
우리가 여래음성에 대해서 열 가지를 걸어온 것이 있는데 그 열 가지가 어떠하다고 봐왔느냐?
유인물의 파란 색깔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다.
<유인물>
如來音聲 譬喩정리 / 탐현기에서
第一 劫盡唱聲喩 喩佛平等說法聲
謂無主平等 說法無廢
[經文] 譬如世界 將欲壞時 法如是故 自然演出 四種音聲
① 惡行者苦 無功德苦 著我我所苦 欲生人天, ②衆生聞已 皆修善根 學聲聞乘 ③聞此音聲 學緣覺乘 ④ 過聲聞緣覺 更有勝道 名曰大乘 修菩薩行 不捨菩薩心 永離生死 向無上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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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第一)
겁진(劫盡)에 :조금 전에도 읽었지 않은가. 겁이 세월이 다하려고 할 때
창성유(唱聲喩)라 : 소리가 울려 퍼지는 비유를 대는데
유불평등설법성(喩佛平等說法聲) : 부처님의 평등한 설법의 음성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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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에는 그렇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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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세계(譬如世界) : 비유하건대 마치 세계가
장욕괴시(將欲壞時) : 장차 무너지려고 할 때에
법여시고(法如是故) : 법도 이와 같나니
자연연출(自然演出) : 자연연출이다. 자연스럽게 집이 쫄딱 망해가면 사람이 손발 걷어 부치고 나선다. 요번에 잼버리가 쫄딱 망할 것 같으니까 삼성이고 현대고 일반 사람들까지 물 싣고 가서 손발 걷어 부치고 자연히 연출하잖는가. 자연연출이다. 자연히 나온다.
불법에는 사람들이 말세에 와서 중생들이 공부를 안 하면 경전이 용궁으로 돌아가 버린다고 나와 있다. 경전이 용궁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종음성(四種音聲) :네 가지 음성이 나오는데, 여러분 보시기 편하게 제가 줄여놓았다.
① 악행자고(惡行者苦) : 아주 악행자는
무공덕고(無功德苦) : 고통스럽고, 공덕이 없는 고통 때문에
착아아소고(著我我所苦) :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고통 때문에, 좋은 데 태어나고 싶어도 못 태어나는데, 법문 한번 잘 듣고는 한 생각 돌이켜서
욕생인천(欲生人天) :욕생인천이라. 지옥 아귀 축생으로 안 가고 어디로 가는가? 인천승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법문이 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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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중생문이(衆生聞已) :그 중생이 또 그런 법문을 다 듣고 나서 한 단계 수준이 높아졌다
개수선근(皆修善根) : 개수선근이라. 모두 선근을 닦아서 열심히 뭐 하는가?
학성문승(學聲聞乘) : 고집멸도 성문법이다. 사성제를 배워서 성문을 이룬다. 성문을 이루고 난 뒤에 조금 더 수준이 나으면
③문차음성(聞此音聲) : 문차음성하야
학연각승(學緣覺乘): 학연각승이라. 독각승 성문 연각이다.
연각을 하고 그거보다 조금 더 수준이 높으면 네 번째 단계에
④과성문연각(過聲聞緣覺) : 과성문연각이라. 성문 연각을 초과해서 초월해서
갱유승도(更有勝道) :다시 수승한 도가 있으니
명왈대승(名曰大乘) :그 이름을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대승이라고 한다. 대승중의 대승을 일승이라고 한다. 또 불승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냐?
수보살행(修菩薩行) : 보살행을 닦아서
불사보살심(不捨菩薩心) :보살심을 버리지 않고
영리생사(永離生死) : 영원히 생멸법을 떠나서
향무상보리(向無上菩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게 되는 것이 여래 음성의 1번이다.
第二 響聲隨應喩 喩佛無方應現聲
[經文] 譬如呼響因山聲起 無有積聚 不可睹見 隨種種聲 悉能應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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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음성의 2번은 어떤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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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성수응유(響聲隨應喩)라, 메아리가 소리를 따라서 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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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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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호향인산성기(譬如呼響因山聲起) :비유컨대 마치 메아리가 울려서, 그 울림으로 인해서 산에서 일어난다. 원래 산에서는 ‘아’도 ‘어’도 소리가 없는데 울리는 대로 ‘아’ 하면 ‘아’가 되고 ‘어’ 하면 ‘어’가 되지 않는가. 산에서 소리가 일어나나니.
부처님 음성도 그렇다. 부처님 음성은 무음인데 지금 우리가 하는 것도 전부 부처님의 메아리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머리 깎고 이렇게 가사 입고 있는 것도 역대 전등 제대 조사의 그림자이고, 부처님의 메아리이고 그림자다.
무유적취(無有積聚):소리라고 하는 것이 고정적으로 있어서 쌓아놓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가도견(不可睹見): 소리라고 하는 것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쌓아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수종종성(隨種種聲): 그 곡과 장소에 따라서 소리가 날 때마다
실능응대(悉能應對): 실능응대라.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부처님의 음성은 본래 진공의 상태에서 묘유로 우리하고 같이 이렇게 응대해서 설법한다,는 뜻이다.
第三 空聲開覺喩 喩佛敎誡放逸聲
[經文] 譬如天妙音聲 於虛空中 自然而出 悉能覺悟 放逸天子 五欲無常 虛妄顚倒 須臾變異 如逆風執火 愚夫所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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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공성개각유(空聲開覺喩), 공성허공에서 깨우치는 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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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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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천묘음성(譬如天妙音聲) : 비유하건대 마치 하늘에서 묘한 음성이
어허공중(於虛空中) : 허공중에서
자연이출(自然而出) : 자연이출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데 언제 흘러나오느냐?
실능각오(悉能覺悟) : 다 일깨우는데 ‘일나라’하고 알람처럼 한다
방일천자(放逸天子) : 하늘의 천자들, 우리가 지금 하늘의 천자 아닌가? 사실은 스님들 다 천자다. 법 없이도 사니까.
통도사에 가면 마지막 졸업반 때 공부하는 방이 천자각이라고 대교반이 쓴다. 천자가 방일해버려서 방일천자가
오욕무상(五欲無常) : 오욕락이 무상한 줄을 모르고
허망전도(虛妄顚倒) : 허망하게 전도된 줄도 모르고
수유변이(須臾變異) : 잠깐 사이에 쫄딱 변해버렸는데, 머리가 허겁지겁해서 달려들고 방일해서 공부를 안 하니까 마치 공부 안 하는 모습이 어떠냐?
여역풍집화(如逆風執火) : 여역풍집화라. 줄 그어 놓아도 좋겠다. 나중에 유인물 3번 본문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지나온 우리 발걸음이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면 자기 앞으로 바람이 부는 쪽에서 불을 질러버리는가. 그러면 자기부터 홀딱 그슬려 버릴 것이 아닌가.
우부소습(愚夫所習) : 어리석은 사람이 할 바다.
역풍이 불어 드는 것도 모르고 계속 역풍을 안고 산다.
第四 寶女妙聲喩 喩佛法螺圓音聲
謂一音出多音 一一說多法 各隨異類解故也
[經文] 譬如自在天王 有天寶女 名曰善口 於一語中 演出百千 娛樂音聲 於彼一一 娛樂音中 復出百千 娛樂音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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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보녀묘성유(寶女妙聲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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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일음출다음(謂一音出多音)
일일설다법(一一說多法)
명수이류해고야(各隨異類解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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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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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자재천왕(譬如自在天王) : 타화자재천에
유천보녀(有天寶女): 말 잘하는 천녀가 있지 않은가.
명왈선구(名曰善口) : 이름이 선구라. 선구천녀는 이세간품에도 한 번 더 나온다. 이름이 가로되 선구라. 말 잘하게 생겼다. 말을 잘하는데 어느 정도로 잘하느냐?
어일어중(於一語中) : 한마디 말 가운데
연출백천(演出百千) : 연출백천이라.
오락음성(娛樂音聲) : 오락이라고 하는 것은 법희선열이다. 남을 아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했다 하면 남 짜증나게 하고 헐뜯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가?
저도 강의하다 보면 고쳐야 되는데 습관이 되어서 잘 안 된다. 선구천녀처럼 법명을 바꿔버릴까 싶기도 하다.
용학을 띄니까 이름이 안 좋은 거 같다. 방학이 없으니까 이름을 방학이라 해버릴까 싶기도 하다.
오락음성하여 그 낱낱 하나하나에 오락음 중에 무엇을 내느냐? 백천 가지 오락 음성을 낸다.
이것을 옛날 선어록에 보면 신라 대령선사가 이렇게 써 놓았다.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백운화상이 초록한 직지에 보면 우리나라 스님은 딱 한 분이 등장하시는데 신라 대령스님이시다.
‘가지마다 황금가지요
길마다 보배길이다.’
이렇게 써 놓으셨다.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사람 삶에는 그 사람의 말 한마디를 보면 그 사람 일생이 보인다.
자재천녀 선구가 한 말씀 중에 무수한 오락음성을 쏟는다.
남들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한마디 말 중에서도 백천 가지 정성을 모아서 쏟아낸다.
우리는 남이 못들었을까 싶어서 욕도 한 번만 하지 않고, 했던 욕을 또 한다.
第五 梵聲各聞喩 喩佛根熟獨聞聲
不出衆外者 以根未熟故
[經文] 譬如大梵天王 於梵衆中 出梵音聲 一切大衆 無不聞者 彼梵音聲 不出衆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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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범성각문(梵聲各聞)이라.
대범천왕이 범천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범음성으로 음성을 아름답게 낸다.
불출중외(不出衆外)를 내듯이 일체 대중 중에는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지만 근기가 미숙한 중생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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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중외자(不出衆外者)
이근미숙고(以根未熟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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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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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대범천왕(譬如大梵天王): 비유컨대 대범천왕이
어범중중(於梵衆中) :범천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
출범음성(出梵音聲) :범음성으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음성을 좋게 낼 것이다.
일체대중(一切大衆): 일체대중이
무불문자(無不聞者): 바로 귀에서 속삭이듯이 다 듣는데
피범음성(彼梵音聲) : 그 범음성을
불출중외(不出衆外) :못 듣는 사람이 있다. 누구인가? 불출중외라. 근기가 미숙한 사람들, 근기가 덜 익은 사람들, 출중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잖은가? 불출중한 사람들은 제외한다, 이 말이다.
얼마나 억울한가? 문수선원에 똑같이 왔는데 화엄경이 안 들린다. 보청기를 껴도 잘 안 들린다면 그때부터 골치 아프다.
대범천왕이 범천대중 중에서 범음을 내듯이 눈앞에서 법문을 설하듯이 설하는데 일체 대중은 듣지 못하는 사람 없이 다 듣는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해당이 안 되느냐?
근기가 출중하지 못한 사람은 안 된다.
이것은 금강경에도 똑같은 구절이 나온다.
인간세상에 왔으면 잘 살아야 되는데 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느냐?
‘선세죄업(先世罪業)이 응타악도(應墮惡道)라’ 악도에 떨어졌는데 턱걸이해서 겨우 합격해서 인간 세상에 와 놓으니까 ‘세인경천고(世人輕賤故)라’ 사람들이 무시하고 깔본다.
그래도 아상을 내지 않으면 ‘선세죄업(先世罪業)이 즉위소멸(卽爲消滅)한다’ 그랬다.
第六 水隨器別喩 喩佛一異無礙聲
[經文] 譬如水性 皆同一味 隨器異故 水有差別 水無是念 我作衆味 如來妙音 亦復如是 皆悉一味 譬如衆生位如土器 菩薩位如銀器 諸佛位如金器 土銀金等 三種器量雖殊 然一一器中虛空 遍滿平等 無有差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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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여섯 번째는 수수기별유(水隨器別喩)
물이 그릇을 따라서 모양이 다른데, 모양이 다르면 맛도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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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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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수성(譬如水性) : 비유하건대 수성은
개동일미(皆同一味) : 개동일미라. 부처님 음성은 똑같은데, 부처님 마음은 똑같은데, 수성은 개동일미라. 물맛은 한 맛인데
수기이고(隨器異故) : 그릇이 다름을 따른 까닭으로
수유차별(水有差別) : 물의 차별이 다름이 있지만 맛도 차별이 있는가 싶지만
수무시념(水無是念) : 물은 이렇다 저렇다 생각이 없다.
아작중미(我作衆味) : 내가 여러 가지 이 맛도 짓고 저 맛도 짓는다 하는 생각이 없는데
여래묘음(如來妙音) : 부처님께서는 묘한 음성을 나타내지만
역부여시(亦復如是) : 역부여시하야
개실일미(皆悉一味) : 전부 다 한 맛이다.
부처님께서 ‘나는 이 중생에 맞춰서 이렇게 하고 저 중생에 맞춰서 저렇게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는 그냥 했을 뿐이고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다.
그 밑에는 제가 종경록에 나오는 걸 갖다 보충으로 설명해 놓은 대목이다. 이것은 화엄경 설명이 아니지만 지난 시간에 강의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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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중생위여토기(譬如衆生位如土器) : 중생의 위치는 질그릇과 같고
보살위여은기(菩薩位如銀器) : 보살의 지위는 은그릇과 같고
제불위여금기(諸佛位如金器) : 모든 부처님의 지위는 금그릇과 같다.
토은금등(土銀金等) :토기와 은기와 금기 질그릇과 은그릇과 금그릇이 다르기는 하지만
삼종기중수수(三種器量雖殊): 3종기, 세 가지 그릇은 양이 그 비중이 수수라 비록 다르지만
연일일기중허공(然一一器中虛空): 연(然) 그러나 금이 됐든 흙이 됐든, 은그릇이 되었든 금그릇이 되었든, 남녀노소 빈부귀천 어떤 사람이 되었든, 그 그릇이 어떤 모양이 되었든, 어떤 그릇이 귀하든 간에 거기에 담기는 공기, 허공은
변만평등(遍滿平等): 변만평등하여 질그릇에 담기는 허공이나 금그릇에 담기는 허공이나 똑같다.
부처님의 음성은 공기와 같고 물과 같고 무차별이다.
무유차별(無有差別) : 무유차별이다.
第七 龍王降雨喩 喩佛長養善根聲
不從外來者 離佛無聲故 不內出者 離機無聲故
[經文] 譬如阿耨達龍王 興大重雲 滿閻浮提 普降大雨 百穀草木 皆悉滋長 江河池泉 一切盈滿 此大雨水 不從龍王身心中出 而能饒益 無量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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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용왕이 비를 내리는 비유라. 용왕이 비를 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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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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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아뇩달용왕(譬如阿耨達龍王) : 비여아뇩달용왕이
흥대중운(興大重雲) : 크고 무거운 아주 두툼한 구름을 피워 올려서
만염부제(滿閻浮提) : 염부제에 가득히
보강대우(普降大雨) : 큰 비를 내리는데
백곡초목(百穀草木) : 백곡초목이라.
말이 좀 많이 생략되어 있다.
백곡초목이 온갖 곡식이나 숱한 나무나 꽃들이 먹고 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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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실자장(皆悉滋長) : 모두 참 잘 자라게 하는데 그리고 나무뿐만 아니라
강하지천(江河池泉) :강이나 산천이나 연못 같은 것도 비를 내려서
일체영만(一切盈滿) :일체 가득히 물이 찰랑찰랑 넘치게 하는데
차대우수(此大雨水) : 이 대우수는 그렇게 많은 비가 내렸는데 그것은
부종용왕신심중출(不從龍王身心中出) : 용왕의 몸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용왕의 마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신 것도 부처님 마음에서 설하신 것도 아니고 부처님 몸에서 설하신 것도 아니고 인연소생으로 중생을 따라서 거기에 요익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능요익(而能饒益) : 이능요익
무량중생(無量衆生): 무량중생이라.
그런 대목도 여기 몸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하는 대목하고 비교해 보시려면 여러분들께서 야마천궁게찬품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게송 바로 앞 게송이 바로 여기 게송하고 똑같이 나온다.
여래출현품하고 야마천궁게찬품에 그 게송이 나온다.
第八 龍王漸降雨喩 喩佛漸次說法聲 亦是審根授法聲
合中 二一先現身雲 七日思惟 不卽說者 待根熟也 後漸說法 又亦不頓說深法故也 귀한 물건 함부로 내지 않는다.
[經文] 譬如摩那斯龍王 將欲降雨 先興重雲 彌覆虛空 凝停七日 而未降雨 先令衆生 究竟諸業 何以故 彼大龍王 慈悲心故 過七日已 漸降微雨 普潤大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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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점강우유(龍王漸降雨喩)
여덟 번째는 용왕이 점차 점차 수준에 맞춰서 비를 내리는 비유가 있다. 그 부처님께서도 점차 점차 설법의 수준을 높여 가신다는 말이다.
근기와 법을 받아들일 태도를 유심히 살펴서 내린다.
그래서 제가 그 옆에 써놓기를 ‘귀한 물건 함부로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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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에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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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마나사용왕(譬如摩那斯龍王) : 비유하건대 마나사용왕이
장욕강우(將欲降雨) : 장차 비를 내리고자 할 때
선흥중운(先興重雲): 먼저 구름을 올리고
미부허공(彌覆虛空) : 허공을 가득 덮어서
응정칠일(凝停七日) : 비를 내리지 않고 7일 동안 기다린다.
때를 딱 기다려 준다. 올라올 때까지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
행자보고 염불 잘하라고 하면 행자가 염불을 잘할 수가 있는가? 행자가 3년이 되든 5년이 되든 10년이 되든 자꾸 따라 해야 염불이 된다.
처음에 천수경을 염불하면 맞지 않는 음으로 ‘정구업진언’ 이렇게 하고 말지 어떻게 하겠는가?
새까만 떠꺼머리 아이가 와서 배운 것이 있겠는가?
오래되면 듣기 좋은 음률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이렇게 나온다.
이미강우(而未降雨) : 그러나 비를 내리지 않는다. 왜?
선령중생(先令衆生) : 선령중생으로 이렇게 자비롭게. 함부로 말씀하면 골치 아파 죽어버릴까 싶어서 부처님은 함부로 말씀하지 않는다.
구경제업(究竟諸業) : 모든 중생이 제 할 일 다 마치고 난 뒤까지 다 기다려 준다.
하이고(何以故) : 어떠한 까닭이냐
피대용왕(彼大龍王) : 저 대용왕도
자비심고(慈悲心故) : 자비심이 있는 까닭으로 그러니까 네가 따라오든지 말든지, 기관차 혼자 도망가버리고 객차는 안 따라오면 골치 아프다.
과칠일이(過七日已) : 7일이 지나서
점차미우(漸降微雨) : 점차 미세한 비부터 내려서
보윤대지(普潤大地) : 널리 대지를 가득히 적신다. 사람들의 근기를 자세히 알고 부처님께서 법을 주신다.
第九 龍王連注喩 喩佛種種差別聲
謂聲異說異 竝從淨法界流故 無異之異也
[經文] 譬如海中有大龍王 名大莊嚴 或連雨十日 或二十日 或百日 或千日 或百千日 佛子 雨不作是念 我雨十日乃至百千日 但彼龍王 有不可思議 自在力故 或十日雨 乃至百千日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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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용왕연주유(龍王連注喩)라, 비를 내리는 데 있어서 쉼 없이 내린다. 우리가 이렇게 문수강당에서 어른 스님 모시고 공부하면서 10년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10년이 가고, 15년이 가고, 세월이 지나는 것처럼 비를 내릴 때도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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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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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해중유대용왕(譬如海中有大龍王) : 비여해중에 유대용왕하니
명대장엄(名大莊嚴) : 이름이 대장엄이라고 하는 바다 용왕이 있는데 이 양반은 비를 내릴 때
혹연우십일(或連雨十日) : 연우 십일 동안 내리기도 하고
혹이십일(或二十日) : 20일 동안 내리기도 하고 완전히 장마비다.
혹백일(或百日) : 그다음에 100일
혹천일(或千日) : 천일
혹백천일(或百千日) : 백천일 동안 내리는데
불자(佛子) : 불자야
우부작시념(雨不作是念) : 그러면서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도 법문하시면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우십일내지백천일(我雨十日乃至百千日) :내가 10일 동안 법비를 내렸다, 백천일 내렸다, 이런 말씀을 하지 않는다.
단피용왕(但彼龍王) :그러니까 마치 저 용왕도
유불가사의(有不可思議) :다만 불가사의
자재력고(自在力故) : 자재력이 있는 까닭으로 부처님처럼
혹십일우(或十日雨) : 십일동안 비를 내릴 수도 있고
내지백천일우(乃至百千日雨) : 백천일동안 내릴 수도 있고 쉬지 않고 비 내린다. 비는 ‘내가 백일 내렸다 내가 이백일 내렸다 삼백일 내렸다 천일 내렸다’ 여기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도 법문을 하셔도 법문 하신 바가 없다, 이 말씀이다.
부처님께서 미묘한 법을 비 내리고 미묘한 감로정법을 비내리고자 할 때 한두 가지가 아니고, 팔만 사천 음성으로 비를 내린다. 가지가지로 팔만 사천 음성으로 영산불멸(靈山不滅)이라, 영원히 내린다,는 말씀이다.
열 번째는 우리가 아까 봤던 것이다.
第十 龍王遍降喩 喩佛普雨法界聲
喩中 有六 一雲 二電 三雷 四風 五雨 六結 合中亦六
① 先合 十身雲 初總 九別 別中 初四 約外相 次四約內德 後一稱性
②二合 依身雲放十電光
③三合 雷雲中 言三昧者 明依定起說 從所依爲名 十種可知
④四合 風謂將說法時 先從慈悲起後智 警覺加被 令身心柔軟以成法器 然後說法
⑤五合 十法雨 初坐道場菩薩者 是現坐道樹 臨將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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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변강유(龍王遍降喩)라
용왕이 두루두루 비를 내리는데 여기서 5가지 비유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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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운(雲)은 법신 :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법신에 비유하고
②전(電)은 조명(照明) : 번갯불이라고 하는 것은 환하게 비추는 조명에 비유하고
③뢰(雷)는 설법소리 : 우레라고 하는 것은 잡소리를 제거해 버리는 사자후 같은 설법 소리를 이야기하고 법문을 이야기하고
④풍(風)은 자비에서 지혜가 나온다. :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서늘하게 열 받아 있는 마음을 청량하게 씻어서, 번뇌를 씻어서 지혜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까 보았듯이 뢰(雷) 설법하기 전에는 반드시 삼매라는 글자가 들어 있었다.
⑤우(雨)는 법문 : 다섯 번째 비라고 하는 것은 법문, 법우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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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이합(二合)은 의신운(依身雲)하야 방십전광(放十電光)이라 : 법신의 구름을 의지해서 열 가지의 번갯불 같은 조명을 나타내고
③삼합(三合) 뇌운중(雷雲中) 언삼매자(言三昧者) 명의정기설(明依定起說) 종소의위(從所依爲) 명십종가지(名十種可知)
:세 번째는 삼매진동 중에서는 이 삼매라고 하는 것은 의정기설이다. 선정을 의지해서 법을 일으키는 것을 밝힌 것이고 종소의로 이걸 어제 한 바에 따라서 그 이름을 짓는데 10가지가 있다.
④사합(四合) 풍위장설법시(風謂將說法時) 선종자비기후지(先從慈悲起後智) 경각가피(警覺加被) 영신심유연이성법기(令身心柔軟以成法器) 연후설법(然後說法) : 네 번째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장설법시에 장차 법을 설하려고 할 때 선종자비라.
법을 설하려고 하면 우리도 오늘 이와 같은 이런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을 듣는 입장에도 마찬가지이고 어디에 가서 우리가 법을 설하든지간에 일단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오늘 최대한 자비롭게 해야 되겠다, 이래야 되는데 남 헐뜯어버리고 욕이나 하고 이러면 골치 아프다.
선종자비하야 기후지라. 자비를 일으킨 뒤에 지혜를 일으킨다.
선종자비하야 기후지라 경각가피야 가피를 깨닫게 하고 또 가피를 깨달아서 그 몸과 마음이 유연하다. 유연은 삼매심을 말한다. 아주 억세게 치받는 것이 아니다.
유연, 삼매심, 그것을 또 자비심이라고도 한다.
신심이 유연해서 이성법기라.
법을 받을 만한 그릇, 법을 성취할 만한 그릇이 법기를 이루는 까닭으로 연후에 법기가 되었을 때 법을 설해준다
⑤ 오합(五合) 십법우(十法雨) 초좌도량보살자(初坐道場菩薩者) 시현좌도수(是現坐道樹) 임장성불(臨將成佛) : 다섯 번째 법은 처음에 좌도량보살자는 아까 했던 대목이다.
보리도량에 보살이 보리수 아래 앉았다고 하는 것, 시현좌도수, 보리도량의 보리수 아래 나타내는 것은 뭘 나타내느냐? 임장성불이다. 임박했다. 장차 성불이 부처를 이루는 것이 임박했다. 성불이 임박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구름과 번개와 우레와 바람과 비와 이 다섯 가지에 대해서 여래 음성의 비유로 보았다.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보현보살 게송을 이어서 하겠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참전
은사스님과 제자스님으로서의 인연을 끊는다는 이연공고에 대해서 정오스님이 용학스님께도 설명하면서 만만치 않은 반박기사를 내겠다고 하셨는데, 며칠 뒤 그 은사스님이신 성타스님이 열반하셨다는 단체문자가 정오스님의 이름으로 문수경전연구회 회원 앞으로 왔다.
다음날 아침 큰스님께서는 유튜브 화엄법회에서 역경 연수원에서 잠시 같이 수학한 성타스님의 열반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성타스님과 큰 교류는 없었지만, 문수경전연구회를 잘 이끄는 입승 정오스님이 그 스님의 상좌라고 소개하시면서 영결식 일정을 알리는 단체문자를 허락하셨다고 하셨다.
큰스님과 불국사를 검색어로 쳐보니 2년 전에 돌아가신 염화실 회원 바람향기 관음화님이 다음까페 염화실에 한 장 한 장 공을 들여 올려주신 큰스님의 기록들 <拈花室 그림자>중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왔다.
― 1960년도 출가하실 당시 불국사는 어떤 분위기였는지요?
당시 불국사에는 지효스님이 주지였고, 은사가 되는 여환스님이 총무 겸 재무 소임을 맡고 계셨지요. 나는 불국사에서 처음에는 공양주, 갱두 소임을 했어요. 밥할 때는 당시에는 보리쌀을 섞어 먹었으니까 미리 보리쌀을 삶아 또 밥을 했지요. 장작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할 때였으니, 일이 여간 많지 않았죠. 그런데 나는 가자마자 사미계 수계식이 있어 『천수경』도 제대로 외우지 않고 사미계 수계를 받았어요. 열흘도 안 되어 사미가 되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아마 당시에도 매우 드물었을 겁니다.
하여간 행자 생활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미가 되어 바로 불국사 강원에 들어가 「초발심자경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불국사 스님들이 은해사 주지이자 강사였던 진용스님을 초청하여 행자와 사미들 대상으로 강의를 듣게 했는데 거기에 바로 들어갔어요.
-무비스님 인터뷰, 염화실 그림자1 중-
연관 검색이 됐는지 석굴암에 대해서도 나왔다. 2016년 1월 9일에 대만 원도선원 일행분들의 순례를 따라다니며 핸드폰으로 급하게 올린 글이었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더라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
-신라 양지스님-
우리는 과거 수많은 세월을 이렇게 사람으로 왔었다.
그리고 현재도 이렇게 왔다.
미래에도 물론 영원히 이렇게 올 것이다.
사람으로 오는 일은 언제나 서럽고 힘든 일, 슬픔도 많고 아픔도 많다.
그래서 누가 인생을 고해(苦海)요, 화택火宅)이라 했던가.
그것은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같다.
우리 모두가 힘들고 서럽게 살아가고 있다.
서럽고 힘든 인생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공덕을 닦고 지혜를 닦으며 꿈을 갖고 살아야 한다.
달리 무슨 길이 있겠는가. 공덕을 닦으며 살아야지.
-無比스님, 명언명구-
신라 때 영묘사라고 하는 절을 조성하면서 양지스님은 진흙을 지어 나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향가를 지었다고 하지요. 큰스님 법문에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산에서 나는 바람소리가 거친 파도소리 같던 석굴암 가는 길, “공덕무량!” 대만을 잘 아는 스님들이 보시하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기 때문일까요. 이 향가가 생각났어요.
저는 대만 공승법회 때만 해도 공덕을 쌓기 위해 보시하는 것이 조금은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어쩐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하는 보시와는 다른 것 같다고 그때도 회장스님인 정오스님께 여쭈어봤던 기억이 나요. 인과법이라고 하는 부처님 법을 철저히 믿고 법대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불자들의 참된 삶이라고 하셨었죠.
“작은 항아리 속에서 퍼주는 보시는 고갈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 샘에서 퍼주는 보시는 무량하다”라고 오늘 아침에도 천곡사에서 대중들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 마르지 않는 샘을 만나기 위해 경전을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고...석굴암 본존불의 옆면 아래 금판에 새겨진 반야심경 앞에 앉아서 생각했어요.
석굴암에서 생전 처음 유리문 없이 본존불을 만났어요. 발바닥에서 맨들맨들한 돌의 감촉, 금이 간 천개석, 바구니 엮듯 쌓아올린 벽과 높은 벽의 감실마다 들어앉은 부처님들, 십대제자, 십일면관세음보살.....
책으로 티비로 박물관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하듯 그 자리는 실제 어떨까? 상상할 때와 달리 석굴암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니 차분해졌어요.
아까 대만분들을 배웅하러 나간 김해 공항에서 “막상 석굴암에 들어가면 착잡하지.”하고 용학스님이 말씀해 주셨던 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회장스님이 목탁을 잡으시고 불국사에서 올라온 두 분 스님과 함께 석굴암에서 예불을 올렸어요.
- 석굴암 가는 길, <염화실> 영상일기방 -
큰스님은 8월 20일 유튜브 화엄법회에서 새로 탄생하실 부처님을 기다리며 룸비니 동산을 가꾸는 람비니신 법문을 마치시면서 며칠 전에도 언급하신 성타스님 영결식을 다시 이야기하셨다.
‘티비로 생중계로도 보고, 유튜브로도 보고, 영결식을 여러 번 보았다’ 하시면서 이번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고 머릿속에 맴돈다고 하셨다. 꿈에조차 나타났다고 하셨다.
큰스님은 “나는 요즘 몸이 약해 늘 생사를 한순간도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하게 되니까 더 뚜렷하게 그 사실들이 부각이 됩니다. 환하게 드러나는 입장입니다. 그런 상념도 끝내고 열심히 화엄경 한 줄이라도, 한 글자라도, 화엄경 공부하는 인연을 만났을 때 내 무의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한 글자라도 마음에 새기는 것이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더 보람있고 가치있게 느껴집니다.”라고 하셨다.
“저는 제가 살아있음의 의미를 화엄경을 펼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여러분과 같이 공부하는 것, 이것으로써 최상의 의미로 삼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도 8월 18일에도 말씀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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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을 공부하는 일, 허락되는 순간까지 화엄경을 한자한자 새기겠다는 결의를, 일광보살이 비치는, 보이지 않는 검에 날마다 큰스님은 다지시나 보다.
매일 백여 명의 사람들이 실시간 청중이 된다. 서늘하다. 그래도
“이제 좀 더 많은 사람이 참가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큰스님이 물으셨다.
화엄의 갑옷을 입고
지혜의 검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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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보살님, 덕분에 감사합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