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 Albert, Duke of York라고도 함(1920~36). 정식 이름은 Albert Frederick Arthur George. 1895. 12. 14 잉글랜드 노퍽 샌드링엄~ 1952. 2. 6 샌드링엄.
영국의 왕(1936. 12. 11~1952. 2. 6 재위), 인도의 황제(1936. 12. 11~1947. 8. 15 재위).
조지 5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영국 해군(1913~17), 영국 해군 항공대(1917~19), 영국 공군(1919)에서 복무한 뒤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다녔다(1919~20).
1920년 6월 3일 요크 공작이 되었다.
해마다 열리는 '요크 공작의 캠프'(1921~39)를 후원했는데
이 캠프에는
퍼블릭 스쿨(사립고등학교) 남학생과
근로 청소년들이 같은 수로 초대되어
1주일 동안 함께 생활했다.
1923년 4월 26일
스트래스모어와 킹호른 백작 14세의 막내딸
레이디 엘리자베스 앤젤라 마거릿 보즈라이언과 결혼했다.
그들 사이에는
엘리자베스 공주(뒤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마거릿 공주(뒤의 스노든 백작부인)가 태어났다.
형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포기함에 따라
1936년 12월 12일 왕으로 공식 선포되었고,
조지 6세라는 이름으로
1937년 5월 12일 왕위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결속을 주장하고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루스벨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나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유화' 정책을 지지했다.
1940년 5월
하원이 체임벌린의 사임을 결의하자,
조지 6세는 에드워드 핼리팩스(뒤의 핼리팩스 백작 1세)를 총리에 임명하려 했으나
윈스턴 처칠을 선택하도록 설득받았다.
조지 6세는
전시(戰時)에 처칠의 지도력을 아낌없이 지지했으며
여러 전선의 군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조지 6세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독립국이 됨에 따라
인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1949년 4월 27일
영연방 국가들에 의해 영연방의 수반으로서 공식 인정을 받았다.
1948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폐암 수술을 받은 지 몇 달 만에 죽었다.
조지 6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국민의 중요한 상징적 지도자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그의 재위기간은
대영제국이 영연방으로의 탈바꿈을 가속화하고
전후 영국이 복지국가로 전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입헌군주의 책임과 한계를 신중히 지키고
심한 말더듬이라는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존 W. 휠러 베닛 경이 쓴
〈조지 6세:생애와 통치 King George Ⅵ:His Life and Reign〉가
1958년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