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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서를 읽다가 보면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또 역사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과학을 빙자
한 저술들이 많아 지루하기만 하다.이게 자주성과 주체성이 있는 나라의 역사는 맞는가 란 의문이 들
때가 많다.우선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를 차치하고서 라도 근세의 봉건왕조였다는 이씨 조선의 역사서
만 봐도 너무나 나이브 하다.문화적으로 漢字 문화권으로 上國의 지배를 받았던 반도(혹은 대륙조선)
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행동을 한 경우가 거의 없다.19세기 말 대한제국이란 황제국 세워졌
다고 하는데도 그후에 내려졌다는 敎旨나 告身帖의 유흔들을 보면 여전히 청나라의 同治나 光緖帝 년
호를 쓰고 있는 의존성이 있다.즉 上國이자 大國인 황조로 부터 '왕과 세자와 비빈의 책봉' 까지 받아
야 했던 아주 의존적인 나라가 바로 이씨 조선이었다.자주와 주체성도 없었다.
상국에서 군대를 보내라면 내돈 들여서 보내야 했고(1960년대와 70년대 초 월남파병까지) 어디를
상국에서 정벌해야 겠으니 도우라고 하면 나라의 이익과 무관하게 군대를 파병해 도와야 했다.뿐만
아니라 계절별로 특산물을 바치는 朝貢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황조이자 상국의 황제나 황비의 생일
이나 상국의 경축일이 되면 특별 메뉴의 산물을 들고 朝聘도 해야했다.이게 바로 19세기 말 까지 이씨
조선 이란 봉건권력이 했던 주요 업무였다.실록을 읽다보면 이씨왕조란 봉건국가가 나라 주요 일꾼인
일반 백성들이나 국민들에겐 한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권력 가문과 연합 세력들의 행장으로 기득한
허망한 기록을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부르며 金科玉條인냔 여긴다.실제로 읽을 꺼리가 없다.
2, 强者이자 上國에 의존하는 세월이 계속 이어져 오다가 19세기 말이 되면 국내외적으로 일대 변혁
이 오기는(갑오경장등) 하지만,이 역시 강자들이자 제국주의자들의 억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속에서 조선 스스로가 한일이 아닌 타력에 의해 어벙하게 이루워진 일들이다.영국과 미국등
외국들과의 조약체결도 북양군벌 이홍장의 권유에 의해 마지못해 했지 대원군이나 고종,그리고 민씨
세력들 스스로 한일이 아니였다.말로는 독립국이라고 하지만 그 구색에 맞게 스스로 독립적으로 한일
이 없는 것이다.권력부의 권력과 생명을 지켜주는 군인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아 軍亂(임오군란)이
일이나자,이것조차 자체적으로 평정할 능력이 없어 당시의 실세이자 북양군벌인 이홍장에게 청병을
요청하여 휘하 장수였던 袁世凱(위안스카이)를 보내게 했다.
이너 그로 하여금 나라를 잘 감시하라고 감국으로 임명하고 주둔군과 함께 보냈다.즉 원세개를 조선의
총독이자 監國으로 임명되었고 장장 10년을 체류케 하는 의존성이 19세기 말에도 있었다.후에 원세개
가 본국(이홍장)의 훈령에 의해 철수를 하기는 하는데 그것도 청군이 물러나고 싶어서 물러난 것이 아닌
청일전쟁에서 패하여 반도의 관리 주도권이 열도 군벌 세력들에게 넘어가게 되자 어쩔수 없이 청일간
외교적 처리 결과에 의해 물러난 것이다.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청의 이홍장과 열도의 명치유신 군벌
(이토 등)들 간에 건곤일척의 담판의 회담을 할때도 반도의 권력자(왕이나 조정 실세들)들로 구분되었
던 이씨나 민씨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또는 반도를 위해 한일이 없었다.강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이후
의 세월은(청일전쟁과 갑오경장 이후) 곧 일제강점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3, 미 군정을 거친후(1945~1948),한국전쟁 이후(1950~1953) 냉전체제가 공고히 되자 한국은 냉전의
미국의 군사기지가 되어 자연스럽게 미국의 군사 식민지가 됐다.즉 섬기는 주인국이자 종주국이 청나라
-> 일본->미국으로 바뀐 것이다.이런 흐름의 역사를 볼때 반도는 누가 반도의 종주국이자 식민지 모국
이 되느냐에 따라 국내 정치의 흐름이 바다의 심한 파도에 일렁이는 조각배 처럼 심하게 흔들렸다.그
후유증으로 21세기 한국은 아직도 봉건주의 문화나 정신세계가 깊게 자리하여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오직 보신주의(기회주의자들의 세상)와 복지부동만이 자리를 잡게된 것이다.현대의 봉건주의 상징
적 관용구가 바로 '갑질의 횡포' 란 말로 대변된다.지금도 시민이나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이란 헌법 1조는
무시된 체로 자본을 가진 자본가들이 봉건군주 개인 소유의 공동체(나라)란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이 만든 민주공화국이 아닌 삼성공화국이란 말도 그래서 유행하는 것이다.그런데 뭔 500년 전통의
양반들 集姓村이 남한에 그렇게 많다는 말인가? 옛날 양반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이성의 지식인 집단을
말하는 것인데 아직도 이나라는 이성적이지 못한 것에서 과거 역사를 충분히 추론할수가 있다.20세기
벽두에는 러일전쟁이 있었고,이전쟁에서 영국과 미국의 후원을 받은 근대회의 일본이 이겨 전리품으로
반도 점령의 승인을 받았을 때도 반도의 주체세력들과 권력자들은 한일이 없었다.국가나 민족을 위한
저항이 뭔지도 몰랐다.분노와 저항도 할줄 몰랐다.타국 세력들이 들어와 횡포를 부려도 멍청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당시의 실권자 였던 민비를 비롯한 민씨 세력들 조차도 고종의 뒤를 이어 순종이 권력자로
승계받기 위해 쉴사이 없이 이홍장에게 로비 선물(뇌물)을 보냈다는 기록도 외교사로 남아있다.
4,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적으로 조그만한 권력과 이권을 놓고는 내부세력 들끼리는 피 터지게
싸운다.20세기 초까지 청나라의 식민지이자 종속국 이었던 반도는 1910년 이후 일본의 직접통치 식민지가
돠었고,그때부터 '디바이드 앤드 룰' 의해 반도만 나라 이름으로 '조선' 이 선택 되었다.분할통치의 표본이
었다.대륙조선을 나누는 우선순위에 반도가 포함되었다.그후 일제의 36년간 지배를 받다가 일본의 대동아
공영이란 허망한 꿈이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 나자,반도는 다시 미국에 의해 38선이 그어지고 남한은 유엔
군을 빙자한 미군정 3년을 거치면서 미국에 의해 새롭게 디자인 되고 있었다.미국은 반도의 남한을 '식민지,
기독교국가'로 만들여 했었다.그들이 집권한 군정 3년 동안에 영어를 할 줄알고 미국을 유학한 기독교인들
이 득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일부는 나중에 사상적으로 문제가 많았던(남노당 활동 전력)박정희가 군사쿠테타로 권력을 잡았을
때,적극적으로 나선 주류들이 바로 일제강점시대 신사참배를 자진해 솔선수범 했던 개독교 세력들 이었다.
박정희를 미국이 인정을 하지 않자 그들은 瑕疵 많은 박정희를 도와 자신들의 종교 권력과 이익도 추구하기
위해 자비로 미국까지 날아가 박정희를 지도자로 인정해 달라고 로비를 한적도 있었다(한경직,김활란등등)
'38선도 6,25 한국전쟁도 미국의 작품이다' 란 저술 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후 반도는 美蘇에 의한 냉전
구도의 최초 실험장이 되어 한국전쟁이란 환란의 3년이란 고초 세월을 보내게 된다.이후 한국이란 나라는
더욱 가난해져 더 미국에 의존했고1957년까지 나라 예산의 50~70%를 미국에 의존 해야만 유지될수 있었던
비참한(거지) 나라가 되어 버렸다.이제 겨우 밥을 먹게 되었는데,그런데 다시 그들의 일방주의와 우선주의에
의해 새우등 터지게 생겼다.
5, 그래서 인지 한국의 민주주의 반동 세력들이자 반란 세력들은(군부)권력 탈취의 쿠테타를 모의 할때
가장 신경쓰는 존재가 바로 식민지 모국이자 上國인 미국(한국은 미국의 군사식민지)이고 이들의 승인을
받아 내는것에 목숨을 건다.연줄이란 연줄은 모두 동원하며 안간힘을 쓴다.1980년 5,18 광주에서의 비극
도 결국은 한국군에 대한 평시와 전시의 작전통제권 모두를 가지고 있으면서,군대의 이동 권력까지 가지고
있었던 있었던 미국(미군)의 승인을 전두환,노태우 반란자들이 받아낸 것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이들은 우리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과시 한바 있다.그후 미국은 한국에서의 인기가 곤두박질
쳤다.이른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적폐로 미국이 새롭게 등장했던 것이다.
미국의 군부는 군사복합체(무기장사과 돈장사들)들이 통제하고 밀리터리 비즈니스의 선봉장 들이다(미국
엔 군산복합체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400만 명이나 있다).2017년 3월초 전후로 한국의 국군기무사가 기획했
다는 명분없는 '위수령,계엄령(전시계엄)' 시도 역시,권력을 잃기 싫어하는 기꼴 보수들과 군부가 연합한
기획품 이었을 것이다.문건에서 나오는 것 처럼 이들도 미국의 승인을 받으려 했으나 아마도 미국의 군부
와 조야가 ' NO' 를 한것으로 보여진다.이유는 미국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더 많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어 CIA 한국지부가 부패한 기득세력들과 군부쿠테타의 정보를 미리 세상에 흘려 간접적으로 미국이 반대
표시를 함으로서 헙법재판관 들에게 소신 판결(파면)을 암묵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보여진다.
6, 쿠테타 동조 세력들 중에는 3,1절 기념 행사등에'성조기,십자가,이스라엘기 등을 들고 설쳤던 무지한 종교
세력들도 들어가 있다.그네가 헌법재판소에서 8:0의 파면이 이루워 질때 그네와 그의 추종세력들은 기각을
확신 했었다고 한다.그래서 항간에 떠도는 얘기로는 기각 축하 5단 케익까지 준비 했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그도 그럴것이 헌법재판관 중에는 그네가 임명한 헌법재판관이 3명,그네의 꼬붕인 대법원장 양승태가 추천한
재판관이 3명이었고,또한 당시 그네당이기도 한 여당이 추천한 재판관이 1명이 있었다.그렇다면 권력 향유
구조상 상식적으로 탄핵의 기각 확율이 높았다는 것은 허황되거나 거짓이 아니였다.그래서 부자지간 끼리도
나누지 않는다는 권력의 속성을 잘아는 그들은 계엄상태를 기다리면서 일을 꾸미며 대기하고 있으면서 거사
의 타당성과 시기를 저울질 하면서 검토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런데 이런 국가적 반란과 같은 일을 막으라
고 국정원과 기무사 같은 정보조직이 두는 것인데,이들이 반역을 솔선 한다면 이들은 3대를 멸해야 당연한
것이다.이들은 백색테러를 획책하는 기술자들도 보유하고 있는 조직 들이다.그랬다면 우리는 2017년 3월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슬펐던 그림을 다시 보아야 하는 역사의 경험을 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피 터지는 친위쿠테타 환란(계엄)을 막은 이들은 한국의 上國인 미국이 주연이고,한국의 헌법재판
소 재판관들이 조연을 맡았다는 말이된다.그래서 끽소리 못하게 8:0으로 처리케 했다.
7, 요즘 한국의 언론이나 국회에서 또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에서 보듯이 한국은 청와대 권력하나 바뀌
었을 뿐이다.'국회,법원,기레기,재벌,똥별의 군부' 등등 사회기득층 세력들은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여전
히 위용을 자랑하면서 사회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특히 쿠테타란 내란음모 사건을 막고 사전에 밝혀야 할
군기무사에서 그것도 위중한 사태로 봤다는 조직원들도 있다.그런데 당시 쿠테타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들이
자 주모자들은 여전히 요직에서 똥별을 달고 있다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이다.그런데 일개 육군준장과 대령이
공개석상(국회)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의 대리인 국방장관에게 기어먹고 개기는 하극상 현상을 보면
서 한국의 군대(특히 육사출신의 성골 똥별들)는 틀렸다고 생각을 했다.이들은 지금 문재인 정부를 인정하지
못할뿐만 아니라,국군통수권자에게 정면으로 개긴 것이다.단지 표현을 국방장관에게 한 것이다.이들은 나라
의 특수한 국민이자 군인으로 착각하고 있는듯 하다.대수술이 필요하다.이런 조직은 없에는 것이 해답이다.
이들의 뒤에는 그동안 기득층의 영화를 누렸던 세력들이 主로 있겠지만 이들을 호위하고 방호하고 있는
세력들 중에는 2017년 3,1절 행사시 '성조기,십자군기,십자가,이스라엘국기' 를 흔들면서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고 전단지를 들고 외친 개독세력들도 들어 있다는 것도 잊지말다.
첫댓글 4번조항의 글들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열심히 역사를 사랑 합시다...
@상선거사 네..선생님때문에 역사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사주학에서 역사학으로..ㅋㅋ
@송계 잘하셨습니다.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