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부동식(同耕不同食)
원래 유교사회에서는 나 같은 직업의 종사자를 팔천업(八賤業:여덟가지 천한 직업)의 하나에 포함시켰다. 좋게 말할 때는 술객(術客)이라 부르지만 백정 등의 서열에 놓고, 복자(卜者)나 점쟁이니 하며 인간대열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세도정권 시절 장안의 내노라는 대가댁에서 술객을 불러 궁합이나 신수를 보게 하고는 비밀이 누설될까 두려워 죽이고는 베자루에 넣어 돌을 매달아 한강에 집어던졌다는 야사도 전한다.
그러나 이렇게 천대받던 술객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고전에는 요샛말로 인간의 애환을 리얼하게 표현한 명구가 대단히 많다.
사언독보(四言獨步)니 오언독보(五言獨步)니 하는 단어집 가운데 동경부동식 (同耕不同食)이란 글귀가 있다. 불과 다섯 글자밖에 안 되는 단어 속에는 불가항력적인 인간의 숙업이랄까, 필연 법칙이 담겨져 있다.
동경부동식이란 밭갈고 씨뿌리며 함께 열심히 일했는데, 추수해서 떡빚고 술담가 먹을 때가 되니까, 어느 한쪽은 먼저 가버려서 함께 먹지 못하고 홀로 먹는다는 뜻이다.
강원도 추곡(楸谷) 약수터에 자주 다니던 시절, '이런 경우가 바로 동경부동식에 속하는 구나' 하며 감탄하게 한 부부가 떠 오른다.
50대의 박사장. 그는 10대 말에 무작정 상경해 청게천 지하상가 미싱공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문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봉제공장을 두 세 군데나 만들어 놓고, 아무개 하면 알아줄 정도의 수출업자가 됐다.
그러나 누적된 과로는 건강을 무너뜨렸고, 간경변으로 고생하다가 추곡 약수터에 정양차 오게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사장 부인은 몰관성(沒官星)에 일시상충(日時相沖)하는 사주였다.
어차피 그녀가 일주종사하지 못할 것 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박사장이 그렇게 쉽게 세상을 떠날지는 몰랐다. 벌써 7년전의 어느 가을이었다.
지난해 가을 그 박사장 부인이 어떤 40대 중반의 남자를 데리고 궁합을 보러 역문관을 찾았다.
어느 유행가 귀절처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내 앞에 와 앉아 있는 박사장 부인. 그녀의 싱싱한 모습 위에 오버랩되는 박사장의 초점 잃은 눈동자. 아! 이것이 동경부동식이구나. 골목마다 허구 많은 게 술객인데, 왜 하필이면 옛 남편의 선배인 나를 찾아 왔단 말인가.'
부탁대로 궁합을 보니 그 남자도 장수하는 사주가 아니었다.
저 여인의 일시상충 때문 이었을까? 궁합이 별로라는 말에 쓸쓸히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또다시 동경부동식을 되뇌었다.
명막도어오행(命莫逃於五行), 사주팔자는 도망 못 간다더니, 어째서 지금 데리고 나가는 저 남자도 단명격이란 말인가.
도화살(挑花殺)
명심보감에 이런 구절이 있다.'사람은 백년을 살지 못하는데, 공연히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 (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 유한한 인생에서 아쉬움이 없는 때가 있으랴마는 봄은 특유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설레이게 한다.
지루한 겨울의 끝에 찾아오는 따사로움과 산하에 만발하는 봄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삶의 욕구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인생과 봄날은 즐기기에는 너무나 짧다.
시선(詩仙) 이백도 복사꽃 우거진 동산에서 쓴 ' 춘야연도이원서'(春夜宴桃梨園序)란 글에서 "부질없는 인생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그 얼마이던가?"라고 읊었다.
명리학에서는 남녀관계를 복숭아에 비겨 도화살이라 칭한다.
명리의 고전 금오결(金烏訣)에 의하면, 도화는 각가 희기에 따라 양지도화(兩枝挑花), 쌍도화, 절삽(折揷)도화, 양인(羊刃)도화, 홍염(紅艶)도화, 태공(太公)도화, 대살(帶殺)도화, 석불(石佛)도화, 세류(細柳)도화, 화중(畵中)도화, 패옥(佩玉)도화 탈진(奪眞)도화 등 12가지로 분류된다.
양지도화는 의미 그대로 양 가지에 핀 복사꽃으로, 자칫하면 쌍도화와 혼동하기 쉽다.
차이점이라면 양지도화는 두 집 살림을 하기 일쑤고, 쌍도화는 삼각관계에 놓이기가 쉽다. 절삽도화는 꺽어다 꽂은 도화다. 복사꽃은 열흘을 피어있기가 힘든데 꺾어다 꽂으면 더욱 쉽게 시드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절삽도화는 순각적으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남녀사이 같은 것이다. 양인도화는 난봉꾼이다. 남녀관계가 문란하며, 남의 남편을 가로채고도 수치심을 모른다. 홍염도화는 탐스러운 미모의 도화다.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해, 보는 이로 하여금 취하게 만든다. 굳이 예를 들자면 모델이나 미스 코리아에게서 많다. 태공도화는 위수(渭水)에서 문왕을 기다리며, 80년을 낚시질로 보낸 강태공의 고사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태공도화는 단발머리 소녀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상대방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대살도화는 살(殺)을 끼고 있는 도화다. 살을 끼고 있으니 가까이 하면 사람이 상하기 마련이다. 어느 국회의원의 가슴에서 금배지를 떼어낸 것이 바로 이 대살도화였다. 석불도화가 있는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돌미륵처럼 건장한 상대를 좋아한다. 반면에 세류도화가 있는 사람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매끈하고 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화중도화는 화중지병(畵中之餠)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런 사람은 상대자가 TV나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 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 쉽다.
패옥도화는 구슬을 허리에 찼다는 말인데, 여자로 인해 부귀를 얻거나 처덕으로 재물이 생기는 경우다. 탈진도화는 고약한 도화다. 상대의 진기를 다 빼앗고 결국은 패가망신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왜 선학들은 남녀관계를 많은 꽃중에 하필 도화에 비겼을까? 그것은 첫째 복숭아라는 과일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복숭아의 표면에는 까끌까글한 털이 있어서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도화가 의미하는 것이 대부분 정상적인 남녀관계가 아닌 것을 볼 때, 복숭아 알레르기를 남녀관계에 비겼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복사꽃의 색깔이다. 봄날 만발한 복사꽃은 분홍의 자태를 뽐낸다.
지금도 사람들이 연애의 색조를 흔히 '핑크빛'에 비기 듯, 복사꽃은 핑크빛 분위기를 상징한다.
셋째는 복사꽃의 부질없음이다. 복사꽃운 봄날의 어느 한 때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지만 미처 열흘을 지나지 못한다.
빼어난 자태에 감탄하고 있자면 어느새 낙화로 분분히 흩날리며, 청춘의 한 순간처럼 숨돌릴 틈없이 사그러진다.
아마도 복사꽃의 이런 성질과 불장난같은 남녀의 연애가 갖는 공통점이 도화살이란 의미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절개를 중요시하던 옛 선비들은 도화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송죽(松竹)의 기상보다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풍류라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방랑시인 김삿갓은 도화의 부질없음을 이렇게 말했다. '복사꽃과 배꽃은 한 때의 봄날이지만, 푸른 송죽은 만고의 절개로구나' (紅桃白梨一年春 靑松綠竹萬古節).
매맞는 사주
'발길로 차려무나, 꼬집어 뜯어라~'하는 '꼬집힌 풋사랑'이란 노래가 있었다. 곡목도 그렇거니와 가사도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일제 때에 꽤나 인기를 끌던 노래였다.
요즘도 나는 그 노래를 생각하면 묘한 상념에 젖어든다. 왜냐하면 여자에게 꼬집히는 남자의 사주가 따로 있을 뿐 아니라, 그 노래 가사의 구구절절은 명리학에서 어떤 유형의 사주풀이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TV에서 매맞는 아내의 실태를 심도있게 다룬 프로를 본 적이 있다. 한양대 김광일(金光日)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남편에게 구타당한 여성의 25%는 골절상 등 3주 이상의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여성 단체는 학력이 높을 수록 맞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 바도 있다.
가정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사주에 '매맞는 팔자'가 따로 있는데 고약한 팔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자는 남편한테 얻어 맞고, 남자는 여자에게 꼬집히고 할키우게 된다.
내가 근 30년 세월을 임상한 결과로는 매맞는 사주의 유형이 몇 가지 있지만, 그 중에도 괴강봉충(魁강逢沖)한 사주가 제일 많이 맞고 산다는 것이다. 괴강이라 함은 육십갑자중에서 경진(庚辰),임진(壬辰),무술(戊戌),경술(庚戌)의 네 가지를 말하며, 사주의 연 월 일 시 어느 곳에 있어도 괴강으로 보는데 일주 (日柱)에 있는 괴강이 제일 강하다 이러한 사주가 신약하고 형충파해를 당하면 이상한 화를 당하게 되는데, 형충을 당하는 곳이 배우자의 자리이면 여자는 남편에게 매를 맞고 남자는 여자에게 꼬집히게 된다는 것이 명리학적인 해석이다.
반대로 신왕한 사주는 상대방을 때리고 꼬집게 된다.
쉽고도 간단한 이론이지만 실제 임상에서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친구들과 잘 다니던 한남동의 어느 요리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처음 보는 여자가 음식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그 집에 온지 며칠 안 되었다고 한다. 마침 만세력을 가지고 있던 참이라 그 여자의 사주를 보았더니 바로 괴강봉충하는 사주였다.
"자네, 남편한테 매맞다 왔지?" 했더니, 금새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도망치 듯 나간 후 다시는 들어오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괴강사주에 관한 이론은 일본의 대가였던 아베(阿部)의 이론이 가장 자세하다. 그에 의하면 괴강사주의 특징은 바로 성격에 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선적이며, 어디에서건 반드시 자기만이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는 기질이다.
이러한 괴강사주가 격국이 잘 구성되면 지배자로서 부귀도 누리지만, 파격이 되면 매사에 트집잡기나 좋아하고 이겨야 직성이 풀리며, 상대를 미워해야 밥 먹은게 소화되고 미워할 대상이 없으면 옆집 강아지라도 걷어차는, 말하자면 놀부같은 성격 파탄자가 된다.
여자는 미어선소(未語先笑)라 하여 말보다는 생글생글 눈웃음이 앞서며 교태가 만점이지만, 본성은 남편의 말을 일단 무시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성격상의 결함을 타고난 사주가, 배우자궁이 형충을 당하게 되면 상대방을 때리거나 맞게 된다는 것이 명리학적인 해석인데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논리이다.
'성격은 운명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뒤집어서 해석하면 성격을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본다는 말이다.
원만한 성격은 인생을 원만하게 살아가고 모난 성격은 모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결국 때리고 맞는 팔자는 성격상의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 데어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운명'이라고 할 때의 '운(運)'은 동적이며 가변적인 것을 의미하고, '명(命)'은 정적이며 고정 불변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명이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스스로 창조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명운'이라 하지 않고 '운명' 이라고 조어(造語)하여 '운'자를 앞에다 놓고 쓰는 이유도 인간이 부단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 박재완 선생님께서 일찌기 「환혼동각론」(幻魂動覺論 - 사주 이전에 개인의 운명을 지배하는 네 가지 원칙)을 말씀하셨는데 이 중에서 '각(覺)'이 바로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인내와 겸양을 갈고 닦으면 때리고 맞는 불행한 일이 생길 리 없다. 그래서 나는 궁합을 보러오면 좋은 궁합이라 하더라도 사주를 보고 남녀의 인성 (人性)을 먼저 파악한다.
명리로 예측할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성격적인 문제를 미리 알려주고, 보잘 것은 없지만 칠순을 앞둔 나이에서 그동안 살아오며 보고 느낀 경험을 섞어 조언해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기는 커녕 새치머리도 나기 전에 서로 때리고 꼬집어 뜯는 부부가 있다고 하는데, 이유가 어디에 있건 부부싸움에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될 말이다. 참다운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심각한 불화가 있는 가정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부부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온 것이다 (夫妻因緣宿世來)'라는 적천수의 구절을 다시 한번 상기 해 본다.
관(官)과 살(殺)
어느 파자(破字)책에서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갓머리 밑에 입 구(口)를 두개 겹쳐놓은 것이 벼슬 관(官)이기에, 갓 쓰고 앉아서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살(殺)은 사람 인(人) 밑에 나무 목(木)울 하고 칠 수(?)를 합쳐 놓았다. 즉 사람을 나무에 매어달고 볼기를 친다는 의미, 즉 죄지은 자에 대한 응징의 뜻이다.
명리학에서는 나를 극(克)하는 것을 관(官)이라고 부른다.
금목수화토, 오행의 음과 양이 조화된 것을 정관, 조화가 안된 것을 편관 도는 살이라고 보른다.
관을 현대적 의미로 보자면 권력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느끼듯이 권력은 많은 부분에서 생활을 규제한다.
권력은 개인의 욕구와 비리를 절제시킴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시켜 준다.
무릇 권력이란 상명하복의 상하체계로 상위 권력의 명령에 복종하고, 하휘 권력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임을 발휘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아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면, 재앙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다.
즉 통제력을 잃은 권력이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와 같은 것이다.
오행은 우주의 자연법칙을 인간 세계에 투영해 놓은 위대한 학설이다.
우리가 느끼는 권력의 측면도 관과 살이라는 두 개념으로 투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권력을 크게 나누면 붓과 칼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붓이란 백성을 교화 선도하는 것이고, 칼이란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를 응징하는 의미다.
명리학에서 분류한 정편관은 문(文)과 무(武)란 권력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정관은 붓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정관이 있는 사주는 교육자 행정관이 많다. 반면에 편관은 칼의 의미를 갖는다.
편관의 또 다른 이름인 살은 편관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편관의 소유자는 검경(檢警)계통이나 군인들이 많다. 그러나 정관도 많으면 관다위살(官多爲殺)이라 하여 살로 변한다.
이것은 마치 권력이란 집중될 수록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간섭이 심해지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여자 사주는 이관위중(以官爲重 - 관으로써 중요함을 삼는다) 이라 하여 남편을 뜻하기 때문에 남편인 관성의 희기(喜忌)를 찾아내면 당사자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던 시절, 남편은 여성에게 복종의 대상이자 사회적 신분을 가늠해주는 척도였다. 남녀평등이니 여권신장이니 하여 요즘도 여비서가 핸드백을 들고 따라다니는 사모님족들은 거의가 일관독청(一官獨靑), 하나의 관성이 독야청청하다.
사주에 관과 살이 동시에 투출되어 있는 것을 관살혼잡이라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꺼린다. 관과 살이 혼잡되면 어느 한쪽의 통제를 받을 수 없기에 지조와 인내력이 부족하다. 남자의 경우에는 통제의 대상이 없으므로 섬기는 선배나 스승에 복종하지 않고, 여자의 경우는 남편을 잘 모실 줄을 모른다.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란 도덕율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관살혼잡의 특징은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인내부족으로 한가지 일에 오랫동안 종사하지 못함은 물론 지조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쩌다 좋은 운이 오면 간혹 금배지를 달고 으시대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 지조나 신의가 부족해서 정치 철새로 이당저당을 떠 돌아다니기 일쑤다.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란 재앙을 부르 듯, 사주에 관살이 나타나 있으면 반드시 제어되어야 한다. 제어되지 못한 관과 살을 살현무제자(殺顯無制者 - 살이 나타났으되 제어되지 않는 자)라 하여 명리에서는 천격으로 분류한다.
제어되지 못하는 권력, 정당하지 못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반드시 재앙을 만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시대의 역사를 통해 많이 보아 왔다.
지금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지조와 정의를 망각하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다면 그는 고결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천민(賤民)일 뿐이다.
사주유전설(四柱遺傳說)
모든 생물은 자신이 가진 특성을 자식에게 유전하여, 자신의 닮은 꼴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부모의 특성이 자식에게 유전된는 현상에 대하여 예로부터 궁금하게 생각해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이런 의식을 반영한 속담이고, '죽원생죽 난원생란'(竹園生竹 蘭園生蘭 - 대나무 정원에서는 대나무가 나고, 난원에서는 난초가 난다.)이란 말은 유전에 대해 언급한 「연해자평」이라는 명리학의 고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근세에 와서 오스트리아의 신부 멘델(1822~1884)은 유전에 대해 보다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멘델은 완두콩을 재료로 유전의 원리를 밝혔는 바 이것을 멘델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법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유전자는 대를 거듭해도 다른 유전자와 혼합되지 않고 특성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와서 일본에서는 명리학이 사주를 기반으로 운명을 미루어 판단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시도했다. 그리고 부모가 지닌 사주가 일정한 격국의 형태로 자식에게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주 유전설을 주장했다.
실제로 이 학설은 많은 사람에게 적용된다.
나라의 촉망받는 인재로써, 한참 일할 나이에 아웅산에서 사망한 S씨. 그의 딸마저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으니 얄궂은 운명의 유전이다.
모 재벌그룹의 총수는 사주의 격국이 시상편재격으로 평생 국부(國富)의 자리에서 영화를 누린 사람이다.
손자를 보았으니 이름을 지어 달라고 역문관에 들렀기에, 사주를 보니 손자 역시 시상편재격으로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3대가 재벌인 셈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우리의 살 길은 오직 유신밖에 없다고 설치며, 정권의 나팔수를 자청했던 Y씨..., 그는 관인상생격의 사주로 권력의 요직에서 부귀를 누릴 사람이다. 박정권의 붕괴 이후에도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해서 재빠르게 신군부 세력에 붙어 언론정화 사업에 참가하고, 수많은 언론인을 해직시키면서 여전히 권직을 누렸다.
그의 손자 역시 할애비와 같은 관인상생격으로 부귀한 운명을 타고났다.
역문관에 드나들던 사람 중에 최oo 라는 여인이 기억난다.
좌하식상에 일시상충하여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대포집을 하면서 어린 남매를 키웠다.
타고난 성품이 착해서 과음한 취객에게는 술을 더 팔지 않고, 차에 태워 집에 보내기까지 하였다. 얼마 전 착하게만 살아온 그녀가 외손녀를 보았다며 이름을 지으러 왔다. 복을 받아 마땅한 손녀의 사주는 할머니와 비슷한 좌하식상이었다.
주역에는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 선함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자손에게 경사가 있고, 선을 쌓지 않는 집에는 반드시 자손에게 재앙이 있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신정권의 나팔수들이나 재벌그룹의 총수들은 대를 이어가면서 부귀영화를 세습해가고, 일생동안 모진 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가는 민초들은계속해서 삶에 찌들어가는 사회현상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선악설에 입각한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쪽은 부귀를 추구했던 사람이고, 복을 받아야 하는 쪽은 순박한 민초들이다.
그러나 사주 유전설은 이에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옛 어른들은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꾸짖었었다.
그런데 만약 하늘이 인사(人事)의 정의를 담지 못한다면 하늘도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함을 쌓았기에 복을 받는 것, 악을 행했기에 재앙을 받는 것은 애석하게도 그렇게 됐으면 하는 사람들의 '바람'인 것이 현실이다.
하늘의 뜻을 현실에 반영하는 것은 인간이다. 결국 악한 자에게 화를 안겨주지 못하고,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인간도 잘못되고, 하늘도 잘못된 까닭이지 않은가?
속담에 이르기를 '인심즉천심(人心卽天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숙하지 못한 천도(天道)를 바로잡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 숙제일 것이다.
천량론(天糧論)
흔히 이르는 하늘이란 말 속에는 땅과 구별되는 하늘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쓰이는 개념이 진리와 숙명으로서의 하늘이다. 불의한 사람을 보고서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고 꾸짖을 때 통용되는 의미는 진리로서의 하늘이다.
하늘은 한치의 어긋남 없이 우주를 운행하기 때문에 누구도 속이지 않는다.
하늘의 이치는 어김없는 진리와 통하기에, 천도(天道)란 진리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숙명으로서의 하늘은 서릿발같은 의미가 있다.
옛날 죄를 범하고 의금부로 끌려가쓰는데, 금부도사가 나와서 "천명을 거스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하고 호령을 했다면 죄인은 실로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천명은 거스리지 말아야 할 영원한 금기인 것이다.
천량(天糧)이란 하늘이 내려준 양식이란 뜻이다.
천량 속에 들어있는 하늘의 개념은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숙명으로서의 개념이다. 좀 쉽게 말하자면 '너는 일생동안 쌀 몇 가마, 고기 몇 근을 먹어라'는 식으로 하늘이 명했다는 것이다.
도가 서적에서 천량에 관한 기록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후세 사람들에게 절약 정신을 가르치려는 엄포이겠거니 하고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의 잇따른 죽음을 보면서, 천량이란 섣불리 스쳐 지나갈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나 '유태상인'이란 별명을 지닌 외삼촌이 한 분 계셨는데, 외삼촌께서는 충청권 일대의 경제를 좌우할 만큼의 재력가였다.
노년에 들어 중풍으로 몸져 누워 자리 보전을 하게 되었는데, 병 수발이 귀찮던 며느리가 진지를 제대로 드리지 않아 나날이 쇠약해지시더니 급기야는 종이장처럼 말라서 작고 하시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은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박 사장이었다.
호방한 성격에 술을 즐겨 마시던 박 사장은, 위암 판정을 받고는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젓가락처럼 야위더니 결국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두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사람의 먹을 것이 한정되어 있다는 천량론이 무섭게 느껴졌다.
천량의 이론에 의하면 사람의 식록이 다하고 나면 하늘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교에서는 소식(小食)을 권하고, 절약할 것을 강조한다.
자신의 식록이 정해져 있는데, 먹을 것을 함부로 버리거나 과식하게 되면 나중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병 사망의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인 암(癌)은 [병질 엄] + 品 + 山의 결합이다. 입으로 산같이 먹어서 걸리는 병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천량을 낭비해서 걸리는 질병이란 뜻이다.
관상의 고전 중에 「신이결(神異訣)」이란 책에는 여인의 72가지 천격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도 먹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 '음식무진(飮食無盡)'이란 구절로 기재되어 있다. 음식무진이란 먹는데 끝이 없다는 뜻으로 과식을 경계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양은솥째 끌어 안고 먹어대는 것은 천상(賤象)이란 의미다. 하긴 그렇게 천량을 소비하는데 어떻게 천상이 아닐 수 있겠는가?
천기도용죄(天機盜用罪)
얼마 전 미국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냈다는 기사를 봤다.
이제 우리는 유형의 물질 뿐만 아니라 지식 같은 무형의 것들도 엄연한 재산으로 인정하여, 그 소유권자의 허락없이 사용할 경우 범죄가 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잇는 것이다.
남의 노래 몇 소절을 베껴내어도 표절이라고 하여 가요계에서 내몰린다.
하물며 하늘의 이치. 즉 천지 조화를 몰래 훔쳐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사할 리 없다. 이를 천기누설이라고 하는데 이것에도 경중(經重)이 따로 있다.물론 술객들이 천기를 누설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사항은 아니다. 천기를 누설했다고 해서 구속이 된다거나 감옥에 갇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천기 도용 경범(經犯)에 속한다.
그러면 천기도용죄(天機盜用罪)의 중범(重犯)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천기(天機)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천지 조화의 기밀'이라고 나와 있다.
기밀이란 말 그대로 알려져서는 안 될 중요한 비밀을 일컫는데, 다른 것도 아닌 하늘의 기밀을 바깥으로 새나가게 하는 천기누설.... 그것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중범으로써 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기밀에도 엄연히 급수가 있는 법, 누설해도 괜찮은 것과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누설하지 말아야 할 기밀을 누설하는 것이 천기도용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가령, 일기 예보 같은 것은 천기누설에 해당되지만 천기도용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내일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겠다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미리 세상에 알려줘서 모든 중생들에게 고루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굳이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천기도용죄에 해당 될까?
거의 50여년 전의 일이다. 나의 스승이신 도계 선생님께서 충북 옥천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친정 집에 머무신 적이 있었다.
당시 선생님은 여학교 세라복을 입은 육 여사의 사주를 보고 몇 살이 되면 국모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하셨다 한다.
이후 육 여사와 도계 선생님의 친분은 육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되어 왔는데, 그러한 두 분의 밀접한 인연으로 미루어 보면 박정희 장군 과의 궁합도 선생님이 봐 주셨을 것이고, 심지어 5.16쿠데타 택일까지도 도계 선생님 작품이라고 짐작된다.
이 대목에서 성질 급한 독자들은 대뜸 무슨 근거로 그런 허황된 소리를 하느냐고 언성을 높일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나의 개인적인 추측만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가설이 성립 될 수 있을까?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이 한강을 건너오던 때는 신축년 계사월 기유일 병인시이다. 이것을 가지고 박정희 장군의 사맹격(四孟格)에 맞추어 보면, 왕상휴수(旺相休囚)는 물론 생기 복덕이 제대로 일치한다.
이것은 대가(大家)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랜 망설임 끝에 나는 큰 마음먹고 선생님께 질문하기로 했다.
5월 16일의 일진과 박정희 장군의 사주와의 일치를 말하면서, 혹시 선생님께서 '쿠데타' 날짜를 택일하신 것 아니냐고 여쭈어 봤더니, 선생님께서는 "자네는 어찌 그리 경망스러운가?"라고 하며 노발대발 성을 내시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선생님의 진노는 대단하셨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나타낸다고 했던가.
나는 자리를 물러나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이 택일하신 것이 틀림없다고....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도계 선생님과 육 여사의 친분은 계속 이어져서, 매년 정초가 되면 선생님은 꼭 서울에 올라가 그들의 운세를 봐주고 상담역을 해 주시곤 하셨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정초가 되어도 선생님은 서울에 올라가실 생각을 하시지 않는 것이었다. 왜 서울에 올라가지 않으시냐고 묻자, "뭐 서울에 갈 일도 없고..."하시는 것이었다. 육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저격 당하던 바로 그 해였다. 아마도 더 이상 천기누설을 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 하셨음이리라.
무정세월 30여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그 제자에게 또 다시 천기누설을 강요한다. 아무개 사주를 아시나요? 아무개 부인이 다닌다면서요? 경제가 망하건, 한보파동에 동네 강아지까지 웃건 말건 이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들의 지속적인 영화 뿐이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가 흉계를 꾸미던 시절, 권람과 한명회의 아낙네들은 장안의 이름난 술객 홍계관을 찾아 다니며 거사의 성공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세정(世情)은 변해도 인정(人情)은 불변인지, 지금도 정권이 바뀔 때면 술객을 찾는 사모님들이 여전하다.
권람이나 한명회의 부인들처럼 권력의 향방을 묻는 개기름 흐르는 사모님들은 아무도 없는 새벽이나 밤 늦은 시간에 은밀한 독대를 원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일까? 나 역시 선생님처럼 '인부지 신부지(人不知 神不知)- 사람도 모르고 귀신도 모른다'를 되뇌어 들려준다.
그러면 그들은 다 빨아먹은 개뼉다귀를 다시 개에게 던져주 듯 빳빳한 세종대왕 몇 장을 던져 놓고 돌아서는데, 그들의 뒷 모습을 보며 천기도용죄를 조용히 웅얼거려본다.
사주조립(四柱組立)
제왕절개(帝王切開)는 산모의 배를 절개하고 인공적으로 태아를 꺼내는 수술이다.
제왕절개란 명칭은 독일어의 카이슈니트(kaiserschnitt)의 직역이다.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sectiocaesarea'인데, 이것은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출생해서 황제가 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로마의 황제는 여자의 몸을 거쳐서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결과 신성함을 획득했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동양에서도 석가모니의 출생을 언급하면서 어머니의 몸을 거치지 않고 배를 가르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통해 성인의 출생이 신성하고 순결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산모가 사망했을 경우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낸 다음 매장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대의 제왕절개술은 어디까지나 의학적 필요에 의하여 실시된다고 할 수 있다.
출산에 임박해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이 염려될 때 제왕절개로 아이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오늘날 의학의 발달에 의해 제왕절개가 보편화되면서 여러가지 문제를 양산하게 되었다.
특히 요즘에는 부모가 좋은 사주를 지닌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술객들에게서 택일과 시간을 받아서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과연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가 정상적인 분만과정을 거친 아이와 같은 오행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제왕절개개 불가능했던 옛날에도 좀 더 좋은 시간에 아이를 출산하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성삼문의 경우다. 성삼문의 어머니가 산기를 느껴서 진통을 겪고 있는데, 성삼문의 조부가 사주를 뽑아보니 19세에 요절(夭折)할 명국이었다고 한다.
이에 할아버지는 조금만 더 참았다가 낳으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삼문의 어머니는 참아보다가 더 이상은 도저히 못 참겠다며 이제는 낳아도 되겠느냐고 세 번을 여쭈어 보았다고 한다.
성삼문의 할아버지는 세 번째에 가서야 어쩔 수 없이 출산을 허락하고는 손자가 단명할 것이 염려되기도 하거니와 못내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이 아쉬워 세 번 물어 보았다는 의미로 이름을 '삼문(三問)'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출산을 세 번이나 참앗기 때문인지 성삼문은 19세의 요절은 피했지만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다가 세조에게 발각되어 38세의 나이로 이승을 마감했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비록 정사는 아니지만 이긍익의「연려실기술」 에 전화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유명한 일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생전의 도계 선생님께서는 제왕절개의 효용은 인정하셨지만 제왕절개의 시간을 잡아주는 것은 천기누설이라는 이유로 아주 금기시하셨다.
일전에 역문관에 수술 날짜를 잡아달라며 왔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부산 출신으로 고생 끝에 기업체 하나를 운영하던 이 사람은 손자의 사주를 조합해 달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장사꾼으로 고생하며 어렵게 살아 왔으니 손자는 할애비같은 장사꾼이 아닌 번듯한 영의정감 사주로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몇번에 걸쳐서 거절했지만 할아버지의 간절하기도 하고 살아온 인생의 역정이 눈물겹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하고 말았다.
모일(某日) 12시 30분경에 시술하되, 1시 30분을 넘기면 안 된다고 몇번을 강조했다. 그 뒤에 나는 천기누설의 벌을 받았는지 택일해 준 날짜 무렵에 마당에서 넘어져 팔꿈치를 크게 다쳤다.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며칠간 꼼짝없이 자리에 누워 있었다.
병상에 누워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을 때, 택일을 부탁했던 그 영감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택일한 뒤의 나의 근황이 보시는 것처럼 이렇다고 자초지종을 말한 뒤, 택일 날짜에 시술운 성공했느냐고 물었다.
영감은 착잡한 표정으로 실패했음을 말했다.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의사와 굳게 언약을 한 뒤 착오가 없기를 당부하며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집도하려는 순간 그만 정전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 병원은 한번 전기가 나가면 자가발전기가 돌아 가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자가 발전기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기 기술자를 찾으니 늘상 구내 식당에서 먹던 사람이 그날따라 고향친구가 찾아와 같이 점심 먹으러 나갔다고 한다.
부랴부랴 주변 식당을 수소문해서 기술자를 찾아 자가발전기를 돌리고, 겨우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듣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1시 30분을 넘어 2시로 향해가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도 억울한 생각에 왜 그날 정전사고가 발생했는가를 조사해 보니 지하철 공사중이던 포크레인이 병원 쪽으로 연결되는 전기줄을 건드려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한다. 아쉬워하는 그 영감에서 오시(午時)를 넘겼지만, 그 사주도 쓸만한 사주이나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넬 수 밖에 없었다.
요새도 제왕절개 수술의 시간을 택일해서 수술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얼마만큼 실력이 있는 사람이 택일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실력있는 술객은 천기누설을 하지 않거니와 그 시간을 알아도 수술에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간의 잔재주로 하늘의 법도를 다스릴 수 없는 것처럼 제왕절개 수술이 아무리 보편화 되어도 인간의 출생은 영원한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궁합 무용론(宮合無用論)
세월이 화살같다. 찜통 더위도 가고 아침 저녁으로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가을이 되면 궁합을 보러 오는 사람이 늘어난다.
인륜의 대사라고 일컬어지는 결혼에 대한 불안감, 과연 자신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의문... 이런 심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궁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 같다.
학문적 견지에서 궁합이란 남녀 한 쌍의 사주원국에서 재,관,인,식의 희기, 운로의 순역을 따지는 일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비슷한 경우를 좋은 궁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궁합이란 대단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남이(南怡) 장군에 관한 일화는 좋은 궁합의 일례를 보여준다.
어느날 남이는 홍시를 먹고서 죽어가는 권람의 딸을 구한 인연으로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 권람은 장안의 이름난 술객 홍계관에게 궁합을 물었다.
홍계관은 남이의 사주를 평하기를 '25세에 병조판서에 오를 것이요, 28세면 죽을 것이지만, 권람의 딸은 그보다 더 단명하고, 후사도 없을 터이니 천생배필'이라고 했다.
과연 권람의 딸은 남이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남이도 역시 28세에 모함을 받아 죽고 말았다.
명리의 금언(禁言)에 '연불언(緣不言 - 남녀의 인연을 말하지 말라)이라는 것이 있다.
궁합의 시비를 논함으로써 남녀의 인연을 끊어버리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본래 궁합은 서로를 대면하기 전에 보는 것이지, 인연이 맺어진 뒤에 보는 것은 아니다.
서로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궁합을 본다는 것은 배우자에 관한 결례일 뿐이다. 게다가 궁합이 맞지 않으면 결혼을 재고해 보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학들이 연불언을 말한 것은 남녀의 인연이 당순히 세속적 계산으로만 가늠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명리의 고전 「적천수」에는 이것을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란 구절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숙(宿)은 숙명이란 뜻으로 남녀의 인연은 본래 숙명적이란 의미이다. 실제로 부부의 사주를 놓고 비교해 보면 부부의 인연이 과연 숙명적임을 느낀다.
남편의 희기가 부인의 사주에서 나타나고, 부인의 희기 역시 남편의 사주에서 발견된다. 남편의 건강이 위험한 시기에 부인의 사주원국에서 남편운은 악운으로 접어든다. 이런 사실은 부부란 인생의 행로가 일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주역의 세계관에 심취햇던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라이프니쯔는 '예정 조화설"이라는 학설을 내 놓았었다.
이 학설의 골자는 독립된 관현악단이나 합창단이 저마다의 악보를 연주하지만 지휘자에 의해서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각각의 단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도 각각이 지닌 법칙에 의해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조화되고 있다는 이론이다.
"예정 조화설"로 부부의 인연을 바라본다면 좀더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처음에는 우연적일 수 밖에 없는 남녀의 만남은 운명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결혼이란 인연을 맺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바르지 않고서 올바른 상대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하늘은 늘상 조화를 이루려고 하기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한다. 탕남(蕩男)은 탕녀(蕩女)와 만나고ㅡ 과부가 될 여자는 단명할 사람과 만나며, 고아한 선비는 요조숙녀와 만난다.
궁합을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세속의 안락함을 구하려는 인간의 간교한 잔꾀에 불과하다.
인간의 잔꾀로 천도(天道)의 법칙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다. 세사(世事)의 어지러움으로부터 떠난 어떤 사람은 인간의 잔꾀를 이렇게 탄식했다. '만사분이정 부생공자망'9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 모든 일의 분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들은 공연히 서둘기만 하는구나.)
역림(易林)의 신비
내가 박 선생님께 명리를 공부하던 시절, 한가지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었다.
가끔씩 혼자 사주를 검토해 보실 때, 금고에서 옛날 책 한권을 꺼내서 들여다 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이었다.
그 책은 표지가 초록색 비단으로 정성스레 싸여 있었고, 안에는 작은 붓글씨로 한자가 촘촘히 적혀 있었다.
언제 찍어낸 판본인지는 모르지만, 누렇게 바랜 색상과 양 옆의 책장이 너덜너덜하게 닳은 것이 한눈에 세월의 풍파를 적잖이 헤쳐 왔음직하게 보였다.
선생님께서는 그 책을 한참 들여다 보시다가 중요한 부분은 다른 곳에 옳겨 적기도 하시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서 책장 사이에 끼워넣기도 하셨다.
그리고 독서가 끝나면 여지없이 튼튼한 금고 안에 깊숙이 넣어 두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과 명리에 대해 토의하던 중, 그 책을 꺼내시더니 몇 구절을 인용해서 말씀 하시던 때였다. 선생님을 급히 찾는 전화가 온 것 이었는데, 전화를 받으로 마루로 가신 사이, 나는 그 책을 들취 볼 수 있었다. 그 책은 중국 청나라 때 간행된 사고전서(四庫全書) 중 자부(子部)에 수록된 「초씨역림」(蕉氏易林)이란 책이었다.
그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중국 서점을 모조리 뒤져서 마침내 초씨역림을 손에 놓을 수 있었다. 학인(學人)에게 있어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며칠간 밤을 새워 「초씨역림」을 읽으며 새로운 세게가 열리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초씨역림」은 중국 전한말(前漢末)에 초연수(蕉延壽)가 찬술한 최고의 역서로, 다른 역서와 달리 주역 64괘의 원괘(原卦)에 다시 64괘를 곱한 총 4,096괘로 되어 있다.
괘사는 역경의 원리에 입각한 정확한 통변을 경사(經辭)의 내용을 인용하여 간략히 서술하고 있는데, 문장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놀라울만치 정확한 적중률울 보인다.
얼마쯤 지나서 선생님께 「초씨역림」에 관해 여쭤보았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초씨역림」을 금고 속에서 꺼내 주시며 가져가서 보라는 말씀과 동시에 「초씨역림」은 신비한 책이니 함부로 타인에게 전하지 말라는 당부가 계셨다.
「초씨역림」에 대한 공부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나면서, 실로 놀라운 효용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1987년 혼란한 정국을 주변 사람들과 걱정하다가, 문득 대통령 부부에 대해 「초씨역림」에서 얻은 점사(占辭)를 말했던 적이 있었다.
'재분망천 불견성진 고소실대 복도장외'(載盆望天 不見星辰 顧小失大 福逃牆外 : 동이를 이고 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것을 돌아보다 큰 것을 잃으니 복이 담 밖으로 달아난다.)
뒷날 대통령 부부가 백담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점사의 정확성에 감탄하며 「초씨역림」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지니고 있는 여러 판본 중에 하나를 무심결에 꺼내 주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사람이 팔에 붕대를 감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책을 복사해서 집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을 다치고, 빌겨준 책과 복사한 종이는 한강에 빠져버렸거나 도로변에 흩어졌다고 했다.
몇달이 지나서 그 사람이 한 묶음의 원고 뭉치를 들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중국서점에서 「초씨역림」 을 구해 번역을 진행 중인데, 몇몇 부분의 해석이 어려우니 내게 감수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박 선생님께서 하신 당부의 말씀을 기억해내곤 정중히 거절하며 「초씨역림」이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초씨역림은 신비한 책이니, 좋지 못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오해려 해악이 될 것이니, 차라리 번역하지 않은 것만 못할 것이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을 비서(秘書)로 사장(死藏)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가 또 다치는 한이 있어도 세상에 널리 알려 전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끝끝내 고집을 세우며 발걸음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가슴에 감돌았다.
얼마 후 번역 일에 정열을 쏟던 그는 과로에 의해서였는지 아니면 진정 「초씨역림」의 신비 때문이었는지, 병들어 자리에 누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번역 일을 끝내 마무리짓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華陀)가 조조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 때, 화타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오압옥(吳押獄)이란 사람에게 필생의 저서 「청랑서」를 전하며, 꼭 후세에 자신의 의술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화타가 죽은 뒤 오배압은 화타를 정중히 장사지내고 「청랑서」를 집으로 가져와 탐독하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부인이 마당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있기에 가보니, 바로 화타의 저서가 아닌가! 깜짝 놀라 불을 끄고 부인을 꾸짖으니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익혀서 화타 선생같이 신묘한 의술을 터득하더라도 필경 그처럼 옥에 갇혀 죽게 될 것이니, 이것을 배워 무엇하시겠습니까?" 훗날 어떤 이는 이 일을 두고 아내의 지혜를 칭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여자의 좁은 생각이 화타의 대를 끊었음을 탄식하기도 했다.
그러면 절세(絶世)의 기서(奇書) 「초씨역림」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가 사장시켜야 옳은가?
지금도 머리맡에 놓은 「초씨역림」의 완성되지 못한 번역 원고를 들추며, 화타와 오압옥의 부인 그리고 오래 전 세상을 버린 친구 생각에 잠긴다.
생명의 기원
세월의 변화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실로 무상하다.
짧게 끊어서 매 시간에 느껴지는 변화는 간파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쌓여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며, 십년이 되면 모든 사물은 어떤 형태로든 변해있기 마련이다.
봄날의 나비는 언제나 아리따운 자태를 뽐낼 듯하지만, 어느새 가을이 다가오면 천지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세월이 변화하는 마디는 일년 기준 24절기로 나누어 불 수 있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미미하되, 절기를 마디로 확연한 계절을 이루어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며, 사물들도 각각의 모습을 시간의 변화에 알맞게 바꾸어 나간다.
겨울철에는 작은 씨앗이었던 초목이, 봄 여름에는 무성한 번식을 이루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작은 씨앗으로 환원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뱃 속의 작은 세포가 신비한 진행을 거쳐 어느새 작은 아기로 태어나서 백발의 노인으로 세월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서 태아와 인간의 명확한 선이 구별되는 것일까? 이것은 법학의 오랜 관심사로써, 어디서부터 인간으로서의 작격을 부여해야 하는가가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간 자격의 부여기준은 출산과정에 따라 진통설, 일부 노출설, 전신 노출설, 호흡설의 네가지 구분이 있어 왔다.
진통설은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진통을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 일부 노출설은 태아의 어느 일부분이 바깥으로 노출된 시점부터를 인간으로 파악하며, 전신 노출설은 어머니와 아기의 완전한 분리가 일어난 때요, 호흡설은 아기가 첫울음을 터뜨린 시점이다.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여러가지 이유로 형법상에서는 진통설을 , 민법상에서는 일부 노출설을 취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합의에 의한 학설일 뿐 천리(天理)에 합치되는 이론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는 명리학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나는 연월일시에 의해 인생의 운로가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인간이 언제부터 인간이냐의 문제는 명리학의 본질과도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명리의 이론과 고전을 참고하여 판단할 때 명리학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시작은 호흡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기가 첫 울음을 운다는 것은 탯줄에 의한 호흡에서 폐호흡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탯줄이 잘라짐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탯줄의 단절은 모체와의 완전한 단절로,이와 동시에 독자적 생명체의 활동이 시작된다. 이때 "으앙"하고 내지르는 첫 울음을 통해 대기 중에 충만한 오행의 시운이 아기의 몸 안으로 주입되고, 이것이 일생동안 아기가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기(氣)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게 된다.
아기의 순수한 육체와 정신은 완전한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단 한번의 호흡으로 받아들인 기운은 아기의 성격과 운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처음 받아들인 기운의 분석을 통해 아기의 전반적인 일생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세상의 변화는 오행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첫 울음에 섞인 기의 배합이 어떠한가를 통해 일생의 변화가 자연 그려지게 되는데, 명리학은 바로 첫 기운의 구성과 앞으로 전개되는 변화를 파악하는 학문이다.
첫 울음을 통해 형성되는 기는 곧 명(命)이요, 변화의 패턴은 운(運)이다, 소위 운명이란 의미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운명의 조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 많은 고뇌에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
아기의 첫 울음을 보고 흔히 고고성(呱呱聲)을 터뜨렸다고 일컫는다. 이 고고성으로 인간은 속세에 와서 부귀빈천과 희로애락의 삶을 시작한다.
옛말에 '한 번 울음을 터뜨리니 팔자가 이미 정하여졌다 - 제성초시 팔자이정(啼聲初試 八字已定)' 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일생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울음의 중요성을 인지했던, 근세의 명리학자 위천리(韋千里)선생의 명작 「고고집」(呱呱集)은 이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팔자(八字)를 아시나요?
축구경기에서 공격수가 찬 공이 틀림없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불과 몇 센티, 아니 몇 밀리 차이로 골 포스트를 맞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 언젠가 한 노련한 해설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그 동안 많은 경기를 해설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슛한 공이 골 포스트 맞고 튕겨나오면 그 팀이 경기에서 이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고 그 날의 일진(日辰)을 운명론 비슷하게 설명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 축구팀이 대표하는 국가 아니면 그 축구팀의 "팔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팔자"라는 말을 많이 듣고 많이 쓴다.
그러면서도 과연 팔자는 무엇인지 잘 모른다. 사실 이 내용은 명리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맨 먼저 아침신문 야화(夜話)란에 쓰려다가 이렇게 늦어졌다.
팔자.... 알 듯 하면서도 모르고, 기왕에 모를 바에야 애시당초 모르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행복하게 잘 살던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생리사별(生離死別)을 하고 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비명횡사하면 우리는 으례 '팔자' 타령을 하면서 살아남은 유족들을 위로하곤 한다.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말들이 이때 덩달아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러한 팔자는 무엇이고 숙명과 운명은 무엇일까?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 즉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이론으로, 또는 과학의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이것들을 총칭해서 팔자소관이라고 자위한다. 팔자는 쉽게 말하자면 사람의 숙명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팔자'라는 명칭을 붙였을까? 그 이유는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그러니까 갑자년 병인월 병자일 기축시 이런 식으로 네 기중이 생기는데 각각 두 글자씩 모아 놓으면 여덟 글자가 되기 대문에 사즈(四柱)라고도하고 팔자(八字)라고도 하는 복합용어가 됐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운명과 숙명을 같은 개념으로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사실 운명과 숙명은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숙명은 불변인 것은 물론 그 누군가에 의해서 좋든 싫든 이미 정해져 버린 것을 말한다.운명은 숙명과는 달리 그 절대성에 다소 가감이 되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자면 토마토 씨를 심고 아무리 좋은 비료를 쓰며 온갖 정성을 다한다고 해도 수박이나 참외는 열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숙명이다.
역문관에 자주 드나들던 은행장들, 그들은 왜 갑자기 병자년 신축월에 일이 틀어져서 입춘(立春)후에는 감방으로 가야 하느냐? 이것은 바로 다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이것이 팔자 소관이요 숙명인 것이다.
그러면 운명은 무엇인가? 평생 거지로 살아갈 사주팔자이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살아 가면 깡통차지 않고 조그만 구멍가게 정도는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 죽밖에 먹을 수 없는 사주인데 열심히 일했더니 가끔씩 불고기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이런 것이 운명이다.
이렇듯 사주는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연월일시로 옮겨놓은 이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질서란 춥고, 덥고, 건조하고, 습한 한난조습(寒暖燥濕)을 이루고, 그러한 한난조습은 바로 지구의 공자전(空自轉)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태양이 지구를 향해 쏘아대는 기(氣)를 감마선이니 베타선이니 하여 분류한 것이 기독교문화에서는 불과 네다섯개 뿐이다.
그러나 이삼천년 전 황하문명에서 찾아낸 것은 열가지로 이것을 십간(十干)이라고 하는데 심오하기 한이 없다.
최근 일본 사람들은 십간과 십이지(十二支)의 학설이 지구인의 것이 아닌 외계에서 유입된 문화라고 주장한다.
어떤 기운을 받아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개,소,말 등 모든 생명체는 물론이고 전화기 자동차 등등 무생물에게도 적용되는 위대한 학설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을 명리학이라 하고, 무생물에도 적용하는 학설을 황극경세수(皇極經世數)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날 한 시에 경금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는 모든 사물들 (인간을 포함하여)은, 그 영향으로 모두 성미가 고약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사주학 또는 명리학이란 사람의 생년월 일시의 간지를 기준으로 해서 그 숙명을 예지하고 그 나아갈 바를 제시해 카운셀링해주는 학문인 것이다.
국회위원에 출마하겠다는 M씨의 팔자는 결코 여의도에 가서 으시댈 수 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출마해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빌딩 두 채를 고스란히 날려 버리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만일 그가 역문관주(易門關主)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 빌딩 두채는 온전하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숙명을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엄연히 예정된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체념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토마토 씨의 숙명이 수박으로 바뀔 수는 없지만, 같은 토마토라 해도 가꾸는 이의 정성에 따라 달고 맛있는 토마토 열매를 맺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운명과 숙명을 혼동하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숙명을 잘 가꾸어야 하겠다. 이것을 환혼동각(幻魂動覺)이라 한다.
도계(陶溪) 선생님을 추억(追憶)하며
흔히들 의학을 일컬어 활인지도(活人之道)라고 부른다. 의술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기에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생명과 안간에 대한 존경이 요구된다. 이런 의사의 기본 소양에 대해 언급한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이다.
따라서 모든 의사는 의사자격을 부여 받는 순간, 이 선서를 낭고하는 것이 의학계의 오랜 관행이다.
명리학은 인간의 운명을 감정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명리학자는 운명을 감정하면서 사람들에세 피흉취길(避凶就吉)의 방법을 일러주고 나아가 정도(正道)로 이끌어야 할 자세가 요구된다.
정통 명리학에서는 이것을 오불언설(五不言說)이라고 하여, 신불언(神不言:귀신을 말하지 말라), 재불언(財不言:재물의 정도를 말하지 말라), 수불언(壽不言:수명을 말하지 말라), 연불언(緣不言:남녀의 인연을 말하지 말라), 명불언(名不言:이름을 말하지 말라)의 다섯가지 원칙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의학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것이다.
도계 선생님은 정통 명리학의 태두(泰斗)로서 위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셨음은 물론이다. 항상 겸허한 자세와 단아한 인품은 그분의 높은 학문 세계와 더불어 흐트러진 일이 없으셨다.
내가 선생님 댁에서 서사(書士)역할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은 찾아와서 심심플이의 비용 정도를 놓고 가기 일쑤이고, 심지어 공짜로 보고 가거나 외상으로 가는 사람도 많았다.
보다 못한 내가 한 사람에 얼마라는 가격표를 써 붙이고 거기에 준해서 복채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얼마 후 선생님댁에 가보니, 선생님께서는 그 가격표 위에 달력을 걸어 놓고 손님을 받고 계셨다.
선생님댁에는 정계(政界)의 인물들도 많이 출입했었다. 자신이 아무개의원 부인이라고 소개하며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몇 시간동안 면담을 하고, 가족 십여명의 사주를 묻고는 겨우 한 사람 분의 돈을 내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낯빛 하나 변함없이 예의 인자하신 표정으로 등 뒤에다 인사를 하신다. 내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여인네들에게 무례함을 질책하기라도 하면 선생님께서는 오불언설을 말씀하시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만년에 후학에게 명리의 요체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래서 「명리요강」「정전역해」「명리사전」과 같은 역저를 통해 명리이론의 대강(大綱)을 상세히 밝히셨다. 명리의 이론에 대하여서는 고래로부터 여러가지 저술이 많지만 각각 저마다의 이설(異說)이 분분하여 후학으로 하여금 터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위천리 선생이 저술한 「팔자제요」(八字諸要)는 월과 시에 따른 일주(日柱)의 왕약한열(旺弱寒熱)을 밝히고 있어서 명리학의 각종 저술 중에서도 뛰어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도계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좀더 상세한 명리의 이론과 조목을 첨가하여 월 일 시의 변화원리를 극진히 하셨다. 이는 명리학사상 최초의 저술이 되는 일이었는 바, 이 책이 바로 「명리사전」이다.
이 책이 출판되고 난 뒤 책의 진가를 알아본 일본 사람들이 도계 선생님을 찾아와 일본어 번역에 대하여 문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일본 땅에 이러한 저술이 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에 일언지하로 거절하셨다.
「명리사전」이 출판되고 얼마 후의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의 어떤 신문사 문화센터에 명리학을 위한 강의가 개설되었는데 강사로 활동하는 정 모라는 사람이「명리사전」을 불법 복사하여 팔고 있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급기야는 이 사건이 저작권의 문제까지 확대되어 저작권 보호단체와 함께 대전의 도계 선생님을 찾아가게 된 일이 있었다.
정 모라는 사람이「명리사전」의 불법 복사로 인해서 저작권 협회에 고발되었다는 소식을 도계 선생님께 알리고, 대처 여부를 묻는 나에게 도계 선생님은 오히려 냉담한 반응을 보이셨다.
"자네, 그 사람 사주 보았나?"
"아닙니다. 사주는 보지 못했습니다."
"보나마나 우리들 사주만 못할 걸세. 사람이 오죽 변변하지 못하면 남의 책을 복사해서 자기 책처럼 팔겠는가? 그도 처자권속(妻子眷屬)이 있을 터인데, 이 추운 겨울에 잡아 넣으면 그 식솔(食率)은 어찌하겠는가? 우리가 세상에 와서 적선한 것도 충분치 않은데 또 무슨 죄를 지려고 하는가?"
"선생님, 선생님께서 법적 조치를 취하신다고 해도, 그것은 선생님 잘못은 아니십니다." "이 사람아, 그건 인간이 만든 법일 뿐일세, 자네는 언제나 철이 들 셈인가?"
"........"
'언제나 철이 들 셈이냐'는 질책에 나는 아무말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정 모라는 사람이 왕운이 열린 모양이라고 제자들에게 우스개 소리를 할 때면 그 때 박선생님의 모습이 가만히 머리 속에 떠 오른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학문세계는 범인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인격 또한 범인이 성취할 수 없는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세상에 관한 완별한 체념과 긍정이 선생님의 정신세계에는 공존하고 있었다. 학문의 깊은 세계에 침잠(沈潛)하다 보니 세사(世事)의 어지러움에도 더 이상 환란해지지 않으셨음일까?
우리 시대의 진령군(眞靈君)
역사학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시대를 다른 시대와 대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성을 바르게 깨우쳐 준다. 옛날 유학자들이 가졌던 역사의식이 대개 이러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역사교재로 흔히 사용했던 것은 「통감절요」(通鑑節要)란 책이었다. 이 책은 사마광(司馬光)이 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송나라 때의 소미(小微) 강지(江贄)선생이 정수(精髓)만 모아서 요약해 놓은 것인데, 주자(朱子)가 이 책을 열람하고 칭찬한 뒤부터 선비들이 널리 읽고 전하게 되었다.
통감이란 책 제목에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 거울(鑑)로 삼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지난 일로부터 오늘을 배운다는 자세가 전형적인 유학의 역사관이었던 것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오늘을 바라볼 때, 현재 우리의 모습이 조선말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에 놀랄 때가 많다.
조선 후기 조정은 대원군파와 민비파, 수구당과 개화당, 친일파와 친청파 등 사분오열되어 열강들의 침략에 갈팡질팡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외국의 사절들은 조선의 이권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조선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끝없는 압박을 가해 왔다.
다른 나라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36년의 통치를 시작한지 미처 100년도 안 된 지금, 조선땅을 유린하던 일본의 군대는 메이드 인 자팬(Made in japan)이란 상표로 모습을 바꾸어 그때의 조선을 점령해 가고 있다.
조선말 조정이 분열되고 망국의 기미를 보이자, 민간에서는 「정감록」같은 참위서가 떠돌았다.
백성들은 장차 세상이 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았고, 새시대를 열어줄 진인(眞人)의 출현을 기다렸다. 참위에 귀기울이기는 지배층도 마찬가지였다.
명성황후의 총애를 입어 조정에 수시로 드나든 무당중에 진령군(眞靈君)이란 무당이 있었다. 스스로를 중국의 명장 관우의 딸이라 자칭했는데, 그녀의 신통한 소리에 반한 명성황후는 일개 무당에게 군호(君號)를 내려 예우했다.
진령궁은 명성황후를 졸라 동소문 안에 관왕묘를 지어 놓고는 기복(祈福)과 벼슬을 바라는 무리들 속에서 한 때 큰 위세를 부렸다.
그녀의 집앞은 그녀에게 잘 보여서 좋은 권세를 얻으려는 사람과 명성황후에게 바치는 뇌물로 연일 문전성시였다고 한다.
그녀의 폐해가 얼마나 컸던지 고종 30년(1893) 안효제란 정언(正言)벼슬을 재낸 사람이 사형에 처할 것을 상소한 일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참위가 성행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떠드는 사이비 종파는 수없이 난립하고, 백년 전부터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진인은 각 종교의 메시아로 둔갑해서 출현했다고 한다.
진령군의 후신도 한 둘이 아니다. 김일성 사망을 예언한 도사, 지리산에서 10년 수도한 뒤 환속한 주간지 도사님, 신이 선택한 사람에서부터 천명(天命)을 받은 정 도령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그들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이들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사회의 반응도 우습기 짝이 없다.
방울도사식의 황당한 소리와 학문으로써의 명리를 구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매도하는 사람, 도는 무슨 신기한 소리라도 들을 양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사람 등등... 그러나 대부분 '혹시...'하는 생각에 판단을 흐리기가 일쑤다.
참위가 성행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요, 사회현실의 반영이다. 따라서 도사와 메시아, 그리고 그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을 무조건 나무라는 것도 정의가 아니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사람들은 의지할 바를 찾는 것이 당연하다.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참위에 미혹된 사람을 나무라는 것은 사람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그물질하는 것과 같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난 날의 잘못을 거울 삼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합리적 정신이 통하는 사회라면, 진령군처럼 신통한 도사들이 백명이 나오면 어떻고 천명이 나오면 어떠하랴!
지명(地名)의 신비
-파자(破字)의 원리를 생각해서-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문자가 명멸했다. 어느 민족이 사용했는지 히말라야 오지와 안데스산맥의 암벽, 또는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 등 해독할 수 없는 것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문자 중에서 오천년을 전해오는 한자만큼 오묘하고 신비한 문자는 없다고 본다.
필자는 문자학이나 인류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고, 다만 오행에 입문한 자로서 취미 삼아서 파자(破字)에 흥미를 갖게 되다보니, 한자는 다른 문자와 달리 주술적인 신비한 작용을 발휘한다고 본다.
이 신비한 작용을 응용한 것으로서 파자점(破字占)은 물론이고 성명학이란 것이 생기고, 그 성명학에서도 각 문자가 지니는 특이성과 거기에 획수를 가미해서, 여러가지 유파가 제나름대로 우후죽순처럼 횡행하면서 혹세 무민의 폐단이 되었다.
그러나 그 원맥은 파자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여러가지 통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파자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문자를 분해해서 각 각 분해한 각 부위와 또는 허첨(虛添)을 해서 개개의 초점이 암시하는 것을 가지고 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이 파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야사(野史), 특히 「연려실기술」「대동야승」등등 여러 문헌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잘 알려진 것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전복하기 전에 어느 파자술사에게 가서 물을 문(問)자를 집으니 좌군우군하여 군왕지상이라고 해서, 하도 신기하고 이상스러워 자기 문객에게 똑같은 옷을 입혀 보내서 같은 물을 문(問)자를 짚게 시켰다.
그러나 전혀 다른 해석을 했다. 즉 문내현구(門內懸口)하니 걸인지상이라. 문 안에 입을 달아맸으니 이 문전 저 문전 떠돌아 다니는 걸객이라고 풀이했다고 한다.
그 파자라는 것은 글자 자체에 어떤 특이한 상징을 부여하면서도 거기에 다시 영감이 투영되는 것이 아니냐 !
흔히 쓰이는 상용 글자로만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이루어진 이름의 주인공은 평범한 성격과 생활관으로서 살아가지만 까다로운 글자로 이루어진 이름의 주인공은 까다로운 생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말 두(斗)자가 있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 들어간 그 글자는 파자에서 창 칼로 풀이했다.
그래서 말 두(斗)자라 가운데에 들어가느냐, 이름의 끝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강약도 다른데, 안두희 김두한 몇해전 신림동에서 총기 난사사건을 저지른 김대두 등 여하튼 성격이 괄괄하고 흥패가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문 글자에는 순기능의 문자와 역기능을 하는 문자가 잇다고 하는 어느 일본인 학자가 쓴 글을 봤는데, 순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그 글자가 뜻하는 그대로, 가령 예를 들자면 영화 영(榮), 심을 식(植), 쇠북 종(鐘) 등 많이 쓰는 글자들이고, 역기능을 하는 글자들은 예를 들어 복 복(福), 목숨 수(壽), 부자 부(富), 맑을 숙(淑) 등으로 본래의 뜻과는 달리 종종 그 반대로 작용하는 글자들이다.
어느 지방의 이름을 지을 때 이것이 순기능을 하느냐 역기능을 하느냐 역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논산군에 가면 구자곡면(九子谷面)이란 곳이 있다. 아홉구(九), 아들 자(子), 골 곡(谷). 연무대가 있는 곳이 바로 그 구자곡면이다.
그 이름이 언제부터 전해지는지를 「동국여지승람」등 옜문헌에 찾아 보아도 확실한 글거를 찾을 수는 없으나 8.15 6.25를 거쳐 이 곳에 훈련소가 생겨 아홉 골의 자식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이렇게 예를 들자면 지명의 신비는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또 한가지 예를 들자면 충북 청원군 비상리(飛上里)와 비하리(飛下里)에 새로운 국제비행장을 설계하다 보니 활주로가 비상리에서 비하리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 외에 높은 교각을 세운 충주 호반의 고교리(高橋里)라든지, 현재는 배 이(梨)자를 쓰지만 원래 다를 이(異)자를 써서 혼혈아가 많다는 서울 이태원(梨泰院), 저수지가 된 (水滿里), 면 전체가 물에 잠긴 한수면(寒水面) 등 무수히 많은 지명의 신비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동티(動土)
뜻밖의 재앙이 닥치면, 우리 조상들은 동티가 났다고 했다.
동티는 원래 동토(動土) 라는 한자어에서 나온 말로써, 흙 - 자연을 상징 - 을 움직여서 생긴 재앙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증세는 대개 질병으로 나타나고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
무속에서는 이것을 종교적 금기를 범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풀이한다. 신명(神明)이 거주하는 자연물이나 인공물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생태계를 유지하는 공존사슬이 끊어지게 되고,이에 따른 신명의 진노(震怒)가 재앙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동티의 예로는 서낭당을 헐거나 장승을 불태워서 죽었다는 이야기 등이 민간설화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나무를 자르거나 땅을 팔 경우,심지어 벽에 못을 치는 행위도 손없는 날을 살펴서 행해야 하고 묘를 새로 쓰거나 이장할 경우에는 먼저 산신제나 지신제를 올리도록 되어있다.
동티의 개념을 살펴보면 조상들이 자연을 얼마나 소중히 했는가를 알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파괴는 곧 인간의 파괴로 직결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의 무분별한 훼손을 삼가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벌여온 행위는 어떠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문명은 과잉생산, 과잉소비,고도의 산업화 시대이다. 우리의 문명은 무자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변질시켜 왔다.
무분별한 자연의 파괴가 동티를 초래하지 않을 리가 없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의 재앙은 여러가지 형태로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중의 대표적인 예가 환경오염이다.
산업 폐기물로 인한 수질과 대기의 오염은 인간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수천 ha에 달하는 산림이 산성비의 영향으로 파괴되고 있고, 강에서는 중금속의 오염으로 등 굽은 물고기가 잡히고 있다.
동티는 생태계의 파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다가와서 이타이 이타이 병.마나마타 병 등을 발생시켜서 충격을 주었다.
월남전에서 정글에 살포한 고엽제는 인간의 유전자를 변화시켰고, 전대미문의 기형아를 탄생시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다. 지금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하는 아프리카의 괴질 '에볼라'도 사실은 열대 정글의 파괴로 박쥐와 원숭이들이 갈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에게 전염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끊임없는 대형사고도 어김없는 동티다. 우리의 동티는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고 있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 속에서 계속 터지는 우리의 동티는 경솔함과 오만함을 질책하는 자연의 경고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동티가 나게 되면 무당을 불러서 굿울 하거나 산천에 제사를 지내면서, 진심으로 자신의 경솔한 행위를 반성했다.
그리고 자신이 범한 자연의 훼손행위를 원상복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지금 인류의 주변에 닥치고 있는 동티를 막기 위해서도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
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지난 날 우리가 저지른 무분별한 파괴행위를 진심으로 속죄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파괴를 중단시켜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지금의 경고를 간과하고 무시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동티는 더욱 엄청난 |
첫댓글 제게도 이책이 있습니다 "역문관야화" 라고...읽을때마다 새롭고 재미있습니다...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