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6: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이 개들은 ... 자요 - 원문 직역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많은 개들이요'이다. 이는 당시 지도급 인사들의 물질적인, 육욕적인 탐욕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이와 같은 자들을 신약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등으로 부르고 있다.
몰각한 목자들 - 백성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자신들의 육적인 욕심에 빠져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 특히 영적인 필요를 헤아릴 수없는 것은 당연하다.
어디 있는 자이든지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처소로부터'이지만 '가장 고귀한 자로부터 가장 천한 자에 이르기까지'가 적절한 의미이겠다. 무론 노소하고', 곧 '나이든 사람, 어린 사람 가릴 것없이'로 번역한 바 있다. 이로써 파멸의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종교지도자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지도층의 성향은 곧 피지도층의 성향이 되기 쉽다.
[마 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 다섯번째 저주 선언문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당시의 랍비들에 의해 제정될 의식적 정결에 관한 것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잔과 대접'은 먹고 '너는 그릇을 통칭한 말인데, 이것을 정결히 한다함은 곧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표면적이고 가식적인 율법적 청결을 빗대어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하는 이유는 종교적 의식(儀式)보다는 음식을 깨끗하게 담기 위함이다. 따라서 물론 안팎을 모두 깨끗이 해야 되지만 우선적으로 깨끗이 해야 할 부분은 그릇 안쪽일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릇 안을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다시 말해 정작 중요한 것은 속마음인데 겉으로는 거룩하고 깨끗한 척하면서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네번째 저주 선언문인 23,24의 내용과 비슷하다. 탐욕과 방탕으로 - 탐욕'은 헬라어로 '하르파게라고 하는데 '강탈', '약탈', '도둑질'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는 주로 물질적인 측면의 죄악을 암시한다. 그리고 '방탕'은 헬라어로 '아크라시아'인데 그 뜻은 '자제력 상실','무절제'이다. 이는 주로 윤리적 측면의 범죄를 암시한다.
한편 이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마음속에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즉 남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실제로 남의 것을 착취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강조점은 악한 마음과 동시에 그 악독한 마음에서 비롯된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는데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