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돈에 왜 집착할까?
돈에 왜 집착할까?
돈은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이 주어서일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르다.
돈, 권력, 명예, 아름다음 등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희소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희소한 것을 가지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말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였던 자크 라캉이 남긴 말이다.
그렇다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사랑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누군가와 사랑한다는 말은 그 대상인 남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이면 짝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은 자유다.
강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사랑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강제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유의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돈을 주고 어린 신부를 데려오는 행위와 같은 것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자유가 전제가 된다.
사랑은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을 사랑으로 풀어보자면 이렇다.
사랑하는 연인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욕망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바라는 것이 두 번째 욕망이다.
그러니 나는 사랑하는 연인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란다가 된다.
이러한 논리로 인간이 가진 모든 욕망으로 넓혀보자.
돈, 명예, 권력, 아름다움 등은 희소한 자원이다.
따라서 이러한 희소한 자원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남들이 부러워 할 것이다.
그러니 남이 내가 가진 것을 욕망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남들이 부러워 하기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지려 집착한다.
내가 명예를 가지고 있으면 명예를 가진 나를 남들이 부러워 하기 때문에 나는 명예에 집착하는 것이다.
권력, 아름다움, 학벌 등등 이 모든 희소한 것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타자 즉 남의 욕망을 욕망할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망아지, 송아지 등 동물은 태어나자 마자 뛴다.
왜냐하면 야생에서는 새끼를 낳으면 피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피냄새를 맡은 사자, 호랑이 등의 맹수가 달려든다.
그래서 낳자마자 뛰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인간의 아기는 10살은 되어야 야생에서 살아갈까 말까다.
그러니 사회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고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남에게 인정 받아야 바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존 유전자에 깊이 박혀있다.
이러한 생존 유전자가 없다면 예전에 생존하지 못하고 이미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인정에 집착한다.
이러한 것은 산업사회로 오면서 돈에 대한 집착이 더욱 더 커지게 된다.
왜냐하면 거대한 산업 사회는 잉여가치의 관점에서 우리를 여러 개의 자아로 찢어 놓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수작업으로 생산하다보니 생산물 자체가 적었다.
그래서 종교는 우리에게 금욕을 강조했다.
그래야 지배층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오면서 대량생산 체제가 된다.
이제는 모자르지 않고 남아 돈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비하지 않으면 공황이 일어난다.
소비욕구가 사라지면 대량생산한 생산물이 실업을 만들고 실업은 결국 기업을 무너뜨리면서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했다.
따라서 산업사회로 오면서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성경말씀의 금욕과 경제학 교과서의 소비의 괴리가 생긴 것이다.
산업사회는 소비할 수 있는 다중의 인간을 만들어 내었다.
여성의 소비주체가 엄마로서의 소비, 직장여성으로서의 소비, 동창회의 과시소비 등으로 한 인간을 여러개로 찢어서 소비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야 대량생산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생산물을 모두 소비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 이후에 플라톤, 아리스토 텔레스의 금욕을 강조하는 절대주의가 가고 자크라깡, 데리다, 들뢰즈와 같은 소비를 강조하는 상대주의가 득세했다.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모토는 해체다.
소비주체를 엄마, 직장여성, 동창회 등으로 쪼개듯 쪼갠 것이다.
상대주의란 무엇인가?
서로 비교하라는 것이다.
행복은 너 혼자 스스로 행복하다고 행복이 아니다.
남들이 너에게 행복하다고 인정해줘야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서로 비교하면 더 인간의 욕망은 더 커진다.
1억이 있으면 10억을 바라고 10억이 있으면 100억 을 바란다.
이렇게 비교가 더 쉬워진 것은 우리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SNS가 비교를 더 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일론 머스크가 집을 사면 부러워 한다.
그러나 가까운 지인이 아파트 사서 10억 벌었다고 하면 눈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결론 :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수록 더 목이 마를 뿐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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