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기 282- 중국 桂林 우산공원, 첩채산
2019년 6월30일 저녁8시35분 아시아나 oz325편으로 계림으로 갔습니다.7월1일 계림시내
나가니 이곳은 오토바이가 공해때문에 전기오토바이라고 합니다. 많은 오토바이가 다닙니다.
7월1일 虞山공원으로 갔습니다. 우산공원은 계림시 북쪽 이강 변에 위치하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문화유적이 있는 곳으로 중국 역사의 전설로 여겨지는 요순시대 순임금이
중국남방을 순시하였을때 이곳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虞山(우산)은 원래 석어봉(石魚峰)이었으나 당나라 때 이곳을 순임금의 사당이 세워져서
순산(舜山)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우(虞)는 순임금이 세운 왕조로 순임금을 우제(虞帝)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산공원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첩수(疊水)폭포입니다. 겹쳐질 첩(疊)자라 그런지
물흐름이 연상케 합니다. 첩수폭포 위에는 오줌을 누는 꼬마가 있습니다.
이곳은 구중천(九重天)으로 3개의 큰 아치형의 문으로 되어 있고 사람들에게 청운의 꿈을
승승장구하게 해준다는 의미있는 곳입니다. 구중천 위쪽에는 하늘의 중앙을 상징하는
균천(鈞天)을 용의 머리 형태로 조각해 좋았는데 용 머리를 만지면 복이 온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곳입니다.
구중천의 의미를 적혀있습니다. 구중천의 본래의미는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나타냅니다.
우산공원은 1997년 조성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되어있으며 우산을 중심으로 우제묘, 오복탑,
구중천, 첩수폭포, 소음등, 이심원외 여러 건물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층 목조건물인 오복탑(五福塔)입니다.
우산공관에 대한 설명입니다.
미인의 상징인 양귀비도 이곳 계림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회음벽이 있는데 그곳 중앙에서 이야기를 하면 말이 울리면서 크게 들려옵니다.
회음벽에 대한 설명입니다.
백가지 글씨체의 복(福)와 수(壽)가 조각되어있는데 복(福)중 제일 큰 글씨는 당태종 이세민
의 글씨체를 조각해 놓았고 수(壽)는 여황제 무측황제의 글씨체를 조각해놓았다고 합니다.
그외의 글씨체는 역대 서법가(書法家)의 글씨체를 조각해 놓았다고 합니다.
회음벽에는 목숨 수(壽)가 써 있습니다. 이곳 회음벽(回音壁) 중앙에 서서 소리를 내면
음이 벽에 부딪쳐 공명하듯 울립니다. 가운데 수(壽)는 여황제 무측황제 글씨입니다.
중앙 벽에는 당나라 시대의 여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고
그 오른쪽 벽에는 목숨 수(壽)자를 왼쪽 벽에는 복(福)자를 여러가지 글체로 조각해
놓았습니다.
행복을 누리면서 오래 살라고 합니다. 회음벽에 글자를 새겨 메아리처럼 울리도록 합니다.
가운데 복(福)자는 당태종 이세민의 글씨 입니다.
오층 목조건물인 오복탑(五福塔)입니다. 오복을 처음으로 규정한 상서(尙書)의 홍범(洪範)편
에는 수(壽, 오래사는 것), 부(富,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것),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건강
하고 평온한 것), 유호덕(攸好德, 덕을 베풀며 함께 사는것), 고종명(考終命,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우산(虞山)은 오복탑 뒤에 있으며 78m입니다.
우제묘(虞帝廟)입구에는 3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왼쪽부터 재운교(財運橋), 관운교(官運橋),
평안교(平安橋)가 있는데 우리 친구들은 다 평안교로 건넜습니다.
우제묘는 우제를 모신 사당으로 우제말년에 중국 남부지방을 순시할 때 계림에 왔었고
우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중국 사기(史記)에는 "천하의 명덕은 우제때부터 시작했다
(天下明德皆自虞帝始)"고 기록되어있다. 우제묘는 진한(秦漢)시대에 최초로 건립되었고
당나라 시기에 재건하였으며 송, 원, 명, 청으로 중국왕조가 바뀌어도 각 왕조에서는
어김없이 우제묘를 수선하고 관리해 왔습니다. 민국시기(1912-1949)에는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화되기도 했으나 1996년 중국정부에서 대대적인 복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길상문(吉祥門) 좋은일만 생긴다는 문앞입니다. 중국 역사는 우리의 단군신화처럼 상황오제
(三皇五帝)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후 전욱과 제곡의 통치를 거쳐 제요와 제순시절 중국은
태평성세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가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베풀어져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았던 시기인 요순시대, 중국 사람들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최고의 성군
으로 숭앙하고 있습니다.
아황전(娥皇殿)입니다. 아황과 여영(女英)은 요순시대 요임금의 두딸로 순(舜)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공주의 신분으로 당시 인품외는 보잘 것 없었던 농사꾼 순에게 시집을 가서도
교만하지 않고 남편을 섬기는데 소홀함이 없었으며, 순의 생부와 계모가 소생인 두 아들과
함께 순을 죽이려고 하자 아황과 여영의 지략으로 이를 극복하였고, 마침내 순이 온갖 어려움
을 글복하고 임금이 되자 언니 아황은 후(后)가 되였고 동생 여명은 비(妃)가 되었습니다.
두여인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높았다고 전해지며, 여영에 대한 고사는 한나라때 유향(劉向)
이 지은 '열녀전' 첫편인 모의전(母儀傳)에 등장합니다. 기원전 2205년에 순임금이 남쪽지방
을 순방하던 중 창오(蒼梧, 지금의 광서성 동남쪽)에서 승하하자, 아황과 여영은 상강(湘江)을
헤매며 슬피 울다가 상강에 몸을 던져 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두
여인이 흘린 애절한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 반점이 생겼는데, 이후 이 대나무를 반죽(班竹)
이라고 불렀으며, 여인의 정절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영전의 여영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곳은 당시 국민당 장개석 총통이 기거하던 곳입니다. 2차 대전때 일본군의 폭격에 유일하게
파손되지 않은 건물로 폭격당시 장개석 총통이 이 건물에 있었다고 하며, 이 일때는 그런
연유로 복 받은 땅이라는 의미로 복지(福地)라 부른다고 합니다.
장개석 총통과 부인 송미령 여사가 사용했던 침실입니다. 송미령은 청나라 말기 상해지역
유력자이자 재력가인 송가수(宋嘉樹)의 세 딸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첫째 송애령은 중국 북부의 거부 공상회와 결혼했고, 둘째 송경령은 중국과 대만 모두에서
국부로 추앙 손문과 결혼했고 막내 송미령은 손문 휘하의 장교였던 장개석과 결혼했습니다.
장개석 총통이 당시 사용했던 물품들입니다. 이곳은 장개석과 송미령이 대만으로 피신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110년된 감나무가 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사리탑, 탑의 형태는 중국 양식은 아닌 듯하며 윗부분이 태국의 탑과 유사하게도 보입니다.
오른쪽에 건물이 있는데 장개석(蔣介石)총통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는 문소루(聞韶樓)가 있습니다.
한신(韓信)의 동상입니다. 동상을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해서 머리를 만졌습니다.
또한 그 머리를 만지면 천재 아이를 낳은다는 속설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문질러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중국 초한쟁패기, 전한(前漢) 한고제 중국사의 명장(名將)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뒤늦게 유방에게 합류하였으나 뛰어난 재능으로 곧 대장군이 되었고, 이후 한고제가 항우를
꺾고 천하통일을 이루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에도 훗날 토사구팽을 당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산의 석벽에 수많은 석각이 있는데, 그 중에는 송나라 시대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朱子)의
글도 있다고 합니다.
우산 아래에 뚫려있는 동굴인 소음동(韶音洞)입구에 천년관음(千年觀音)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계림의 특징중 하나가 공원마다 동굴이 있는 점입니다.
동굴내에 있는 감석청 입구로 내부에는 특이하게도 남자로 표현한 관음보살상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사찰에 있는 관음보살은 초기에는 남자상이 많았으나 당대(唐代)이후로는 여자상
으로 바뀌었습니다.
첩채산(叠彩山 뎨차이산)은 중국 관광국에서 AAAAA 다섯개의 관광지입니다.
계림시에는 흔히 삼산(三山)이라고 하여 상비산(象鼻山 코끼리코산) 복파산(伏坡山)
그리고 첩채산이 유명합니다
첩채산은 계림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로 명월봉 외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높은 곳은 높이 223m의 명월봉이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0~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여행객 사이에서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첩채산은 꼭
가보라는 말이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명월봉에서 바라보는 계림의 시가지 풍경이
멋지기 때문입니다.
명월봉을 오르는 길에 풍동(風洞)이란 동굴이 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파손
된 것으로 대부분은 아직까지 보수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철첩산은 중국 근대사
상가 강유위(康有为)가 수업을 했던 장소로도 유명한대. 그 곳에 그의 동상도 놓여있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명월봉의 정상! "첩채산에 오르면 103봉우리의 산이 보인다.(登上叠彩山看到一白三)"라는
글이 적혀있는 비석이 전망대에 놓여있었습니다.
시가지의 풍경도 시원하게 보이고 저 멀리 카르스트지형의 특이한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보입니다. 정말 103봉우리인지는 세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첩채산에서 계림시의 풍경을
충분히 만끽했습니다.
계림의 수많은 산 봉우리들, 크고 작은 건물들 그리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강(漓江)의
물결, 자연과 도심이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 깊습니다.
계림시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첩채산은 색깔 있는 비단을 포개놓은 것과 같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강, 독계봉과 인접하며 그 이름도 이러한 산의 형상을 본뜻
것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해발 73m로 등산객을 위해 설치된 계단을 통해 산을 오를 수 있으며, 정상에서 계림
시내 전체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상 부근에는 "풍동(風洞)"이라 불리는 호리병같이 생긴 동굴이 있는데, 동굴 벽에는 불상,
그림, 시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첩채정, 월각, 인지당, 첩채누, 망강정 등 볼거리가
많으며 나비 박물관도 있어 다양한 나비를 감상하고 관련된 기념품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이병철과 차문성이가 열심히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첩채산(叠彩山 뎨차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