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침례교의 시작과 현재:
후반부가 좋아야 좋은 것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종종 위대한 신앙 인물이나 가문이 그 출발점은 자랑스럽지 못하거나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야곱의 4남이었으나 장자권을 인정받아 메시아의 조상이 된 유다는 처음에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기자고 제안한 형이었고, 그 후에는 자부 다말에게 ‘계대결혼’을 시켜주지 않아서, 결국 다말이 유다의 씨를 확보하여 족보를 잇는 되는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위대한 사도 바울은 처음에 스데반 집사를 처형하는 앞잡이 노릇을 했고 초대교회 성도를 체포하는 부끄러운 전력이 있었으나 훗날에는 이방인의 빛이 되었다.
이런 일은 교회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미국의 교회사, 특히 남부 개신교 역사가 그러하다. 오늘날 미국 최대 개신교 교단이며 보수적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남침례교(SBC), 그리고 우리나라에 성경 믿는 믿음을 전해준 미국 남장로교(PCUS)의 출발은 뜻밖에도 노예제 옹호라는 민망한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1861년 미국은 노예제 폐지 문제로 남북전쟁이 터졌는데 그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미국의 주요 개신교 교단들이 북부 교회와 남부 교회로 분열했다. 당시, “노예를 소유한 인물은 선교사로 임명될 수 없다”라는 미국침례교의 방침에 반발해 남부 침례교인들은 1845년, 교단에서 독립하여 미국 남침례교(SBC)를 조직했다. 당시 남부 교회들은 단순히 노예제를 어쩔 수 없는 경제적 필요로 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허락한 거룩한 질서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뒷받침한 아전인수식 성경 해석은 다음 세 가지였다.
1) 구약의 노예제: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인들이 종을 거느렸던 선례를 들며 하나님이 노예제를 금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2) 함의 저주 신화: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를 불경하게 대하여 저주를 받아 그 후손이 종들의 종이 되리라고 예언한 구절을 가져와, 흑인을 함의 후손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노예화하는 신학적 근거로 삼았다.
3) 신약의 순종 교리: 바울 서신에 나오는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라”라는 구절을 통해 노예가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곧 신앙적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당시 남부의 교회들은 자신들이 흑인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미개한 아프리카 이방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해 주는 고귀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를 온정주의적 노예제 옹호론이라 하는데, 그들은 노예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되 오직 순종과 내세의 천국만을 강조하여 현세의 압제를 견디게 만드는 통제 도구로 악용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남침례교만이 아니라 남장로교도 마찬가지였다. 남침례교가 설립되고 16년 뒤인 1861년, 미국 장로교회도 북부와 남부가 갈라졌다. 그들은 미국합중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CUSA)에서 분립하여 미국남부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PCUS)를 창립했다. 남장로교는 장로교 특유의 논리를 하나 더 추가했는데 바로 교회의 영적 영역(Spirituality of the Church) 이론이다. 말하자면, “교회의 사명은 오직 영혼 구원이며, 노예제는 국가와 사회가 다룰 정치적·경제적 문제이므로 교회가 이를 비판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성경이 노예제를 직접 금지하지 않았으므로, 노예제는 죄가 아니며 하나님이 허락한 사회적 질서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오히려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개신교인들을 “성경을 무시하는 자유주의자”로 몰아세웠다.
이렇게 부끄러운 배경에서 생겨난 남침례교와 남장로교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 남장로교는 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1890년의 선교지역 분할 정책에 따라 전라도 지역과 충청도 일부 지역 선교를 맡은 남장로교는 호남 지역에 훌륭한 학교(전주 신흥고, 기전여고 등)와 병원(전주 예수병원, 광주 제중원 등)을 세우고 사회복지·의료 선교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갈라져 있던 미국의 장로교는 오랜 화해 과정을 거쳐, 전쟁이 끝난 지 100년도 더 지난 1983년에야 북장로교와 남장로교가 다시 합쳐져 미국장로교회(PCUSA)가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가 된 PCUSA는 그 후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고, 동성애와 성전환을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두둔하며, 동성애자 목사 안수까지 허용함으로 성경에서 멀리 벗어나 버렸다. 혹시 하나가 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남장로교라도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적 신앙을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미국장로교가 1983년에 하나로 통합된 것과는 달리, 남침례교는 북부와 통합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침례교회는 회중정치의 특성에 따라 개교회 자율성이 강하고 중앙집권적 총회가 없어서 북부와 합병 절차를 밟을 조직이나 주체가 모호한 것이 큰 원인이다.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북부의 침례교회는 20세기 현대신학의 공격에 굴복하여 사회복음, 인권운동, 여성목사안수 등 진보적 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남침례교회는 근본주의 신학을 지키며 완벽한 보수 교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런 신학적 영향과 미국 남부의 인구 성장 덕분에 남침례교회는 미국 개신교 최대 교단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교세의 압도적 차이는 북부의 침례교와 합병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여간 오늘날 미국 남부가 ‘바이블 벨트’라 불리게 된 데에는 남침례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함께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장로교는 훗날 북장로교와 재통합하여 오늘날의 미국장로교회(PCUSA)가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20세기 들어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에 휩쓸리며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보수적 신앙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반면, 북부와 합치지 않고 홀로 남았던 남침례교는 외부의 압력 속에서도 성경 무오설과 보수적 신앙 정체성을 건전하게 지켜내고 있다. 만약 남침례교가 북부와 하나가 되었다면, 미국침례교회도 오늘날 미국장로교회의 모습처럼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면 남침례교가 북부와 교단을 통합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물론 남침례교가 안고 있는 노예제 옹호라는 역사적 부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은 1995년 공식 사과를 했으나 이후로도 이 어두운 유산을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부끄러운 과거에 발목 잡혀 신앙의 본질마저 던져버리는 대신, 성경의 진리를 타협 없이 지켜내며 진정한 화해와 선교에 힘쓰는 모습은 의미가 깊다.
출발은 사람이 만들었기에 부끄러웠으나, 나중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서려는 몸부림으로 남았다. 사람은, 그리고 신앙공동체는 시작은 어찌 되었든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 과거의 아킬레스건을 겸손히 껴안은 채 끝까지 바른 신앙의 길을 완주하고 있는 남침례교회의 내일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 말씀에 즉시 ‘가겠나이다’라고 했으나 들어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소이다’라고 하더니 잠시 후에 뉘우쳐서 포도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다. 이 비유 끝에 예수님은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것이냐고 물으셨는데 어쩌면 미국 남침례교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둘째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