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靑山島]
위치는 동경 126˚53´ 북위 34˚11´이다. 해안선의 둘레는 85.6km이며 섬의 최고봉은 남쪽에 있는 해발 384m의 매봉산이며 북쪽의 대봉산은 379m로 두 번째로 높다. 완도에서는 남쪽으로 19km 떨어져 있으며 뱃길로는 45분이 소요된다. 공기가 맑고 산과 바다가 푸르러서 청산(靑山)이라고 불렀으며 한때는 신선이 살고있는 섬이라고 하여 선산(仙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고인돌이 남아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추측되나 남해안에 왜구의 출몰이 많아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1608년(선조 41년) 조선시대에 처음 사람들이 청산도에 정착하였다. 1681년(숙종 7년)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설치되어 군사적 요충지로 역할을 하였다. 1866년(고종 3년)에는 청산도에 당리진(堂里鎭)이 설치되어 강진, 해남, 완도 일대를 관장하였다. 1895년 당리진이 해체되었고 완도군이 설치되면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남쪽의 여서면(여서도)을 포함하여 청산면에 소속되었고 1964년 10월 1일 청산면 모도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81년 12월 23일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청산면사무소와 보건지소가 있고 경찰서, 우체국이 있으며 청산중학교, 청산초등학교가 있다. 마을버스 1개 노선이 운행되며 청산항 선착장에서 도청리, 동초리 방면으로 운행된다.
1960년대 청산도 일대에서 고등어와 삼치가 많이 잡혀 파시(波市)가 열렸으며 어업전진기지로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인구는 1만 명을 넘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관광명소로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KBS 드라마 <봄의왈츠>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3~4월이 되면 섬의 들판을 뒤덮는 유채꽃이 유명하다. 그 외 관광지로는 지리해수욕장, 신흥리해수욕장, 진산리 갯돌밭, 읍리의 고인돌이 유명하다.
청산도 슬로길
필경 누구는 청산도를 푸른 섬이라 적었을 것이다. 쪽빛 바다에 둘러싸인 보리밭과 유채밭, 그리고 다랑이논 펼쳐진 청산도의 풍경은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안겼을 터이다.
청산도를 직접 걸어본 또 다른 누구는, 평지라고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 가난한 땅을 일러 푸른 산이라 불렀을 것이다. 청산도의 청산(靑山)이 바로 그러한 뜻이니, 이 또한 헛된 수사는 아니다.
하나 나는 청산도를 곡선의 세상이라 부를 참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신속하고 정확한 것에 매몰된 요즘, 청산도만큼 그 느려터진 곡선을 꼿꼿이 간직하고 있는 땅도 드물다. 뭍에선 진즉에 반듯한 신작로가 뚫리고 논과 밭이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 정리가 끝난 탓에, 더 이상 곡선의 땅도 곡선의 길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적 끊긴 옛 고개 위에서나 구불구불 휘어지고 비뚤배뚤 구부러진 곡선의 길을 겨우 만날 수 있을 따름이다. 자본주의는 아마도 이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직선의 디자인에서 비롯하는지 모른다.
청산도는 그렇지 않아서 좋다. 아니, 정겹다. 정겹다는 수사도 적어놓고 보니 무책임하다. 청산도는 여태 곡선을 버리지 못해 눈물겹다, 이렇게 적는 게 되레 어울려 보인다.
청산도는 척박하다. 온통 산이다. 그나마 평평한 땅이라면 구릉과 언덕이다. 청산도란 이름처럼 바다 위에 비쭉 솟은 푸른 산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하다. 이 산기슭에 사람이 기대어 살고 있다. 논과 밭을 일궈 농사를 짓고, 산비탈을 깎아 길을 냈다. 오로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청산도는 사람이 살지 말아야 할 땅이다. 그래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
문제는 어찌어찌해서 이 가난한 땅에도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건 일종의 원죄였다. 섬에서 살아보겠다고 들어 온 이상, 섬에서 살 방편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게 구들장 논이다. 화산이 터져 솟아오른 섬이니, 이 섬에서도 물을 가두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경사가 심한 땅이어서 평지를 확보하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 했다. 물을 가둬 벼를 심어야 했다. 그래서 청산도 사람들은 산비탈을 깎아 평평하게 다진 땅 위에 돌을 쌓았다. 구들장 모양의 돌을 촘촘히 박은 다음 그 위에 흙을 얹었다. 그리고 물을 댔다. 구들장을 깔기 전보다는 확실히 물이 적게 줄었다. 구들장 논 옆에 작은 보를 만들어 수시로 물을 대줄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한 다음에야 청산도에도 무논이 생겼다. 청산도에 들어 눈만 돌리면 보이는, 층층 계단 형식의 다랑이논 대부분이 이렇게 해서 만든 것이다. 이 장관 앞에서 눈물이 맺히는 이유는, 사람의 눈물과 땀이 풍경에서 배어나기 때문이다. 청산도에선 이 구들장 논이 징글징글했는지, 구들장 논이라고 고상하게 부르지 않는다. 살구보다 맛이 없는 살구를 개살구라 부르는 것처럼, 논은 논인데 영 시원찮다 하여 개논이라 부른다.
1993년 어느 눈 맑은 영화감독이 청산도의 이 구불구불한 돌담길에 들어와 영화를 찍고 갔다. 당리 언덕 위에 난 돌담길에서 찍은 장면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세 명이 진도 아리랑을 신명나게 부르며 저고개 너머에서부터 나풀나풀 춤을 추며 걸어온다. 카메라는 꼼짝도 않고 그들이 걸어오는 장면을 묵묵히 응시한다. 5분 30초 동안의 롱테이크(Long Take). 이젠 전설이 돼버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는 <서편제>의 청산도 미장센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다. 진도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다. 이리 휘어지고 저리 꺾이는 이 흐벅진 가락은 정확히 청산도의 곡선을 상징한다.
이러한 청산도가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느림의 가치를 여태 지키고 사는 마을이라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뒤이어 완도군청과 청산면사무소가 2009년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업 예산을 받아 청산도 슬로길을 조성했다.
감사합니다 모시겠습니다
이상섭 지인 입금
김영희님 김수환님 모시겠습니다
김영희 김수환 입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