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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사람들의 ‘시계추’가 되어주는 버스
서울의 1.3배나 되는 면적에 비해, 인구 수는 고작 1만 8천 여 명. 서울의 동네 하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경북 영양. 독립 선거구를 구성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적은 이 곳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땅에 흩어져 살고 있다.
비행기도, KTX도 닿지 않는 경북 영양 땅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은 바로 ‘버스’.
서울과 대도시를 잇는 고속버스에서부터 영양의 산골 마을을 누비는 미니버스까지, 모두 ‘영양 버스정류장’으로 모여들고, 영양 사람들의 생활은 바로 이 버스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
영양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주는 버스
4일, 9일마다 열리는 영양의 장날 아침, 특별 노선의 버스 한 대가 영양 버스정류장을 출발했다. 5일에 한 번, 즉 장날에만 운행하는 ‘기산리 행’ 버스다. 기산리는 내린 지 한 달도 더 된 눈도 녹지 않을 만큼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 세상과 단절된 이곳에 사는 19가구 주민들에게 노선 버스 운행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2월 15일, 버스가 마을 입구까지 처음으로 들어왔다.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는 기쁨에 주민들은 돼지머리까지 놓고 고사를 지냈지만 기쁨도 잠시, 23가구 밖에 안 되는 주민들에게 버스 타는 일은 순번을 정해서 일이 없어도 타야하는 ‘일’이 됐다. 빈 차로 왔다가 빈 차로 나가는 버스를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또 버스가 끊길까 걱정되기도 한 탓이다.
“버스 다닌 지도 몇 개월 안 되지만, 어디 다른 동네 가서 우리 동네
버스 안다닌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고.
이 세상에 버스 안 다니는 동네가 어디 있나. 참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핸드폰도 이제 수신 된지 한 달도 안 되니까, 참 오지는 오지겠죠.”
_ 윤정출 할아버지, 71세, 기산리
■ 세월도 잠시 쉬어 가는 버스정류장
6~70년대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영양 버스정류장. 그리고 그곳엔 아주 오래전부터 줄곧 거기에 머물러있던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최첨단 디지털 기기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도 영양 버스정류장엔 사람 손으로 꼭꼭 눌러 쓴 버스 시간표와 색색이 종이 차표 등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버스터미널은 변한 것 없어요. 이 지붕만 없었지. (36년 전과) 똑같아요.”
_ 영양 주민
장에 가다 한 번, 병원, 약국에 가다 또 한 번. 버스를 타고 ‘마실’ 나올 때마다 들리게 되는 정류장. 작은 난로 하나 덩그러니 있는 놓여있는 정류장은 영양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이곳에서 하루에 두 세 번 오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동네 친구도 만나고, 형제도 만나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한 버스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지기처럼 다정해지기도 한다.
“여 뭐 촌에 정보과장이지 뭐. 여 앉아 있으면 정보를 다 가져오잖아.
여 있으면.. 장날에 와가지고 촌에 있었던 일...
누가 아프니, 시집을 갔니, 그런 거... 여 앉아서 싹 이야기 들어요.”
_ 영양 버스터미널 내 매점 주인
오래된 풍경 같은 사람들 이야기
영양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30분쯤 달리다 보면 도착하게 되는 수비면 소재지. 이곳엔 5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연륜이 묻어나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과거 7, 8천명이 모여 살며 수많은 버스들이 오가는 교통의 요지였던 시절의 영화를 고집스레 간직하고 있는 곳. 이 한 자리를 50여 년 올곧게 지켜오고 있는 남창발 할아버지는 지금도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지나는 버스표를 팔기 위해 정류소를 지킨다.
"이맘 때 쯤 되면 인산인해지 뭐. 요 쪼매난 여기도.
수비면 인구가 그때만 해도 한 7천 내지 8천 됐을기라. 지금은.. 2천.. 5~6백 될까?
실지 사는 게. 아무 동네 가가지고 문 열어봐도 이런 노인들 영감, 할매 밖에 없어.
아기 우는 소리 못 듣고. 수비뿐 아니고 딴 데 다 한 가지래.”
_ 남창발, 85세, 수비정류소 주인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한다는 통계 자료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양 버스정류장에서 젊은이들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 설 연휴를 앞두고, 간간이 고향을 찾는 젊은이들 사이로 젊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바로 버스를 운전하는 젊은 기사들이다. 한 때는 도시가 좋아 객지로 떠났던 이들. 이들은 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저 같은 경우는 결혼도 안했고, 아버지가 앞을 못 보시거든요. 일단 집에 한 명은 있어야 되잖아요. 자식이니까 한 명은 있어야 되니까... 뭐 솔직히 다시 나가서 일하고 싶죠.” _ 김인기, 31세, 영양여객 기사 |
“한 곳에 오래 죽 못 있고 자리 많이 옮기다 보니까 시간 금방 흘러가네요.
삼십대 중반에 찾아왔는데. 재밌게 살려고 하는데도, 노력만 하고 있을 뿐이에요.
딴 친구들은 장가가고, 애 낳고 재미가 있는데
아직 나는 혼자다 보니까. 외롭기도 하고 그래요
결혼은... 하고 싶은데... 옆에 누군가 없는 거 보단 있는 게 낫죠.”
_ 오성원, 35세, 영양여객 기사
집으로 가는 길목,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 누구나 본능처럼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매년 명절을 앞두고는 전쟁 같은 시간을 견디면서도 고향 집을 찾아간다. 2009년 설 연휴를 앞두고, 대도시와 고향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멀고도 가까운 굽이굽이 길을 잇는 길목에 자리한 영양 버스정류장의 풍경은 어떠할까?
그 길목, 기다림을 간직한 채 고집스레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편치 않았던 객지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고작해야 1년에 한두 번이지만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72시간의 기록이다.
경북 영양은 제2의 고향입니다.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추억이 담겨 있는 전형적인 곳이지요.
카페가 좀 조용한 듯하여
얼마전 다큐멘터리로 방영이 된 영상물을 올려봅니다.
관악지부 회원님들
좋은 시간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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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이 다큐멘터리를 TV에서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이렇게 카페에 새롭게 올려주시니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