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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행하신 권세는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마태복음 21장 23-27절 /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병행구절, 막 11: 27-33)
성전에 계신 예수께서 대제사장들과 가진 논쟁
성전에 계신 예수께 대제사장들이 나아와 따지다 :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기간에 계시는 예루살렘에서 지낸 마지막 한 주간에서 화요일에 해당하는 날에 제자들과 함께 전날에 들어갔던 예루살렘에 다시 들어가 성전 뜰을 거니셨습니다. 그때 산헤드린 공회원인 유대인 지도자 대제사장들이 예수께로 나왔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들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해 주고 있으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라고 밝혀 줍니다(막 11:27). 이들이 예수께 다가와서는 전날에 예수께서 행하신 성전 정화의 사건을 끄집어내며 다음과 같이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네가 무슨 권위(권세)로 이런 일을 하였느냐? 누가 제사에 쓰일 제물을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을 쫓아낼 권위를 주었느냐?” 이는 궁금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책잡아 힐난하며 성전에서 쫓아낼 빌미를 찾고자 해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대제사장들에게 하신 되물음의 답변 :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한 가지 너희에게 묻겠다. 그러니 내가 묻는 말에 너희도 대답하라. 내가 묻는 말에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너희가 묻는 내가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였는지 대답해 주겠다. 요한은 무슨 권위로 세례를 베풀었느냐?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에 의해서 한 것이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주어진 권위에 의해서 한 것이냐?”
예수님의 되물음에 답변하는 대제사장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응 : 예수님의 이 물음이 있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만일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권세를 행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대답하면 ‘그런데 왜 세례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권세를 행한 것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대답하자”라고 하였으나, “그렇게 대답하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참 선지자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큰 소동을 일으킬 것인데 무섭지 않소? 그러면 우리가 궁지에 몰려 큰 곤경을 당할 것이오”라고 하므로,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의견을 모아 말을 맞추기를 “우리가 알지 못하니 대답할 수 없다”라고 얼버무려 피해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들이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니, 나도 너희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대제사장들
예수께서 대제사장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들어서 자신이 성전에서 한 행동이 하나님의 권세에 의한 것임을 의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행동이 하나님의 권세에 의해서 가져나간 것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대제사장들 앞에서 변호하여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1) 세례 요한을 등장시켜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에 의한 것임을 뻔히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들이 예수께 가져나가는 마음을 숨기려는 악의적인 생각에 의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악한 죄에 있음을 드러내시는 것이요, (2) 아울러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것에서 하나님의 권위(권능)를 여실히 보고 있음으로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 수 있는 것인데도 대제사장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악한 죄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시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요한을 선지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베푸는 세례를 믿지 않았으며, 이것을 행하는 것을 통해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마 21:32). 세례 요한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옴에 있게 하는 회개에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 것은 그의 출생에 있어서부터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5-17)
주의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태치 못하는 엘리사벳의 남편 사가랴에게 나타나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님보다 먼저 와서 그분을 영접하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출생하자 그때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하기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해방시키셨으니 위대한 구세주를 다윗의 집에서 일으켜 보내주셨다, 예전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그대로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어린 아들 요한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로 불림을 받아 주를 위해 길을 예비할 것이다, 그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받고 구원 얻는 길을 알게 할 것이니 그분은 아침 해를 높이 떠올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안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눅 1:68-79)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예언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요한이 주님보다 먼저 와서 그분을 영접하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킬 것으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받고 구원 얻는 길을 알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그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한 요한을 사람들은 사도 요한과 구분하여 ‘세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태를 닫아 육적인 출생이 없게 하신 후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시는 것에 의해서 있게 하셨으며, 그 까닭은 사가랴의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보내주실 구원자이신 주와 연관을 짓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주의 백성들에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얻는 길을 알게 하는 일을 위하여 예비 된 자였습니다. 그에 의해서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로 나오는 길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에 의해서 죄 아래 있는 땅에 속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자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전하여 알게 해 나가는 일을 하십니다.
그에 따라서 세례 요한은 요단강 부근에 있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증거로 세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세례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있는 행동을 하는 세례 요한을 보면서 유대인 지도자들 – 바리새인 - 은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혹시 그리스도는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요 1:19)
그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엘리야요?” 이렇게 묻자 요한은 자신은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우리가 기다리는 선지자인 것이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번에도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요한을 보며 그들은 더욱더 궁금해 하여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줄 수 있게 속 시원히 말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같이 ‘우리 하나님이 통과하실 큰길을 닦아 놓아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대답하니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도 요한에게 와서 묻기를, “듣자 하니, 당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우리가 기다리는 선지자도 아니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권리로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이오?”라며, 요한이 물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요한은 대답하기를 “나는 단지 물로만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이제 곧 당신들 가운데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매고 풀어줄 종이 될 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요한은 다음날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이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그분이 내가 있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었습니까? 그때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나도 이분이 그분인줄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물로 세례를 주는 이유는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이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이분이 그분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이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내려가서 어떤 사람에게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인 줄 알라’ 나는 그 일이 이분에게서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자신이 세례 베푸는 자로 존재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요한은 유대인들이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리스도로, 엘리야로, 또한 그들이 기다려온 선지자로 기대할 때에 그들의 생각과 움직임에 결코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분명히 그리스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증거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연결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전한 것은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전한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요 5:34). 그는 그렇게 그리스도만을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흥함을 위해서 활동하였으며, 그런 자신은 더욱더 쇠하여져야 할 존재로 여겼습니다(요 3:22-30).
이렇게 세례 요한의 증거에서 요한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하는 자인지를 알면 그가 전한 그의 뒤에 오시는 이인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을 비롯하여 한 부류인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베풀면서 이스라엘에게 전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를 주로 섬겨 따르는 믿음에 있지를 못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의 의미를 알지 못하므로 이것이 가리키는 바인 그리스도와 그분이 베푸시는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를 알아보지 못함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성전 정화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성전에서 행하신 일을 보고 또는 들으면서도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있는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주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대적하는 원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정화를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권위로 행하신 것인데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세를 네게 주었느냐?” 라고 하면서 트집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무슨 권세로 한 것이냐? 하나님께 받은 권세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받은 권세이냐”라고 물으심으로, 요한이 베푸는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권세인 것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그가 증거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행한 권세 또한 하늘로부터 온 권세인 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믿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 앞서서 세례 요한을 출생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말할 사자(使者)로 보낸 것이기에 누구든지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선지자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로운 선지자로 믿고 존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요. 이것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정확하게 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당연히 대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요한을 왜 믿지 않고서 그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냐?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서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서 그분이 행하시는 권세에 복종해야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할 것을 두려워했으며, 세례 요한의 권세가 사람에게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하면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는 까닭에 이를 부인할 경우 사람들이 큰 소동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 그렇게도 대답을 못하였습니다.
해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언급하신 것은 자신을 요한이 전파한 것과 동일시하시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성전 정화를 하신 권세를 행하신 것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인 동시에 또한 유대인 지도자들이 요한을 배척한 것과 동일하게 예수님도 배척하는 악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이은 아들의 권위가 하는 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권위 있는 일을 행하신 것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이곳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지고 있는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신 그 권세를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일을 이루시는데 행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으며, 아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를 행하여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요 17:2).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장차 그들의 증거를 듣고 예수께 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모두를 마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이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아버지와 그 아들 안에 있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도록 하십니다(요17:20-21). 그래서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를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이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시고 잃어버리지 않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신 모든 자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서 성경의 예언대로 멸망의 자식 외에는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게 하십니다(요17:11-1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함에 있는 자에게 힘 있게 역사하는 권능 :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기쁨이 충만함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기쁨이 충만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고 그들과 같이 있는 동안 많은 것을 전해주시고 가르치셨습니다(요 17:13).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한 그 미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또한 미워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에 의한 기쁨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맡은 일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갈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으로,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 3:29)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신부를 취하는 분은 신랑이나 신랑의 친구도 그 곁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는 것처럼 자신도 그러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는 벅찬 심정을 표했습니다. 얼마큼 그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는가 하면, “그는 흥하여야 할 것이고 나는 쇠하여야 할 것이다”(요 3:30) 라고 할 만큼,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한 없이 작아지고 작아져서 마침내 없어질지라도 예수님은 한 없이 커지고 커져서 온 세상 앞에 드러나는 것으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자신은 없어지는 것으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자신은 없어질지라도 예수님을 증거하여 그분을 나타내는 일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존재를 예수님을 증거하는 연관에 있는 것에서 보았으며, 여기에서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시는 분이시지만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와 하나인 것에서 기뻐하였으며, 세례 요한 또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지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그분을 증거하며 그분의 곁에서 음성을 듣는 것으로 기뻐한 이것은 우리들에게는 기쁨의 공식이 됩니다. 아버지와 하나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또한 하나가 되었기에 필연적으로 그리스도가 세상과 맞지 않아 미움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또한 세상과 맞지 않아 미움을 동일하게 받을 것이지만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주신 영광을 볼 수 있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저 나름대로의 형편에 따라서 다 누려도, 결국엔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만 시인하는 것은 이것으로만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방 사람들에게도 임한다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한 일로 인해서 쇠사슬에 매여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주님을 증거하는 말을 담대하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쓰고 있는데(엡 6:19-20), 이것이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기쁨이 충만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겠는지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쁨이 충만한 것은 현실과 그 상황을 초월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얻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어진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바라게 하시는 뜻이니, 하나님께서 이 뜻을 반드시 실현해 나가십니다(살전 5:18).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이전에 아주 가치 있게 생각하였던 모든 것들이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이며, 그래서 그리스도 외에는 다 버려질 쓰레기가 될 뿐이어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는, 그렇게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기뻐하는 기쁨이며, 이 기쁨으로 충만한 것입니다(빌 3:7-8). 그런 그는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기쁨이 충만하니 그리스도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이 있으며 이 기쁨으로 살아가는 몸으로 있다면, 그것은 하늘에서부터 주어진 권세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기쁨이 충만한 이 권세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서 받은 것입니까?”하는 질문 공세가 주어질 때 우리는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권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