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780]장욱(張旭)시 山中留客(산중유객)
조맹부書집자
장욱(張旭)시 山中留客(산중유객)
산속에 손을 머물게 하며...
山光物態弄春暉(산광물태롱춘희)
산 경치, 만물의 모습 봄볕에 흥에 겨운데
莫爲輕陰便擬歸(막위경음편의귀)
엷은 구름 곧 의심해 돌아가지 마오.
縱使晴明無雨色(종사청명무우색)
설사 맑은 날 비 올 기색 없더라도
入雲深處亦沾衣(입운심처역첨의)
구름 깊은 곳에 들면 또한 옷 젖으니리...
<註>
山光(산광) : 산의 경치.
弄(롱) : 희롱하다. 가지고 놀다. 제 마음대로 다루다.
솜씨있게 다루다. 업신여기다. 좋아하다. 노리개. 타다. 곡조.
여기서는 '흥에 겨워하다'로 해석함.
暉(휘) : 빛. 빛나다.
春暉(춘휘) : 봄볕.
莫爲(막위) : ~하지 말라.
輕陰(경음) : 엷은 구름
擬(의) : 헤아리다. 비기다. 본뜨다. 향하다. 의심하다.
縱使(종사) : 설사~일지라도
晴明(청명) : 하늘이 개고 맑음.
色(색) : 빛. 광택. 기색. 여색. 갈래. 화장하다. 물이 들다. 평온함. 꿰매다.
沾(첨) : 더하다. 적시다. 살찌우다. 이익을 받다.
경망하다(접). 외면을 꾸미다. 바람이 부는 모양.
장욱(張旭)시 山中留客(산중유객)
<작가 소개>
당나라 시대의 서법가 장욱의 자는 백고(伯高), 계명(季明)이다.
그는 대범하며, 활달하고 도량이 넓은 성격이었다.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재능이 비범하고 출중하였고, 학식도 깊고 넓었다.
그는 자주 술을 마셔서 취한 채로 글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글을 쓰기도 했다.
취하고 즐거워 자화자찬하며 글을 썼는데,
이때마다 훌륭한 글씨가 나왔다.
주위에서는 그를 우악스럽고 교양이 없다 하여
‘장전(張颠)’이라고도 불렀다.
장욱은 스스로 “처음에는 공주의 가마를 메고 가는 사내들이 길을 다투고,
그들이 북 치는 소리를 듣고 필의(筆意)를 깨달았으며,
공손대낭(당나라 때 기생)의 칼춤을 보고
붓을 쓰는 참뜻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초서로 저명하여 후대에 ‘초성(草聖)’이라고 불렸는데
스스로 ‘이왕(二王, 왕희지와 왕헌지 부자를 말함)’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며 자긍심을 가졌다.
또한 장지의 초서법을 배워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광초를 만들어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장욱의 초서는 점잖아 보이지 않았으나
구도나 구조 측면에서 일정한 법도가 있었다.
미세한 획수, 자간 간격들 모두 장욱의 작품이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꾸민 부자연스러운 서법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다.
장욱의 초서는 호랑이가 앉아 있거나 용이 서려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선은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의 초서와 이백의 시, 배민(裵旻)의 칼춤을 함께 일컬어
‘삼절(三絶)’이라 불렸고,
두보는 ‘귀족들 앞에서도 맨머리로 대하고 붓을 휘두르면
종이에 구름 안개가 서린 듯하다’고 그를 평했다.
그는 시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이백,
하지장과 더불어 ‘음중팔선(飲中八仙)’ 이라 불렸고,
하지장, 장약허, 포융과 더불어 ‘오중사사(吳中四士)’로 불렸다.
저서로 『자언첩(自言帖)』이 있는데
그는 여기에 자신의 서풍(書風)을 세운 유래를 적었다.
회소가 그의 서법을 계승하였다.
조맹부(趙孟頫, Zhao Mengfu; 1254년 - 1322년)
중국 원나라 때의 화가, 서예가이다.
자(字)는 자앙(子昂), 호(號)는 송설(松雪),
별호(別號)는 구파(鷗波), 수정궁도인(水精宮道人) 등이며,
오흥(吳興, 지금의 절강성 호주) 사람이다
조맹부는 송나라 종실의 후손으로,
원나라 때 벼슬에 나가 관직이 한림학사(翰林學士), 영록대부(榮祿大夫)에 이르렀으며,
죽은 후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다.
청나라 건륭제가 그의 글씨를 좋아하여 모방하였다고 한다.
조맹부의 시(詩), 서(書), 화(畵), 인(印)에 모두 능했는데,
후대의 서예에 큰 영향을 준 흔히 “조체(趙體)”라 불리는 독창적인 글씨를 만들었다.
그의 서법이 강건하지 못하여 유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각으로 쓴 “원주문(圓朱文)”이 있다.
화법 또한 독창적이어서,
글씨를 쓰는 붓과 그림을 그리는 붓은 같은 사용법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시 작품으로 《송설재집》(松雪齋集)이 있는데, 그 중 뛰어난 작품이 적지 않다.
조맹부의 그림에 사용된 소재는
산수, 인물, 동물, 꽃과 새, 죽석(竹石) 등 손대지 않은 게 없어
, 후대인이 넘어설 수 없을 정도이다.
전기작은 색채가 특이하여
“현려지극 인귀자연(絢麗之極,仍歸自然)”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후기작은 대개 담묵화(淡墨畫)로서 거의 윤곽선만이 보인다.
대표작으로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가 있다.
아들과 부인이 모두 그림에 능했으며,
원나라 화가 왕몽은 그의 외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