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홍산 紅山
한편,
이중부는 해천과 만리장성의 북쪽 성벽을 타고 이동하니, 산등성이의 길도 험난하지만 일행의 대부분이 부상병이라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성벽을 포기하고 산 아래쪽 평지로 내려가 이동하기로 하였다.
역시 평지가 걷기에는 수월하였다.
그렇게 사흘을 걸어가니 큰 강이 앞을 가로막는다. 요하(후일에는 난하로 개칭 改稱)다.
이제 비상식량도 떨어지고 배가 고프니, 하는 수 없이 찔래 순을 꺽어 껍질을 벗겨낸 속의 부드러운 순과 칡 순을 뜯어 먹기도 하고, 둥굴레 새싹과 원추리 뿌리 등 구근 球根을 캐 먹으며 이동한다.
손재주가 좋은 4명의 병사가 물고기와 뱀을 잡아, 아쉬운 대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도강 渡江 할 수 있는 물이 얇은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부상자가 많은 관계로 함부로 깊은 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물줄기가 합쳐지는 위쪽 상류의 얕은 곳을 골라, 도강하니 또 강이 나타난다.
요하(난하)의 동류 東流 지류인데, 이동 중 숲속에서 갑자기 비틀거리며 뛰어나오는 사슴이 있었다.
일행들은 얼른 창으로 사슴을 잡았다.
생각지도 않은 큰 먹거리가 나타나자 모두의 눈에 생기가 돈다.
아주 큰 대륙사슴이었는데 이미 목과 옆구리에 화살을 맞은 사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사냥꾼이 뒤따라 나타났다.
그들은 부여의 예족 사냥꾼들이었는데, 해천 무리의 모양새를 보고는 두말없이 큰 사슴을 양보하였다.
사슴을 구워 허기를 채우며 사냥꾼들에게 들은 얘기는
“조선하 부근의 흉노와 맥 족 무리가 이틀 전, 요하 (난하)에서 많은 수의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갔다”라고 하는 것이다.
정황상으로 신빙성 높은 정보다.
그렇다면 본래 목적지인 대릉하로 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 사냥꾼은 그들이 사용하던 개울 근처의 임시 움막을 가르쳐주며,
“사냥한 곰과 사슴의 육포 肉脯를 만들고 있으니, 부상병들이 어느 정도 치유할 때까지 머물러라”라며 상냥하게 숙식을 편의 제공 便宜 提供하였다.
임시 움막에서 부상의 정도가 심각한 병사를 간호하며, 며칠을 보내며 고심 끝에 하는 수 없이, 패잔병 일행들은 남쪽 조선하의 옥전을 포기하고, 동쪽 대릉하를 목적지로 새로이 이정 里程을 바꾸었다.
이동 중에 먼발치로 두세 마리의 말들이 동서 방향으로 오가는 것을 서너 차례 목격하였다.
흉노족의 연락병이나 척후병으로 짐작되었다.
패잔병 일행의 대다수는 흉노족이지만 지금까지 대 代를 이어 만리장성 남쪽의 중원 中原에서 살아온 터라, 모두들 초원의 흉노족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적도 아군도 아니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구태여 먼저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부상병을 염려하며, 힘들게 큰 개울을 건너니 이번에는 높은 산들이 나타난다.
주변 강(난하, 요하)들의 발원지인 연산산맥의 북쪽 지역이다.
일행 중 비교적 부상 負傷이 가벼워 보이는 세 명의 척후병을 앞세워 연산산맥의 험준한 산들을 피하여 비교적 완만한 길을 물색하여, 북쪽으로 우회하여 돌아가니, 고지대 高地帶에 너른 평지와 개울이 나타났다.
홍산 紅山에 다다른 것이다.
마을이 나타난다.
동네 규모가 크고 들이 상당히 넓다.
마을도 한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압록수(후일의 요하)의 지류로 흐르는 큰 개울 옆의 마을은 크고, 작은 개울을 낀 동네는 호수 戶數가 적다.
개울의 규모와 유수량 流水量에 따라 마을의 크기도 각기 다르다.
중부의 일행들은 몰골이 말이 아니다.
패잔병 신세에다 두 달 이상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풍잔노숙 風殘露宿하며, 이동한 관계로 상거지 꼴이다.
처음에는 야간 습격조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낡고 찢어지고 색깔 마저 바래서 이제는 옅은 회색의 넝마로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이 부상자들이다.
그래도 다행히 해천은 화살에 두 군데나 맞은 왼팔이 많이 나아져 이제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중부의 화살 맞은 어깨도 시나브로 아물어가고 있다.
동네에서는 새봄 맞이에 바쁘다.
부여의 예족이다.
씨앗 콩을 고르기도 하고, 기장과 수수의 씨앗을 단지에서 끄집어내어 불량 不良 여부를 점검하고, 농기구와 연장들을 재차 손보고, 낡은 부분은 새로 만들고 교체하는 등 다들 바쁘다.
일 년 치 먹거리를 지금 파종 播種해야만 한다.
산과 들에 새싹이 돋아날, 이때쯤이면 시기에 맞추어 염소나 양, 말과 소 등 초식동물들도 새끼를 낳는다.
제 시기 時期를 놓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이 묘하다.
대릉하 출신 해천이 동네 촌장을 찾아,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사실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상당 기간 풍잔노숙 風殘露宿을 한, 열다섯 명의 패잔병 무리들.
각설이패가 따로 없다.
눈으로 보기만하여도 그 처지를 단번에 알 수 있기에….
40대 중반의 마을 촌장 서휴는 기꺼이 자신이 기르던 암소를 한 마리 잡아 패잔병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부상병들이 제대로 운신 運身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을에 편히 머무르라고 호의를 베푼다.
동네 의원도 데려왔다.
중상자 重傷者 네 명과 간호 담당 병사 2명은 마을의 빈집에 거처를 정하고,
해천은 동네 어귀에 서 있는 큰 갈참나무를 중심으로 기둥을 엮어 막사를 두 개 대충 지었다.
자원봉사대 역할을 담당할 태도다.
이를 보고 막사를 두루 감을 천과 짐승 가죽도 동네 사람들이 가져다준다.
거의 두 달만에 처음으로 찬 이슬을 맞지 아니하고, 바닥에는 두툼하게 갈대를 깐 막사에서 모두 편히 잠을 잤다.
다음날 촌장은 자신의 마을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준다.
* 홍산 紅山
흙이 붉다.
철분을 많이 함유해서인지 산천이 모두 붉게 보인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도 모두 새빨갛다.
석양 무렵에는 불붙은 것처럼 붉게 빛난다.
그래서 적봉 赤峯이라 불린다.
예족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온 터라고 한다.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 사진 - 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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