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다’ 이케다 선생님 대화록 <1>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여사
△제4차 소련방문 때 인류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테레시코바 여사와 재회했다.(1987년 5월 26일, 모스크바)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1937년 3월 6일, 러시아 야로슬라블주 출생. 1963년 6월, 여성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하여 70시간 50분 동안 지구를 48바퀴 돌았다. 단독으로 우주비행을 해낸 유일한 여성이다. 지구와 교신할 때 호출부호로 갈매기를 사용하여 ‘갈매기(차이카) 여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소련여성위원회 의장, 러시아국제과학문화협력센터 의장, 러시아국제협력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 2011년부터 러시아연방의회·국가원(하원) 의원을 맡고 있다.
같은 인간으로서 마음을 맺는다!
그 속에 무너지지 않는 우정이
긴 겨울을 지나 신록이 움트는 미루나무와 자작나무가 모스크바에 봄을 알리고 있었다.
1975년 5월 26일.
소련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부인부, 여자부 방문단과 함께 푸시킨스카야거리에 있는 소련여성위원회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을 서서 맞이한 사람은 위원회 의장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여사였다.
‘보스토크 6호’에 올라탄 인류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다.
“갈매기 여사를 만났습니다!” 하고 이케다 선생님이 인사하자 테레시코바 여사가 환하게 웃는다.
‘갈매기’는 테레시코바 여사가 지상과 교신할 때 사용한 호출부호다. 여사가 우주에서 보낸 첫 마디는 “야 차이카(나는 갈매기)”였다.
원탁을 사이에 두고 방문단과 여성위원회가 서로 마주본다. 소련의 여성 지도자들이 죽 늘어앉았다.
사회주의와는 다른 자유주의 국가, 더구나 종교인과 나누는 회견이기도 해서 딱딱한 분위기가 감돈다. 여성위원회 의장 등이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을 설명했지만 모두 연설을 하는 듯한 말투였다.
이케다 선생님은 의장인 테레시코바 여사에게 이렇게 말을 꺼냈다.
“왜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하셨습니까.”
탁자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맞잡고 여사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1961년에 우리 소련의 가가린 소령이 탄 보스토크 1호가 세계 최초로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소련의 청년들은 모두 감동했습니다. 가가린 소령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1961년 4월 12일, 훗날 ‘세계우주비행의 날’로 인류사에 새겨진 날이기도 하다.
◇
당시 스물네 살인 테레시코바 여사는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들도 내전과 굶주림으로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공장에 다녔다.
가가린의 역사적 장거에 전 세계가 들끓은 밤, 테레시코바 여사의 집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그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음은 여성 차례구나!” 하고 어머니가 무심코 내뱉은 이 한마디가 테레시코바 여사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농촌에 사는 한 여성에게 ‘우주비행’은 너무나도 먼 세상 이야기였다. 공장 동료들은 ‘여자가 우주에 간다니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겼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은 날이 갈수록 여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우주에 간다면 어떤 여성을 뽑을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우주비행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생각하면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가족 몰래 우주비행사에 지원하여 현지에 있는 항공클럽에서 낙하산 강하훈련에 몰두했다.
“그저 좋은 날씨를 기다리며 가만히 강가에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싸워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테레시코바 자서전’)
가로막는 벽이 있으면 스스로 뛰어든다. 그것이 여사의 자세였다.
염원을 이루어 테레시코바 여사는 우주비행사 후보생으로 뽑힌다. 그러나 그 훈련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혹독했다.
원심력 장치로 몸을 회전시켜 몸이 납처럼 무거워진다. 신체훈련뿐 아니라 로켓공학 등 전문 지식도 한밤중까지 습득해야 했다.
‘여성은 우주비행을 견딜 수 없다’는 주장도 많았다. 심신에 부담이 커서 테레시코바 여사 이후 여성 우주비행사는 20년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 그 뒤 세계에서 60명이 넘는 여성 우주비행사가 탄생했지만, 단독으로 비행한 여성은 지금도 여사 단 한 사람뿐이다.
1963년 6월 16일, 여사는 사흘에 걸쳐 지구를 48바퀴 돌았다. 그것은 여성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비행이기도 했다.
◇
“한 가지 중대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자 테레시코바 여사가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비행 중에 애인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여사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사라지고 웃음이 피어난다.
“애인을 싣지 않고 지상에 남겨둔 채 비행했는데도 제 심장은 매우 순조롭게 고동쳤습니다.”
회견장이 들끓는다. 유머가 넘치는 대화에 긴장된 분위기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지구를 바라보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습니다. 지구는 파랗고 다른 천체와 비교해도 유난히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대륙이든, 어느 대양이든 저마다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빛나는 지구를 투영하기라도 하듯 테레시코바 여사의 파란 눈동자가 빛난다.
“우주에서 한번이라도 지구를 본 사람이라면 우리 요람의 땅인 지구를 틀림없이 존귀하게 여기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테레시코바 여사와 회견한 다음날 선생님은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기념강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크렘린에서 코시긴 총리와 재회했다. 그 뒤에도 소련을 방문할 때마다 역대 정상들과 거듭 대화했다.
테레시코바 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케다 회장과 만난 우리 모두 ‘세계가 무력 경쟁을 멈추고 핵무기를 폐지해야 한다’는 회장의 뜨거운 염원에 공감했습니다.”
1987년 5월, 소련을 네 번째 방문했을 때는 테레시코바 여사가 대외우호문화교류단체연합회 의장으로서 선생님을 맞이했다. 공항에서 환영하는 것부터 총리와 회견하는 것까지 여러 행사를 지원하고 모스크바에서 ‘핵무기-현대세계의 위협’전을 개최하는 데도 힘썼다.
그 뒤에도 이케다 선생님은 소련을 방문할 때마다 문화와 교육의 교류를 더욱 넓히고 행동과 결과로 신뢰를 쌓았다.
◇
테레시코바 여사는 자신의 자서전에 어느 우주과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처음에는 사상, 꿈, 동화가 앞선다. 그 뒤를 과학적 계산이 쫓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실천으로 사상이 결실을 맺는다.”
일찍이 꿈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던 우주개발은 수많은 사람의 도전으로 실현되어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세계로 넓혀진 창가의 인간주의 또한 이케다 선생님이 대화라는 ‘실천’으로 연 것이다.
테레시코바 여사는 이렇게 되돌아본다.
“저는 회장과 만났을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때 회장은 소련 방문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왜 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회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간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불멸의 전 인류적 재산을 세계에 끊임없이 보내는 훌륭한 문화를 간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민족이나 국가, 사상이나 종교와 같은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열어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성실히 거듭 대화한다.
그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우정과 신뢰의 세계가 넓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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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되었어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