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三國志·蜀書』
의미는, 법률이나 규율의 공정함을 위해서는,
결코 사정私情에 구애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계로 사용한다.
또, ‘편애偏愛’를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울면서 마속을 베다’라는 뜻으로,
공정함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는 결단을 비유하는 말.
삼국지의 ‘가정’ 전투에서 제갈량이 군령을 어긴 마속을 눈물 머금고 처형한 사건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유비劉備를 도와서 드디어 촉국蜀國을 탄생시킨다.
220년에 위국魏國이 왕조를 세우자, 유비는 자신이야말로 후한後漢으로서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촉蜀을 왕조로 하여 제위帝位에 올랐다.
그런데, 유비는 제위에 있기 불과 3년 후에 서거逝去했다.
그 이유는,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던 관우關羽가 오吳에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고,
그 원수를 치려고 스스로 출병했지만, 대패하여, 그 마음고통이 원인으로
불귀의 사람이 된 것이었다.
장강長江의 삼협산상三峽山上에 세운 자제성自帝城에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한 유비는,
공명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특히 魏 토벌은 천하통일을 위하여 반드시 행하도록 유언한다.
227년, 공명은 유비의 유지遺志의 실현을 향하여, 위魏 토벌의 북정北征을 개시했다.
위에 열거한 ‘마속읍참’의 명언은, 그 북정에서의 고사로부터 탄생했다.
촉군蜀軍을 인솔하여 기산祁山까지 북정北征을 한 공명은 곡간谷間의 길 가정街亭을, 병량보급兵糧補給이나 후방연락에 뺄 수 없는 요충要衝으로 보았다.
그래서 수비대장을 누구로 할까 생각하고 있던 차, 본인 스스로 자기 이름을 대고 나온 것이, 젊은 참모의 ‘마속馬謖’이었다.
공명은 마속의 장래성을 기대하고, 친동생처럼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경험부족이라, 이 대임大任을 맡기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 간절히 마속이 원하므로, ‘수비일변도에 철저하고, 적의 도발에는 결코 응하지 않는다’라는 엄명을 내리고, 그를 수비대장으로 임명했다.
용약勇躍하여 가정街亭으로 나간 마속은, 여기에서 공적에 들뜨고 설레어, 전수방위의 명령을 무시하고, 기습작전을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적에게 발각되어, 뒤에서 허를 찔려 대패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속의 처벌에 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명령위반은 군법에서는 사형에 처해진다.
측근으로부터는, ‘아까운 인재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사향은 면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탄원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처벌을 취하면, 공명이 마속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장은 편애하신다.’라고 장병들은 그 구실로 인하여, 군법은 산란해질 임에 틀림없다.
공명은 군법대로 엄정히 처벌할 것을, 마속에게 전했다.
그러나, 이어 이런 따뜻한 말을 걸었다.
“나와 나는 형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대의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내가 봐줄 것이다.”
강제로 꿇어 앉힌 마속은, 전군全軍의 슬픔 속에 참수되고,
공명은 사랑스러운 부하의 죽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고사로부터 ‘울면서 마속을 참한다’라고 하는 명언이 탄생했다.
이 고사로부터, 조직을 형성하는 집단에서의 인사관리에 있어
신상필벌信賞必罰은, 공정하면서 엄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배운다.
동시에, 이 고사에서 분명히 빠트릴 수 없는 그것은, ‘운다’고 하는 마음의 따뜻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