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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문학기행+)
미세한 파동(주파수)이 觀音이다. 관음의 뿌리는 양자장(量子場)이다 (1)
1.
빛에서 온 색은 색으로 일생을 살다가 다시 빛으로 돌아간다.
'색'은 나타남 드러남 '보살'의 '살'과 같고 '살과 뼈'할 때도 살은 같은 드러냄의 뜻이다.
(이 어원의 뿌리에서 산, 살다, 사내, 삶, 살여울, 화살 등으로 파생된다.)
이것이 色界 삼라만상의 일생이다. 色이란 곧 물질이다.
제천 동창리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문(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음)에도 "성색(聲色)이 하나"라는 부분이 있다.
즉 聲=소리와 色=물질이 한 몸이라는 것이다.
(宋나라에서 집대성 된 "性理학"도 양자역학과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理氣론)
색은 모두 진동하며 그러므로 모두 소리를 발생한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에너지와 소리로 수렴된다.
현대과학은 관찰이 물질을 발현시킨다고 한다.
마음의 파동(주파수)으로 물질=色이 일어난다는 것이다(양자역학)
자연의 진리며 그 정체성 키워드는 빛과 소리다.
불법(佛法)은 그 빛과 소리 얘기다.
번개(빛)가 치면 천둥(소리)이 일어나고 물방울(色의 패턴)이 응집하여 물분자가 배열된다.
수소+산소=물 (2H2+O2=2H2O)
번개가 칠때 질소(N=동식물의 살을 만드는 양분(질소비료)이 만들어진다.
보살 할 때 음차한 "살"이 그 살이다. 살은 세상을 드러내는 삼라만상=보살이다.
그래서 대기 중에 질소가 많다. 높은 하늘에선 천둥 번개가 쉴새 없이 친다.
대기 중에 질소가 78% 산소가 21%다.
불교에서 부처라 함은 태양을 말한다. 그래서 "비로자나佛=대일광여래=日光"이다.
그래서 산의 제일 높은 봉을 '비로봉'이라 한다.
신라는 불교의 나라다.
황룡사도 불국의 랜드마크지만 그 이전 불국사의 "佛國"이란 간판이 다 말해준다.
불국사 본존불이 "비로자나불"이다.
그런데 우리의 건국신화 조선(고조선)의 이념도 태양이다.
조선이란 이름이나 아사달 박달 한웅 모두 찬란한 아침해란 뜻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란 뜻 "홍익"이란 목표도 태양의 두루비춤과 비로자나불 사상이 같다.
석가모니는 태양의 메신저로 태양의 일을 대신 하는 집사다. 그래서 부처로 본다.
빛에너지는 양이온(양자=핵이 이 원리로 만들어짐)이고,
이 양이온 주위에 음이온(전자)이 춤주며 다른 이온과 결합하여 색계(분자세계)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것을 華(보이지 않는 꽃)라 하여 '華엄경' '법華경' 경전의 제목 중심 키워드가 된다.
나는 우리나라 단청을 화학결합의 구조식, 추상적 도형의 기하학으로 본다.
부처에 금칠을 하는 것은 태양이라는 뜻이다. 金=白과 같이 쓴다.
불교는 또한 모두 소리의 파동을 일으는 오브제로 되어 있다.
염불, 목탁, 법고, 운판, 범종, 풍경, 목어....
불법이란, 모두 소리의 파동으로 삼라만상과 상호관계 한다.
불법은 소리의 공명을 일으켜 하나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래서 이론가 문수보살의 지혜로 무명을 깨워주고,
소리의 파동 관세음보살과 공명하여 아품과 번뇌를 씻으며
두루두루(普) 삼라만상(顯) 모두 보현(普賢)보살이 되어
오케스트라 우주를 연주하는 것이다.
인드라 영산회상도 즉 세상에서 가장 큰 공연=자연을 펼치는 것이다.
삼라만상의 파노라마며 생명의 파노라마다.
이와 같이 불법은 자연의 行=道다.
빛과 소리의 방편으로 마음=심장의 우주 공명주파수를 이루려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래서 순결한 마음을 내는 공부=경전를 여러 방편으로 단계단계 설명하고 있다.
부처와 보살은 사람처럼 의인화 한 것이다. 실상은 파동(주파수)일 뿐이다.
그래서 삼라만상을 다 보살(보현)이라 하며,
'菩薩'은 음차이며 훈차의 요소도 갖춘 세상을 짜는 직조로 비유한 것이다.
삼라만상이 다 보살이다. 삼라만상의 대표보살을 의인화 한 것이 보현보살이다.
부처는 뼈와 뼈 속에 에너지 精을 담는 뼈 원자다. 생명의 얼개에서 탄소(C) 격이다.
보살은 情이 있는데 부처는 情까지 지워버린 원자격이다.
보살은 情이 있어 서로 살이 되어 준다. 동식물의 먹이 사슬이 다 보살이기 때문이다.
情=측은지심 사랑 자비는 살에 고인다. '살갑다'가 그 말이다. 정이 있으면 '보살'이다.
삼라만상은 보살도를 수상행식(상호 느끼고, 생각하고, 마음을 일으켜, 행함)한다.
일엽 스님이 아들과 모자의 정을 라훌라=장애라고 정내미 없이 내친 것은
보살에서 부처로 점프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불교는 물리 화학이고 性理학이다.
2.
1956년, 박서보 화가 26세 때다.
자기 성질을 참지 못하고 툭 하면 미술계와 다투는 자기자신이 싫었다.
고뇌하다 수덕사 김일엽 스님을 찾아간다. 그때 일엽 스님은 세수 61세.
(나는 이때 두 분의 문답에서 禪과 현대과학이 만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두 분은 선이니 현대과학이니 하는 거창한 名色따위 개념은 없었다)
박서보 : 어떻게 하면 불같은 제 성정을 누르고 제가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 : 부처님을 모셔놓고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십시오.
박서보 : 그건 우상 아닙니까?
스님 : 그러면 강이나 바닷가에 가서 마음에 드는 돌 하나 주어다 놓고 “박서보 박서보”를 불러 보세요.
박서보 : 그럼 스님은 부처님을 만나봤습니까?
스님 : 만나봤지. 지금 당장도 만나볼 수 있지.
박서보 : 만나보니 어떻습디까?
스님 : 그게 나더라.
박서보 : (아이쿠, 역시 여걸이구나!)
(박서보(1931-2023) 생존 당시 그림 값이 가장 비쌌던(최고가 35억) 화가. 젊어서는 미술계에서 트러블메이커였다. 1956년 반 국전을 선언하고 낙선작을 모아 덕수궁 담벽에 보란듯이 반항전(?)을 열고, 미술계를 탈퇴하기도 한다. 홍대 교수일 때는 동료 교수들과 불화로 교수직을 내던지고 시골로 내려가 궁핍한 생활을 하기도 한다.)
(一葉 스님(김원주 1896-1971). 목사의 딸로 태어나 17세가 될 때까지 부모를 모두 잃고 동생 4명까지 잃게 되는 여인, 할머니 밑에서 이화여전을 다닌다. 졸업반이 되던 해(18세) 할머니 짐을 덜어주기 위해 40세 불구였던 돌싱남과 결혼. 이후 이혼. 일본 영화학교 유학. 10여명의 남자들과 자유연애. 그리고 32세 때 스님이 됨)
이 두 사람의 짧은 문답 속엔 불교의 觀音(파동)과 현대과학 양자장의 “관찰자효과” 핵심이 들어있다.
박서보 화가는 장차 다음과 같은 2 가지 패턴의 작품 “妙法 시리즈로 “한국단색화” 거장이 된다.
그 핵심은 파동 즉 觀音이다. 현대과학은 이것이 물질의 제일 아랫단계에서 일어나는 삼라만상의 현상이라고 한다.
작품명 : 妙法 (妙法 시리즈 - 1패턴)
妙法 시리즈-1패턴)은 교수직을 버리고 안성에 내려간 시절, 새로운 작품을 착안해야 하는데 착상이 안 떠올라 막막했을 때, 그의 3살 먹은 아들이 네모 칸이 그려진 공책에 ‘한국’을 칸에 넣어 쓰려 하는데 서툴러 칸에 맞게 쓰여 지지 않았다. 연필로 빡빡빡 지우더라는 것이다.
몇일이 지났는데 갑자기 아들의 그 순수한 행위가 다시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캔버스에 화이트를 바르고 이 행위를 켜켜이 무한 반복한 것이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 마음을 비워내는 행위의 반복인 것이다. 그는 이것을 <비워내는 수행>이라고 했다.
<한국단색화>라는 세계미술사적 특징이 다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절묘하게 물질의 정체성, 물질이 발생하는 찰라, 숨은 물리적 현상-파동 진동의 에너지장 모습이 표현된 것이다. 이 작품을 외국의 평론가가 심오하게 들여다본 것이다.
3살 먹은 아들이 박서보 화백의 문수보살이고 선지식이 되었던 것이다.
작품명 : 妙法 (妙法 시리즈 - 2패턴)
(妙法 시리즈-2패턴)은 (妙法 시리즈-1패턴) 이후 병행하여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98년 동경화랑 전시 이전이후가 일반인들에게는 같은 패턴처럼 보이는데 그 속 내용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동경화랑에서 오프닝을 하고 후쿠시마의 한 야산을 산책하게 되었다. 가을이었다. 새빨간 단풍이 심장으로 쳐들어오는 듯 강열하게 불타올랐다. 그때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 색으로 번뇌와 아픔을 치료할 수 있겠구나. 불사를 수 있곘구나!". 그때부터 밖으로 드러내는 그림이 아니라 안으로 스며드는 작품을 시작한다.
흡성에 최적인 한지의 물성 위에 골과 등을 조형하고 맑은 채도부터 몇 겹 쌓아올리는 작업으로 변화를 준다. 색과 빛의 경계다.
위 작품 속 "一"자는 다리발 추상이다. 빛에서 색으로 색에서 다시 빛으로 건너가는 "아재아재바라아재(가자가자 저 강 건너)의 주문과도
공명한다. 그래서 울림을 증폭시킨다.
삼라만상은 모두 빛의 파동으로 와서 스펙트럼처럼 색으로 발현되어 색으로 일생을 살다가 다시 빛으로 환원된다. 삼라만상은 모두 탄생-산화, 환원이다. 물질이 일어나는 것은 색의 질서 - 전자의 질서적 도열이다. 이 물질이 발현되는 현상, 패턴 속에는 수학의 메커니즘이 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규칙적으로. 그래서 수학은 숨은 질서의 패턴 법칙 규칙으로 작동된다. 이 수식이 드러난 것이 기하학, 즉 물질의 패턴이다.
이 원자단위 이하 전자기장 양자장에서 일어나는 파동 진동이 바로 觀音이다. 미시셰계의 파동방정식이 ‘觀自在’다.
여러 경전을 집대성한 것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 핵심은 물질과 의식(마음)의 상호관계작용 즉 연기법이다. 이 모든 삼라만상의 존재라는 것이 ‘相’이다. 번뇌로부터 ‘空’이라는 근본 진리를 깨달고 그 번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압축해 설명한 것이 팔만대장경 압축판 260자 <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의 주재자 주인공이 관음보살=관자재보살이다. 관음보살은 물질과 마음이 일어나는 현상 미시세계의 전자기장과 양자장을 관세음보살이라고 의인화한 것이다. 마음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몸(삼라만상)의 패턴 밑바탕은 진동 파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般若(반야) = (나를 찾아가는) 큰 지혜는
波羅(바라) = 진동과 울림이 그 밑바탕이다.
密多(밀다) = 空성-프랑크상수의 미세한 에너지장
心經(심경) = (세상 만물은)마음이 일으켜 비치는 畵像(화상)이다. 마음은 스크린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이제 현대과학을 오가며 설명해야 한다.
2500년 전 경전은 직관에 의한 비유였다.
이제는 물리 수학이 그 모호한 관념을 벗어낼 수 있다.
이 세상 과학적 현상은 디지털 미시세계를 다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데 불교는 석기시대 설명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박서보는 결국 觀音=미시세계의 진동과 파동.
마음과 몸=파동과 입자가 하나라는 것을 깨달게 된 것이다.
색과 빛, 이 미세한 주파수변주 마음이 몸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겠구나.
빛과 색이 관세음보살이라는 깨달음으로 구도의 완성을 이룬 것이다.
일엽스님은
스님 : 그러면 강이나 바닷가에 가서 마음에 드는 돌 하나 주어다 놓고 “박서보 박서보”를 불 러 보세요.
박서보 : 그럼 스님은 부처님을 만나봤습니까?
스님 : 만나봤지. 지금 당장도 만나볼 수 있지.
박서보 : 만나보니 어떻습디까?
스님 : 그게 나더라.
부처는 없다. 부처는 깨달음이 일어나는 매개 표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깨달은 다음엔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나타나면 조사를 죽여라.
하느님도 예수도 모두 죽여야지만 거기 내가 있고 내가 우주(화엄) 내가 부처 내가 하느님 하나님임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비로소 그에 합당한 “觀自在”의 자유 ‘行’이되고 보현보살(삼라만상)과 한 형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재동자(구도자)의 일생이다. 구도의 완성 화엄경 ‘약찬계’다.
박서보화가의 세상과 불협화음 방황
호사가가 좋아할 일엽스님의 젊은 날 타오르던 불길과 방황
선재동자가 52품 모든 현상을 돌아 보현보살=우주 속에 편재하는 과정과 같다.
인생은 그 일생이 구도의 길이다.
깨달음이란 욕망으로 인한 번뇌의 그름 낀 거울을 닦아내고 세상을 다 비춰보는
밝은 거울 “마음”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문학여행에서 수덕사가 천 년 고찰이고 부처고 뭐고 그것은 다 피상이다.
잃어버린 본성 마음을 찾는 것이 본질이다.
관광은
光=눈에 보이는 것
觀=마음으로 보는 것이라면
光으로 觀을 보는 것이다.
3.
파동(주파수)이 물성(物性)를 이루는 것을 보자.
파동이 물(物)과 거기에 성(性)이라니?
파동은 원적외선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으로 셈여림(에너지) 층이 생긴다
도레미파솔라시 주파수가 고저 층을 이루고, 빨주노초파남보 色도 고저 층을 이룬다.
모두 하나의 뿌리고 하나의 에너지인데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이다. 번역을 하면 파동=에너지다.
소리 에너지 색이 주파수의 셈 여림으로 펄스 스펙트럼화 되기 때문에 성(性)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파동(주파수)이 물성(物性)를 이룬다는 것이다.
모래나 분말을 판에 놓고 주파수를 높여가보자.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파수를 올리면 패턴은 복잡해진다.
에너지가 높아지는 것을 직조로 비유하면
성근 직물에서 고운 실크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TV모니터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 풍경이 이 원리다.
말 노래 모든 소리들이 다 파동(주파수)이다.
화소(畵素) 성소(聲素)가 같다. 일랑선사비의 성색(聲色)이 한몸 즉 같은 에너지의 다른 형태임이 증명된다.
삼라만상이 다 허공이 배열된 것이며,
식물이 땅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허공을 먹고 자란다.
나무 풀 벌레 짐승 사람 모두 다 허공을 먹고 그 알고리즘으로 얽혀 살아간다.
식물은 허공의 이산화탄소+물을 먹고 빛으로 에너지화 하며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동물은 식물이 만든 포도당과 산소를 먹고 다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CO2+H2O ---> C6 H12 O6 +O2
계수를 맞추면
6CO2+6H2O ---> C6 H12 O6 +6O2
다 허공을 먹고 살아가는 알고리즘이이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인 것이다
(허공에서 삼라만상 물질의 색계로, 물질의 색계에서 공의 세계로)
(다음 (2)회에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부처 하느님 하나님이 다 물리 화학의 의인화일 뿐이다.
물리 화학 수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그렇다고 종교적 차원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처가 있고 관세음보살이 있고 하나님이 있다는
존재자론적 지금의 종교관 가르침은 혹세무민이다.
1930년 이후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를 철저히 증명하고 있다.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은 종교가 더욱 순수한 마음 찾기의 나침반이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종교관인 부처나 하나님 유일신이 있다는 것은 철저히 사기다.
다만 순수한 마음 찾기의 방편으로 표상(십자가 부처 성현)은 효율적 측면에서 인정할 수 있다.
일엽스님이 돌 주워다 모셔놓고 박서보나 관세음을 하라는 것이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신이나 절대존재자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사기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지금의 종교관은 급속히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
박서보 화백과 일엽스님의 수상행식은 이를 미리 증명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