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댓글 0 다른 공유 찾기
전자점자 다운로드 바로가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
11월 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했던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었던 국회 본회의장. ⓒYTN 뉴스 동영상 캡처
국정감사 종료 이후 정부의 새 예산안에 대해 정부가 예산 편성 기조와 주요 정책 방향을 국민에게 직접 보고하고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시정연설은 올해도 어김없이 있었다. 지난 11월 4일에 있었는데, 이날엔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이달 안에 예산안 등에 대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얼마 전 터진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 등으로 인해 야당이 탄핵과 퇴진 구호를 외칠 수 있어 불참한다는 게 대통령실 측 설명이지만,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예산안과 예산 운용에 관한 생각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는 자리가 시정연설이고, 국민은 이를 들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급한 국정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 불참하는 건 국민의 권리를 짓밟는 것으로 유감이다.
그나저나 이번 시정연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 국제적 고금리, 고물가에, 주요국의 경기 둔화 등으로 우리의 수출이 부진하면서 민생에 큰 타격이 되었지만, 정부는 경제 역동성 회복과 민생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며, 시장경제와 건전재정 기조 정착, 민간주도 성장 등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는 살아나고 있으나, 민생 회복 속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정부는 이를 다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민생문제에선 물가 상승률 1%대로 안정, 계속되는 일자리 증가와 고용률 69.2%에 실업률 역대 최저 달성은 물론, 금융투자세 폐지 등의 적극적 금융시장 활성화 정책 추진, 소상공인 금융지원, 적극적인 약자복지 확대 등을 노력했다고 했다. 또한, 연금개혁, 의료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을 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지난 6월에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3대 핵심 의제 중심으로 저출생 추세 반전 대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 및 대내외 환경 불확실성으로 앞으로의 재정 운용은 어려움이 예상되나, 정부는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비해 지속 가능한 재정 확보에, 만전 기할 거라며,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이 예산안을 통해 ▲맞춤형 약자복지 확충, ▲경제활력 확산, ▲미래 준비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 ▲안전 사회와 글로벌 중추 외교 등 4대 분야를 중점 지원할 거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대신 시정연설 대독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YTN 뉴스 동영상 캡처
맞춤형 약자복지 확충과 관련해서, 중위소득 6.4% 상승, 생계급여 연평균 8.3% 인상, ‘양육비 국가 선지급제 도입’으로 월 20만 원 최장 18년간 지원, 1000만 어르신에게 일자리 110만 개 공급, 올해보다 50만 명 늘어난 150만 명에게 국가장학금 지원 등을 발표했다.
저출생 추세 반등을 위한 지원에선 단순 현금 지원을 탈피해 실제 육아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양립, 돌봄,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중점 지원하겠다면서, 배우자 출산휴가 20일로 증가, 육아휴직 급여의 대폭 인상, 동료 업무 분담 지원금 신설 등을 얘기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선 의료인력 확충, 필수진료 제공, 지역의료 육성,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필수의료 R&D 등 5대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사병봉급 월 205만 원으로 인상, 내년 경주에서의 APEC 정상회의 재정 지원,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금 50% 인상, 전기차 배터리 화재 막는 스마트제어 충전기 보급 확대, 딥페이크 등의 지능범죄 대응역량 강화, 정책자금 상환 기간 최대 5년 연장과 농어민 소득안정을 위한 수입안정보험 전면 도입 등의 경제활력 확산 조치 등을 약속했다.
들으면서, 그냥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먼저 중위소득 얘기부터 하면, 중위소득이 6.4% 상승했다고 하는데 이는 기준 중위소득 6.4% 상승을 말하는 것이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 결정 시 예전에는 가계동향조사를 활용했지만, 4년 전에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변경했기에, 여기서 발생한 차이 12.49%를 6년 동안 해소키로 하고, 이와 관련한 추가 인상분이 생겼다.
그리고 최근 3년 동안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의 중위소득 평균증가율인 기본인상률이 있는데, 이는 2020~2022년까지 7.81%라고 언론 보도를 통해 나왔다(출처: 빈곤사회연대 2024년 7월 25일 성명서). 이 기본인상률과 추가 인상분을 더해야 제대로 된 중위소득 증가율이라 말할 수 있는데, 정부는 기본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6.4%를 발표했다. 더구나 기준 중위소득으로 발표한 239만 2천 원은 작년 통계청의 중위소득 값인 252만 1천 원에 못 미치는 값이다. 즉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이 통계청의 실제 중위소득보다 낮다.
기준 중위소득의 32%를 생계급여로 받는데 이 급여 수급자 가운데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다. 수급자 사각지대가 생김은 물론, 적지 않은 장애인을 포함한 수급자들의 삶이 힘든 건 과거와 비슷할 게 예상돼 우려된다. 기획재정부에서 ‘세수 부족’을 이유로 기준 증가율을 낮게 잡아 그렇게 됐는데, 이는 부자 감세 기조의 현 정권 정책에서 온 부분이 크기에, 정부의 잘못이 맞다.
여기에 생계급여 관련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전면 폐지가 아닌 부분 완화였다. 의료급여에 대해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언급은 없었고, 또한 의료급여와 관련된 본인부담금이 정액제가 아닌 진료비에 따른 정률제로 변경되었다. 그 바람에 본인부담금이 커졌고, 이로 인해 수급자의 경제적 접근성 감소로, 이들의 삶에 큰 부담을 줄 것이 우려된다.
2025년 기준 중위소득 6.42% 인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내용. ⓒ보건복지부
계속되는 일자리 증가와 고용률 69.2%에 실업률 역대 최저 달성이란 얘기가 시정연설에 있었는데 이 부분은 장애인과 관련해 별로 체감 안 된다. 물론 장애인 고용률도 2022년 3.12%에서 2023년 3.17%로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대기업집단 1,300여 곳의 고용률은 2.43%로 의무고용률 2.99%에 한참 미달했다(출처: 장애인 고용률 3.17%로 소폭 증가…대기업은 여전히 기준 미달, 연합뉴스 2024년 5월 23일 기사).
이를 보면 장애인 의무고용 부담금이 기껏해야 최대가 최저임금이며, 장애인의 고용을 위한 지원을 권리,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 등의 기업 태도는 여전하다. 고용장려금의 현실화와 의무고용 부담금 증가는 물론, 장애인이 일을 잘하도록 합리적 조정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다.
일하는 장애인들은 대부분 기껏해야 최저임금이 최대인 게 현실일 정도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결정됐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인상률보다 작아 실질임금은 줄어드는 효과라, 임금을 통한 장애인의 삶이 팍팍한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장애인연금도 물가상승률만 반영됐을 뿐, 최저임금의 약 20%라 적절한 생활 수준 달성엔 부족하다.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연금보험료를 내야 은퇴 이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거다. 그렇다면, 장애인도 연금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 장애인의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고 아까도 말했듯, 기껏해야 최저임금이 최대인 게 현실이다시피 하므로 연금보험료를 내기도 벅찬 장애인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장애인의 평균수명이 비장애인보다 약 10년 정도 낮지만, 국민연금 노령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같다. 그러기에 장애인의 경우 노령연금의 조기수령과 연금보험료 경감 및 보험료 납부기간 단축, 일자리에서의 합리적 변경 등 장애인 고용 활성화 등의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연금개혁안엔 그런 것을 찾기 어렵다. 아울러 연금보험료 4% 올리지만, 받는 연금은 고작 2% 올리는 등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이기도 해, 노인 빈곤 경감 노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각각 4%, 2% 상승한다는 국민연금 개혁안 인포그래픽. ⓒ보건복지부
의료개혁 추진과 관련해 ‘비급여·실손보험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거라 했다. 이와 관련해 비중증 과잉 비급여의 혼합금지 적용을 추진한다지만, 백내장 시술과 하지정맥류 치료 등 전 치료와 진료가 아닌 일부에 적용돼 솔직히 민망한 수준의 비급여 통제 대책이다. 전 치료와 진료에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하지 않은 채, 의료인력 확충, 필수진료 제공, 지역의료 육성,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필수의료 R&D 등 5대 분야에 재정 집중투자로 의료개혁이 될지 의문이다.
공공의료대학 설립 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단순 의료인력 확충 아닌 공공병상 최소 30% 확충과 의사의 공공적 양성 및 배치 등 민간의료체계 지양하고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는 구체적 내용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속된 말로 돈 되고 비급여 많은 피부과 등에서 의사들이 일하려는 현상을 제어키 어렵다.
더군다나 개인의 의료정보를 본인 동의하에 보험사, 의료기관 등 민간에 전송하고, 전송하면서 가명 처리된 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 민간보험사 등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용이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물론, 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엔 이로 인해 보험료 상승이나 민간보험 가입 거절 등 장애인 차별에 휘말릴 여지가 높아 의료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할 것이다.
교육개혁에 관해선 늘봄학교를 전국 초등학교 1학년으로 확대하고 내년엔 2학년까지 확대할 것이라 했다. 늘봄학교란 정규시간 외에 학교, 지역사회의 다양한 교육자원 연계로 학생 성장·발달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존 초등학교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하고 개선한 체제다.
특수학교·학급의 경우 늘봄학교 운영 시 자원봉사자 채용이 적지 않지만, 이들의 전문성과 보수는 낮다. 뿐만아니라, 장애아동 전담 보조 인력 부족으로, 돌봄 성격이 강한 늘봄학교에서 장애아동을 관리하는 책임을 특수교사에게 떠넘기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늘봄학교에서 장애아동을 제대로 지원하는 직종을 명시하고 이들 인력의 처우 개선 조치가 필요함은 물론, 특수학교 보조원 등 기존 보조 인력의 늘봄학교 지원 지침 등이 필요한데, 이런 게 현재 미비한 상태에서 늘봄학교 확대를 통한 교육개혁이 될지 상당히 의문이 든다.
작년 서이초와 주호민 사태를 통해 특수학급이나 시설로 장애 학생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배해졌다. 장애 학생에 대한 혐오는 심해졌는데, 이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할 교감, 교장 등 학교 관리자들과 교육 당국의 사실상 책임 유기가 근본 원인이다. 학교 관리자들과 교육 당국이 삼자 간 갈등을 중재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에 관한 구체적 내용과 조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서울시 학생 조례 폐지 등을 통해 교육개혁은커녕 교사와 장애 학생을 포함한 학생의 인권은 퇴행하고 있다.
서울시 의회에서 가결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항의하기 위해 시민사회 단체들이 서울시 의회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는 모습. ⓒ이원무
저출생 대책에 관해선 배우자 출산휴가 20일로 늘리기, 육아휴직 급여의 대폭 인상, 신혼과 출산 부부의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한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의 상향 등을 발표했다. 필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출생·양육 시 남성이 여성과 동등한 주체로 참여하게 하는 등 이와 관련된 구체적 성평등 정책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이를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이 작년에 발표됐고, 올해엔 이 정책과 관련된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혁신방안은 치료를 강요하고 강제입원 및 인간 존엄성 말살을 부추겨 자살률이 오히려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기에,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구성은 당사자 1명만 있고 나머지는 전문가와 정신과 의사 등이 중심이라, 심리사회적 장애인 당사자 의사 반영이 어렵기에, 당사자의 정신건강은 후퇴될 우려도 크다. 따라서 혁신위원회 구성 개선 방안은 물론 심리사회적 장애인, 자폐인 당사자 등의 정신건강 도모를 위한 오픈다이얼로그 등 비강압적 방안과 동료지원쉼터 등에 대한 예산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이 또한 시정연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외에도 노인 일자리가 양적인 팽창은 있었으나, 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아, 질적 개선을 위한 구체적 내용과 예산이 필요한데 이에 관한 얘기가 없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이 시설 접근권이 보장되도록 편의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예산에 대한 이야기도 시정연설에서 들을 수 없었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위한 실질적 예산지원 내용도 없었다. 게다가 ‘장애인’이란 단어가 시정연설에 딱 한 번 나왔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시정연설은 장애인 등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한 시정연설이었다고 말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진정성 전혀 없는 딱딱하고 차갑고 형식적인 느낌만이 감도는 시정연설이었다. 이런 시정연설 언제쯤이면 사라지려나? 정부 정책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앞으로 더욱 주시해야겠지만,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요즘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