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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성 전쟁으로 본 사탄 2 (수8:8-14)
8. 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11. 그와 함께 한 군사가 다 올라가서 그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쪽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더라 12. 그가 약 오천 명을 택하여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 13. 이와 같이 성읍 북쪽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쪽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14.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나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오늘 말씀도 "아이성 전쟁으로 본 사탄"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은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이 탐욕을 품어 손대서는 안 될 것을 취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면 사탄에게 이미 진 것입니다. 세상의 임금이 사탄인데 세상을 숭배하는 순간 사탄에게 소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과 영광을 주리라고 하자 물리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지구가 아닌 타락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오늘은 아이성 전쟁을 통해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영적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1. 승리의 복음에 서야 합입니다.
1절에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반가운 말씀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전쟁의 특징은 언제나 승리를 먼저 약속하시고 전쟁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이것을 "붙이신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와 유리가 싸우는 격이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이처럼 이미 승리자입니다. 이제는 싸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믿음으로 꿈틀거려도 사탄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물러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불변의 말씀에 서서 승리자라는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둠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희망을 선사할 영적 군대입니다.
2. 중요한 것은 싸우는 것입니다.
18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26절에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아말렉과 전쟁에서 모세의 치켜든 손이 내려오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여기 단창이란 짧은 창입니다. 여러 창 중에서 왜 단창입니까? 단창은 심판을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창5:22에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이 '창의 사람'으로 창 던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던지는 창은 단창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단창을 아이성을 향해 진멸하기까지 가리켰던 것은 싸워라. 끝까지 무찔러라. 이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18-19절에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단창을 들어 가리키는 것을 신호로 싸우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를 응원하고 계시니 싸워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원수들의 돌에 맞아 죽어갈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처럼 지금 주님은 우리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싸워라. 끝까지 싸워라. 아무리 우리가 예수 안의 승리자여도 싸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십자가 군병의 믿음으로 끝까지 싸우시기 바랍니다.
3. 합심하여 혹은 근신하며 싸워야 합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하셨습니다. 여기 “군사를 다 거느리고” 했습니다. 이제 이 전쟁은 처음처럼 얕보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싸운 그런 전쟁이 아닙니다. 전군이 다 올라가서 싸운 전쟁입니다.
벧전5:8-9에 "마귀를 대적하라 -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싸워야 합니다. 환난만 시험이 아니라 평안하고 형통도 시험입니다. 평안할 때가 영적으로는 더 큰 시험의 때입니다. 가장 큰 위기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입니다.
우리 한반도나 세계 역사를 보면 남쪽이 북쪽을 이긴 적은 아주 희귀합니다. 우리나라는 신라가 삼국통일할 때 말고는 없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북군이 이겼습니다. 월남의 남북대결에서도 북쪽의 월맹이 이겼습니다. 예멘에서도 북이 이겼고, 중국 역사에서도 대체로 북방세력이 남방세력을 제압하고 왕조를 세웠습니다. 배고픈 몽골, 요나라, 금나라가 배부른 송나라를 이겼습니다. 예외는 남에서 북진하여 통일한 명나라 말고는 없습니다. 독일도 프랑스도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남쪽은 북쪽에 늘 먹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남쪽은 배부르고 따뜻하고 살만해서 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쪽으로 갈수록 인심이 후합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줄 알고 맨날 속고 또 속습니다. 직업으로 보면 남쪽은 기후가 좋아 농사를 많이 짓는데 농민들은 유순합니다. 정신력이 해이한 탓입니다. 남북대결에서 북한을 이기려면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처럼 영적전쟁에서 이기려면 근신하고 깨어기도하며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출12:41에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영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가기도 전에 시험 들어 주저 않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그동안 수많은 시험을 다 이기고 여기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롭다면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수고하고 희생했기 때문이듯,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평안하다면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날마다 경성하며 깨어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합심하고 근신하여 싸워야 합니다.
4. 기도로 싸우시기 바랍니다.
9절에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했습니다. 여기 매복한 복병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기도의 복병을 가리킵니다. 매복이란 적군 몰래 숨어있다가 절호의 기회가 다가왔을 때 적을 공격하므로 대비할 겨를을 주지 않고 섬멸할 수 있습니다. 이 전법은 베트남전에서 많이 썼다고 하는데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할 뿐 아니라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전술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숨은 복병과 같아서 절망적인 순간에 희망을 안겨다 주고, 아군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사단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이스라엘 군대 약 50만이 아이성 앞에서 일부러 패하여 도망 가듯 완전한 절망이 왔을지라도 우리에게 기도의 복병이 있다면 소망이 생깁니다. 어둠 가운데 빛이 비췹니다. 기도는 합심해서 하면 원자탄과 같다고 합니다. 기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매복조가 처음에 삼만 명으로 편성됩니다. 그리고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추가로 다시 오천 명을 증원시킵니다. 추가로 오천 명을 더 보낸 것은 이 전쟁에서 매복조의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만이면 충분하지만 오천을 더 보냈습니다. 처음처럼 아이성을 얕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군 53만 명이 전쟁에 참가하고, 그 중에 복병만도 삼만 오천 명입니다. 복병만 해도 이전의 열 배가 넘습니다.
그럼에도 혹시나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오천 명을 증원시켰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작은 병력으로 더 큰 대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적은 수효로 아랍을 상대하여 크게 이인 일도 잇고, 미국이 일본과 싸웠던 태평양전쟁도 당시 미군의 80%는 유럽전선으로 나갔고 대부분 해군과 해군이 보유한 전투기와 해병대 등 20%만 가지고 싸웠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쟁은 어떤 영적 교훈을 담고 있는 전쟁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하는 기도가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충분하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늘 추가해야 합니다. 일어나서도 하고 낮에도 하고 밤에도 해야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작정하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혹은 기도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또 매복 장소가 벧엘과 아이 사이였는데 이곳은 참으로 신앙의 유서 깊은 장소로 창12:8에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한 것처럼 아브라함이 제단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던 장소입니다. 야곱도 그곳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를 경외했습니다. 나중 일이지만 사사 드보라의 집도 거기고, 엘리야 선지학교도 바로 거깁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하나님의 집 벧엘입니다.
그러므로 복병의 교훈은 다름이 아닌 기도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는다는 것은 일회용이 아니라 꾸준히 쌓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번 기도한 것은 그냥 기도이지 기도의 제단이 아닙니다. 무시로 기도하되 정한 시간에도 꾸준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제단을 쌓지 아니하고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시험이 온 이유가 기도의 부족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해서 이겨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즘 청년들이 믿음 좋다 해도 기도하는 믿음은 없으니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이젠 다 끝났고 절망할 때 여호와의 제단에 복병만 있다면 절대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신 예수님 안에서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군대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기도의 매복조는 하나님 나라 특공대 중의 특공대입니다. 영적전쟁터에서 싸우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승리의 복음에 서서, 예수님의 명령인 줄 알고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마음으로, 우리 함께 근신하고 합심하여, 기도로 싸워 우리의 영육 간의 삶에 더욱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성 전쟁으로 본 사탄 3 (수 8:15-29)
15.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16. 그 성읍에 있는 모든 백성이 그들을 추격하려고 모여 여호수아를 추격하며 유인함을 받아 아이 성읍을 멀리 떠나니 17.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추격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아이성 전쟁으로 본 사탄"에 대한 마지막 시간입니다. 사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왜 아주 멸하시지 않고 가만 두실까? 그것에 대한 직답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답이 될 수 있는 성경 말씀이 사사기에 있습니다.
삿3:4에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참 믿음에 있는지 자기 백성을 시험하시고 참 백성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역사 때문에 한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죠. 우리 믿음을 잘 길러줍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훈련소에 악명 높은 조교와 같다는 마음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사탄과 어떻게 싸울까요?
5. 마음 굳세게 하시기 바랍니다.
9절에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 잤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 가운데 유숙한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우선 물같이 녹아버린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그들의 용기를 다시 북돋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승리의 약속(1-2절)을 그들에게 전해줄 때 얼마나 용기를 가졌겠습니까?
파월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군대가 베트남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그렇게 용감했던 이유가 채명신 장군의 노력도 컸다고 합니다. 그토록 위험한 적지에서도 아군을 격려하기 위해서 위험을 마다하고 와서 격려했다고 합니다. 함께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신앙인이기도 한 채장군이 2013년 11월 2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전우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하여 장군모역에 뭍이지 않고 최초로 사병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나라의 좌경화를 염려했다고 하는데 채명신 장군은 여호수아와 같은 영웅 중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잔 곳이 백성 가운데라 했는데 정확히 어디였을까? 백성이란 낱말은 흔히 이스라엘의 군인을 가리키는 명사로 많이 쓰였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군대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군인들과 함께 잔 것은 전투에 임하는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영적 싸움에서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우리 마음이 물처럼 녹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싸워보기도 전에 우리는 죽었다 하면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벧전5:9에 “너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고, 엡6:13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사탄 앞에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맞서시기 바랍니다. 히10:38-39에도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했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던 모세와 같이, 적군 앞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같이, 다윗과 같이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왕하 2장에 엘리야가 승천한 후 엘리사가 요단강이 앞에 놓였을 때 엘리야의 겉옷을 강물에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물을 치매 물이 갈라졌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6. 십자가의 승리를 믿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13-14절에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50만 군대가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산지전투에 있어서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양쪽 능선을 따라 적들이 포위 공격할 경우 빠져나갈 퇴로가 차단되어 몰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밤이니 여호수아의 군대는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아이 왕을 유인하려는 기만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왕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성문을 열어 놓은 채 급히 군사를 이끌고 나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대는 지는 척하면서 광야로 후퇴하니 쫓아옵니다. 그 사이에 숨어 있던 35.000의 복병들이 쳐들어가 성에 불을 지르고 나와 적군의 뒤를 쫓습니다. 도망치던 이스라엘군도 뒤로 돌아 전후에서 적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가 들어 간 골짜기는 죽음의 골짜기였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이 골짜기가 승리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14절의 “아라바” 골짜기는 무엇일까요? 아라바는 사해의 다른 이름입니다(신3:17, 수3:16). 사해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신 주께서 사해와 같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적의 중심으로 들어가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계11:8에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했듯 사해 역시 세상의 상징입니다.
그 결과 골2:15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정사와 권세는 바로 사단의 권세를 가리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승리할 줄 알았지만 도리어 사탄이 그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마치 하만이 자신이 세운 장대에 달린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굳게 믿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복음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사탄에게도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12:11에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먼저 어린 양의 피로 싸우고, 다음은 증언하는 말씀으로 싸우고, 다음은 핍박 가운데서도 목숨으로 맞서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피가 외쳐지는 곳은 사탄이 자리를 틀었더라도 풀고 도망칩니다. 예수의 승리가 외쳐지는 곳은 사탄이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기셨다. 나도 예수 안에서 이겼다는 확신 가지고 믿음으로 싸우시기 바랍니다.
7. 깨어 근신하여 방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23절에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에 끌고 왔더라" 고 했습니다. 아이의 왕은 생포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졌지만 아직 살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세를 잃은 패배자일 뿐입니다(골2:15). 그래서 엡 6장에서는 영적전쟁을 씨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세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캐서린 부스 여사는 자녀교육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분은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 대장의 부인으로 8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누가 와서 그녀에게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언제나 악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을 배우기 전에 좋은 습관을 먼저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생각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생각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지혜를 가르치기 전에 내가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악마가 사단의 거짓과 위선과 악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탄이 틈탈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 땅에 두신 것도 우리 믿음 훈련용입니다. 그래서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셨습니다.
사탄이 우리 형편 봐주지 않습니다. 다윗도 말년에 사탄의 시험에 걸려들어 군대를 점고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헤롯도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다가 충에 먹혀 죽었습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누가 칭찬하더라도 기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잠시 예수를 떠난 것처럼 사라진 것 같지만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릅니다.
8. 복음과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24절에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했고 28절에 "아이를 불살"랐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 손에는 말씀의 검을 들고 한 손에는 기도로 켠 성령의 불을 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사단의 나라를 완전 폐허로 만들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가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란 '그 폐허, 그 무더기' 라는 뜻입니다. 이 명칭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아얏' '아야' 등으로 바꾸어졌지만 모두 '폐허' 라는 의미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사단의 나라를 폐허로 만들려면 복음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복음의 운동은 지상군과 같습니다. 현대전에 있어서 공군력과 해군력을 동원하여 적을 제압했다 해도 지상군이 가지 않으면 그 땅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19)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단을 정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단에게 정복당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와 같이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와 같이 한 손에는 복음의 나팔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성령의 횃불을 들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근신하며 깨어 믿음으로 사탄을 대적하는 영적 싸움에서 온전히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