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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르단강변 원문보기 글쓴이: 이관수
2016.07.31 제16집/2016 기독문학에 활자화 되었기에 다시 내카페에 복구한다. 절반의 농군 이관수
나는 명예목사로 은퇴한 후에 자칭 ‘절반의 농군’으로 살고 있다. 농사를 해 본 경험이 일천하고 계속해서 배워가며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은퇴 후 정착하게 된 고향땅에는 스스로 이름을 붙인 ‘큰밭’과 ‘작은밭’ 두 필지의 밭이 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돌아보니 농사에도 “베테랑은 없다.” 라는 것을 알겠다. 농사로 잔뼈가 굵은 농군들 입에서 “하나님이 살려줘야 돼요!” 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달라지는 일기도 그러려니와 토양의 변화와 출시되는 종자도 연이어 새품종이 나오는 거다. 어떤 종류의 농산물을 언제 어느 때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농약은 어떤 종류를 어떻게 살포해야 하는지를 알려고 하면 전업 농군일지라도 “이거는 이거다.”라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지난해 농사는 참 잘 했는데 올해는 실패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경험과 생각을 또드락거린다.
1월: 동네 이장에게서 토양개량제(석회고토, 규산질, 패화석)를 신청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화학비료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토질이 산성화되니 알카리성 중화제가 필요하단다. "약 천 평 정도에 쓸 토양개량제를 신청합니다."라 메시지로 이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미 신청한 가축분비료 100포와 함께 토지개량제 30포 정도를 밭에 뿌리게 된다. 2월: 올 들어 처음으로 큰밭엘 올라가 봤다. 아직 얼어있는 밭은 황량해 보였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언 땅이 녹으면 어느새 푸릇푸릇한 풀들이 먼저 인사를 할 것이다. 침대 이불속에서 단잠을 자며 꼬물거리는 학생이 등교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하듯이,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씨앗과 뿌리들이 새싹을 틔울 준비에 여념이 없을 테지? 청천 면사무소에서 농지원부라는 걸 떼고 농업경영체 등록신청을 했다. 농토가 있음을 증명하면 약간의 특혜가 주어진다던가. 농산물의 정부수매가와 시중판매가의 차액을 보전해 주는 직불금 제도라는 게 있다고 했다. 밤새 바람소리 따라 비가 내린다. 겨울가뭄이 지속되어서 “가물어, 너무 가물어!” 하던 차에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려고 겨우내 목 타던 초목들 적시며 후두둑후두둑 비가 내린다. 가뭄이 길어지면 계절에 관계없이 호우(豪雨)호우(好雨) 자우(慈雨) ... 비라면 뭐든 다 반갑다. 소명님의 댓글이 달렸다. : “단비입니다. 내 심령에도 은혜의 성령 단비를 충만히 주소서.”
설 명절이 지나자마자 이웃들의 고추농사가 시작 되었다. 이웃집 현관 마루에 쌓아놓은 묘상(苗箱)을 본다. 작은 스티로폼 12상자에서 농지 4단에 심을 고추묘가 자랄 것이다.비닐하우스에는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전열선과 전열판이 준비 되었다. 말하자면 이미 농한기를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차가운 날씨라도 c18도 전후로 (자동)조정하고 묘를 키운단다.
3월: 은퇴하면서 바로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포기할 마음이 없던 일이 그림그리기를 배우는 것이다. 요르단 암만의 '아슈라~피아'의 Kids Center에서 미술지도를 하는 만용도 부려보았고 나자렛교회 교육관에 벽화도 그렸다. 그리고 이라크의 바그다드 교외에 새로 설립할 지진아 교육센터에서 벽화를 그리거나 미술치료를 해보겠다며 x NGO 이라크지부장인 K목사와 굳게 약속했던 일을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던 내가 아니던가.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그려본 실력만으로 요르단에서 벽화를 그려주면서 '당신은 화가(인타랏쌈)'란 호칭도 들어 봤지만... 이제 수채화를 초보부터 배워 보기로 했다. "가다 못 가면 간 데까지는 간 것이고, 하다 못하면 한 데까지는 한 것이고..." 라며 서원대 평생교육원에 등록을 했다. “나는 절반의 농군이니까~!”
어느 기록에 보니 최근 지구상의 인구가 약 72억 명이라고 했다. 우리 한국의 인구는 약 5천만 명이고 북한은 약 2천5백에서 3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고... "나"라고 하는 존재는 현재 72억 분의 1이고 한국인만으로 따져도 5천만 분의 1이다. 거기에 76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가는 중이니 참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그간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할지라도 난 참으로 귀한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생"을 누리게 되니 어찌 감사치 않을 수 있으랴!
음력으로 2월 초하루다. 아직 소매 끝에 찬 기운을 느끼지만 봄이 돌아왔다. 이날은 머슴들이 주인집 삽작문을 붙잡고 통곡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겨우내 잘 놀다가 일철이 돌아오니 농사의 힘든 일을 생각하며 "아이구 이제 난 죽었네~!" 했다던가? 아침 9시가 넘었는데 아직 영하 1도, 청천의 체감온도는 영하 4도라는 예보가 뜬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니 과연...
4월: 고맙게도 내가 남해에 있는 동안에 남씨 부인이 우리 몫으로 상추모를 키워 주었다. 남씨네는 우리가 청천 도원리에 정착하는데 빌미를 만들어 준 이다. 한때 남씨네 문간방에서 사글세를 살았었다. 그러다가 동네에 매물로 나온 헌집을 얼결에 구입하게 되었고 틈틈이 드나들며 손을 보았다. 지금은 번듯한 집 모양을 갖추었지만 허름하기 짝이 없던 집이었다. 출생지인 이곳에 정착하리라곤 손톱 끝만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인생의 모든 여정에서 언제나 내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교회에서 돌아와 보니 옆집 진선 네서 고추묘 한판을 가져다 놓았다. 집집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까지 동원되고 손자들까지 와서 고추밭마다 생기가 넘쳐흐른다. 내일부터 2박 3일 간 집을 비울 테니 우리도 얼마 안 되는 고추묘지만 이식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36 포기의 고추모를 이식하고 나서 대견한 듯 내려다보는 안사람을 폰카로 잡았다. 가지 토마토 콩 참깨 들깨 팥 등 앞으로 심을 게 줄줄이사탕으로 기다린다. ㅠㅠ 바야흐로 파종기(播種期)인 것이다.
아들이 대전에서 호박과 하수오 모종을 가져온 지 이십여 일이 지났다. "우릴 얼른 넓은 밭으로 보내 주세요!" 하는 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요녀석들이 내손을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지... 사실 인생도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 같아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허락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인샤알라!(=하나님의 뜻이라면!)”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24절기 중에 오늘은 곡우(穀雨)라고 한다. 곡우란 비가 내려서 백가지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뜻이 있다던가? 아침에 창문을 여니 회색하늘 아래로 곡우답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이맘때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도 하고, 볍씨를 담근다고도 하고... 광화문 집회나 성완종 리스트의 시끄러운 보도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의 마음은 온통 갖가지 씨앗의 파종이나 이식날짜 정하기에 집중하고 있군요. 나도 슬슬 기어나가 뭔가를 꼼지락거려 보려 합니다. 어쨌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해"라는 교회 표어는 잊지 말자고요...
농사에서 원론적인 결론은 농부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시작부터 모든 과정과 결실과 수확 그리고 판매의 결과까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도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투덜거리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의 표현일 것이다. 옛 사람들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거늘...
5월: 도원리도 모내기는 거의 마무리단계인 듯하다. 일주일 전에 논을 갈아엎고 물을 채운 후 써레질을 했는데... 개구리들이 용케 알고 몰려들어 저녁이면 요란스럽게 쌍쌍파티를 즐기나 보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하는 동요가 생각나게 시리... 우리 집 앞에 있는 남 씨네 논도 청주에서 아들들이 들어와 모내기를 돕고 있다. 이웃집 석민아빠는 다리가 후둘후둘 떨린다면서도 끝까지 이앙기를 잘 돌리고 있다. 개구리들이 오늘 밤엔 또 얼마나 수선스러울 런지... "개구리들아, 나 잠 좀 자게해 주라!" 이앙기가 모내기를 마치고 철수했다. 80세와 79세의 노부부는 땀을 쏟으며 마무리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기계의 작업이 성에 차지 않는 거다. "왜 이리 빠진 데가 많은 거야?" 남에게 일을 맡기면 내맘 같지 않은 거다. 몇 년이 지나면 나도 저 나이일 텐데... 저들만큼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으려나?
농부들에게 농토는 곧 직장이다. 새벽에 출근하고 해거름에 퇴근 한다. 다만 집에서 가까우니 자주 집으로 돌아와 쉬기도 하고 중식이나 간식을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자유로운 직장이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반드시 응분의 보응이 따른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눈속임을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지 않던가! 참깨를 심는다며 큰아들내외가 들어왔다. "참깨는 모내기한 다음에 심어도 돼!" 하던 말이 생각나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신품종 참깨라는 종자 한 봉지를 큰밭에다 심고 막 들어선다. 나는 다락방창문으로 내다보며 소리 없이 인사를 한다. "아들아, 며느리야, 수고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서 애 많이 썼구나." 농사가 자신의 일인 줄 알고 드나들며 농사일을 거드는 게 고맙다. 이내 "아버지, 저희 갈게요!" 하며 밖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며 화답한다. "그래, 수고했다~. 나 안내려 간다~!" 역시 난 절반의 농군이다.
6월: 오래간 만에 비가 내릴 거란 예보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비록 아주 소량(小量)이라고는 하지만 "고추와 옥수수들이 춤을 추겠네!" 가뭄을 느끼는 탓에 하늘이 구름으로 덮인 것만으로도 기분 좋다. 누군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 노래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은총의 빗줄기를 외면하고야 어찌 풍성한 삶을 노래할 수 있으랴. 무더위를 씻어 내리고 생물을 춤추게 할 빗줄기가 한 줄금 시원하게 쏟아지기를 고대한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비다운 비가 내리는 걸 보는 듯하다. 양철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낙숫물소리와 하모니를 이룬다. 점차 크게 귓바퀴를 때리는 빗소리는 봉 두 개로 두드려대는 외손자의 드럼이 된다. 전화기에서 갑자기 알림 음이 빗소리사이를 비집고 들어선다. "국민안전처 : 4일 07:40분 충북(청주) 지역 호우경보. 산사태, 상습침수 등, 위험지역 대피, 외출자제 등 안전에 주의하세요.7:46" 맞은 편 피끗산에 안개구름 피어오르며 빗줄기를 쏟아 붓는다. 아니, 아예 산봉우리가 안개비 속으로 사라졌다. 땅이 질어서 앞으로 며칠간은 밭에 갈 수 없을 듯하다.
참깨가 어느새 훌쩍 자라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침부터 꿀벌들이 벌어진 꽃잎 사이를 비집고 드나든다. 여보게들! 숨바꼭질 하느냐 보물찾기를 하느냐. 마른장마라더니,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생명활동은 맹렬(猛烈)했노니... 이름 모를 산새들과 산비둘기들이 쪼아대는 부리를 용케 피하고, 어린 싹을 위협하는 병해충의 공격도 물리치면서,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대지를 파고들며 싹을 틔운 참깨모들이 자라서, 드디어 꽃을 피우니 머지않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으리니... 수많은 장애물과 역경을 헤치고 유혹을 물리치며 승리하는 기독도처럼 대견하고 또 대견하도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일을 시작해 본다. 다른 이들은 벌써 들에 나와 작업 중이다. 누가 '체력은 국력'이라 했던가. '아암~ 그렇지, 체력은 삶의 동력'이 아니던가? "고객님의 경우 건강검진 결과 일부 검사항목에서 정상범위를 벗어나, 건강관리에 도움을 드리고자 본 안내문을 보내드립니다."라는 통지문이 왔다. "이관수 님의 대사증후군 위험요인 (2)개 항목 (혈압, HDL콜레스테롤)에 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구미에서 올라온 작은아들이 먼저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리곤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정색(正色)을 하며 "관리하셔야죠." 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내가 농담반 진담반 하는 말이 있는데. “안 아프면 언제 죽어?" 했더니 아들이 할 말을 잃는다. 노쇠(老衰)현상을 늦출 수는 있을 지라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밤새 물을 뿌려 주셨다. 가뭄으로 배배 틀어지던 괴산찰옥수수가 생기를 찾았다. 하룻밤 새에 식물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신비다. 그래도 아직 가물다. 일부 농작물에게는 너무 가물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 줄금 비가 쏟아졌으면 참 좋겠다. 쬐끔 심은 옥수수가 또다시 배배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맑은 저녁에 하늘바라기를 하며 발길을 집으로 돌린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에 오토바이를 몰고 밭을 오갈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이 도로에 사람이 다니지 않고 동네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잘된 포장도로나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당하게 지어진 집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얼마나 삭막하랴... 세계선교교회 마당에 주차하면서 다시 한 번 퍼뜩 재생되는 생각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교회에 지키는 사람이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산이나 들이나 도시나 농촌이나 해변이나 바다나 그 어디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만드신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디에나 사람은 있어야 하고, 또한 세상에서 사람은 번성하고 또 번성해야 한다. 비록 서로 아옹다옹 싸우고 볶고 지지고 할망정...! 하지(夏至) 무렵이면 마늘을 캔다. 새벽에 나와 마늘캐기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뿌리를 깊게 내렸구나. 언제 마늘을 캐본 적이 있었던가? 모든 일들이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짙은 안개가 벗어지는가 보다. 오늘은 또 얼마나 찌려나... 양파캐기도 끝냈다. 비록 소량이지만 멀리 구미에서 올라온 어린 싹을 심었던 건데...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고, 양파심은 데서 양파가 컸던 거다. 간밤에 잠시 들리던 빗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참 고단했던가 보다. 새벽에 나와 보니 밤중에 아내가 비설거지를 다 해 놓았다. 아침나절에 청천나들이에서 돌아오니 캐논 마늘들이 뜨락에 가지런히 정렬했다. "마늘을 이쁘게 정돈했네, 수고했군!" "목사님은 하늘이 도와서 작물이 잘되나 봐요." 동네에서 그런 말을 한다며 아내가 전하는 말이다. 참깨며 콩이며 일단 싹이 잘 나왔고 잘 자라는 중이다. "절대로 자랑하지 마요. 농사란 창고에 거둬들일 때까지 변수가 많은 거요." 이웃들에게 "봐요! 참깨가 차암 잘됐죠?" 하며 은근히 자랑하는 아내의 입단속을 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걸 이웃들이 안다니 반갑다. "나는 목사가 아니라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주민들과 함께 살고자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나타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벼농사: 나 어릴 적엔 다 손으로 하던 일이었지 논 한 구석에 모판을 만들고 볍씨를 뿌리고 적당히 크면 일일이 손으로 모를 찌고 한 묶음씩 묶어 논바닥으로 던졌다 논두렁 양 옆에서 줄을 띄워 잡아당기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논에 들어서서 줄맞춰 모내기를... 풀이 함께 자라면 호미 들고 들어가 진구렁을 빠대며 김을 매고 논두렁의 잡초는 낫질을 해서 베어냈지 세상은 바뀌어 이젠 농기계와 제초제가 일손을 덜어 준다.
앞마당의 마늘 캔 자리에 들깨 씨를 뿌렸다. 적당히 자라면 밭으로 이식할 거다. 밭에 살짝 덮었던 왕겨만큼 싹이 돋았다. 처음에 씨를 뿌린 후 갈퀴로 지표면을 긁어 놓았다. 이제나저제나 싹트기를 기다렸다. 하루는 창고지붕에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조금 후에 두세 마리로 늘어나고 점점 더 늘더니, 이삼십 마리의 참새가 들깨를 뿌린 밭으로 번갈아 오르내린다. "고~놈들, 참 귀엽네!" 하며 지켜보기는 잠시 뿐이었다. 밭에 뿌린 들깨 씨가 참새의 곧은창자를 채우고 채워도 모자랄 것이라, 얼기설기 짠 검은색 차광막으로 덮어버렸다. “참새들아, 미안, 미안!”
7월: 가뭄을 버티는 생명유지의 신비 모든 잎새들은 밤새 이슬비를 모아 줄기로 흘려보내고 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물기는 가뭄에 탄 마른 땅을 적신다. 엊저녁엔 바짝 말랐더니 간밤에 이슬을 받아 참깨 줄기아래는 촉촉하다. "어서 디비자라!" 오늘은 이 말이 날 지배했다. 6시 전에 나가서 10시에 돌아오니 땀으로 샤워를 한 것처럼 흠뻑 젖었고, 고단함에 지쳐 밥그릇을 앞에 둔 채 잠이 들었던 거다. 인기척에 눈을 뜨니 뉴스를 보던 TV는 켜진 채였다. 참깨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는 새에 그 고랑 사이로 들깨모를 이식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작업은 싫다. 인공관절 무릎으로는 굽혀 펴는 게 부실하기 때문이다. 걸터앉는 도구를 끌며 하는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렇게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낮 동안에 몇 시간이나 잠에 취해서 보냈으나 소용없었나? 밤 열한 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에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여태 머하노? 어서 디비자라!!!" 이 말투는 경상도 사나이인 사위에게서 배운 말투다. 디비디비디비... ㅎㅎ
작은 밭은 손을 좀 덜어 보려고 주로 호박을 심었다. 호박이란 풀덤불 속에서도 잘 자라고 아무도 모르게 누런 호박을 맺지 않던가. 그러나 그게 아니었으니! 오래간만에 돌아본 호박밭도 농부의 손이 필요한 모습이었다. 풀덤불 속에서 맺힌 작은 호박이 가뭄 때문인지, 풀에 치어서인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느라 지쳐서인지 자라다 말고 누렇게 떠서 떨어지기 직전이다. 분명한 사실은 잡초를 제거하거나 비료를 주는 등... 호박도 관리가 필요한 것이었다. < 나도 꿀벌이랑 놀고 싶어요. 꿀벌은 참깨 꽃 속을 드나들며 숨바꼭질 하지요 저쪽 나뭇가지에선 참새들이 응원하네요. "째~째잭 짹짹 째재잭 짹...“ 멀리 산속에서는 뻐꾸기도 알아들었다 네요. "뻐~꾹 뻐뻐꾹 뻐꾹...” 새소리 들으며 바쁘게 돌아치는 꿀벌들 응시하며 난 잠시 일손을 놓고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살충제는 뿌리지 말아야겠다. 좀 덜먹으면 되는 거잖아. 누군가 벌꿀을 맛있게 먹을 테니, 꿀벌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 참깨들도 복 많이 받았네요!>
불과 사흘 전에 이런 글을 올렸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대로 따를 수 없게 되었다. 벌레는 눈에 잘 띄지 않았으나 바이러스가 참깨를 공격했다. 싱싱한 참깨들 옆에서 누래지면서 시들시들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는 놈들이 여럿 눈에 띄는 것이었다. 창고에서 농약분무기를 꺼내고 농약을 꺼내 왔다. 잎마름병에 사용하는 농약에 살충제를 섞었다. 분무기를 걸머메고 왼손으로 펌프질을 하고 오른손으로 분무하기가 힘에 부친다. 그렇다고 하다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수의 참깨가 오만한 주인 때문에 죽어 가지 않나? 잠시 힘은 들지라도 농사의 상식에 맞춰가며 나머지 참깨를 살려야 하는 일이었다.
"난 농약 안하고 농사지을 거다!" 이건 그냥 해보는 소리다. 농사에서 무슨 야채나 다른 농작물에 적당한 농약을 적시에 뿌리지 않으면 병해충에 의하여 상처투성이가 되는 농산물을 보면서 고뇌하며 애를 태워야 한다. 제초제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풀과의 끝낼 수 없는 전쟁으로 밭에서 살아야 한다. 농촌 형 100cc 오토바이 뒤에 리어카를 매달고 퇴비꺼리랑 분무기와 농약통 그리고 약간의 물통을 실었다. 큰밭으로 오르는 중인데 동네 공용주차장에서 꺾어지는 길목을 막 들어서니 경운기 한 대가 옥수수를 가득 싣고 앞에서 힘겹게 올라간다. 바야흐로 괴산 대학찰옥수수 수확철인 것이다. 앞서가는 경운기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남씨(81세)네 대문 앞에서 잠시 멈추며 오토바이 시동을 껐다. 남씨는 나보다 다섯 살 연상으로 내 막내 숙부와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뭣하러 가는 겨?" 수돗가에서 어정거리는 남씨가 웃는 얼굴로 건너다보며 한마디 한다. "참깨에 약 좀 주려고~ 뭐 하신 거유?" 방금 일하고 들어온 티가 나서 나도 한마디 던졌다. "고추에 약 좀 뿌리고 왔네~, 커피 한 잔 하고 가지~!" 그는 맘씨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건넨다. "이따가... 저녁에..." 말끝을 흐리며 오토바이 시동을 다시 걸었다. 잠시 대화하는 사이에 경운기는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먼저 한 옆의 밭두둑에 심은 오이, 고추, 참외, 토마토, 가지를 살펴보니 어느새 풍성한 열매를 맺고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던가보다. 가지 한 자루, 참외 토마토 한 자루를 먼저 수확하여 리어카에 얹었다. 그리고 살충제와 살균제를 섞어 채운 농약분무기를 둘러메고 한 바퀴 휘돌아 쳤다. 한 말, 두 말, 세 말... “아~ 힘들다.” 오늘의 일터는 여기, 옥수수밭이었다. 오늘로서 도원리의 옥수수 수확도 끝이다. 아니, 내가 찾아가 도와줄 일이 끝이라고 해야겠다. 새벽 5시부터 일하고 현장에서 아침밥 해먹고... 상품가치 떨어지는 놈들 골라 솥에다 삶아 봉지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나누며 담소한다. "천렵 온 거 같네!" "소풍이 따로 없군!" "느티나무 그늘이 차~암 좋네!" “오늘도 32도나 올라간다던데...” “여기 강바람은 시원하군!” 달천 지류인 박대천을 때로는 강이라고도 하는데 그 강변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간식시간이다. 따자마자 즉석에서 찐 괴산대학찰옥수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새에 난 먼저 일어났다. "난 먼저 퇴근합니다!" 품앗이 하는 중에도 나는 역시 절반의 농군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참깨가 흰 꽃잎을 떨어뜨리며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다. 갓 심은 들깨는 참깨그늘 아래서 활착하여 잘 자라고 있다. "어~! 어느새 흰콩이 꽃을 피우고 있네... 콩이 꽃을 피울 때는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던데...!" 농약 없이 농사하던 시대는 저~만치 사라졌다. 친환경 농사에는 친환경농약이 따로 있다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절반의 농군에게도 할 일은 태산같이 많다. 그래서 오늘도 오토바이에 리어카 매달고 밭으로 달려간다.
-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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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입니다. 어제 수고많으셨어요.~~~
다만 샬롬으로 인사드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