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명-엄마가 뽀뽀하는 동화
저-이지민
출-레디셋고
독-2016년 1월 10일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탄 순간 누릴 뿌듯한 긴장을 엄마다 대신 누릴 권리는 없다. 엄마는 그저 믿어 주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는 순간이 온다. 아픔의 시간 역시 아이의 몫이다. 혼자만 친구의 생일 팥티에 초대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아이가 느길 배신감을 버스에서 잘못내려 혼자 낯선 동네에 떨어졌을 때의 그 차가운 고독을, 부모와 친구에게도 말못 할 밀을 혼자 떠안게 됐을 ㄸ대의 그 온전한 슬픔을 엄마는 알지 못한다. 아이에게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아픔을 짊어지게 될 시간이 올 것이다. 어쩌면 아이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 우리는 아이를 혼자 놔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할 저 너머의 시간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게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순간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지금 당장 이 시간이 무조건 생기롭고 따스하고 낙낙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인 이제 기뻐도 울음이 나온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눈물도 사탕처럼 여러 종ㄹ륭의 맛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아이는 이제 도저히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는 이제 세상 어딘가에는 도저히 울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사람들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는 손을 베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엄마느 혹시 로봇이 아닐까? 하지만 어른들도 종종 비밀의 순간을 들키곤 한다. 어느 날 밤 이물 속에 들어가는 아이는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본다. 엄마의 눈물은 벢개 위로 EnrEenr 떨어져 베게를 적신다. 엄마는 왜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린 걸까? 손을 베어도 울지 않던 로봇허럼 강한 엄마가 말이다. 삶의 무게가 나무 무거워 깜깜한 밤 베겟잇을 적셨을 엄마. 아이는 아직 모른다. 세상에는 매일 밤 홀로 깨어나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엄마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의 밤이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는 별빛 때문이 아니라 그 엄마들의 빛나는 눈물 덕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 아이가 그 눈물을 이해하게 됐을 때, 아이는 세상 엄마들의 아픔을 아는 진정한 남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처음 세앗에 나온 순간부터 아이의 울음은 의문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 거기 엄마 ㅁㅁㅁㅁ맞아요? 내가 정말 엄마를 만나는 거예요?”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아이는 울면서 내개 물었다. 그후에도 아이는 계속 울면서 묻고 또 확인했다. 엄마, 나는 왜 먹어도 먹어도 또 엄마 젖이 먹고 싶은 거죠?밤에는 왜 세상이 조용한 건가요? 엄마, 왜 넘어지a면 아픈 거예요? 왜 잠 들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나요? 아이가 온몸을 바르르 떨며 온 힘을 다해 울었던 이유는 내 대답을 빨리 듣고싶어서였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대답는 어쩌면 한 가지였을ㅉ지도 모른다. “괜찮아.”아이가 우는 것은 울면서 배우고 느끼고 소통하는 거다. 내 마음속에 숨어 울고 있는 아이도 아마 이런 모습이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뚝! 뚝! 그만! 말라는 척하면서 그냥 울게 내버려 둔다. ‘울고 싶으면 울어. 시원하게 울어. 금방 괜찮아질 테니까. 지금은 울고 있지만 다시 또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만 잊지 마. 우리는 모두 괜팒아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니까.
· 아이들은 차에 실린 채 세상을 구경한다. 우리 집 아이들도 어려서분터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노란 어린이집 차에 오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린이란 어른이 다시 꾸고 싶은 꿈이다. 아이와 동네를 거닐다 보면 어린 시절의 꿈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길에서 만나는 리어카 야채 장수 아저씨나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며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배우고 만화주제가를 흥얼거리며 혼자만의 음악 시간을 갖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내빼며 달리기 연습을 했다. 입으로 가는길은 늘 같으면서도 달랐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지루하고 고독하면서도 풍요로웠다. 나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동시에 들어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내가 알게 된 진실은 세상의 모든 집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 아이스크림 광고에 나오는 가족처럼 모든 아이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콜롬비아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에도 잃어버린 가족을 기다리며 매일 슬픔의 나라에서 희마을 짜내는 소녀가 나온다. 하이로 부이트라고의 동화책이다. 언뜻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이는 책에 어떤 사회파 소설보다 날카로운 현실의 슬픔이 숨어 있다. 귀여운 소녀가 공원 사자 동상에게 꽃 한 송이를 내밀며 부탁한ㄷ. 참 엉뚱하기도 하지. 사자에게 집으로 데려다 달란다. 그러자 커다란 사자 동상이 깨어나 땅으로 내려오더니 진짜로 소녀의 길동무가 되어 준다. 소녀는 또 부탁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잠들지 않도록 자기에게 이야기를 해 달란다. 놀라운 일은 계속해서 벌어진다 하자가 소녀 뒤를 졸졸 따라가며 이야기를 시작하자 길바닥은 난리가 난다. 어른들은 기겁하며 도망가고 심지어 쓰러져 죽은 ㅊ억하기도 하며 아이들을 숨기느라 바쁘다. 쩡작 아이들은 사작와 걷는 소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그러나 소녀의 집은 멀다. 언덕길을 오를수록 공장 굴뚝에서 매연이 피어오르는 회색 도시 풍경이 멀어지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남미의 빈민가가 나타난다.매일 소녀가 힘들게 올랐을 오르막길을 사자는 어슬렁거리며 오른다. 소녀가 힘들어하자 사자는 소녀를 등에 태우고 도로를 달린다. 이 놀라운 광경을 구경하던 차들은 교통사고까지 낸다. 한참을 가던 소녀가 사자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소녀가 들린 곳은 어린이 집이다. 빈민가 아이들이 일터 간 부모가 돌아오길 기달리며 보모 치맛자락 잡고 울고 있다. 소녀는 잔득 지친 기색의 보모에게서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는 어린 동생을 받는다. 소녀는 동생과 함께 사자 등에 올라타고 신나게 집으로 간다. 이번에는 소녀가 가게에 들러 음식을 산다. 엄마 대신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시장을 봐야 하는 소녀 대신 사자가 가게 안에 들어가 사자후를 토해 내자 놀란 가게 주인이 봉투에 찬거리를 잔뜩 담아 준다. 소녀는 믿음직스러운 사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 온다. 앞치마를 메고 가치발로 싱크대 앞에 서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소녀가 차려 준 밥을 먹은 사자는 소녀와 동생과 함께 거리고 나가 엄마를 기다린다. 드디어 저기 길 건너에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푹 고개를 숙인 채 젖은 빨래처럼 ㅊ욱 늘어져 있는 엄마. 홀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엄마가 도시의 일터에서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아제 집으로 돌아온다. 젊은 엄마 주름진 얼굴에는 그녀가 짊어진 삶의 고통과 아픔이 깊게 배어 있다. 엄마를 만난 소녀는 이제 사가에게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말한다. 말없이 소녀의 오후를 지켜 준 사자는 돌아갈 때 역시 말이 없다. 사자는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사자가 소녀와 함게 있던 이후 이야기가 새빨간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절잘이지 이 멋진 이야기는 그저 외롭고 가난한 소녀가 지어낸 환상이 아니었을까? 그날 밤, 벽에 금이 간 허름ㅎ란 방에서ㅗ 소녀는 엄마, 동생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소녀는 다시 한 번 사자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부르면 언제라도 꼭 와 달라는 소녀의 무탁은 마치 간절한 소원처럼 들리나다. 소녀는 잠들기 전, 침대 옆에 높인 액자글 쓰다듬는다. 바닷가에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가족의 사진이다. 지금보아 훨씬 앳되어 보이는 소녀와 아직 갓난아기인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 그리고 이들을 듬직한 어깰로 감싸고 있는 아빠가 보인다. 현실에는 없는 아빠가 사진 속에서는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고 있다. 그런데 앗! 아빠의 모습이 누군가를 닮은 것이다. 금발의 곱슬머리를 충성하게 늘어뜨린 아빠는 꼭 사자를 닮았다. 소녀를 집에 데랴다 준 바로 그 사자를 ‘빼다 박은 듯 닮았다. 너무도 꼭 닮아서 웃음이 나롤 정도다 그런데 도대체 사자를 닮은 아빠는 이 불쌍한 엄마와 아이들을 두고 어디에 간 것일까?여기 이 동화가 숨기고 있던뜨 거운 힘이 드러난다. 가족사진 왼편에 신문지가 곱게 접혀 있다. 신문에 난 기사 한 줄, 절규하듯 기자 회견을 하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 옆 한 줄의 문구가 아빠 없이 잠드는 소녀의 현실을 말해 준다. ’1985년 분쟁으로 수만 명이 가족 잃어....‘
60년대부터 시작된 분쟁과 내전으로 납치와 마약, 테러가 끊이지 않는 콜롬비아에는 500만 명의 난민이 있다. 평화라는 단어가 샂쩐 속에 숨어 버린 그곳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난다. 남편 잃고 꿋굿하게 살아가는 아내들이 잇고 그녀들의 꿈이자 전부인 아이들이 있다. 소녀도 그들 중 하나다. 동화의 소재치고는 정치적, 현실적인 문제를 들추고 있어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으나 세상의 빛과 어둠을 함께 가르쳐 주는 것 역시 부모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작가 하리오 부이트는 이름 없는 소녀를 통해 콜롬비아에서 벌어지는 폭력, 아픔, 그것을 이겨 내는 위대한 유산인 용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진실로 위대한 가치는 하루하루 절망을 이겨 내는 의지 속에서 태어난다.
· 엄마들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넘쳐나서 실수를 한다.
딸이 아들보다 좋은 결정적 이유는 치마를 입힐 수 있다는 거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요 재미 무시 못 한다. 알보 보면 엄마들은 다들 한 때 잘나가던 코디네이터였다. 어린 시절 자년간 날카로운 눈썰미로 인형의 옷을 종일 입혔다 벗겼다.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성에 안 차면 직접 엄마 화장대 앞에 서서 빨간 림스틱을 바르고 뽀족구두로 워킹을 하던 패션 피플들이다. 그런 엄마에게 살아 있는 인형이 생겼으니 어찌 안 기쁠쏘냐. 엄마는 미친 여자 소리 들을까봐 이제는 입지 못하는 리본 달린 분홍색 드레스를 딸에게 입히고 다시 예버지고 다시 늘씬해지고 다시 미스코리아가 된다. 딸은 그렇게 엄마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준다. 이 신통방통한 딸을 향한 엄마들의 찬가가 바로 <딸은 좋다>이다. 내가 딸이었을 때, 그 시절의 내가 바로 이 책 속에 있다. 엄마와 아기 입가에 핀 보조개가 나비의 두 날개 무늬처럼 똑같다. 저 부멸 나도 저렇게 엉덩이가 늘어난 내복을 입고 가족 앞에서 쇼를 하곤 했었다. 우리 딸들의 첫 번째 직업은 개그우먼이다. 우리가 슬쩍 미끄러지기만 해도, 신맛 나는 음식을 먹고 얼굴을 찌푸리기만 해도, 부모들은 자지러지게 웃었으니까, 또 다른 직업은 보모다. 두 돌만 돼도 돌쟁이 동생을 알뜰히 챙긴다. 모델 일은 천직에 가깝다. 딸은 아빠와 곷놀이를 간다. 딸은 아빠가 하라는 대로 나무에 올라가 서고 시키는 대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딸은 좋다. 사진 찍는 아빠에게 좋다. 어쩌면 아빠에게는 딸과 보내는 매일 매일이 꽃놀이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모델이기도 한 딸은 엄마의 비서이기도 하다. 빨레를 널면 옆에서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나뭇잎만 한 팬티를 건네준다. 아침마다 엄마의 안경을 찾아주고 매번 발 달린 듯 숨어비른 리모컨을 척척 찾아오는 우리 딸을 볼 때마다 그런 확신이 든다. 눈썰미 가진 딸은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연스레 엄마의 기술을 전수받는다. 그래서 어는 순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일들을 척척 해낸다. 가끔 싸우기는 해도 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여전히 엄마다. 웨딩드레스 입은 딸에게 오늘 정말 예쁘다고 말하는 엄마가 딸은 사실 가장 예쁜 사람이라는 걸 안다. 딸의 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는 이 책속 첫 장에 나온 젊은 시절 엄마와 닮았다. 보조개도 똑같이 닮았다. 엄마가 되어 볼 수 있는 건 세상에 우리 딸들밖에 없다.
· 아이가 만들어 오는 종이 카네이션은 해마다 업그레이드가 되는데 매년 이번에는 또 얼마나 진화된 카네이션을 가져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부모가 머리가 세고, 주름이 늘고, 걸음이 느려지는 걸 지켜봤으면서도 부모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의 물약을 먹고 늙은이로 변해 버린 것 같다. 낯선 것은 부모님의 쪼그라든 어깨와 흐릿해진 눈동자 뿐 아니다. 이제 부모는 은퇴한 차력사처럼 더 이상 우리에게 놀라운 쇼를 보여 줄 수 없어서 속상하다. <코끼리 등>은 부모가 우리에게 남긴 어떤 유산에 관한 동화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죽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작가가 죽음을 앞둔 코기리 아빠가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었을 그 무언가를 상상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아빠가 가족 몰래 조용히 집을 나가는 못브을 아기 코끼리 뽓뽀가 보고 따라간다. 아ㅃ바는 기다란 코로 강의 ㄸ땅을 파더니 무언가를 묻는다. 아기 뽓뽀는 숨어 지켜본다. 그리고는 들키지 않게 지름길로 돌아와 무서워 울고 싶지만 힘차게 달린다. 다행이 아빠보다 먼저 동착해 엄마 옆에서 잠든 척한다. 그 다음 날 아빠는 더 멀리가고 뽓뽀는 ㄸ다라가다 노란 달님이 떠 있는 보랏빛 숲 속을 걷는 아버지와 그 뒤를 따르는 아기 코끼리의 모습은 신비롭고 애잔하다. 다음 날도 수수수께끼 같은 행보는 이어진다. 아빠가 땅을 파는데 동굴에 사는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나 아빠는 맞선다. 호랑이가 도망가자뽓뽀는 아빠의 강인한 모습, 멋진 못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후 아빠가 뽓뽀를 부른다. 아빠는 곧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이란 함께 있던 곳에서 없어지는 거라며 몸도 목소리도 냄새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거라고 말하며 우는 아들을 껴안아준다. 달은 변덕스럽게 모양을 바꾸지만 아빠는 언제나 아들 곁에 있을 거라 한다. 부자의 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서로를 감싸는 동그란 모양일 것만 같다. 아빠가 살며시 숲으로 떠나 회색 등이 멀어져 가고 돌아오지 않는다. 훗날 아이들에게 슬픔 대신 무언 가를 마련해 두고 싶다. 희망이 없는 순간에도 엄마를 떠올리면 희망을 손에 쥘 수 있는 그런 삶의 용기와 영감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다. 아빠를 ㄸ더나보낸 수 아빠를 추억하던 아들은 아빠를 몰래 따라다녔던 밤을 떠올린다. 뽓뽀는 궁금하다. 대채 아빠가 그곳에 무엇을 묻었을까? 가억을 더음어 찾아간 아들은 열심히 땅을 파 아무 것도 안 나오는 순간 답을 캐낸다. 그곳에는 아빠가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귀중한 유산이 묻혀 있었다. 아빠가 가르쳐 주고 싶었던 모든 것, 신선한 물이 있는 강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풀이 우거진 들판과 호랑이가 사는 위험한 동굴, 밤에 혼자 숲길을 해지고 걷는 용기, 그런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 일부러 밤마다 길을 나썻던 아빠의 등을 떠올린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거라는 아빠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빠가 가슴에 묻어둔 사랑을 느낀다. 커서 자기 아들에게도 전해 줄만큼 넘쳐나는 그 사랑을
· 스웨덴 울프 스타르크의 작품<이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
아이를 키우는 재미 중 하나는 잘난 척하는 재미다.이것은 부모 세계의 영업 비밀이다.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순진무구 일자무식이라 해도 무방하다. 덧셈을 배우기 시작한 아들이 아메리카 댈ㄹㄹ륙을 발련한 콜ㄹㄹㄹㄹ럼버스처럼 흥분헤서는 “엄마. 어린이집 선생님도 일 더하기 일이 이라는 걸 알더라”고 했을 때 함으로 부모 된 보람을 느낀다. 부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기회를 주는 효심이 있다. 앞으로 아들에게 인생의 수많은 노하우들을 알려 줄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아ㅃ바는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가 보이냐고 묻는다. 아들은 작은 달팽이만 보다 눈에 들어온 발알 작은 웅덩이를 본다. ㄸ당바닥에 파인 거울처럼 동ㅇ그란 우덩이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빠 얼굴이 비치는 걸 가만히 본다. 아빠 우주가 보여요. 아들은 생각한다. 지금까지 본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우주는 매일 밤 볼 수 있는 하늘이 아니라 자신에게 우주를 보여 주려 한 아빠으이 얼굴이었던 것이다. 모든 앙ㅇ이들에게 아빠는 우주와 같은 존재다. 그러니 그 우주를 가슴에 가득 담은 아들이 어찌 안 뿌듯할까? 아빠는 너에게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동생이 태어난 날 아들은 ‘엄마 동생도 지금 우주에 있네.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봤던 거랑 비슷해.’했다. 아들은 나보다 우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작고 고독한 우주에서 새로운 세ㅐ상을 꿈ㄱ꾸며 우리르 기다렸을 테니까. 모든 지구인이 머물렀던 작은 우주로부터 3.2킬로그램의 빛이 날아온 것이다.
· <누가 산타에게 선물을 준 걸까?>
어린 시절이야 말로 ‘인생의 크리스마스’였다. 예전에 산타클로스를 고소하겠다는 해외 토픽이 있었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헛된 꿈과 기대를 심어 주는 무책임하고 거짓된 인간의 ㅍ표본이라고. 매일 달력을 확인하는 아들을 보며 무언가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일 자체가 행복의 준비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행복을 만났을 때 더 뜨겁게 껴안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기다림의 시간 때문인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아름다운 이유도 이브까지 계속된 전 세계 아이들의 기도 덕분이 아닐까. 머리맡에 선물을 놔두다 현장에서 발목을 잡히는 그 순간까지 산타할아버지는 있다. 크리스마쓰 선물이 엄마 지갑에서 나온다고 알자 내 마음은 텅 빈 크리스마스 양말처럼 쓸쓸해졌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갈 때는 타잔처럼 줄을 타다가 사자한테 물릴 뻔도 하지만 매년 하는 일이라 이 정도느 거뜬하다. 열대 숨을 지날 대 산타할아버지는 혼자서 신나게 캐럴릉 부른다. 산타할아버지는 자유 여신상이 함박눈을 맞고 있는 대도시를 지나 바닷가 아이들을 위해 ㄷ로고래가 튀어 오르는 위험한 밤바다를 가로지른다. 드디어 날이 밝아오고 온 세상 아이들이 기다린 크리스마스 아침의 태양이 떠로르면 드디어 산타의 여행도 끝난다. 가족과 성탄절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자기들이 탕 비행기 뒤로 산타의 썰매가 날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산타 할아버지 집에는 누군가 다녀갔다. 빨간 선물 상자와 노란 카드가 놓여 있다. 누가 선물을 준 걸까? 침대에 앉아 카드를 읽는 산타의 그림자를 보이며 동화는 끝이 난다. 산타 표정이 어떨지는 우리의 상상에 맡긴 채.
중국에는 아이들도 많다던데 어떻게 다 돌고 우리나라에 오지? 선물 보따리를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큰일일 텐데. 앗 내가 안 자고 있는 줄 알면 우리 집은 그냥 지나칠 텐데 어서 자야지. 그러면서 눈을 감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악착같이 세었지. 내 아이의 선물을 준비하면서 문득 아이의 그런 순진한 열정과 기다림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ㅊ최초의 거짓이었던 산타. 그 거짓이 깨질 때의 씁쓸함을 알면서도 다시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려는 이유는 설령 크리스마스 다음 날부터 쓸모없어진다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빛을 뿌리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아름다운 환상 없이는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산타를 믿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산타가 되려 하는 것이고, 산타에게 직접 배운 것처럼 가장 명랑한 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아이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윤서 엄마, 아빠가 윤서에게 선물한 가장 행복한 아침이에요.
<귀없는 토끼>
귀는 없지만 당찬 녀석이다. 집앞에서 알을 하나 줍는다. 방을 붙여도 주인이 없던 차,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알에서 태어난 동물은 귀가 아주 작다는 정보를 알고 알에서 누가 나오든 자기를 비웃지 않고 친구가 될 거라는 기대로 알을 돌본다. 태교를 하듯 책도 읽어주고, 욕조에서 목욕도 하고 밤에 무서운 드라마도 본다 얼떨결에 단짝 친구가 생겨 혼자가 아니라 든든하고 해복하다. 하지만 어느새 쌀가마니함 해진 알을 엎고 가다 깨드리고 만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 왜 사람들은 한 빛깔 속에 자기를 숨기려 하는 걸까? 8살 영혼에게 마흔 살의 꿈과 바람릉 집어넣는 다면 아이가 배탈이 날거다.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눈물>
권정생 동화-
빛바랜 종이는 식빵처럼 가장자리가 누르스름하게 변해 있고 책장을 넘기면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난다. 토끼는 이제 별빛 반짝이는 밤사늘을 보며 하느님에게 질문한다. 하느님은 무얼 검고 사느냐고. 하느님은 보리수나무, 이슬, 바람 한 줌,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산다고 한다. 돌이 또끼는 그런 하느님이 부러워 자기고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직 아니라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돌이 토끼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이 여기는 세상이 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한다. 풀 한 ㅍ포기도 가여워한 돌이 토끼의 마음을 이해한 것은 하느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돌이 토끼가 바로 하느님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낮은 목소리로 고단함과 서러움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므로 책속의 나쁜 역할을 하는 자가 나인 것처럼 동화 속 악당이 뙤어 꾸지람 듣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한편에는 따뜻한 감동, 한 편에는 차가운 교훈을 얻게 된다. 권정생<고추ㅉ짱아>도 노릇한 보릿짚 꼬리를 달고 비틀비틀 난다.아디르 탓이다. 숨을 거둔다. 버드나무 가지를 꼭 붙잡고 있던 여섯 개의 발에 힘이 빠지면서 꽃잎처럼 떨어진다. 우리가 힘들게 모은 평등이 세상에 기적 같은 평화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고 싶다. 권정생 선생님 동화처럼 낮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이에게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 가르치면서 너는 절대 그런 어려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은연 중에 힘주어 강요하고 있는 속물같은 내 모습과 마주친다. 이미 내 눈으로 세상을 둘로 나누어 내 아이만은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편한 세상 편에 속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소금같은 사람이 풍머야 할 어둠과 고통은 내아이가 몰랐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어느덧 나는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 앞에 움츠린 겁쟁이 어른이 되어 버렸나 보다. <하느님의 눈물> 이 동화책이 30년 동안이나 내 책장에서 순수한 눈물을 품고 있을 동안 나는 그렇게 변해 버렸다. 단단한 얼ㄹ른도 존경스러운 부모도 정직한 일꾼도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길은 한참이나 멀어 보인다. 그런 잉ㅇㅇ유로 이 책은 앞으로도 내 책장 한구석을 듣든히 지켜줘야 학 것만 같다. 나도 돌이 토끼처럼 세상의 아픔을 헤아리며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릴 날이 오겠지. 그날 기다려 이 책을 고이 간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