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조선] 윤은기의 컬래버노믹스(40) 장군과 부관의 운명적 컬래버
나폴레옹, 조지 와싱턴, 트루먼, 샤를 드골, 더글러스 맥아더..
이 저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군에서 장군을 모시는 전속부관을 했다는 점이다. 전속부관을 하며 큰 인물을 모셔보았고 일찍 리더십에 눈 떴으며 정무감각을 기른 것이 역사적 인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속부관은 어떤 직책인가? 전속부관(aide de camp) 이란 용어는 프랑스에서 나왔다. 장군이나 제독등 장성급 군인 또는 국가원수 및 왕족의 개인참모로서 일상적 문제에서 비서역할을 하는 장교를 뜻한다. 전속부관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조금씩 역할이 조정되면서 세계 모든 군대에서 운용하고 있는 직책이다. 장군과 전속부관(보좌관 포함)은 업무상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공동운명체가 되기도 한다.
1983년 대통령의 버마(현 미얀마) 방문중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이 주도한 폭탄테러가 발생하였다.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의 부관인 전인범 중위가 아수라장이 된 폭파현장으로 뛰어들어 상관을 업고나와서 병원으로 긴급이송하였다. 폭탄이 추가로 터질지도 모르는 긴급상황에서 부관은 자신의 목숨보다 상관의 목숨을 먼저 챙긴 것이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했던 장차관급 18명중 유일한 생존자가 이기백 장군이다. 그는 후에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전임범은 25세로 막 중위로 진급했을 때 제1군단장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기적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전인범 중위는 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특전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하였다. 전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군인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전역식에 참석한 이기백 장관은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평생 내 생명을 구해준 전인범 장군을 고맙게 생각하고 내 모든 성의를 다해 아껴왔습니다"
부관이나 보좌관을 하다가 비극을 맞이한 경우도 적지않다. 육사 출신 박흥주 대령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동기생중 늘 선두그룹에 속해 있었다. 중령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그후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979년 10.26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40세때였다. 일선 연대장으로 보내달라고 몇번씩 간청했으나 몇달만 더해 달라고 하며 미루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가 수감되었을 때 교도소 벽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는 글을 쓴 것이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장군의 전속부관 또는 보좌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할까?
°상사의 활동 및 집무시간 계획에 대한 보좌
°업무계획표 유지 및 상사업무 수행 보좌를 위한 관계관과의 협조
°전화 서신 민원서류등의 접수, 처리, 회신을 위하여 관련 참모에게 연락
°상사를 위한 기록문서 및 참고자료 관리유지
°부대방문 내빈의 접대 및 안내
°상사의 신변보호와 안전업무
°상사를 보좌하기 위한 근무병의 근무조정 및 강독
이게 기본임무이지만 종종 그 이상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나도 전속부관을 한 경험이 있다. 1975년 공군소위로 임관하였다. 비행단 기지전대에 근무중 비행단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부관이 된 것이다. 당시 부관을 하고 싶어하는 장교보다는 기피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장교는 출퇴근하며 자유시간이 보장되는데 부관을 하면 부대내 관사에서 거주해야 하고 365일 24시간 근무체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 또한 거부감이 컸었는데 비행단장을 면담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문무겸비에 지덕체를 갖춘 훌륭한 장군이었다. 공군사관학교 2기생인 김동호 장군이다. 부관 근무를 하며 내 인생관이 통째로 바뀌었다. 존경받고 사는 것보다 존경할 대상이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걸 깨달았다. 일단 마음이 변하니까 부관 업무의 단점이라는 것들이 모두 장점으로 바뀌었다. 일찍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고 퇴근시간이 빨리오는 것이 아쉬웠다. 하루하루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는걸 느끼며 스스로 감동하였다. 휴가도 자진 반납하고 상사를 잘 모셔서 부대가 발전하고 나라가 잘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인생관 국가관 사생관이 새로 생겼고 리더십 사고력 의전 기획력을 키울 수 있었다. 내가 모시던 분은 그후 한미연합사 초대 정보참모부장 겸 군사정전위 한국측 수석대표,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등을 역임하였다. 이 분이 얼마나 탁월한 장군이었는지를 입증하는 일화가 있다. 초대 한미연합사 사령관이던 존 베시 주니어 대장은 '내가 만난 수많은 한미 장성중 모든 것을 경비한 장군' 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하였다. 나는 만 3년간 이 분을 모시며 큰 보람을 느꼈고 성장하였다. 전역후에도 평생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며 살고 있다.
장군과 부관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서로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존중과 신뢰다.
둘째는 존경과 충성심 그리고 성장지원이다.
셋째는 절제된 친밀감이다.
장군과 부관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충성심이 나와야 한다. 계급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지휘관에 충성한다는 관계가 형성 되어야 한다. 장군은 부관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지고 과도한 사적관계로 흐르면 안된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은 무엇일까? 존경하며 모시던 장군이 허물어지는 경우다. 퇴임 후까지도 바른 삶으로 모범을 보여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허무해진다. 또한가지는 부관이 호가호위하거나 장군을 배신하는 경우다. 측근이 호가호위하면 기강이 무너지고 배신하면 세상이 허망해진다. 역사적으로 무수한 사례가 있다.
장군과 전속부관은 단순한 업무관계를 넘는 인연이다. 상호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컬래버 관계다.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다. 부관이 장군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장군이 부관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일단 잘 뽑아야 한다.
윤은기
경영학박사
중앙공무원교육원장(24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