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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입설(程門立雪)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程 : 한도 정(禾/7)
門 : 문 문(門/0)
立 : 설 립(立/0)
雪 : 눈 설(雨/3)
출전 :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승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눈이 와도 꼼짝 하지 않는다. 아직 아무런 분부가 없어서다. 스승을 존경하는 태도가 끔찍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다. 그 스승이 정씨(程氏) 집 두 형제 이정(二程)이라면 그럴 만하다.
형 정호(程顥)와 동생 정이(程頤)는 중국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로 당시의 사회 인사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약간 뒤를 잇는 주희(朱熹)와 함께 그들의 학문을 정주학(程朱學)이라 일컬을 정도였다. 이 성어는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거나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게 됐다.
정씨 형제의 학문은 깊었지만 성격은 다른 점이 많았다. 정호는 온화한 성품으로 학생을 맞았고 정이는 아주 엄격했다고 한다. 이렇게 대조적이어도 학생들이 끊이지 않은 것은 학문에 각각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양시(楊時)와 유초(游酢)란 학인이 형 정호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스승의 마음에 들어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불행히도 세상을 뜨자 이 두 사람은 아직 학문이 미흡하다며 동생 정이의 가르침을 더 받기로 했다.
一日見頤 頤偶瞑(일일견이 이명좌)
어느 날 정이를 찾았을 때 마침 정이는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時與游酢侍立不去(시여유초시립불거)
양시와 유초는 말없이 조용히 눈 뜨기를 기다렸다.
頤既覺 則門外雪深一尺矣(이기각 즉문외설심일척의)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 밖에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원(元)나라 때 완성된 송사(宋史)의 양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배움에 대한 간절함에 감동한 정이는 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학문을 닦은 결과 양시와 유초는 후일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바로 여대림(呂大臨)과 사량좌(謝良佐)를 포함하여 정문(程門, 정호와 정이의 문하) 4대 제자로 꼽히게 되는 것이다.
스승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중요한 문화이다. 민족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권은 추락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교사들도 늘고 있다. 한때 최고의 선망 직업이던 교직은 이제 기피 직업이 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무너진다.
정문입설(程門立雪)
스승을 존중하는 중국인의 전통이다.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스승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 미덕이다.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스승을 하늘, 땅, 군주, 가족과 같이 존경했다. ‘한번 스승이 되면 평생 아버지와 같이 모셔야 한다(一日為師 終身為父)’는 말은 교사라는 직업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중국 고대의 예기(禮記)는 세계 최초로 교육과 가르침을 주제로 한 저술로, ‘스승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시한다(尊師重教)’는 말 역시 여기서 나왔다. 이는 오직 스승을 존경함으로써 도를 중시할 수 있고, 오직 도를 중시함으로써 학습과 교육을 중시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늘의 주제인 정문입설(程門立雪)이라는 성어 역시 스승에 대한 존중에 관련된 이야기다.
유래와 의미
정문입설(程門立雪)은 송사(宋史) 양시전(楊時傳)에서 유래한 성어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양시(楊時)가 정이(程颐)를 만나뵙기 위해 낙양(洛陽)으로 갔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 정도였다. 정이를 찾아갔을 때 그는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양시는 유작(游酢)과 함께 문 앞에 서서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정이가 깨어났을 때 문 밖에는 이미 눈이 한 척 이상 쌓여 있었다.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는 중국 교육사의 미담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송나라 시기, 정호(程颢)와 정이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두 형제는 독서량이 많고 뛰어난 경륜과 깊은 학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명성을 듣고 배움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일같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양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배우기를 즐겼다. 그는 4살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7살에는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며, 8살에는 운율이 있는 사(詞)와 부(賦)를 짓고 읊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 했으며,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양시는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하고 스승을 존중하며 도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겨울 날, 그와 학우는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었고,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 정이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갔다.
정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시중 드는 아이가 문 앞에서 그들에게 말했다. “정이 선생님은 지금 주무시고 계시니 먼저 돌아가시고 다른 날 오시지요.” 양시와 친구는 스승을 깨우거나 방해하지 않으려고 문 앞에 조용히 서서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 길에는 한 사람의 행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하늘에서 함박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계속해서 옷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두 사람은 추위에 몸을 벌벌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는 두터운 눈이 쌓였다.
시중드는 아이가 그들에게 일단 집에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고 눈밭에 서서 스승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잠에서 깨어난 정이는 양시와 친구가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문 밖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하여 직접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문을 열어 보니 바깥에는 이미 눈이 한 척이나 쌓여 있었다. 미동도 없이 그곳에 서 있던 양시와 친구는 흡사 눈사람 같았다.
정이는 학문을 갈구하는 양시의 간절함과 예의 바른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양시를 제자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자랑스러운 애제자로 키웠다. 후에 양시는 정이의 사상과 도리를 배워 깨달아 ‘정학의 전통파(程學正宗)’로 존경받고 ‘귀산선생(龜山先生)’이라 불렸다. 이렇게 정문입설(程門立雪) 이야기는 스승을 존경하고 도를 중시하는 내용의 영원한 미담으로 남게 되었다.
스승 존경과 교육 중시는 중화 문화의 핵심 중국 역사에는 스승을 존경하는 전통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정문입설(程門立雪)은 가장 대표적인 실례이다.
또 다른 예로 자공결려(子貢結廬)가 있다. 자공(子貢)은 교육가, 사상가인 공자의 뛰어난 제자였다. 기원전 479년 공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공자 서거 후 모든 제자들은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이후 제 갈 길을 갔지만, 자공만이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짓고 6년 동안 무덤을 지켰다.
이와 같이 제자로서의 깊은 정과 스승에 대한 진실한 존경심을 드러낸 자공은 스승에 대한 효도를 실천한 모범적 인물로 꼽힌다. 후대인들은 이 일을 기억하기 위해 3칸짜리 집을 짓고 비석을 하나 세워 ‘자공려묘처(子貢廬墓處)’라 이름하였다.
중국의 전통 사회는 이익보다 의를 중시했고, 교사라는 직업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중국 고대에서 스승을 모시는 도리는 예(禮)를 통해 실천했다. 남성이 20살이 되면 치르는 가관례(加冠禮)는 그가 성년이 되었음을 뜻했다.
호칭의 경우, 가족이나 친척이 ‘자(字)’를 선물하며 그때부터 자로 호칭함으로써 그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조정에 들어가 관직을 맡게 되었을 때에도 황제는 이름이 아닌 그의 자로 호칭하며,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부모와 스승 뿐이었다.
또한 고대 사람들은 서당에서 공부를 할 때 먼저 스승에게 정중히 절하는 예를 갖춰야 했다. 예를 갖추는 것은 학생 뿐 아니라 학생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여서, 스승에게 무릎을 꿇고 절해야 했다. 집에서 가장 존중을 받는 부모조차 스승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는 예를 갖추는 것을 통해 스승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스승을 존경하고 교육을 중시해야 함을 더욱 깊이 배웠다.
한유(韓愈)는 사설(師說)에서 “예로부터 가르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문을 가르치며 난제를 풀어주는 자(古之學者必有師.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라고 했다. 이 글은 한유가 그의 제자인 이반(李蟠)에게 써준 것으로, 당시 스승을 따르고 학습에 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스승을 존경하는 고대 전통은 명덕(明德),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유교의 예를 담고 있으며 민족의 커다란 사명을 어떻게 담당할지에 대해 전하고 있다.
옛날과 비교해 오늘날 중국에서는 많은 예의와 전통이 사라졌지만 스승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곡예(曲藝)나 서예 등과 같은 분야에는 아직 스승을 모시고 예술을 배우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스승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모습은 주로 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선생님은 여전히 위대하고 영예로운 직업으로, 원정(園丁)이라 불리며 세대를 거쳐 학생들을 교육하고 양성한다. 어느 시대이든지 스승을 존중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중화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민족의 전승, 미래와 밀접히 연관된 일이기 때문이다.
정문입설(程門立雪)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시간 중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단으로 불러내더니 꼬옥 안아주시면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하셨다. 선생님 질문에 손을 들고 한 답변이 마음에 쏙 드신 것이다. 무슨 질문이었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세월과 함께 잊혀졌지만, 그날의 총체적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고달픈 인생살이에 힘이 되어 준다.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러 교사라고 한다. 교사란 단순한 지식전달자를 넘어 학생의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인플루언서다. 교사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때면 초등학교 때 그 선생님을, 그날 일을 떠올린다.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는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선생님을 우리는 스승으로 기억한다.
스승의 날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다. 날짜가 겹친 부처님 오신 날에 묻혀서였을까? 딱히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기념일을 반갑게 맞이하기에는 교육 현장의 현실이 참담하다.
폭염이 전국을 뒤덮던 작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23세 새내기 여교사가 교사로서의 꿈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두달 뒤에는 대전에서 40대 여교사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가 100명을 상회한다.
교사들이 세상을 등지는 건 대개 학부모의 괴롭힘 때문이다. 걸핏하면 학교로 달려와 교사를 윽박지르고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고발도 서슴지 않는 진상 학부모의 반지성적 갑질과 악성 민원이 교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갈파한대로 이 참담한 현실 한복판에 '내 새끼 지상주의'가 있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인성교육을 등한시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입시경쟁에 매몰된 승자독식 사회의 병리 현상이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잘나가던 대학교수 조국 일가가 온갖 입시 비리로 인해 풍비박산 난 것도 결국 내 새끼만 잘되길 바라던 이기심 때문 아니었나.
자기 아이를 왕자 대하듯 해주지 않는다고 담임교사를 신고하거나 아이에게 녹음기를 갖고 학교에 가게 해서 녹음한 후 교사를 고소한 학부모도 있었다. 내새끼 지상주의가 괴물 부모를 만들고 괴물 부모가 괴물 자식을 만든다.
요즘은 교사가 혹여라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처럼 한 학생을 지목하여 칭찬하면 차별 행위로 민원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다른 학생이 이를 신고하면 교사는 소명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교사가 깨우면 휴식권 침해다. 2012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제정되기 시작한 '학생인권조례'가 이런 코미디를 가능하게 했다.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조항도 교사들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사교육 열풍 속에 공교육의 입지는 갈수로 위축되는 가운데 학생의 책임은 놔두고 권리만 강조하다보니 학생의 인권 신장과 반비례하여 교권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교권 보호'가 스승의 날 최고의 선물이라는 교사들의 외침에 관계당국은 답해야 한다.
현실이 답답할 때 종종 우리는 고전에서 위안을 찾는다. 예로부터 천하의 인재들은 학식과 인품을 고루 갖춘 사람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송나라 때 가르침을 받고자 한 자(尺)가 쌓이도록 눈을 맞으며 명상에 잠긴 스승이 깨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두 형제는 송대에 큰 족적을 남긴 대학자들이다. 백년 뒤에 태어난 주희가 이들의 학문적 영향을 받고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린 양시(楊時)라는 사람이 과거에 합격했음에도 관직을 포기하고는 정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의 길을 걸었다. 훗날 스승 정호가 죽었을 때 그도 나이 마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학문이 부족하다 여기고 정이에게 가르침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양시가 동문수학하던 유작(游酢)과 함께 정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정이는 정좌하여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서서 기다렸다. 한나절도 더 지나서야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一日見頤, 頤偶瞑坐, 時與游酢侍立不去. 頤既覺, 則門外雪深一尺矣).
가르침을 받고자 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스승에게 존경을 다해야 한다는 성어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유래가 된 이 이야기는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미담이다. 송사(宋史) 양시전(楊時傳)이 원전이다. 양시와 유작은 훗날 큰 학문을 일구고 다른 두 학인과 함께 정씨 문하 4대 제자(程門四先生)로 이름을 남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영화 제목을 패러디하는 데나 쓰인다. 학생이 교사를 희롱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때리는 일이 빈번한 시대라서인가, 눈을 맞으며 스승이 깨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각별하게 와닿는다. 그런 사람들을 어찌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이는 아마도 열과 성을 다하여 양시와 유작을 가르쳤을 것이고, 그런 스승을 양시와 유작은 부모님 대하듯 했을 것이다.
학원과 학교의 역할이 다르듯이 학원강사와 교사의 역할은 다르다. 필요한 지식만 주입시키면 되는 학원강사와 달리 교사는 학생을 전인격으로 키워내는 역할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의 존경을 받고 스승이 된다. 그런 스승을 보면서 아이도 올곧게 성장한다.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소소한 일을 지나치지 않고 평생 힘이 되어 주는 기억으로 만들어주었기에 내 가슴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자리잡았다. 인공지능이 교사를 대신할 만큼 세상이 바뀌었어도 교사와 학생 간 관계의 본질은 여전히 그러하다.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 힘을 내시길!
정문입설(程門立雪)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과연 이 시대에 스승의 도가 살아있을 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 역시 젊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아오다가 천만 다행하게도 일원대도(一圓大道)의 기연(奇緣)을 만나 비로소 스승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한 번 사제(師弟)의 연(緣)을 맺은 이상 저는 스승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신(信)을 바쳤습니다. 그로부터 심지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며 스승님의 명에 따랐습니다. 그랬기에 ‘인생의 도’를 알았고, 진리가 무엇인지 깨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정도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 같네요.
송사(宋史) 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는 정문입설(程門立雪)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이 말은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지요.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던 ‘양시와 유초’는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정호의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정이(程
頤)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지요.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정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고, 한참 뒤에 정이가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지요. 이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정문입설(程門立雪)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제 간의 사이에는 완전한 신뢰가 바탕 되지 않으면 진정한 ‘사제의 도’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나 스승을 구하는 소망을 가져보지만 스스로 제자로써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사제의 연을 맺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우려는 사람이 엉덩이에 뿔이 나서 얄팍한 지식으로 스승을 검증 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을 찾아 헤매고 스승은 제자를 찾아 헤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는 무조건 신뢰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지극한 믿음이고, 공경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인생에 스승이 안 계시면 그 인생이 고달프기 쉽습니다. 스승을 찾으면 사제 간에 사이가 없어야 합니다. 그 사이를 없애는 방법은 신(信)만 돈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 스승의 허물이 눈에 뜨일 때에는 스스로 박복함을 한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의혹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직접 고하여 해혹(解惑)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스승의 법(法)이 제자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스승이 사약(死藥)을 따라서 마시라 해도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제 간에는 완전한 사랑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스승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진정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도를 구하고자 스승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은 몇 십 년을 죽어라 일만 시키네요. 참다못해 젊은이가 따졌습니다. 어서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떠나가 버리겠다고 했지요. 스승은 이 젊은이를 그냥 보내면 자기가 땡초라는 것이 알려질 것 같아 젊은이를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에게 저기 있는 벼랑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라 했습니다. 뛰어 내리면서 꼭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했습니다. 그러면 도를 얻는다고 말이지요. 이 순진한 젊은이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스승이 시키는 대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뛰어 내렸습니다. 그러자 진짜 관세음보살님이 그 젊은이를 품에 안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스승에 대한 확실한 믿음, 그것은 곧 자기 믿음이 아닌가요? 자기의 믿음이 곧 자기를 살리고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스승 찾기도 힘들지만 아마 제자 찾기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럼 부처님이 말씀하신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는 어떤 것일까요?
제자의 도입니다. 첫째, 스승을 존경하여 항상 찬양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맞이합니다. 둘째,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생각하고 스승을 시봉하기에 힘씁니다. 셋째,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집중합니다. 넷째, 배운 대로 기억하고 삼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합니다. 다섯째, 언제나 스승님의 어려움을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스승의 도입니다. 첫째, 진리를 가르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제자에게 모범을 보입니다. 둘째, 열심히 가르치고 자신의 배운 바를 제자가 남김없이 이어받게 합니다. 셋째, 제자가 묻는 것을 잘 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넷째, 좋은 친구들과 사귀도록 하고 그 이름을 드날리게 합니다. 다섯째, 아는 것을 다 가르치고 무슨 일에나 정당하게 대처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이 다섯 가지 도를 잘 지켜 행한다면, 스승과 제자 사이는 길이길이 정의(情誼)가 건네고 대도를 성취하게 되지 않을까요? 스승은 스승답게, 제자는 제자답게 저마다 도를 행하면, 사제의 도가 바로 서 세상은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계를 이룰 것입니다.
스승의 날! 한 없이 고마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자세로 스승을 찾아 나서 봅시다. 제자가 배워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우리 이왕이면 인류의 큰 스승으로 우뚝 서면 어떨 까요!
▶️ 程(한도 정/길 정)은 형성문자로 呈(정)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벼 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呈(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壬(정)은 곧게 자라는 일이요, 口(구)는 입으로 말을 함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呈(정)은 공평(公平)하게 말하다, 禾(화)는 곡식(穀食), 程(정)은 곡식이 고루 자라다, 물건의 길이의 한 토막, 한치의 십분의 일을 分(분), 分(분)의 십분의 일을 程(정)이라 하였다. 나중에 거리의 구분(區分), 노정(路程), 또 시간의 구분(區分)의 뜻으로 되어, 다시 널리 표준, 법칙(法則)의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程(정)은 ①한도(限度) ②길 ③단위(單位) ④법칙(法則) ⑤규정(規定) ⑥법(法) ⑦계량기(計量器) ⑧일정한 분량(分量) ⑨표준(標準) ⑩가늠하다 ⑪벼르다 ⑫보이다 ⑬헤아리다 ⑭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알맞은 한도나 얼마 가량의 분량을 정도(程度), 법식에 의거하여 손보아 고침을 정선(程繕), 일정한 법식으로 표준이 되는 방식을 정식(程式), 일이 되어 가는 경로를 과정(過程), 그 날에 할 일 또는 그 분량이나 순서를 일정(日程), 토의할 안건을 회의에 내어 놓음을 상정(上程), 모든 행위의 준칙이 되는 규칙을 규정(規程), 작업이 되어 가는 정도를 공정(工程), 거쳐가는 길이나 과정을 노정(路程), 일정한 곳으로부터 다른 일정한 곳에 이르는 거리를 이정(里程), 미리 정한 갈 길을 예정(豫程),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시정(視程), 여행하는 노정이나 일정을 여정(旅程), 거쳐 지나는 길이나 과정을 역정(驛程), 거쳐 온 노정이나 지나 온 경로를 역정(歷程), 여행하는 길이나 나그네 길을 객정(客程), 길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헤아려 따짐을 계정(計程), 붕새가 날아갈 길이라는 뜻으로 앞으로 가야 할 멀고도 먼 길을 붕정(鵬程), 두 음의 진동수의 차이 곧 높낮이의 차이를 음정(音程), 정씨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는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을 이르는 말을 정문입설(程門立雪),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라는 뜻으로 머나먼 노정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요원하다는 말을 붕정만리(鵬程萬里) 등에 쓰인다.
▶️ 門(문 문)은 ❶상형문자로 门(문)은 간자(簡字), 閅(문)은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문짝이 있는 문의 모양으로 문짝을 맞추어 닫는 출입구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門자는 ‘문’이나 ‘집안’, ‘전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門자를 보면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戶(지게 호)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라면 門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큰 대문을 그린 것이다. 門자는 대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이외에도 ‘집안’이나 ‘문벌’과 같이 혈연적으로 나뉜 집안을 일컫기도 한다. 다만 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문과 관련된 행위나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門(문)은 (1)담이나 판장 따위로 둘린 안팎을 연결하기 위하여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구조물. 판자문, 골판문, 띠살문, 완자문, 정자살문, 빗살문 따위가 있음 (2)생물의 분류학(分類學) 상 단위의 한 가지. 강(綱)의 위 계(界)의 아래임. 동식물을 합하여 10여 개의 문으로 나뉨 (3)칠사(七祀)의 하나로 출입(出入)을 맡아 본다는 신 (4)성씨(姓氏)를 함께 하며 혈연적으로 나뉜 그 집안을 가리키는 말 (5)성(姓)의 하나 (6)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 등의 뜻으로 ①문(門) ②집안 ③문벌(門閥) ④동문(同門) ⑤전문 ⑥방법(方法) ⑦방도(方道) ⑧가지 ⑨과목(科目) ⑩부문(部門) ⑪종류(種類) ⑫분류(分類) ⑬비결(祕訣) ⑭요령(要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문도(門徒),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중(門中),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문벌(門閥), 문의 안이나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내(門內), 문 앞이나 대문 앞을 문전(門前),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인(門人), 문객이 드나드는 권세가 있는 집이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를 문하(門下),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문성(門聲), 대문 또는 중문이 있는 곳을 문간(門間), 세력이 있는 대가의 식객 또는 덕을 보려고 날마다 정성껏 문안을 드리며 드나드는 손님을 문객(門客), 문지기를 문사(門士), 한 집안의 가족들의 일반적 품성을 문품(門品),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이름 있는 학교 또는 훌륭한 학교를 명문(名門), 갈라 놓은 분류를 부문(部門), 한 가지의 학문이나 사업에만 전적으로 전심함을 전문(專門),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문을 창문(窓門), 집안과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신분을 가문(家門), 큰 문이나 집의 정문을 대문(大門), 정면의 문이나 본문을 정문(正門),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빌어 먹음을 문전걸식(門前乞食), 집에 사람이 많이 찾아 온다는 말을 문정여시(門庭如市),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집 앞 가까이에 있는 좋은 논이라는 뜻으로 곧 많은 재산을 일컫는 말을 문전옥답(門前沃畓) 등에 쓰인다.
▶️ 立(설 립/입, 자리 위)은 ❶상형문자로 사람이 대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본 뜬 글자이다. 나중에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다', '세우다'의 뜻으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立자는 '서다'나 '똑바로 서다', '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立자의 갑골문을 보면 大(큰 대)자 아래로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立자는 '서다'나 '똑바로 서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땅을 딛고 당당히 서 있다는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감이나 사물의 위치가 바로 세워져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다만 상용한자에서 立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대부분이 노예와 관련된 글자인 辛(매울 신)자가 생략된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立(립, 위)은 ①서다, 멈추어 서다 ②똑바로 서다 ③확고(確固)히 서다 ④이루어지다 ⑤정해지다 ⑥전해지다 ⑦임(臨)하다 ⑧즉위하다 ⑨존재하다 ⑩출사(出仕)하다 ⑪나타나다 ⑫세우다 ⑬곧, 즉시 ⑭낟알(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식의 알) ⑮닢(납작한 물건을 세는 단위) ⑯리터(ℓ)의 약호(略號) ⑰바로 그리고 ⓐ자리(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펼 전(展), 세울 건(建), 필 발(發), 세울 수(竪), 일어날 기(起),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입장(立場), 법률 또는 법규를 제정함을 입법(立法), 어떤 사물이나 견해나 조건을 등에 근거를 두어 그 입장에 섬을 입각(立脚), 서서 타거나 구경하는 자리를 입석(立席),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식물이 생육하는 일정한 장소의 환경을 입지(立地), 나라를 세움을 입국(立國), 안건을 정하는 것 또는 그 안건을 입안(立案), 증인으로 서거나 세움을 입증(立證), 뜻을 세움을 입지(立志), 현장에 나가 지켜봄을 입회(立會), 어떤 원인으로 어느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 막히거나 끊어지거나 하여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고립(孤立), 남의 힘을 입지 않고 홀로 섬을 독립(獨立), 시설이나 법인 등 공적인 기관을 만듦을 설립(設立), 마주 대하여 섬을 대립(對立), 확실히 정하거나 굳게 세움을 확립(確立),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생존하여 자립함을 존립(存立), 나라에서 세움을 국립(國立), 일어나서 섬을 기립(起立), 받들어서 임금의 자리 따위에 모시어 세움을 옹립(擁立), 절이나 탑 동상 따위를 세우거나 이룩함을 건립(建立),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을 만드는 일을 매립(埋立),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서서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의 뜻으로 잠깐 동안을 일컫는 말을 입담간(立談間),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 또는 후세에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광되게 해 드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입신양명(立身揚名),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일컫는 말을 입춘대길(立春大吉), 성공하여 세상에 이름이 드날림을 일컫는 말을 입신출세(立身出世), 그 자리에서 참수하여 무리의 본보기로 경계함을 일컫는 말을 입참이순(立斬以徇),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오래 서 있어도 의용을 갖추어 자세를 흐트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입불실용(立不失容),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되는 땅을 이르는 말이나 매우 좁아서 조금도 여유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입추지지(立錐之地) 등에 쓰인다.
▶️ 雪(눈 설)은 ❶회의문자로 비(雨)가 하늘에서 얼어 내리는 하얀 눈을 빗자루(부수를 제외한 글자)로 쓴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눈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雪자는 '눈'이나 '흰색', '고결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雪자는 雨(비 우)자와 彗(비 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彗자는 손에 빗자루를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빗자루'나 '쓸다'는 뜻이 있다. 雪자의 금문을 보면 雨자 아래로 彗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린 눈을 빗자루로 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눈을 표현하기 위해 재미있는 방법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본래 彗자가 적용된 䨮(눈 설)자가 쓰여야 하지만 편의상 획을 줄인 雪자가 '눈'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雪자는 하얀 눈에서 착안 된 '고결하다'나 '씻어 버리다'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雪(눈)은 ①눈(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 ②흰색 ③흰것의 비유 ④눈이 내리다 ⑤희다 ⑥고결하다 ⑦씻다 ⑧표명하다(의사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눈이 내리는 경치 또는 눈이 쌓인 경치를 설경(雪景), 눈이 쌓인 산을 설산(雪山), 눈이 내리는 밤을 설야(雪夜), 눈이 뒤덮여 있는 벌판을 설원(雪原), 눈이 많이 내림으로 인하여서 받는 피해를 설해(雪害), 굵게 엉겨 꽃송이 같이 보이는 눈을 설화(雪花), 상대를 이김으로써 지난번 패배의 부끄러움을 씻고 명예를 되찾는 것을 설욕(雪辱), 부끄러움을 씻음을 설치(雪恥), 맛이 달고 물에 잘 녹는 무색의 결정을 설탕(雪糖), 세차게 내리는 눈을 강설(强雪), 많이 오는 눈을 대설(大雪), 적게 오는 눈을 소설(小雪), 많이 오는 눈을 장설(壯雪),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을 폭설(暴雪), 고생하면서도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학문을 닦음을 가리키는 말을 형설(螢雪), 얼음과 눈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가 결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빙설(氷雪), 봄철에 오는 눈을 춘설(春雪), 부끄러움 따위를 씻어 버림을 세설(洗雪), 눈 위에 또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 겹침을 이름 또는 환난이 거듭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설상가상(雪上加霜), 눈처럼 흰 살결과 꽃처럼 고운 얼굴이란 뜻으로 미인의 용모를 일컫는 말을 설부화용(雪膚花容), 기러기가 눈이 녹은 진창 위에 남긴 발톱 자국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가서 그 자국이 지워지고 또 기러기가 날아간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데서 흔적이 남지 않거나 간 곳을 모른다는 말을 설니홍조(雪泥鴻爪), 매화를 달리 이르는 말을 설중군자(雪中君子), 눈 속의 송백이라는 뜻으로 소나무와 잣나무는 눈 속에서도 그 색이 변치 않는다 하여 절조가 굳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설중송백(雪中松柏), 눈 속에 있는 사람에게 땔감을 보내준다는 뜻으로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을 이르는 말을 설중송탄(雪中送炭),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눈 빛에 비쳐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가난을 무릅쓰고 학문함을 이르는 말을 영설독서(映雪讀書), 얼음이 얼고 찬 눈이 내린다는 뜻으로 심한 추위를 이르는 말을 동빙한설(凍氷寒雪), 정씨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는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을 이르는 말을 정문입설(程門立雪)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