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도 말이 되고 하루하루 ‘하지’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낮이 길어지는 여름날인데, 여기도 부쩍 더워지고 습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요즘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저녁 5시경부터 아침 7시 부근까지(8.9 시에도 모기는 간간이 있다.) 하루의 반절도 넘는 긴 시간을 모기와 함께 해야 하는 생활로 바뀌다 보니, 정말 죽을 맛이다.
슬슬 저녁 기운이 돌면서 모기들이 나타나 귓가에서 ‘잉 잉’ 거리면,
‘이제, 죽었구나!’ 하고 도망갈 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몸이라도 움직여야 모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보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성이거나 도망쳐 다녀야만 하는데,
상황은 그런데도 생활 자체는 모기를 피할 곳이 없다 보니 그 긴 밤을 모기와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여기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모기들은 나만 공격하는 것 같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안절부절 못하고 여기저기 긁고 난리를 치는 모양새라.)
그러니, 모기가 몸 주변에 나타나 날아다니면 정말 ‘노이로제’라도 걸릴 것 같은 ‘공포감’과 함께 하고 있다.
무슨 그깟 모기 가지고 이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번에 여기 쿠바에 와서 절실히 깨달은 건,
내가 끈적거리는 ‘열대기후’와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모기에 그토록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선 나도 ‘모기 안타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여기 온 뒤로는 그 말이 무색하게 정말 속수무책으로 뜯겨 팔뚝이며 발등이며 울긋불긋 말도 아니게 틈새도 없이 물려, 평생 여기서처럼 모기에게 물린 적이 없다고 호언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나는 이전에도 땀나고 몸이 끈적거리는 걸 싫어해서 가까운 아시아의 열대국가(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가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제는 모기까지 악재가 추가 되다 보니, 앞으로는 더더욱 열대기후의 나라에 가지 않을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튼 내가 여기 쿠바에 온 이래, 더욱이 여기 ‘꼬브레’에 와서도 모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자(살까지 빠졌다.) 그저껜가 R이,
“그럼, 내가 모기장을 가져와서 설치해 줄까요?” 하고 묻기에,
“모기장이 있어?” 하고 반신반의했더니,
“전에 쓰던 게 어딘가에 있긴 할 텐데, 아무튼 가서 찾아 볼 게요.” 하면서 돌아갔었다.
그리고 이틀 뒤, 여기 숙소에서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할 무렵, 무심히 내려다 본 나무 잎 사이로 R이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그는 M이 줬다며 내 목 감기에 마시라고 뭔가 시럽을 내놓더니, 꿈에서나 볼 법했던 모기장도 가져왔는데,
“어제 모기장을 꺼냈더니 먼지가 쌓여 있어서, 빨아서 말려오느라 못 왔거든요.” 하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어서 그걸 인정해 주었고,
그가 모기장을 설치하기 위한 끈도 준비를 해왔는데, 그 궁색함이 가슴이 찡하도록 서글프긴 했지만, 그래도 그 성의만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어서, 고맙게 받아들였다.
사실 그가 모기장을 가져온다고 했을 때만해도, 나는,
‘가져와서 어떻게 설치하려고?’ 하는 시큰둥한 자세로 걱정이 앞섰는데, 실제 가져와서 직접 설치하는 걸 보니, 의외로 단순 간단해서,
‘거참, 신통하네!’ 하고 감탄하고 있었고, 또 그걸 설치하고 나니,
이제, 내가 모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조그만 공간(단 침대 한 칸의 50cm가 될 공간에 불과하지만)이 생긴 안도감은 행복 그 자체였다.
정말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았는데도, 침대를 약간 넉넉하게 덮을 정도로 아담한 모습의 모기장을 보니, 갑자기 ‘나만의 새로운 안전한 세상’이 생긴 것 같은,
그러니까 이제 이 세상에는 나를 귀찮게 굴 적(?)이 없어진 것 같은 후련함과 뿌듯함이 의외로 크게 작용해왔던 것으로,
‘아, 왜 이걸 생각지 못했을까? 진작에 모기장을 하나 샀다면, 그 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 했다.
그리고 이 숙소의 구석 통로만을 왔다갔다 하면서 7시 반까지를 버티다,
첫 ‘모기장’에서의 밤을 맞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긴장상태로 뭔가(모기)로부터 쫓기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모기장 안은 조용했고 아늑했고 이 세상에 나를 침해할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안도감에 마음의 평화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건 모처럼 찾은 행복이기도 했다.
시원한 바람은 없는 밤이었지만(요즘 그렇다.), 이제 모기장이 있어 페르시아나와 문을 다 열어놓은 채(그만큼 공기 소통이 되기에) 덜 답답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게 되어 쾌적했고,
당연히 모기에 쫓길 일이 없다 보니 잠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어젯밤만 해도 한 시간 간격으로 깨던 잠이 첫 잠은 세 시간을 잤고(10시 반 경에 일어나 잠깐 복도를 걸었다.), 다시 누워 눈을 떠보니 새벽 4시가 돼가고 있었다.
물론 모기장 안에서 글작업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냥 모기에 뜯기지 않은 상태로 잠을 잘 수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웃기는 건,
모기장 안에 있다 보니, 그 바깥에도 모기의 모습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 약간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기장에 매달려 아우성을 쳐야만, 그 안 안전지대의 행복감이 배가 되는 건데(맘껏 느끼고 싶었던 건데), 바깥도 잠잠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처럼 모기 잉잉거리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고 밤을 새운 기분이었다.
어제만 해도, 모기 소리에 도망다니느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밤을 지샌 것 같은데,
그동안 얼마나 모기 때문에 시달렸으면, 모기장에 ‘모기 약 올리는 만화그림’이라도 붙여놓고 싶어지기까지 했을까.
(그렇긴 하지만 이 ‘모기장’을 소재로 그림 하나를 생각해 두는 성과는 있었다.)
아무튼 모기장이 생긴 걸로 여기서의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은 것 같긴 한데,
다만 모기로부터 피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건 아니다.
어차피 모기가 나오는 시간엔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모기장 안에 들어가면 그 뿐, 그 안에 누워 잠을 청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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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곧 쿠바를 떠날 예정입니다.(6. 14)
다음 행선지는 멕시코가 되겠고, 거기에 가서 보다 자세한 얘기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첫댓글 건강 조심하세요.
글을 보니 한국은 천국이군요.
여기도 모기에 시달리기 시작하는 때라서
한두마리 있어도 시달리는 고통이만저만 아닌데 고생많으셨겠어요
모기장이 만들어준 작은 공간으로 안도감과 행복감 저도 이백퍼센트 느껴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