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367. 어수선한 새 해
지난 해, 지난 달, 12월 28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날 우리는 골프 약속이 있었는데 후반부터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플레이를 하다가 마지막 두 홀은 제법 젖어가면서 라운딩을 마쳤다.
사우나를 마치고 라카룸에서 나왔을 땐 그야말로 strong rain이다.
먼 곳의 태풍이 지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알고보니 필리핀 중부 루손 지역에 특히 비콜이라는 곳을 집중 푹우가 강타했다고 한다.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 그리고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연말연시인 닷새동안 비는 빔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내렸다.
정말 지루하고 정말 음습하고 정말 어찌할 도리없이 닷새씩이나 참아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별 일 없으니가 견디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웃집에는 골프손님이 여섯 분이나 왔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다.
골프 바우쳐도 사 놓고 시장도 잔뜩 봐놓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그분들은 골프장에 나가볼 수조차 없이 비가 쏟아졌다.
할 수 없이 맛사지숍으로, 레스토랑으로, 쇼핑몰로 스케쥴을 급조했지만 서로가 힘들고 황당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송구영신이다.
새해를 맞는 자정에 우리는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만 이곳은 산발탄과 폭죽과 나팔과 온갖 총소리로 요란한 밥을 보낸다.
어딘가에는 물난리가 났고 사람이 죽고 며칠씩 비는 쏟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와 사도 요한 축일의 거리 행진, 그리고 이어지는 새해로 이곳의 달력은 요즘 온통 화려한 휴일 천지이다.
밀라도 휴가를 얻어서 나오지 않고 어수선하고 빗속에 갇힌 뒤숭숭한 날 들 속에서 새 해 새 날을 맞이한다.
나에게 70을 넘고도 또 다시 또 다시 맞는 새 해 첫날은 그저 아프지 말고 누굴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말고 작은 일조차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사소한 일에도 속상하고 서운하고 화나고 다시는 안 보고 싶고.....다만 좀 느긋해지자 싶다.
큰 쟁반에 너무 맛있어 보이는 잡채 한 접시와 귀한 동태포로 만든 전을 담아가지고 이웃 집 maid가 들어온다.
너무너무 고맙고 반갑다. 지난 번 그 집에 손님이 많아서 쩔쩔맬 때 우리 집 아래층 방을 쓰라고 내어주길 참 잘했던 것 같다.
첫댓글 언젠가 10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온 거리는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떠 있는듯 요란한 부위기를 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