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의 강가에서
간밤 뜨거웠던 여름을 뒤늦게 떠나보내는 세찬 비가 내린 구월 셋째 토요일 아침이다. 그간 우리나라 상공은 여름 기단 북태평양 고기압에다 티벳에서 뻗쳐온 고기압까지 겹으로 덮어 좀체 물러날 기미가 없어 폭염이 오래 지속되었다. 마침 상하이로 상륙한 태풍이 고기압 주변부로 방향을 틀어 남해안을 스쳐 일본 열도로 향하면서 기대 이상 비를 뿌려 지친 더위를 물러가게 했다.
지난밤 행정당국은 폭우를 재난급으로 대비하십사는 문자가 날아왔다. 날이 밝아온 새벽에 잠을 깨 새날 일정을 구상했다. 낮에도 비가 계속 내리면 집에 머물거나 도서관으로 나가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기상청 홈페이지 검색한 구름 사진은 주간에도 강한 강수대일 듯했다. 그러함에도 동선을 집 바깥으로 정해 배낭에 책을 한 권 챙겨 평소처럼 자연학교로 나섰다.
날이 밝아온 아침 6시 집을 나서니 도서관 열람실이 열리기까지 시간이 남은지라 버스를 타고 가는 이동 중 세 가지 선택지를 생각했다. 일단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아침에 강가로 나가 짧은 동선이나마 산책을 마치고 북면 최윤덕도서관을 찾거나 시내로 들어와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을 들를까 싶었다. 다행히 비가 계속 그쳐 준다면 현지에서 산책으로 하루를 보내도 좋을 듯했다.
비는 잠시 그친 상태여서 타고 간 버스는 동정동에 내려 인근 마트에 들러 커피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배낭 속에는 어제 가술 국도변에서 팔아 준비해둔 간식을 겸한 점심 대용이 될 술빵이 있었다. 동정동 정류소에서 대방동이나 월영동을 출발한 버스가 굴현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을 지켰다. 얼마 뒤 북면 온천장을 지나 강가로 가는 버스로 초소로 가는 21번 버스가 다가와 탔다.
천주암 아래서 굴현고개를 넘으니 차창 밖 북면 일대는 안개가 자욱해 산봉우리와 마을을 가려 분별이 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뀔 즈음 일교차가 큰 아침에 나타나는 안개인데 올여름 지나 초가을 아침은 날씨가 너무 더위 안개가 낄 조건이 못 되었다. 그동안 뜨거운 태양 복사열에 달구어진 열기로 대기 중 습도는 수증기로 모두 증발해 안개가 형성될 대기 중 수분은 말라 버렸다.
온천장을 지난 버스는 낙동강 강가 바깥신천과 안신천을 돌아 하천에서 앞실을 지났다. 도래에서 내산을 지나 종점 초소마을에 닿았다.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건너편은 옥녀봉과 마금산에서 이어지는 천마산 산등선이 보였는데 엷은 안개가 걸쳐졌다. 초소에서 명촌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니 주변 야산은 단감과수원으로 풋감은 고물이 차면서 단맛이 드는 때였다.
낮은 산마루를 넘으니 먼 전방으로 본포로 돌아가는 벼랑과 학포 앞은 물길이 원호를 그리면서 흘렀다. 명촌마을 안길에서 동구로 나가니 강가답게 민물횟집이 두 군데 보였다. 둑 너머는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생태공원 쉼터가 나왔고 시원스레 뚫린 자전거길은 수양버들이 줄을 지었다. 강 건너편은 창녕 부곡면 임해진 청암 벼랑에서 노리와 학포로 잇는 청학로로 개비길이었다.
인적 끊긴 명촌 강가 생태공원에서 임해진 벼랑을 바라봤다. 운무가 낀 적멸의 강가였다. 갯버들이 우거진 둔치라 함안보를 빠져나와 둔각으로 휘어져 흐를 강물은 보이지 않았다. 지붕은 캐노피 덮개여서 빗방울에 젖지 않은 쉼터를 야외 도서관 삼아 배낭에 넣어간 책을 꺼내 읽었다. 기업과 출판업에 종사하다 고전 연구만 몰입하는 조윤제가 쓴 논어 해설서 ‘사람 공부’였다.
잠시 머물다 시내로 복귀해 도서관 열람실을 찾으려다 마음이 바뀌어 강가 생태공원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폭염에 시달리다 시원한 빗줄기로 더위를 잊게 해줌만도 감사했다. 예상대로 비는 세차게 내리고 산사태 경보와 함께 터널이 통제된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간식을 이른 점심으로 때우고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둑을 넘어 명촌마을로 가 시내로 가는 15번 마을버스를 탔다. 24.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