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1년 면죄부(免罪符)에 대한 루터(1483-1546)의 95개조의 제시가 발단이 되어 난 종교개혁은, 독일 황제까지도 관여하게 되었다. 황제 카르 5세는 프랑스에 대한 정책상 교황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루터에게 그 주장을 취소하게 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루터는 1521년, 국회에 소환되었다. 국회에서 루터는 1521년 황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복음주의 신앙을 표명했다. 한편 황제는 그런 그를 독일 제국의 죄인으로 단정했다. 이것은 루터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용기를 갖고 국회로 향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설사 국회의 지붕 기와의 수만큼 많은 마귀가 내게 덤벼들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 이 신앙의 결단이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용기를 갖고 해 낸 일들은 무엇인가?
삼상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요시야의 종교개혁 본문 : 왕하23:4
개혁에는 언제나 부패가 전제됩니다. 부패와 부정, 불의한 요소들이 전혀 없는데 개혁을 제창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요시야적 종요개혁은 당시 유다의 종교적 부패상과 그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알게 해줍니다. 부패와 타락을 극복하는 길은 철저한 개혁뿐입니다.
1. 주의 말씀에 근거한 개혁(스7:10)
1)성경의 권위 회복 개혁은 그것이 어떤 성격을 갖든지 뚜렷한 근거가 있어야만 명분이 서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주먹구구식 개혁이나 몇 사람의 이익이 전제된 개혁은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종요개혁은 말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며, 요시야가 추구한 것이 바로 이러한 운동입니다. 그는 개혁을 통해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켰습니다. 교회가 구실을 다하고 교회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제자리에 두어야만 합니다. 성경의 권위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개혁을 위한 어떤 형태의 노력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이며, 규범입니다. 어느 것으로도 이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계시하셨으므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는 운동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한 개혁, 성경이 중심이 되지 앓는 개혁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혁이 아닙니다.
2)인본주의의 배제 인본주의란 신본주의의 반대 개념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종교가 아닌 인간 중심의 종교, 하나님 중신의 신앙 아닌 사람 중심의 등이 이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가져다주는 심각한 병폐를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바로 이와 같은 병폐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나 그밖에 다른 피조물들을 둘 때에 인간은 타락하고 부패한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 안에는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따라서 말씀과 하나님을 근거한 철저한 개혁이 요구됩니다. 인본주의가 배제될 때 교회가 제 구실을 할 수 있고, 성도가 거룩함을 유지하게 됩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초대교회가 소유했던 능력을 갖지 못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경건한 신앙의 회복(딤전4:8)
1)하나님 중심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는 경건한 신앙을 회복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올바른 신앙에 대한 평가는 그 중심이 하나님인가 아닌가의 여부로 판명이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닌 종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거짓 종교이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신앙도 역시 그렇습니다. 경건한 신앙이란 외형이나 형식에 있지 않고 내용에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외의 타종교를 생명을 구원하는 참종교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를 좇는 자들을 경건하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 종교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까닭입니다. 신앙과 경건에 있어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습니다.
2)성결한 생활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성결한 생활을 회복하는 운동이었습니다. 도덕적인 타락은 개혁에 대한 요청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따라야 할 기본 도리가 있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결한 생활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다움을 유지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선과 의에 기초될 때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3.철저한 우상 제거(출20:5)
1)우상의 실상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유다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모든 우상을 철저히 제거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이 사람의 손에 의해 제작된 무익하고 헛된 것임을 알았으므로 철저히 색출하여 제거했습니다. 우상은 헛된 것입니다. 그것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손과 발이 있으되 움직이거나 도움을 주지 못하는 헛된 존재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고 섬기는 거짓 신일 뿐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우상 앞에 절하면서 복을 구합니다. 이는 우상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상은 우리를 돕거나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가져다 놓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우상입니다.
2)우상의 해악 이스라엘이 당산 숱한 수난은 그 대부분이 수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과 연합함으로 인하여 열방의 노략거리가 되었으며, 많은 시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우상이 가져다 주는 것은 해악뿐입니다. 유익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요시야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모든 우상들을 철저히 제거했던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개인이나 나라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므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우상이든지 마찬가집니다. 나무나 돌에 파서 만든 우상은 물론, 아름다움이나 건강, 출세, 쾌락의 우상은 개인을 파멸로 이끌어 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라까지도 망하게 됩니다.
결론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개혁의 과제를 가진 오늘의 교회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나 인본주의를 배제하는 일이 현대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경건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요청됩니다. 도덕성을 상실한 교회, 성결 생활이 없는 성도들, 여러 종류의 우상들을 가진 우리 사회는 개혁에 대한 역사적 요청을 겸허히 수용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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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기도와 전도와 겸손과 성결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복된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