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여백, 인생
석야 신웅순
아내와 40년을 살았다. 그 동안 나는 아내와 한 번도 터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 아내는 말이 없다. 그냥 듣기만 한다. 의견 차이야 왜 없겠냐만 그래도 큰 탈 없이 살았다.
집 사람이 이번에 ‘꽃, 여백, 인생’이라는 첫 문인화 개인전을 연다. 집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거기에 시를 부쳤다. 그림과 시의 뒤늦은 만남,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최초의 대화일지 모르겠다. 천성이야 어디 가겠냐만 아내는 그림으로 보여줄 뿐 늘그막에도 여전히 침묵이다.
언제나
분홍메꽃
혼자인
저쪽은
소프라노 목소리인지
테너 목소리인지
늘그막
이름도 못 가진
내 사랑
청산별곡
-「아내 36」
부모님 떠나보내고 아이들 가르치고 시집 다 보내고 나니 꽃 같았던 청춘은 순식간에 가버렸다. 거울을 보니 머리에 허옇게 찬서리가 내렸다. 누군들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무슨 변명이 필요하랴. 그것은 인생 만년에 우리가 써나가야할 긴 여백이다.
『꽃, 여백, 인생』은 아내의 첫 개인전, 문인화 화첩이다.
아내의 문인화 그림과 도자기 그림에 나의 시와 글씨를 부쳤다. 문인화는 집사람 작품이나 도자기는 집사람과 나와의 콜라보 작품이다. 주연은 아내요 조연은 나이다. 이것이 맞다.
아직도 이름을 못 가진 내 사랑 청산별곡.
아내는 청산을 그려나갈 것이다. 아내의 여백에 난 사슴 같은 별곡을 쓸까. 내 뒤늦게 돌아왔으니 아내에게 백아절현 같은 화룡점정,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에 대한 촉촉한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더 바라랴.
-2023.5.23.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
첫댓글 아름다운 ㊗️하를 드림니다.
여백을 남겨 놓으신 풀빛 선생님 께서
교수님의 가슴을 뛰게하셨군요^^
예쁘고 달콤한 글
5월에 주인공 이십니다!!!
출석 하려고 지하철 에서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했습니다.
보아주신 이도 고맙고 제게도 고맙습니다.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