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의 멜로디와 하모니는 가볍고 단순한 느낌을 주지만 가사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제법 무거운 편이다.
가사의 전반적인 내용은 60년대 말 한창 뜨겁게 달아올랐던 "민권 운동". Malcom X, Martin Luther King 목사 등을 위시한 수많은 민권 운동가들이 인종차별에 대항해 싸웠던 60년대 미국사회의 분위기가 이 노래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인생"이라는 머나먼 길을 걸어 나가면서 인종 간의 "반목", "탄압", "투쟁" 같은 부담이 되는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리고 서로 도우면서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자는 것이 주제라 할 수 있다.
'He'로 상징된 흑인, 소수 민족 등 숱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에 "짐이 되는 부담스러운(heavy)"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형제" 라는 사실이 이 노래의 제목에 담겨있는 의미이다.
Hollies는 1962년 12월에 유년시절부터 친구였던 그레이엄 내시와 앨런 클라크가 결성한 영국의 록 밴드로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그룹들 중 하나이다.
앨런 클라크, 그레이엄 내시, 토니 힉스 3명의 보컬 하모니가 특징이며 밴드의 프로듀서이자 매니저였던 론 리차즈(Ron Richards)는 밴드의 활동 방침을 비틀즈, 롤링 스톤즈와는 정반대로 자작곡보다 음악성이 검증된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부르고 라이브 투어 활동을 위주로 하는 쪽으로 정했다. 그의 이러한 전략은 먹혀 들어가서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가 미국에 진출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 홀리스는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끄는 밴드가 되었다.
1965년 12월 9일, 발매된 비틀즈의 명반 Rubber Soul과 앨범에 수록된 조지 해리슨의 곡 If I Needed Someone의 홀리스 버전이 동시에 발매되었는데 Rubber Soul에 수록된 조지 해리슨의 오리지널 버전은 호평을 받은 반면 홀리스 버전은 대중들에게 혹평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연이어 60년대 중반부터 많은 락밴드들이 자작곡들로 이루어진 명반들을 발매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밴드의 메인 작곡가 그레이엄 내시는 밴드의 활동 방향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밴드 멤버들 중 유일하게 밴드의 자작곡을 중점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론 리차즈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였고 1967년, 밴드는 그레이엄 내시의 주도하에 기존 사운드와 당시 유행하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접목한 앨범 <Evolution>과 <Butterfly>를 연달아 발매하였다. 그러나 앨범들은 모두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완전히 실패해버렸고 이에 매니저 론 리차즈와 다른 멤버들이 다음 앨범으로 밥 딜런의 노래들을 커버한 앨범 <Hollies Sing Dylan>을 녹음하려 하자 그레이엄 내시는 앨범 녹음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1968년 8월 28일 진행된 새 싱글 곡 "Listen to Me" 녹음 세션을 마지막으로 밴드를 탈퇴해 버렸다.
당시 그레이엄 내시는 음악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더 이상 투어를 돌고 싶지 않다. 그저 집에 틀어박혀서 작곡이나 하고 싶다. 다른 멤버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I can't take touring any more. I just want to sit at home and write songs. I don't really care what the rest of the group think.)라고 밴드 탈퇴 이유를 밝혔다.
그레이엄 내시 탈퇴 이후 밴드는 새 멤버로 테리 실베스터를 영입하고 1969년 6월 25일,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호소하는 곡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를 새 싱글로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첫댓글 잘들어요
수고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고운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