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내 계곡으로
지겹도록 뜨거웠던 올여름을 뒤늦게 송별한 의식은 대단한 폭우로 마무리했다. 상하이로 상륙한 태풍 플라산은 대륙으로 진입 소멸할 예상 진로와 달리 우리나라로 급선회해 남녘 해안을 스쳐 일본 열도로 나아갔다. 그 덕에 폭염으로 지친 우리나라는 바람 없는 태풍이 엄청난 비를 뿌렸다. 한때 철길이 멈추고 터널이 불통 되긴 해도 내가 사는 창원은 비 피해는 크지 않아 복지다.
세찬 비가 그쳐가던 구월 넷째 일요일 날이 밝는 새벽이다. 음용하는 약차를 달이고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대출 도서 3권을 안고 배낭은 짊어졌다. 어제 도서관을 찾아 반납하려 했는데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그곳으로 가던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산행을 나서는 길에 교육단지 도서관에 먼저 들러 업무가 시작되기 전 무인반납기에 넣어둘 참이다.
여명에 길을 나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반송 소하천은 밤새 냇물이 할퀴고 지난 흔적이 뚜렷했다. 원이대로를 건너 폴리텍대학 후문에서 캠퍼스를 관통해 교육단지 도서관 무인반납기에 투입했다. 교육단지와 인접한 올림픽공원 테니스장과 축구장은 비에 젖고 이른 시간대라 운동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창원대로 창원병원 방향에서 마산 월영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지기들에게 보내려 준비한 아침 시조 ‘고구마꽃’은 후일로 미루고 버스를 타고 가다 즉석에서 떠올린 시상을 다듬은 ‘폭염 장송식’으로 바꾸어 보냈다. “여름은 여름대로 유난히 무더웠고 / 가을이 다가와도 열기는 식지 않아 / 엊그제 지나간 추석 열대야로 넘겼다 // 끝 모를 폭염으로 모두가 지쳤는데 / 상하이 가던 태풍 진로를 급선회해 / 진종일 와달비 내려 노염 기세 꺾었다”
마산역에 닿아 광장 모퉁이에서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삼성병원을 둘러 어시장을 거쳐 밤밭고개를 넘었다. 아까 마산역 광장 노점도 그랬지만 어시장이 노점이나 댓거리 일요 장터는 폭우 영향으로 저자가 제대로 서지 않아 썰렁했다. 시장으로 푸성귀를 내다 팔고 돌아가는 부녀들이 없어 근교로 나가는 버스 승객도 줄어 한산했다.
진북면 소재지를 둘러 덕곡천을 따라 금산마을로 오르자 차창 밖은 벼들이 누렇게 익은 논이 보였다. 학동 저수지를 돌아간 서북동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내렸다. 마을 곁 임도로 드니 길섶에는 굵게 주름져 살진 호박이 널브러져 눈길을 끌었다. 왜 맷돌호박으로 불리는지는 겉으로 보기만도 그 단단함이 짐작되었다. 넝쿨을 뻗어 자란 잎줄기에서 맺은 결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작은 절이 두 개 자리한 산기슭에서 임도를 따라 걸으니 이즈음 끝물인 물봉선꽃은 비를 맞아 헝클어져 있었다. 길바닥에는 야생 밤톨과 도토리가 떨어졌을 텐데 멧돼지가 먹고 떠난 뒤였다. 녀석들은 야행성이라 날이 새면 칡덤불에서 잠을 자지 싶다. 손에 쥔 등산지팡이를 호신용으로 주변 경계를 놓치지 않고 T자 갈림길에서 감재로 향해 고개를 넘어 여항산 둘레길로 들어섰다.
별천으로 가는 임도 건너편 봉화산은 운무가 짙어 산세가 드러나지 않았다. 엊그제까지 대단했던 더위는 폭우가 식혀주어 가을답게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연석 더미에 앉아 배낭을 풀고 간식을 꺼내 먹으면서 숲이 주는 기운을 받아들였다. 쉼터에서 일어나 약수터 산장을 지나니 하별내 보갑사가 나왔다. 상별내는 법륜사가 있는데 전번에 들리니 스님이 떠난 묵혀진 절이었다.
남녘에서 적송을 드물게 보는 산자락을 벗어나 별천계곡으로 내려가니 어제 내린 비로 물이 넉넉하게 흘렀다. 버드나무가 선 동네라 ‘유천(柳川)’이 우리말 ‘버드내’로 불렸다. 조선 중기 고을 원님으로 온 한강 정구가 ‘별천지’처럼 승경이라 ‘별천’‘별내’로 불리기도 해 그때 ‘천’은 천지(天地)의 하늘이고, 시내를 뜻하는 ‘내’와 결합했는데 ‘버드내’가 더 친근하게 와 닿았다. 24.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