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라고했어? 당신 미쳤어? 이게 무슨… ”
“ 눈을 감길래 …당신도 좋아하는줄 알았지. ”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가 앞을 아른거렸다. 나는 화를 못이겨,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손이 얼얼할 만큼 세게. 더이상 그 잘난 입에서 나를 농락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돌팔이의 고개가 훽 하고 돌아갔다.
“ 재수없는 세끼. 이럴줄 알았다고 내가. ”
“ …. ”
“ 생각해보니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지? 오늘 있었던 일 어떻게 그렇게 잘아는데? ”
“ …. ”
“ 말해봐. ”
그의 고개가 돌아간 채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볼 수가 없었다. 당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보이지 않았다. 느낄 수 도 없었다. 그는 아무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 니가 태완이와 한패가 아니라는 걸 말해보라고!!! ”
“ ……진정해. ”
“ 뭐? ”
“ …당장은 말할 수 없어. ”
“ 왜? 너랑 김태완 둘다 경찰서에 쳐넣을거야. 감옥가게 해버릴거야. ”
“ 그렇게 하던지. ”
알아서 하라는 식의 성의없는 말투와 그의 짧은 한숨.
“ 뭐라고? 너 뭐라고 했어! ”
나는 나에게 등을 돌리는 돌팔이에게 달려들었다. 슬픔과 외로움과 배신은 곧 분노가 되었다. 아니길 바랬다. 동정심에 그저 나를 우연히 도와준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의 어깨를 잡아 세차게 돌렸다. 한대 더 패줄 심산으로.
“ …너 …? ”
주먹은 그의 몸 앞까지 가있는데,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왜 …이걸 지금 봤을까? 돌팔이의 몸은 온통 푸릇푸릇 멍투성이였다. 나한테 맞은건지 그 마스크남한테 맞은건지 터져있는 입술과 안쪽에서 피가 터져버린듯 빨갛게 부풀어오른 광대. 아까는 내가 눈이 멀었었나? 멈칫하는 내 발걸음에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능구렁이같이 받아친다.
“ 때릴맘이 사라졌나? ”
“ …. ”
“ 내가 한패인것 치곤 너무 맞았나? 적당히 때리라고 했는데 말이야. ”
그의 뒤에 있는 베란다 창문으로 빛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오후의 햇살은 따갑다 못해 아프다. 이 감정은 뭘까. 돌팔이에 대한 미안함 … 일까.
“ 그렇게 불쌍하게만 쳐다보지 말고, 수건좀 주지 그래…샤워가 너무 하고싶은데. ”
-
이틀이 지났다. 그 동안 아예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연예인이 누가 바쁘다고 했던가 …딱히 잡혀있는 스케줄이 아니라면 백수가 다름없다. 중간중간 돌팔이가 집으로 와서 필요한 물건 등을 사주곤 했다. 핸드폰은 김태완의 부재중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상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도저히 돌팔이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 띵-동
인터폰을 보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띄었다. 태완이는 안절부절하며 인터폰앞인데도 시선을 떨군채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집에는 나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돌팔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분명히 펄쩍뛸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내가 김태완과 만나는 것을 계속 반대했다. 하지만 그 보다는 내가 더 잘알아. 김태완은 절대 나를 해칠 사람이 아니다.
그가 관문이 열리고 쭈삣쭈삣 자신감 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뭐라고 첫마디를 해야 할지 고민 많이했었는데 … 안본지 3일밖에 안됐는데도 한달 안본것마냥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 태완아 밥은 먹었어? ”
“ 네? …네. 네. ”
“ 밖에 많이 덥지? 요즘 엄청 덥다더라. ”
“ 형 ……. ”
“ 태완아. ”
“ 형,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형, 미안해요 …흐윽…. ”
태완이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내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목놓아 우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였다. 그의 울음에 따라서 나도 울지 못하는 것 또한 너무나 어려운 일이였다. 그는 내가 어깨를 잡아 줄 때까지 한참이나 내 시선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 대…대표님이 …협박했어요. 돈 주겠다고 ….”
“ 대표님이? 왜? 어째서? ”
“ 그 여자도 대표님이 구해준 …사람이고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형 진짜 미안해요. ”
“ …너 박승하알지? 내 정신과의사 ……너 그사람하고는 무슨관계야? ”
“ 그 … 그사람은 대표님하고 잘알아요. ”
“ 뭐라고? ”
나를 그렇게 만들라고 협박한 대표와 박승하가 아는사이라 …… 적지않은 충격이다. 박승하 도대체 너는 정체가 뭐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거라곤 그는 그냥 큰병원도 아닌 작은 정신의학과 의사일뿐이다. 그런사람이 우리 소속사 대표를 알고 있단말야? 게다가 하필 왜? 나를? 이제 겨우 뜨게 됬는데 자기 손으로 나를 무너트리려고 했단말인가? 그것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태완이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 소속사는 그다지 큰 스타는 없었다. 유명한 소속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활동을 활발히 하는 회사도 아니였으니까.
“ 그럼 대표를 만나봐야겠어. 사장 어딨어? 사무실에 있어? ”
“ 대표님 지금 해 …해외에 있어 …요. ”
“ 그게 무슨말이야. 3일전에 스케줄 다녀오기 전에도 만났는데. ”
“ 저도 잘은 모르겠 ……허억.”
핸드폰을 꼭 손에 쥔채 안절부절 못하던 태완이가 처음에는 내 눈치를 보느라 그런 줄 알았다. 근데 핸드폰이 지금 울리는 순간 태완이의 안색이 파래지며 숨을 크게 들이킨다. 어쩔줄 몰라하는 태완.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는 탓에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전화좀 받겠다며 쇼파에서 일어나는데 엄청 아픈 사람마냥 크게 휘청거리는 그. 나는 순간적으로 일어나 태완이의 팔을 잡아주었다.
“ 야, 너 …너 이게뭐야? 너 몸이 왜그래? ”
팔을 잡는 순간 두개쯤 풀어진 그의 셔츠 안으로 보이는건 온통 시퍼런 멍. 그는 얼굴과 목을 제외한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너무 놀란나머지 그의 셔츠를 잡고 뜯어버리자 우수수 단추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와 동시에 완전히 오픈된 그의 몸은 정말 ……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태완은 놀라 가만히 있는 내 손을 살짝 뿌리치며 셔츠를 여미며 나가는 시늉을 했다.
“ 아 …아니에요 … 형 …저 전,전화 받아야돼요. ”
“ 미친세끼야. 너 몸 왜그러냐고 묻잖아. ”
내가 알던 김태완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 형 … 저도 안, 안그러고 싶었는데 … 한번 그렇게 되니까 … 형 미안해요. 박승하라는 그 사람 조심해요. 조심 하세요 …. ”
줄 곧 시선이 아래로 가있던 태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차서 곧 떨어질것 같았다. 박승하 …역시 이 남자를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작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말투 … 태완이를 진정시키려 그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현관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였다. 이대로 태완이를 놓쳐버리면 다시는 못볼것 같다는 생각에 나도 그를 쫒았지만 마당을 지나 담벼락의 열어진 대문을 박차고 나갔을땐 아무도 없었다.
“ 태완아 …!! 김태완!!! ”
이렇게 빨리 사람이 달릴 순 없다. 심지어 그는 부상을 당했으니 멀리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경사진 골목을 지나 그가 숨을만한 곳은 다 찾아봤다.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마음도 너무 불안해졌다. 안봐도 느낄 수 있었다. 태완이가 처한 상황 ……내막은 알 수 없어도 좋은 상황은 전혀 아닐것이 분명하기에. 주택가를 지나 번화가 까지 왔는데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번화가에서는 사람들과 섞여버리면 더이상 찾을 수가 없어 …어디간거니 …무슨일인거야 …더운날씨에 땀이 이마에 맺히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더이상 태완이를 찾을 수 없다고 단념했을때 이미 나는 인파속에 있었다.
‘ 저사람 연예인 아니야? ’
‘ 어디서 많이 봤는데? 물어볼까? 배우아니야? 맞는거같은데 ’
“ 아 …허억.”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왜 이렇게 까지 멀리나왔지? 여긴 어디야 … 사람들이 둥글게 감싸고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짐과 동시에 심장도 미친듯이 뛰었다. 안돼 돌아가야해 집으로 … 눈을 질끈 감아도 시끄러운 사람들의 목소리 … 클락션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들 … 공기소리 … 가게의 음악소리 … 태완이조차 없으니 이제 나를 케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겨내야해 … 여기서 쓰러지면 정말 큰일날 거야. 안돼. 제발.
“ 배우 가을씨 맞으시죠 …괜찮으세요? ”
“ 저리가 다가오지마! ”
고개를 숙이고 그자리에 주저앉아 쪼그려 앉아있는 내게 어떤 남자가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지만 나는 그 사람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손으로 쳐냈다. 그 남자는 세게 맞았는지 작은 신음을 냈다. 나를 둘러싼 소음은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제발 나를 쳐다보지말라고 …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시간이 가, 저녁이 되고 밤이 되고 새벽이 되면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겠지. 그때까지 웅크려 앉아있을 심산이었다.
“ 가을씨. 가을씨. 저는 신우일보 연예부 기자 김수찬입니다.”
“ …. ”
“ 제가 집으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이러고있으면 가을씨만 더 힘들어져요. ”
“ …. ”
“ 가을씨? 저를 보세요. 저는 믿어도 돼요. 괜찮아요. ”
처음에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던 그 목소리다. 그는 고개숙인 나를 완전히 감싼채 나에게 속삭였다. 누구라고? …지금은 알고 싶지 않아. 토할것 같아 아무나 나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다줘.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얼굴을 확인할 겨를도 , 여유도 없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를 따라 천천히 걷고있는 중 … 증오스럽지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전 이강을씨 보호자입니다. ”
“ …가을씨 이사람 알아요? 고개 들어보세요. ”
고개 안들어도 알아요. 저주스러운 남자.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그에대한 분노는 삭지 않았다. 눈이 반쯤 풀린상태로 그를 노려보자 박승하는 웃음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 강을아. 집에 가자. ”